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56)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55화
[긴급 이벤트 발생!>– 파티원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파티원을 구해 주세요!
눈앞에서 점멸하는 홀로그램 창을 끌 새도 없었다.
예찬은 망설임 없이 1 연습실 문밖에 우글거리는 연습생들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정신 사납게 깜빡거리는 홀로그램 창을 대충 옆으로 치운 예찬이 빠르게 상황을 살폈다.
‘지금 안에 있는 건…… 원래 이 연습실을 쓰는 1조랑 3조. 그리고 범세혁이랑 심상록…… 선우이경은 언제 온 거야?’
무대 아래에서는 항상 헤실거렸던 범세혁이 드물게 곤란한 표정으로 정의탁을 뒤에 숨기듯 서 있었다.
오지랖 넓기로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심상록과 선우이경은 아직도 씩씩거리고 있는 김대영의 앞을 막았다.
김대영의 뒤에는 같이 따돌림을 주도한다는 나머지 두 사람이 눈치를 보는 것처럼 쭈뼛거리는 중이었다.
예찬은 3조의 싸움에 봉변을 당한 1조 리더 남지유가 양쪽을 번갈아 보며 머리를 쥐어뜯는 것까지 확인했다.
그리고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제작진에게 다가갔다.
딱 봐도 스태프들이 더 당황한 채였다.
‘이분들도 고생하시네. 연습실 촬영은 보통 신입들이 하니까,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겠지.’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메인 PD와 메인 작가를 부르러 누군가 뛰어나간 모양이었다. 그쪽이 돌아오기 전까지 말려야 할지 찍어야 할지 정할 수 없어서 상황을 지켜보는 게 안 봐도 뻔했다.
예찬은 가장 끝 쪽에 서 있는 FD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FD님, 밖에 있는 연습생들은 해산시키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 그래. 그렇지.”
예찬의 말에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FD가 문으로 다가가 구경하고 있는 연습생들을 돌려보냈다.
자연스럽게 1 연습실에 남은 예찬은 이번엔 사건의 중심부로 이동했다.
멱살을 잡히기라도 했는지 김대영의 티셔츠 목 부분이 구겨져 있었다.
‘미쳤네.’
단순한 말싸움이어도 미쳤다는 소리 외엔 안 나오는데 몸싸움이라니 상황이 더 심각했다.
자기보다 아홉 살이나 많은 형의 멱살을 잡은 용자의 얼굴을 구경하기 위해 예찬은 고개를 돌렸다.
범세혁의 뒤에서 김대영과 그 무리를 쏘아보고 있던 정의탁과 눈이 마주친 예찬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형까지 왔…….”
“너 맞았어? 입술이 그게 뭐야?!”
말을 끊은 예찬이 빠르게 다가가 정의탁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어떻게 얻어맞은 건지 터진 입술 부근에 피가 번져 있었다.
‘밀치거나 멱살잡이 수준이 아니라 주먹다짐…….’
예찬의 얼굴에 서린 경악을 읽은 정의탁이 구질구질하게 변명했다.
“아, 이거 잘못 스친 거예요. 보기에만 이런 거지 안 아파요.”
“거울이나 보고 말해. 너 지금 입에 피…… 거기다 뺨도……완전 심각하거든?”
자세히 보니 입술만 터진 게 아니라 한쪽 뺨도 미묘하게 빨간 게 제대로 맞은 티가 났다.
힐끗 김대영 쪽을 보니 이제야 이성이 돌아왔는지 안색이 거무튀튀해졌다.
예찬이 정색하고 소리쳤다.
“정의탁, 너 몇 살이야.”
“열여덟이죠……?”
정의탁이 뭘 잘못 먹었느냐는 듯 예찬을 올려다보았으나 예찬은 개의치 않고 듯 언성을 높였다.
“누가 미성년자를, 그것도 촬영 중에 때려!”
예찬은 ‘왜’에 포인트를 두지 않았다.
싸운 이유야 뻔했다. 그러나 이유가 얼마나 정당했든 손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거였다.
감히 성스러운 카메라 앞에서 싸운 순간, 김대영과 정의탁 둘 다 신나게 까이는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그 까임의 ‘정도’였다.
스물일곱 김대영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정의탁이었다.
촬영 중인 미성년자 아이돌 지망생의 얼굴을, 입술이 터질 정도로 때린 것은 과연 어느 정도의 죄질일까.
