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5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57화
중간 점검은 다음 날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바로 시작되었다.
평가석에 앉은 것은 츄마프의 보컬과 댄스, 랩의 트레이너 한 명씩.
그리고 연습생들이 예상한 것처럼 컨셉 곡의 작곡가들이었다.
“안녕하세요, ‘Raindrop’과 ‘도미노’를 작곡한 김수정입니다.”
“저는 ‘칠일 동안’과 ‘시나브로’를 작곡한 PiPiPi예요.”
“‘Count Down’과 ‘Auspicious’의 작곡가 MJ입니다.”
예찬은 나란히 앉아 있는 세 작곡가를 차례대로 살폈다.
평범한 직장인 같은 정장 차림새의 김수정과 누가 봐도 나 예술가요, 하고 주장하는 듯한 개성 넘치는 복장을 한 MJ의 대조가 눈에 띌 법도 했으나 가운데 앉은 PiPiPi의 스마일 탈 때문에 전부 묻혔다.
연습생들은 거대한 스마일을 뒤집어쓴 작곡가를 보고 당황했으나 이미 저 기괴한 모습에 익숙해진 예찬만은 태연했다.
‘셋 다 츄마프를 계기로 일약 스타 작곡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지.’
츄마프가 망한 회차에서는 그 시기가 좀 늦어지지만 말이다.
일말의 부채감을 안고 있던 예찬은 이 세 사람이 성공을 돕기 위해 리스피릿이나 다른 유명한 가수의 곡을 몇 번 의뢰했었다.
이번에는 여느 때보다 성공한 츄마프를 등에 업고 어느 때보다 빠르게 이름을 날릴 테니 홀로 지고 있던 마음의 빚은 완전히 내려놓기로 했다.
“발표 순서는 정해졌나요?”
“네, 오전에 뽑기로 정했습니다.”
보컬 트레이너 현지영의 말에 스태프가 대답했다.
각 조의 리더가 제비를 뽑아 정한 이 순서는 본 경연의 순서이기도 했다.
‘시나브로’ 조의 순서는 네 번째.
예찬은 대기석에 앉아 가장 먼저 준비 중인 힙합 콘셉트의 ‘도미노’ 조의 연습생들을 살폈다.
센터는 조작 연생 중 하나인 센트럴의 이민규였다.
‘그런 이민규가 센터를 맡을 정도니 사실상 최약체 팀이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임채진의 옆에서 기태랑이 무어라 말하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이번에도 같은 조가 된 두 사람 사이에 전에 없던 끈끈한 우정이 싹 튼 모양이었다.
“그럼 시작하세요.”
스피커를 타고 펑키한 스타일의 흥겨운 전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후에 나온 가사는 도무지 들어 줄 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유치하고 흐름이 뚝뚝 끊기는, 심지어 제목인 ‘도미노’와는 전혀 관계조차 없는 가사였다.
예찬은 슬쩍 작곡가 김수정의 눈치를 살폈다.
“…….”
입은 억지로 미소를 띠고 있었으나 안경 너머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게 무척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곡이 끝나고 연습생들이 긴장한 얼굴로 트레이너들과 작곡가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평가는 이 곡을 작곡하신 김수정 작곡가님부터 하실까요?”
“음, 그럴까요?”
억지 미소를 짜내며 대답한 김수정은 연습생들을 돌아보며 환한 미소를 보냈다.
그 미소에 용기를 얻은 연습생들의 얼굴이 푸르게 질리기까지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말이 길어졌네요. 결론은 곡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실망이네요.”
한참동안 이어진 김수정의 독설이 끝나고 트레이너들과 다른 작곡가들도 한 마디씩 말을 보탰다.
“일단 통일감이 너무 없었죠. 곡의 주제도 뭔지 모르겠고.”
“제 생각엔 이걸 시청자들에게 보여 준다는 건 기만입니다.”
“투표 때 봤던 이 팀 의상이 분명 꾸러기 콘셉트였던 것 같은데, 맞나요? 의상도 생각하면서 전반적으로 수정하는 게 좋을 거 같네요.”
매서운 평가가 끝나고 다섯 연습생은 기가 잔뜩 죽어서 대기석으로 돌아왔다.
다음 차례인 정의탁과 배새벽의 ‘칠일 동안’ 조가 교대하듯 중앙으로 나갔다. 차례를 기다리는 연습생들 사이로 이상한 숙덕거림이 일었다.
‘제대로 망하기를 기대하는 게 느껴지는군.’
