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5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56화
제1 연습실 앞 복도로 돌아오자 배새벽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상황은 전해 들었다며 다가온 배새벽에게 정의탁은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배새벽이 얼음 팩 아래의 뺨 상태를 보려고 고개를 기울이자 정의탁이 손가락으로 이마를 밀어냈다.
“쪼끄만 게 이런 데 신경 쓰지 마.”
고작 한 살 차인데 어른 행세를 하기에 빤히 보고 있자 정의탁이 휙 고개를 돌리고 짜증을 냈다.
“왜요! 뭐!”
예찬은 말 대신 기특하단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 형이 정말……!”
“정의탁 연습생, 의무실 다녀왔으면 잠깐 PD님께 가 보세요. 소회의실에 계세요.”
“아, 네.”
연습실 안에 있던 스태프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문을 열고 나오더니 말했다.
급하게 정의탁이 복도 끝으로 사라지자 배새벽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여러모로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됐어. 내가 좋아서 한 건데…… 너는 괜찮아?”
예찬의 질문에 배새벽이 속눈썹을 깜빡거렸다.
‘얘는 진짜 자기가 시비 걸렸다는 걸 모르나?’
범세혁처럼 머릿속이 꽃밭이면 남의 악의에 민감하지 않으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찬은 대충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내가 실언했다.”
“의탁이 형한테 미안하죠.”
“뭐?”
배새벽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조곤조곤 대답했다.
“하는 짓들이 유치원 수준이라 유치해서 신경 안 썼거든요. 근데 의탁이 형은 그 사람들이 그렇게 굴 때마다 스트레스 받았던 것 같아서 미안해요.”
예찬은 우선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말간 얼굴을 한 배새벽이 그런 예찬을 담담히 만류했다.
“카메라 있어도 상관없어요. 인터뷰 때 똑같이 말할 거라서.”
‘인터뷰 때 말하긴 뭘 말해, 이 미친놈아!’
떠오른 것을 그대로 뱉을 뻔한 예찬이 짧게 헛기침했다.
가만히 보니 배새벽의 눈빛이 360도 돌아 있었다.
예찬은 이 시동 걸린 불도저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 배새벽아.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지 않겠니? 네가 억울한 피해자라는 건 촬영분이 방송되면 다들 자연스레 알게 될 텐데, 굳이 네 입으로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말하는 순간 엄한 불똥이 튈 것을 은연중에 암시했으나 배새벽은 눈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제가 겪은 상황에 대해서 솔직히 말하는 게 ‘굳이’라는 단어가 붙을 일일까요?”
평소와 다르게 유창하게 말하는 배새벽이 참 낯설었다.
‘이거 완전 뚜껑 열린 상태네.’
그러나 화난 사람에게 ‘너 화났지?’라고 해 봐야 역효과를 낼 뿐이었다.
예찬은 이성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그래,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지. 그래도 의탁이랑은 상의해 보는 게 낫지 않겠어? 너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탁이 이름도 같이 나올 테니까.”
은은한 광기로 빛나던 배새벽의 눈의 기세가 누그러들었다.
예찬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지금 우리는 확실히 개인전을 하고 있지만, 데뷔를 하면 팀으로 활동하는 거잖아. 네가 정말 이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하고 싶은 거라면 앞으로 네가 속할 팀의 손해와 이익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 봐도 나쁘지 않을 거야. 팀을 위해 너 개인의 자유를 무조건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 균형에 대해서 말이야.”
“……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형.”
완전히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배새벽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밍 좋게 남지유가 문밖으로 고개를 쓱 내밀었다.
“예찬아, 이제 너희 연습실 가 봐. 새벽이는 의탁이 올 때까지 우리 조랑 있을게.”
“괜찮아요. 저희 조도 연습해야죠.”
남지유가 혼자 자신을 따돌린 세 사람과 붙어 있어야 할 배새벽을 생각해 챙기려 들었으나 배새벽은 단박에 거절했다.
예찬은 감탄 아닌 감탄을 했다.
“……너, 기가 정말 센 아이구나.”
예찬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인 배새벽은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멀어지는 작은 뒤통수를 잠시 바라보던 예찬은 자신의 연습실로 걸음을 옮겼다.
