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60)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59화
[다시 봐도 완벽한데. 오늘도 내 인생은 파란불.]‘Auspicious’의 센터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범세혁이었다.
강렬한 하이브리드 트랩 곡에 이질적인 가벼운 가사가 주는 아이러니함이 묘한 시너지를 일으켰다.
‘시나브로’ 조는 노래와 가사, 춤, 그리고 조원들이 돋보일 수 있는 지점까지 완벽하게 계산해 한 조각 한 조각 퍼즐을 맞추듯 섬세하게 짜 맞췄다.
그와 달리 ‘Auspicious’ 조는 어울리지 않는 조각들을 얼기설기 꿰어서 하나의 퀼트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조화와 색다름의 경쟁이었다.
[고난, 근심, 걱정 없이 오늘도 변함없이 Auspicious Day.]곡이 끝나고 트레이너들과 작곡가들의 평가가 이어지는 동안 예찬은 범세혁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예찬이 기억하고 있는 어떤 회차보다 지금의 범세혁이 독보적으로 뛰어나단 느낌을 받았다.
물론 함께 가야 할 놈이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 합숙을 쉬는 내내 함께 연습하긴 했다. 그때마다 은근슬쩍 아이돌 생활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흘리기도 했고.
‘그런데 상정했던 것 이상으로 물이 오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예찬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범세혁이 고개를 돌렸다.
‘야, 이 자식아. 앞을 봐야지!’
감히 평가받는 중에 딴짓을 했다고 박제될까 두려워 예찬이 다급하게 고갯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범세혁이 알았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씩 웃었다.
‘그거 아니거든? 아니, 저 자식은 뭐라고 알아들은 거야?’
다행히 그 직후 바로 평가 위원들의 극찬이 끝나서 범세혁과 조원들은 자리로 돌아왔다. 예찬은 티 나지 않게 숨을 돌렸다.
“이제 사흘 뒤면 본 경연이네요. 오늘보다 훨씬 나은 무대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보컬 트레이너의 말을 끝으로 길었던 중간 점검이 끝이 났다.
* * *
“와, 너무 긴장해서 배고픈 줄도 몰랐어.”
배식을 기다리며 남지유가 앓는 소리를 냈다.
중간 점검 때문에 긴장해서 아침도 못 먹어서 그런지 평소의 통통했던 뺨이 해쓱해 보였다.
“앞으론 정말 연습밖에 없겠네.”
앞에 선 선우이경이 뒤를 돌아보며 장난스레 미소 지었다.
남지유는 듣기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움켜쥐었다.
“하, 진짜 부러워요. ‘시나브로’는 오늘 그대로 본 무대에 올라도 될 것 같던데요. 우리 조는 갈 길이 너무 먼데!”
“엥? 우리도 칭찬받았는데요?”
뒷사람과 희희낙락 웃고 있던 ‘Raindrop’ 조의 김세경이 남지유의 말에 깜짝 놀라 끼어들었다.
남지유는 젖살이 그대로 남아 있는 김세경의 뺨을 아프지 않게 늘리며 대답했다.
“그건 순서 덕에 득 좀 본 거지.”
잠깐 주변을 살핀 남지유가 김세경 쪽으로 허리를 숙이고 빠르게 속삭였다.
“앞의 두 조가 좀 그랬잖아. 아마 우리가 더 뒤에 순서였으면 아까처럼 후한 평은 못 받았을 거야.”
“그렇구나…….”
풀이 죽은 김세경의 머리를 토닥거리는 남지유를 보며 예찬은 속으로 동의했다.
‘본 경연 순서도 똑같으니 다들 오늘처럼 한다면 남지유 조가 괜찮은 평을 받겠지만…… 그렇게 되진 않을 거 같지.’
예찬은 전투적으로 식판을 비우고 있는 배새벽을 향해 잠시 시선을 두었다.
이전 회차에서 배새벽이 배우가 되어 연예인이라는 공통분모가 생긴 뒤에도 딱히 접점은 없었다.
그렇기에 예찬은 배새벽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저렇게 새파랗게 타오르는 눈을 하는 놈이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끝날 것 같진 않았다.
‘우리 조도 더 열심히 해야겠군.’
사흘이면 지금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닿기에 충분했다.
* * *
다음 날은 츄즈 마이 프린스 99가 방영되는 목요일이었다.
“이거 안 보면 안 되겠져? 시간이 없어서 죽을 거 같은데…….”
“태랑아, 포기해라.”
“으으으…….”