어제 큰 소란이 있었던 만큼 자멸해 주길 바라며 눈을 빛내고 있는 연습생이 곳곳에 보였다.
트레이너들의 귀에도 어제 있던 사건이 이미 들어갔는지 미심쩍은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시작하세요.”
보컬 트레이너의 말이 끝나고 이번엔 부드러운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역시나 반전은 없었다.
그저 정의탁과 배새벽의 노래 실력이 좀 늘었다는 감상 외엔 긍정적인 코멘트를 하나도 남길 수 없는 3분이 흘렀다.
지옥 같은 침묵이 흘렀다.
예찬은 이번엔 슬며시 작곡가 PiPiPi를 확인했으나 쓰고 있는 탈 때문에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
“어, 그럼 이번에도 PiPiPi 작곡가님부터 부탁드려도 될까요?”
보컬 트레이너의 말에 PiPiPi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마지막에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괴상한 탈과 어울리지 않는 미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눈과 귀의 괴리에 혼란을 겪던 보컬 트레이너가 정신을 차렸다.
“아, 물론 괜찮습니다. 그럼 저부터 할까요?”
트레이너들로부터 ‘도미노’ 조와 맞먹을 정도의 혹평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은근 마음이 두부 같은 정의탁이 기가 죽었을까 걱정했으나,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는지 평가 위원들의 말을 경청하며 담담히 서 있었다.
‘악당 삼총사는 거의 죽어 가는군.’
평가 위원의 평의 9할이 조원들의 합이 맞지 않는 것에 있었다.
예찬이 보기엔 그밖에도 가사와 안무, 파트 분배도 문제가 꽤 많았다. 그러나 어제 있었던 사건의 여파로 트레이너들의 비평이 그쪽으로 치우친 것 같았다.
앞서 평가를 한 세 사람이 줄줄이 그렇게 말하자 나머지 작곡가들도 대충 비슷한 평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PiPiPi의 차례가 되었다.
“앞서 여러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사실 저는 좀 다른 평을 해 보려 합니다.”
무언가 벅차오른 듯 잠시 말을 멈춘 PiPiPi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의탁 씨?”
“네?”
갑작스러운 부름에 본능적으로 대답한 정의탁이 눈을 깜빡였다.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난 PiPiPi가 정의탁을 향해 한 손을 뻗었다.
“당신은 정말 최고예요.”
“……네?”
“제 뮤즈가 되어 주세요.”
예찬은 카메라를 의식하고 구겨지려는 표정을 깔끔하게 다듬었다.
아무래도 PiPiPi의 뮤즈 수집 병이 발동한 모양이었다.
‘참…… 평소엔 멀쩡한 양반인데…….’
혼자 잔뜩 흥분한 PiPiPi는 정의탁의 목소리가 얼마나 훌륭했고, 그가 불렀던 소절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뛰어났으며, 급기야 정의탁을 만나게 해 준 츄마프에 감사 인사까지 전했다.
PiPiPi의 평가를 빙자한 감상이 이어지자 그전까지 냉랭했던 분위기가 점차 풀렸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지만 일단 작곡가가 마음에 든다니 뭐라 더 비난하기도 어려웠다.
이 상황이 불편해 보이는 것은 정의탁과 대립하고 있던 삼총사뿐이었다.
한참을 정의탁 찬양에 열을 올리던 PiPiPi가 고개를 기울였는지 거대한 스마일 탈이 옆으로 크게 기우뚱했다.
“그런데 왜 정의탁 씨가 센터가 아닌 거죠? 제일 노래도 잘하시고 곡이랑 분위기도 제일 잘 맞는데.”
“…….”
따스하게 변해 가던 공기가 순식간에 전보다 더 얼어붙었다.
PiPiPi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짠 것처럼 배새벽에게 쏠렸다.
“……저, PiPiPi 작곡가님? 이번 경연의 센터는 전부 시청자분들의 투표로 정해진 거예요.”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침묵 속에 보컬 트레이너가 소리를 죽여 말했다.
PiPiPi는 기울였던 고개를 제자리로 세웠다.
“아, 그래요? 그건 아쉽네요. 제 곡을 듣고 정하셨으면 정의탁 씨를 고르셨을 텐데.”
‘저 새끼가 진짜!’
예찬은 주먹을 불끈 쥔 채로 배새벽의 안색을 살폈다.
배새벽은 놀라울 정도로 무표정이었다.
“어, 어떡하져……?”