“예찬이 왔다!”
예찬이 제2 연습실 문을 열기 무섭게 달려온 선우이경이 예찬의 목에 팔을 걸었다.
“잘 해결됐어?”
뒤이어 다가온 심상록의 물음에 예찬은 허리가 굽혀진 채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연습 시작하자. 너 없는 사이에 좀 이것저것 바꿨어.”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끗거리는 강해솔은 티를 내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나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예찬은 아직도 달라붙어 있는 선우이경을 빠르게 떼어 냈다.
“너무 오래 자리 비워서 미안해요. 어느 부분이 바뀐 건지 좀 알려 줄 수 있어요?”
“내가 알려 줄게. 이쪽으로 와.”
선우이경을 따라 거울 근처로 이동하자 강해솔은 나머지 조원들을 이끌고 근처에서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말은 저렇게 해도 해솔이가 엄청 걱정했어.”
예찬은 슬쩍 선우이경을 올려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놀란 기색이 없네?”
“놀랄 일인가요? 해솔이 형 원래 친절하잖아요.”
“그래? 너 말고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 같은데.”
능청스럽게 떠보는 선우이경의 말에 예찬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런가요? 조금만 지켜보면 알겠던데. 그리고 이경이 형도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해솔이한테 관심이 많은가 봐? 둘이 같은 조였던 적도 없지 않나?”
‘이 자식은 무슨 대답이 듣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그래서 바뀐 안무가 어딘데요?”
이 이상 생산성 없는 대화를 계속할 마음이 없던 예찬이 시큰둥한 얼굴로 화제를 돌렸다.
“단체 도입부랑 휘겸이 파트 부분. 방향을 이렇게 바꾸고 동작은 이렇게…… 그래, 잘하네.”
의외로 선우이경은 질척거리지 않고 제대로 바뀐 안무를 가르쳤다.
평소 무대를 봤으니 춤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안무 짜는 능력도 제법이었다.
예찬이 새로운 동작을 다 익혀갈 무렵, 옆에서 추임새를 넣고 있던 선우이경이 다시 화제를 돌렸다.
“해솔이한테는 왜 관심을 두는 거야? 같이 데뷔하고 싶은, 뭐 그런 종류의 관심인가?”
‘진짜 귀찮게 구네.’
예찬은 잠시 나머지 조원들이 있는 방향을 확인했다.
거리도 어느 정도 있고 셋 다 연습에 집중해서 여기서 하는 말이 들릴 것 같진 않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 선우이경을 바라보았다.
예찬의 대답을 기다리며 생글거리고 있는 낯짝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관심인데 뭐요.”
불만 있어요?
표정으로 뒷말을 대신하자 선우이경이 귀여운 척 과장되게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와, 해솔이 너무 부럽다. 나한테도 그런 관심 둬 주면 안 되나?”
“형한테요? 왜요? 저한테 관심 있어요?”
으레 하는 말일 거로 예상한 예찬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예상외였다.
“어라? 지금까지 엄청 티 내지 않았어? 나, 너랑 해솔이한테 무지 관심 있다고. 같이 데뷔하고 싶은 그런 종류의 관심 말이야.”
말을 마친 선우이경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예찬은 좀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나랑 같이 데뷔하고 싶은 거야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말하는 건 또 처음이라 이상하군.’
“어, 음…… 그렇군요.”
지금까지 자신이 꼬드겼던 파티원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기분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머쓱해진 예찬이 딴청을 피웠다. 재밌다는 듯 여전히 실실거리던 선우이경이 물었다.
“이유는 안 궁금해?”
“아뇨, 딱히요.”
내가 이렇게 잘났으니 뻔하지 않나.
표정에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티가 났는지 선우이경이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와, 진짜 자신감 대박이다. 근거 있는 자신감! 아주 좋네!”
‘저렇게까지 웃을 일인가…….’
차가운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를 부여잡은 채 웃던 선우이경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냥 딱 봐도 같이 데뷔만 하면 승승장구하겠구나 싶을 만큼 네가 대단하긴 해. 근데 내가 너랑 해솔이한테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그런 게 아니라…….”