왼편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도미노’ 조의 기태랑과 임채진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중간 점검에서 호되게 털린 후로 ‘도미노’ 조 전원이 심기일전해서 가사와 안무를 뜯어고치고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노력은 가상하다만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샤워도 대충대충 한 건지 영 보기에 좋지 않은 모양새였다.
코를 자극하는 땀 냄새에 예찬은 티 나지 않게 조금 옆으로 앉았다.
“응? 형이 그리웠…… 아니, 그런 눈으로 볼일이야?”
기태랑을 피해 다가오는 예찬을 본 선우이경이 앉은 채로 양팔을 벌렸다가 멸시하는 눈빛에 수그러들었다.
예찬은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광고가 나오고 있는 정면의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시작한다!”
11시 정각이 되고 츄마프 8회 본방송이 시작되었다.
2차 왕위 계승식을 다루고 있다 보니 연습생들의 분위기가 무척 차분했다.
예찬은 주변에서 이따금 들리는 훌쩍거리는 소리에 이번에도 편집이 참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예찬은 진지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응시하며 본방송에서야 확인할 수 있는 득표수에 집중했다.
1차 왕위 계승식보다 득표수가 전체적으로 늘어나서인지 베네핏은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예찬과 범세혁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베네핏이 없었으면 449표 위인가.’
득표 차이가 늘어났을 뿐 순위에는 변함이 없었다.
예찬은 조용히 안도함과 동시에 지금쯤 폭발하고 있을 SNS를 떠올렸다.
‘이렇게 한 끗 차이면 잠은 다 잔 거지.’
한동안 쪽잠을 자며 투표에 열을 올릴 팬들이 떠올라 안쓰러움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조건 없는 팬들의 사랑에 가장 직관적으로 보답할 수 있는 것은 역시 훌륭한 무대였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무대를 보여 주자.’
계승식이 끝나고 3차 합숙 현장으로 변한 화면을 바라보며 예찬은 새삼스레 다짐했다.
방송이 후반으로 갈수록 편집 환경 또한 피폐해질 것은 예상하였지만, 바로 어제 촬영한 중간 점검 장면에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대한민국 예능의 힘.’
중간 점검의 트레이너들과 연습생들의 리액션 컷을 감질나게 보여 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8화가 끝났다.
“크흥.”
방송 시작 전까지만 해도 연습이나 하고 싶다고 징징대던 기태랑은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1차 순발식에 이어 2차에서도 한 계단 차이로 기사회생했으니 새삼스레 감회가 남다른 모양이었다.
“야, 인제 그만 울어.”
“저, 저 진짜 열심히 할 거예여. 떨어진 형들이랑 친구들 보기 부끄럽지 않게 할 거예여……!”
코 먹은 소리를 내는 기태랑의 말에 임채진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예찬은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청춘이네.’
4차 합숙의 엿새째 밤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 * *
“예찬 씨는 끝! 다음 이경 씨 앉으세요!”
3차 경연 당일.
머리 손질이 끝난 예찬은 의자에서 일어나 구석에 있는 거울 앞으로 이동했다.
턱 끝에 단단히 매듭진 갓끈을 만지작거리는 사이. 거울을 통해 옅은 베이지색 카디건을 걸친 정의탁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와, 의상 진짜 멋지다. 형, 사진 한 장 찍어도 돼요?”
“어디다 쓰려고.”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며 묻는 예찬의 말에 스마트폰을 들이밀며 정의탁이 대답했다.
“나중에 데뷔하면 비싸게 팔려고요.”
“장사꾼 나셨네. 컨디션은 어때?”
“완전 좋아요. 오, 진짜 잘 나오네?”
“의탁아! 무릎! 무릎 더러워져!”
무릎까지 꿇고 사진을 찍는 정의탁을 스타일리스트가 급하게 만류했다.
흰 면바지에 먼지가 얹은 것을 보고 기겁한 스타일리스트에게 정의탁이 끌려가고 이번엔 옥색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강해솔이 다가왔다.
새까만 머리카락에 하얀 얼굴을 한 강해솔은 한복을 차려입자 사극에서 방금 막 튀어나온 것 같았다.
‘아마 살짝…… 아니, 상당히 꼬장꼬장한 부잣집 도련님 역할일 듯.’
예찬의 시선을 느낀 해솔이 한쪽 눈썹을 올렸다.
뭘 보냐는 듯한 눈빛에 예찬은 어깨를 으쓱이고 거울 앞자리를 양보했다.
예찬의 온순한 태도에 멋쩍었는지 입술을 삐죽이던 해솔은 이내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정돈했다.