뒤쪽에서 기태랑이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만 좀 닥쳐 줬으면 싶은 PiPiPi가 또 눈치 없이 입을 열었다.
“근데 작곡가 찬스로 바꾸기 없나요? 지금 너무 아쉬운데.”
“저는 지금 파트가 좋습니다!”
참다못한 정의탁이 소리쳤다. 거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저 새끼 사회성이 저따위라 내가 두 번은 안 썼지!’
예찬도 속으로 이를 득득 갈았다.
사회성이 바닥난 이기적인 놈인 건 진작에 알았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너무 과했다.
남의 애 기를 죽이다 못해 이간질까지 한다니, 죄질이 아주 나빴다.
분위기는 거의 장례식장이 된 지 오래였다.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가운데 배새벽의 손이 조용히 올라갔다.
“어, 배새벽 연습생. 말해 봐요.”
보컬 트레이너가 흔쾌히 발언을 허락했다.
배새벽은 고개를 돌려 PiPiPi의 가면을 응시하며 말했다.
“작곡가님, 본 경연에도 오시나요?”
“저 말인가요? 글쎄요, 제작진분들이 따로 말씀해 주신 게 없는데.”
PiPiPi가 제작진 쪽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순간.
배새벽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다시 PiPiPi를 향했다.
“꼭 와 주세요.”
드라마나 영화에서조차 쉽사리 찾아보기 어려운 완벽한 딕션이었다.
예찬은 배새벽의 무표정한 옆모습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흩어진 앞머리 사이로 배새벽의 커다란 눈이 이질적으로 빛났다.
“작곡가님이 납득하실 수 있는 센터의 모습을 보여 드릴게요.”
저 자식 눈이 또 미쳤는데?
* * *
이후 이어진 것은 남지유가 센터와 리더를 모두 맡은 ‘Raindrop’ 조였다.
트로피컬 팝과 청량한 콘셉트에 잘 어울리는 가사와 안무를 실험적인 시도 없이 왕도답게 만들어 왔다. 완성도도 꽤 괜찮았다.
처참했던 ‘도미노’ 무대 이후 줄곧 죽상을 하고 있던 김수정 작곡가가 드디어 함박웃음을 지었다. 가장 큰 활약을 한 남지유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세 조의 무대가 끝나고 예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시나브로’ 조의 차례였다.
“와, 이번 조 완전 대박인데?”
“밸런스 너무 안 맞는 거 아니에요, PD님?”
트레이너들이 ‘시나브로’ 조 연습생들을 확인하자마자 얼굴이 풀어져서 너스레를 떨었다.
예찬의 생각에도 실패하면 큰일 날 조합이긴 했다.
트레이너들의 반응이 워낙 호의적이다 보니 김수영 작곡가와 MJ도 분위기에 편승해 하하 호호 웃음꽃을 피웠다.
오직 ‘시나브로’의 작곡가인 PiPiPi만이 대화에 끼지 않고 연습생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저 탈 때문에 눈이 보이진 않지만.’
보컬 트레이너 현지영이 시작 안무에 맞춰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뒤돌아선 예찬에게 말을 걸었다.
“하예찬 연습생, 센터 자신 있어요? PiPiPi 작곡가님 아까 보니까 많이 맵던데.”
예찬은 고개를 반쯤 뒤로 돌리고 씩 웃었다.
“대답은 지금부터 노래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호기로운 대답에 트레이너들이 열렬히 호응했다.
MR. 푸딩의 휘파람 소리가 그치고 드디어 ‘시나브로’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고요하게 흐르던 반주가 돌연 뚝 끊겼다.
예찬은 숙이고 있던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범세혁 조와 연습했을 땐 곡의 시작을 강해솔의 랩이 맡았으나, 비밀 병기로 숨겨 둔 것이 따로 있었다.
여전히 뒤를 돈 상태로 한 팔을 들어 올린 예찬이 입을 열었다.
“아, 달이 차올랐구나!”
타령의 도입부에서 나올 법한 예찬의 첫 마디가 끝나자, 이전과 비할 데 없이 웅장하게 변한 반주가 시작되었다.
예찬을 중심으로 모여 있던 연습생들이 들고 있는 천을 휘날리며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부드럽게 턴을 그리듯 돌아서며 예찬은 PiPiPi를 짧게 노려보았다.
‘감히 내가 침 발라 놓은 애를 건드려? 피대기 너는 선을 넘었다.’
지금부터는 제대로 보여 줄 차례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