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5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58화
“……와, 얘네는 진짜 잘하네요.”
눈앞에서 펼쳐지는 ‘시나브로’ 조의 무대를 바라보던 보컬 트레이너 현지영의 감탄에 랩 트레이너 Mr. 푸딩이 속삭였다.
“여기 내 픽 둘 다 있잖아요.”
“푸딩 씨 원픽 해솔이 아니었어요?”
Mr. 푸딩이 장난스럽게 검지를 흔들었다.
“해솔이가 원픽은 맞는데, 한 명 더 고르면 예찬이.”
“예찬이요? 예찬이 보컬인데요?”
속으로 은근히 총애하던 예찬을 노리는 Mr. 푸딩의 말에 현지영이 눈을 크게 떴다.
“저번에 봤잖아요. 랩도 기깔 나게 하는 거. 쟤는 물건이야, 물건. 저런 애가 랩 안 하면 안 되죠.”
“무슨 말씀이세요? 예찬이는 노래를 해야죠! 예찬이는 노래를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요!”
“두 분, 아직 무대 중입니다.”
댄스 트레이너 리리의 차가운 지적에 두 트레이너는 입을 다물었다.
[들여다보면 잔물결에 부서지고 뒤돌아보면 또 내 머리끝에 걸려있지. 이 지지부진한 술래잡기를 언제까지 할 거니?] [너와 나의 온도, 너와 나의 거리, 너와 나의 사이.]이제 절정에 이른 무대는 선우이경의 댄스 브레이크가 시작되고 있었다.
평소의 파워풀한 스트릿 댄스가 아니라 현대 무용에 가까운 부드러운 춤이었으나, 선우이경은 놀라울 만큼 우아하게 소화해 냈다.
옆에 앉은 댄스 트레이너 리리는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경건한 자세로 감상하고 있을 정도였다.
‘조원들 전부 인기도 인기지만, 실력도 괜찮단 말이지.’
무엇보다 각자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적재적소에서 특기를 발휘하는 무대 구성이 완벽했다.
[아, 달이 숨었구나.]아마추어들이 만들었다고 보긴 어려울 정도로 짜임새 있는 3분이 흐르고, 연습생들이 던진 천이 동시에 바닥에 떨어졌다.
그에 맞춰 트레이너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진짜 미쳤다. 이걸 며칠 만에 다 한 거예요?”
“나 어디서부터 칭찬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좋았던 부분이 너무 많네.”
“지금까지 나온 무대 중 독보적인 원탑인데요?”
폭포처럼 쏟아지는 트레이너들의 칭찬 세례에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예찬은 씩 웃었다.
예찬이 생각하기에도 지금까지 츄마프에서 꾸렸던 무대 중 제일 만족스러웠다.
‘조원들 수준에 맞춰서 구상한 걸 다운그레이드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좋구나.’
객관적으로 지금 조원들의 평균 실력은 리스피릿보다 위면 위지 떨어지지 않았다.
항상 좀 모자라고 게으른 멤버들을 어떻게든 단점은 가리고 장점은 최대한 쥐어짜는 방향으로 무대를 구상해 오던 예찬이었다.
이번처럼 기본기를 두루 갖춘 데다가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하는 연습광 조원들을 데리고 곡을 완성한다는 것은 생소하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처음엔 다들 의욕 과다라 좀 헤매긴 했지만.’
흥분한 트레이너들이 중구난방으로 칭찬 릴레이를 이어 가자 제작진이 신호를 보냈다.
“아아, 한 명씩. 오케이, 알았어요. 그럼 PiPiPi 작곡가님은 이번에도 마지막에 하시겠어요?”
Mr. 푸딩의 말에 PiPiPi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부터 할게요. 일단 예찬 연습생이랑 휘겸 연습생의 완벽이라고 해도 좋을 보컬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처음 봤을 때부터 둘 다 잘하는 건 알았는데, 어쩜 더 잘하게 되는 거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보컬 트레이너의 칭찬에 예찬과 우휘겸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이 무대는 뭐 이렇다 저렇다 말을 붙일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평가 이런 거 다 잊고 감상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Mr. 푸딩의 너스레에 장내에 웃음꽃이 피었다.
기대했던 반응인지 건치를 드러내며 씨익 웃은 Mr. 푸딩이 말을 이어 갔다.
“그래도 저는 랩 트레이너니까 랩 얘기를 할게요. 일단 라임이 뻔하지 않은데 세련됐어요. 그리고 플로우가 자연스러워서 들으면서 아주 좋았어요. 이 곡에 이 랩이 아니면 안 된다는 느낌? 진짜 강해솔 연습생은 이 프로그램 끝나면 저랑 곡 하나 꼭 해야 해요. 내가 할 때까지 쫓아다닐 거야.”