“안무 다 익혔어요? 그럼 같이 맞춰보죠.”
선우이경이 막 이유를 말하려던 순간, 어느새 다가온 강해솔의 서늘한 목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둘이서 농땡이를 피우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선우이경의 속내보다는 강해솔의 신뢰를 얻는 게 더 중요했다. 예찬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잽싸게 강해솔 옆으로 붙었다.
“당장 맞춰 보러 가죠, 형.”
의욕이 철철 넘치는 예찬의 모습에 조금 누그러진 강해솔이 조금 누그러졌다.
헛기침을 한 강해솔은 뒤에 남겨진 선우이경에게 서릿발 같은 시선을 보내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푸하하. 아, 같이 가 얘들아!”
예찬의 배신 아닌 배신에 잠시 벙쪄 있던 선우이경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또다시 웃음을 터트리곤 급하게 뒤를 따랐다.
그 후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렀다.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오자 심상록이 이쪽 리더인 강해솔에게 다가왔다.
“아까 중간에 각 팀 안무 체크 끊긴 거 말인데, 저녁 먹고 나서 마저 할까? 우리도 다시 해도 괜찮은데.”
강해솔은 잠시 대답하기 전, 조원들이 있는 뒤를 돌아보았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조원들을 확인한 강해솔이 승낙했고, 심상록은 손을 흔들며 자신의 조원들 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됐으니 최대한 빨리 밥을 먹고 한 번 더 맞춰 보죠.”
“……밥 먹자마자 움직이면 쏠리는데.”
요 며칠 사이 좀 편해졌는지 말수가 늘은 이승헌이 중얼거렸다.
선우이경이 그런 이승헌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씩 웃었다.
“걱정하지 마, 승헌아. 형이 비닐봉지 구해다 놓을게.”
“……와, 엄청나게 위로가 됐어요.”
‘표정은 전혀 아닌데.’
아무튼 식사 시간에 이어 가기에 적합한 주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예찬은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어쩐 일인지 조원 다섯이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정의탁 조가 보였다.
예찬은 그새 화해라도 한 건가 싶어서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아닌가 보군.’
불편해 죽겠는 티가 풀풀 풍기는 정의탁과 태연자약하게 수저를 움직이는 배새벽, 그리고 뭐라도 씹은 것 같은 얼굴로 그 앞에 마주 앉아 있는 셋까지.
아무래도 억지로 붙어 있는 게 분명했다.
‘메인 PD가 김대영이랑 정의탁을 따로 부르더니 경고라도 했나.’
저렇게 서로 데면데면하게 굴어서야 화면 너머의 시청자들에게도 저 다섯이 싸운 티가 날 터였다.
그래도 시한폭탄 같던 배새벽이 얌전해진 것 같으니 이 이상 문제가 크게 번질 것 같진 않았다.
예찬은 귀찮은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에 마음의 짐을 덜고 본인의 무대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일 중간 점검에는 누가 오려나?”
밥 먹는 속도가 유달리 빠른 선우이경이 벌써 식판을 다 비우고 대화를 시도했다.
“곡의 작곡가분이 오지 않을까요? 저번 경연에선 원곡 가수분들이 오셨으니까요.”
“와, 그거 좋겠는데. 우리가 붙인 가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고!”
“그런 건 묻지 마요, 이경이 형. 만약 별로라고 하면 어떡해요.”
은근히 소심한 이승헌이 선우이경을 만류했다. 선우이경은 이승헌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렸다.
“승헌아, 걱정하지 마. 우리 가사가 그분이 생각했던 것과 방향성이 다를 순 있어도 질이 떨어질 리는 없어.”
말을 끊은 선우이경이 검지를 치켜세워 까딱까딱 흔들었다.
“너~ 무 괜찮잖니.”
당당해도 너무 당당한 선우이경의 말에 예찬은 숟가락을 식판에 내려놓고 박수를 보냈다.
그런 예찬을 돌아본 선우이경은 자못 쑥스러운 척 하다가 손 키스와 윙크를 날렸다.
옆에서 두 사람이 하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승헌이 선우이경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형, 봉지 지금 주시면 안 될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