판단은 네티즌들이 하겠지만 유교 정서에 위반해 형의 멱살을 잡은 정의탁보다 엄한 판결을 받을 것이 자명했다.
“그. 나는 정의탁이 먼저 건방지게 구니까!”
김대영도 계산기를 두드렸는지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예찬은 싸늘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의탁이가 형을 먼저 쳤나요?”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왜 때리셨어요?”
차가운 목소리가 사형 선고처럼 연습실 안에 내려앉았다.
김대경은 당황한 듯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가해자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어색하게 김대경의 시선을 피했다.
“야, 너희……!”
“대체 무슨 일입니까?”
김대경이 배신감에 원망의 말을 꺼내려던 순간, 메인 PD가 연습실 문을 열어젖혔다.
“의탁이가 맞았습니다.”
예찬은 다친 얼굴이 잘 보이도록 정의탁의 몸을 돌려 메인 PD 앞으로 들이밀었다.
“……허.”
메인 PD는 연습실 안을 쭉 둘러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했다.
“와, 카메라 앞에서 데뷔도 안 한 연습생들이 주먹다짐이라니…… 진짜 대~단들 하시네. 일단 한 명씩 얘기는 들어볼 테니, 김대영 연습생 먼저 따라와요.”
자기 할 말을 다 한 메인 PD가 휙 돌아서서 나가 버리자 김대영이 다급하게 쫓아갔다.
이대로 끝이 아니었다. 예찬은 정의탁의 손목을 붙잡고 아직 자리에 서 있는 제작진에게 다가갔다.
“얘 얼굴 때문에 의무실에 가 봐야겠는데 괜찮을까요?”
“아, 그럼요. 그래야죠. PD님께는 저희가 그렇게 전달할게요.”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예찬은 어느새 옆에 딱 붙어 있는 심상록과 범세혁에게도 말했다.
“얘는 제가 잘 데리고 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요.”
“그래, 나랑 세혁이가 너희 조원들에게 사정은 얘기해 둘게.”
“……그런데 새벽이가 안 보인다?”
뒤늦게 다가온 선우이경의 말에 연습실을 둘러보니 정말이었다.
정의탁의 얼굴에 정신이 팔려 완전히 배새벽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예찬은 설명을 바라는 얼굴로 정의탁을 바라보았다.
“……걔는 잠깐 옷 갈아입으러 갔어요.”
“……일단 지금은 의무실이 먼저고. 그 후에 연습 중간에 옷을 갈아입으러 갈 일이 뭔지 포함해서 진득하게 이야기해 보자.”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뱉어 내는 예찬에게서 지독한 광기를 느낀 정의탁이 어지러운 듯 머리를 짚었다.
예찬은 마지막으로 선우이경을 돌아보았다.
“이경이 형, 조금 시간이 걸릴 거 같은데 미안해요.”
선우이경이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비록 경쟁자니 뭐니 말했어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신경 쓰지 말라고 할 만큼 쌀쌀맞은 사람은 아닙니다. 잘 해결하고 와.”
커다란 손이 예찬의 등을 툭 두들기더니 그대로 떠밀었다. 예찬은 짧게 고개를 까딱하고 정의탁과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제작진이 제대로 해산시켰는지 복도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긴장이 풀린 듯 숨을 크게 내쉰 정의탁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내 얼굴 심각해요? 흉질 거 같아요?”
“와, 놀랍다. 그런 걱정을 할 줄 아는 놈이 싸움을 해?”
의무실이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걸음을 옯기는 예찬을 쫓아오며 정의탁이 툴툴거렸다.
“저쪽이 먼저 선을 넘었거든요?”
“그렇다고 카메라 앞에서 쌈박질을 해? 너, 이제 보니 굉장히 위험한 녀석이구나.”
정말 대단한 발견을 한 사람처럼 예찬이 눈을 크게 뜨자 정의탁은 억울한 듯 볼을 씰룩거렸다.
얼굴의 움직임에 입술이 다시 터져서 피가 나왔다. 예찬은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을 정의탁의 주둥이에 가져다 댔다.
정의탁은 손수건을 받아 들며 코웃음을 쳤다.
“형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가만히 있진 않았을걸요. 그리고 오해하는 거 같은데, 나 김대영 형한테 손 안 댔어요. …… 좀 밀치긴 했지만.”
“그럼 김대영이 자기 멱살을 자기가 잡기라도 했어? 자해 공갈단이야?”
“와, 어떻게 알았어요?”