“어, 저야말로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달달한 칭찬의 늪에 얼떨떨해진 강해솔이 깊게 허리를 숙였다.
하얀 얼굴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상기된 것이 정말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댄스 트레이너와 작곡가 MJ의 호의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김수정 작곡가가 입을 열었다.
“한국적인 느낌을 살린 가사와 안무가 정말 조화롭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시나브로’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음에도, 제목이 ‘시나브로’라는 걸 들으면 자연스레 이해될 만큼 가사 전달력이 뛰어났습니다. 좋은 무대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원들이 이번엔 김수정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예찬이 섬세하게 배치한 것들을 정확히 짚어 낸 평가였다.
“아, 맞아요. 영어 가사도 하나도 안 들어갔죠? 도입부도 재밌었고, 중간중간 추임새도 그렇고. 누구 아이디어였어요? 리더가 해솔 연습생이죠?”
“네, 제가 리더를 맡았습니다.”
강해솔은 힐끔 옆에 선 예찬을 보더니 다시 정면을 향해 대답했다.
“곡에 외국어나 외래어를 넣지 말자고 한 건 예찬이의 의견이었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이라는 의미를 가진 ‘시나브로’란 단어를 연상시키는 가사를 쓰자고 제안한 것도 예찬이었고요.”
강해솔은 뒤이어 선우이경 쪽을 한 번 쓱 확인했다.
“안무의 큰 틀은 이경이 형이 잡았고, 도입부 아이디어는 휘겸이가, 추임새는 승헌이가 생각해 냈습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또박또박 조원들의 활약을 하나하나 읊는 강해솔을 트레이너들이 뿌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럼 강해솔 연습생은 리더인데 뭐 했어요?”
“어…… 저는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뭐야. 강 리더 버스 탄 거야?”
장난스러운 트레이너들의 야유에 예찬이 번쩍 손을 들었다.
“하예찬 연습생, 말해 봐요.”
“해솔이 형은 모든 분야에 발을 걸쳤습니다! 자기 파트가 아닌 부분도 자기 일처럼 성실하게 체크했어요!”
“맞아요! 안무도 저 혼자 짠 게 아니라 해솔이랑 함께 구상했습니다!”
예찬의 말에 선우이경이 동조했다.
강해솔은 당황해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아니, 그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같이 한 거지.”
“이 천을 쓰는 안무도 해솔이가 의견을 냈습니다!”
“좀 내 말을 들어요!”
아랑곳하지 않은 선우이경이 바닥에 내려 둔 천까지 냅다 집어 들고 신나서 외치자 강해솔이 발끈했다.
트레이너들과 작곡가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 조는 사이까지 좋네, 좋아.”
“아주 다 갖췄어.”
“그래서.”
훈훈하게 평가가 마무리되려던 그때.
지금까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PiPiPi가 입을 열었다.
“편곡은 누가 한 겁니까?”
정의탁에게 질척거릴 때와는 전혀 다른 가라앉은 목소리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침을 꿀꺽 삼킨 강해솔이 손을 들며 대답했다.
“저랑 예찬이가 했습니다.”
그렇다.
4차 합숙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총 닷새가 흘렀다.
그중 하루는 순위 발표식이었고, 그다음 날은 사인회였으며, 곡을 전달받은 것은 셋째 날이었다.
연습이 가능한 시간은 먹고 자는 시간까지 다 합쳐 이틀이 조금 넘을 뿐이었다.
‘시나브로’ 조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작사와 안무에 이어 편곡까지 해낸 것이었다.
‘잠은 죽으면 실컷 자는데 뭐.’
아침까지 편곡실에서 뜬눈으로 작업에 몰두한 예찬과 강해솔이 둘 다 그렇게 생각하는 놈들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편곡까지 한 거라고?”
원곡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트레이너들이 깜짝 놀랐다.
“아니, 그게 어떻게 이 일정에 가능하지……?”
Mr. 푸딩의 의문 섞인 목소리를 뒤로하고 예찬은 PiPiPi를 가만히 응시했다.
침묵을 지키던 PiPiPi가 다시 물었다.
“왜 했어요?”
“그게 곡의 분위기와 더 어울릴 것 같아서요.”
차가운 목소리에 주눅 들지 않고 예찬은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태연히 대꾸했다.
PiPiPi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할 말이 없나 보군.’