“오, 다들 잘 어울리는데!”
그새 머리 손질이 끝났는지 갓까지 제대로 쓴 선우이경이 팔을 크게 흔들며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단발머리를 잘 그러모아 상투를 틀려나 싶었는데, 낮게 묶어서 새 꽁지처럼 만들어 두었다.
머리 모양도 그렇고 생긴 것도 그렇고, 도련님은 분명 도련님인데 상당히 날티 나는 도련님이었다.
“공주님들의 안목이 정확하네. 진짜 너무 괜찮은데?”
이번엔 강해솔이 자리를 양보하자 선우이경이 넙죽 거울 앞에 섰다. 요리조리 고개를 돌려보다 아예 빙그르르 돌기까지 한 선우이경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선우이경의 말대로 ‘시나브로’ 조 다섯 모두 옥색 비단 도포를 각자의 스타일로 완벽히 소화해 내고 있었다.
“이경이 형,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어요?”
“오~ 케이!”
강해솔은 선우이경의 움직임에 맞춰 너풀거리는 옷자락에 눈을 빛내더니 아예 앙코르 요청을 했다.
흔쾌히 청을 받아들인 선우이경이 다시 한번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생각보다 더 많이 펼쳐지지 않아?”
진지하게 선우이경을 지켜보던 강해솔이 예찬에게 의견을 구했다.
확실히 연습 때 상정했던 것보다 더 넓게 옷자락이 펼쳐졌다.
“그러게요. 다른 안무는 괜찮을 거 같은데…… 2절 이경이 형 첫 파트 때 연습보다 반보씩 떨어져서 모일까요?”
“그 정도야? 예찬이 너 한번 돌아봐 봐.”
무대 이야기가 되자 순식간에 웃음기를 쏙 뺀 선우이경이 돌던 것을 멈췄다.
예찬은 벽과의 거리를 확인하고 안무와 같은 속도로 한 바퀴 돌았다.
“……해솔이랑 예찬이는 연습한 대로 하고, 휘겸이랑 승헌이가 반보 떨어지자.”
“제가 전달할게요.”
강해솔이 아직 단장 중인 우휘겸과 이승헌을 찾아 떠났다.
거울 앞에는 예찬과 선우이경 둘이 남게 되었다.
어느새 진지한 얼굴이 다시 느슨하게 풀린 선우이경이 강해솔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해솔이 참 괜찮지?”
“네? 네, 그렇죠.”
뜬금없는 칭찬에 예찬이 대답하자 선우이경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짜 괜찮은 애야. 랩을 그렇게 잘하는데 춤도 잘 추고, 얼굴도 잘생기고. 게다가 열심히 하잖아.”
“그렇죠.”
예찬은 잽싸게 긍정했다.
“예찬이 너도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얼굴도 잘생긴데다가 성실하기까지 하지.”
“뭐 그렇죠.”
이어서 예찬의 얼굴에 금칠을 하기에 이번에도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선우이경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정도 하면 내 칭찬을 해 줄 타이밍 아닌가?”
예찬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영혼 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형도 잘생겼어요. 춤도 잘 추고, 랩도 뭐…….”
“됐다. 엎드려 절 받아서 뭐 하겠어.”
‘이미 할 칭찬은 다 했는데요?’
절레절레 손을 내젓는 선우이경을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자 그가 의기양양하게 미소 지었다.
“근데 사실 잘생기고 노래나 랩 잘하고, 춤 잘 추는 연습생들은 더 있거든. 우리 조만 봐도 휘겸이랑 승헌이도 그렇잖…… 아니, 너 형이 말하는데 너무 관심 없는 거 아니야?”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밑밥을 오래 까는지 모르겠다.
예찬의 얼굴에서 지루한 기색이 읽혔는지 선우이경이 낄낄거렸다.
“아무튼, 이렇게 괜찮은 애들이 많은데 내가 왜 너랑 해솔이만 콕 집어서 집적거리는 줄 알아?”
“글쎄요.”
선우이경의 말대로 그가 강해솔과 예찬에게 유독 살갑게 들이대는 것은 이번 합숙 내내 느꼈다.
사람마다 취향이란 게 있으니 그냥 둘이 취향이었나 보다 생각했으나, 자기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강해솔과 자신의 공통점이 조금 궁금해졌다.
예찬은 귀를 가까이 대 보라는 선우이경의 손짓에 맞춰 몸을 기울였다.
선우이경이 속삭였다.
“경연 끝나고 알려 줄게.”
사람을 열 받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들 한다.
첫 번째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