빈정거리던 예찬의 걸음이 뚝 멈췄다.
“……진짜로 네가 한 게 아니라고?”
“내가 미쳤어요? 카메라 앞에서 사람 멱살을 잡게.”
미간을 좁힌 정의탁의 뺨이 그새 더 부어 있었다. 예찬은 묻는 것은 일단 뒤로 미루고 정의탁을 의무실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 뺨에 얼음 팩을 대고 의무실 밖으로 나온 정의탁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형이 카메라 앞에서 시시비비 가리라고 했잖아요.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 일단 우리가 소수니까 저쪽에서 발뺌하거나 우기면 답이 없을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일단 저랑 새벽이랑 중간 평가 때까지는 두고 보기로 했었거든요. 그쪽도 다 같이 망해 보자는 거 아니면 정신 차리겠지 싶어서.”
‘그렇게 정신 차릴 놈들이면 애초에 따돌림 같은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만.’
반박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지만 우선 정의탁의 말을 끊지 않고 들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자.’하고 넘기고 있었는데, 새벽이가 좀 무심해 보이는 경향이 있잖아요. 계속 시비를 걸어도 아무 반응이 없으니 자기들이 제대로 열 받아서 슬쩍 새벽이 발을 걸더라고요.”
“미친놈이네.”
“그러니까요. 근데 거기 새벽이가 걸려서 넘어진 게 아니라 김대영 형이 넘어졌어요.”
“…….”
“그 형이 들고 있던 물이 엎어지면서 새벽이한테 쏟아졌고요.”
예찬이 탄식했다. 정말…… 너무 멍청한 놈들이었다.
“……그, 고생 많았다?”
“나도 말하면서 어이가 없으니까 차라리 웃어요.”
그래도 그 당시에는 분위기가 심각했다고 덧붙인 정의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로 촬영할 수 없으니 새벽이는 옷 갈아입으러 간 거예요. 그런데 김대영 형이 새벽이가 자기를 밀친 거 같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잖아요.”
“진짜 미친놈이네.”
예찬이 다시 탄식했다.
머리가 돼야 악의가 있든 없든 뭐라도 할 텐데, 멍청한 놈들의 멍청한 짓에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안 그랬으면 자기가 그렇게 바보같이 넘어졌겠냐는 헛소리하는 것도 짜증나는데, 나머지 둘도 넘어진 형이 그렇게 느꼈다니 그런 거 아니냐고 옆에서 헛소리하고 있고. 순간 확 짜증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카메라 감독님께 부탁하면 영상으로 보여 주실 테니 애먼 애 잡지 말라고 질러 버렸죠.”
이어진 상황은 더 가관이었다.
그 후 민망해진 김대명이 손을 휘두르며 있는 성질 없는 성질을 부리다가 정의탁의 얼굴을 잘못 쳤다. 그리고 입술에 피가 나는 걸 보고 당황해서 꼬으면 너도 한 대 치라고 자기 멱살을 쥐여 주려 했다는 것이었다.
이후 같은 연습실을 쓰던 남지유네 조원들이 치니 마니 하는 걸 보고 싸움이 났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낸 모양이었다.
“그…… 제가 중간에 김대영 형 어깨를 밀치긴 했거든요.”
“…….”
예찬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정의탁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연예계에 있으면서 온갖 사건을 봤다고 자부했지만, 이 판은 늘 레전드가 갱신되는 신기한 동네였다.
“이걸로 쌍방이라는 말은 안 하겠죠?”
“김대영 형은 그렇게 주장하겠지.”
메인 PD부터 시작해서 합숙소 사람들이 전부 알 정도로 일이 커진 것에 비하면 억울한 감이 없잖아 있긴 했다.
그러나 결국 자업자득이었다. 예찬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카메라 돌아갈 때 싸워서 다행이네.”
“그런가요.”
“PD님 성격에 이건 무조건 방송으로 나갈 테고, 앞으로 별소리 다 나올 거란 각오는 해 둬. 얘기 들어 보니 잘못한 것도 없고, 나중에 다 밝혀지겠지만 어찌 됐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주먹질이 나왔으니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꼬일 거야.”
“알아요. 감히 나이도 어린 게 어르신한테 말대꾸하고 밀쳤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그래도 어르신이 저보단 훨씬 더 많이 먹을 테니 그거 보고 위안으로 삼으려고요.”
이 자식, 그새 좀 컸네?
예찬의 제법이라는 시선을 받은 정의탁은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