PiPiPi의 원곡도 분명 훌륭했다.
다만 PiPiPi는 무대 의상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굉장히 현대적이고 심플한 분위기로 곡을 마무리 지었고,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이질감이 들었다.
그렇기에 예찬과 강해솔은 없는 시간을 쪼개서 편곡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의상과 안무에 맞추어 한국적인 색을 입힌 지금의 ‘시나브로’는 누가 듣기에도 원곡보다 이 무대에 더 잘 어울렸다.
그렇기에 PiPiPi의 하늘같이 높은 자존심에 금이 갔다.
‘제작진에게 확인했을 때 편곡 금지 조항 같은 건 없다고 했으니 따질 수도 없겠지.’
감히 자신이 만든 완벽한 곡에 누가 손을 댈 거라고 상상도 못 한 데다 아직 경험이 적은 신인 작곡가다 보니 그런 조항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PiPiPi, 본명 피대기는 자기 곡에 누군가 손을 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타 가수가 리메이크 요청을 해도 단 한 번도 허락해 준 적이 없다는 걸 그와 몇 번이나 작업을 한 예찬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번 일로 PiPiPi가 자기 분신과도 같은 곡을 건드린 예찬과 강해솔에게 적의를 품을 것도 예상 이내였다.
그럼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
‘해결을 왜 해?’
이번 경연을 평가하는 건 작곡가인 PiPiPi가 아니라 관객들과 시청자들이었다. PiPiPi가 분해서 밤새 이불을 쥐어뜯든 말든 예찬이 알 바 아니란 뜻이었다.
이후에도 츄마프를 통해 성공적으로 데뷔하면 내로라하는 프로 작곡가들이 곡 좀 받아 가라고 줄을 설 게 뻔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예찬과 강해솔에게 충분한 작곡 능력이 있는데, 고집불통의 작곡가 한 명에게 설설 길 필요는 전혀 없었다.
‘이번 곡으로 최대의 효율을 뽑으면 저놈한테는 볼 장 다 본 건데 저놈 눈치 본다고 편곡을 왜 안 해.’
예찬은 마음속으로 승리의 브이를 그렸다.
긴장한 눈치의 강해솔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편곡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 니요. 아주…… 좋네요.”
가면 속 얼굴은 정반대일 것 같지만 어차피 지금 보이는 것은 생글생글 웃는 스마일 탈이었다.
예찬은 잽싸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작곡가님께 칭찬을 들으니 힘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강해솔은 뭔가 이게 아닌 거 같은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으나, 예찬이 옆구리를 쿡 찌르자 일단 인사를 했다.
‘시나브로’ 조가 자리로 돌아가고 다섯 번째 순서가 이어졌다. 댄스 팝 장르에 섹시 콘셉트를 얹은 ‘Count Down’ 조였다.
예찬과 첫 경연을 함께 했던 박나길이 리더를 맡고, 두 번의 순위 발표식에서 모두 좋은 순위를 받았던 채은성이 센터를 맡았다.
‘Count Down’ 조는 청량 콘셉트였던 ‘Raindrop’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콘셉트에 정석이라고 불릴 만한 무대를 꾸몄고, 나쁘지 않다는 평을 들었다.
“채은성 연습생은 현대 무용을 하다 와서 그런지 처음엔 이쪽 안무에 적응 못 하더니 이젠 좀 어울리네요.”
댄스 트레이너 리리의 말이 그나마 ‘Count Down’의 연습생이 들은 최고의 칭찬이었다.
‘순서가 우리 뒤라서 손해 봤네.’
좀 더 앞 순서였다면 꽤 칭찬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운도 실력의 하나였다.
자신감 넘치게 나섰던 ‘Count Down’ 조는 미적지근한 반응에 풀이 죽어 들어갔다.
마지막 순서는 범세혁과 심상록의 ‘Auspicious’ 조였다.
‘시나브로’ 만큼은 아니어도 쟁쟁한 연습생들의 얼굴에 트레이너들이 또 설레발을 치기 시작했다.
“이번 조랑 ‘시나브로’가 완전 우승 후보인데?”
“저는 범세혁 연습생한테 실망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얼굴은 이미 연습생이 아니야, 여기도.”
호들갑스러운 말에 쑥스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방긋방긋 웃던 범세혁이 문득 연습생들이 앉아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음?’
정확히 예찬과 눈이 마주친 범세혁은 특유의 눈웃음을 진하게 짓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뭐지? 선전 포고?’
예찬의 호승심에 불이 붙으려던 순간,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