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64)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63화
[언제든지 환영이야.]예찬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범세혁의 눈이 반짝였다.
제작진에게 큐시트를 한 장 더 전달받은 MC가 박수를 보내며 상황을 정리했다.
[네, 두 후보생의 뜨거운 열정 아주 좋습니다! 지금 제 손에 막 결과가 적힌 종이가 전해졌는데요. 두 후보생의 표 차이는, 고작 단 세 표입니다!]생각보다 근소한 표 차이에 장내가 술렁였다.
당사자인 예찬과 범세혁은 담담히 결과를 기다렸다.
극적인 연출을 위해 잠시 뜸을 들인 MC가 스크린을 향해 손짓했다.
[결과, 공개해 주세요!]― 2위 : 범세혁 (141표)
― 1위 : 하예찬 (144표)
‘……됐다!’
예찬이 주먹을 꽉 쥐었다.
[축하합니다! 베네핏 30만 표는 하예찬 후보생이 가져갑니다! 이것으로 하예찬 후보생의 베네핏은 무려 50만 표! 엄청난 쾌거입니다!]폭죽 소리와 흥분한 MC의 멘트가 어지럽게 무대 위를 울렸다.
범세혁의 포옹을 받아 준 예찬은 다시 마이크를 잡고 소감을 말했다.
[진짜 열심히 했는데. 그렇게 열심히 한 보람이 있네요.]장난스러운 예찬의 말에 몇 연습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예찬은 소감을 이어갔다.
[공주님들은 항상 제가 한 노력보다 더 값진 보상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예찬의 힘찬 소감이 끝나자 PD가 촬영 종료를 알렸다.
이로써 3차 경연과 더불어 길었던 네 번째 합숙이 완전히 막을 내렸다.
* * *
한편, 3차 경연을 직관한 방청객들이 경연장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하자 SNS와 여러 커뮤니티에 방청 후기가 우후죽순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 도배 짜증 나네.”
리스피릿의 팬클럽 리바디의 1기 멤버인 A양은 신경질적으로 게시판 페이지를 넘기며 혀를 찼다.
최근 츄즈 마이 프린스 99라는 흔한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좀 흥한다 싶더니, 어느새 아이돌 커뮤니티 게시판 절반가량을 차지해 버려 짜증이 확확 솟았다.
얼마 전에는 같은 리바디 지인이 SNS에 떡하니 츄마프 연습생을 앓는 글을 올렸다가 급하게 삭제하는 일도 있었다.
글 내용으로 보아 츄마프용 계정을 따로 하나 더 만든 지 꽤 된 거 같은데, 실수로 리스피릿 계정에 올린 모양이었다.
‘갈아탈 거면 티나 내지 말든가 계실은 무슨. 뭐 그런 멍청한 실수를 하고 난리야. 리바디의 수치다, 수치.’
A양이 사랑해 마지않는 리스피릿의 자랑스러운 리더 정찬양과 메인 래퍼 김대훈이 나온 편은 물론 그녀도 보았다.
그래서 더 불쾌했다.
‘우리 애들 인기에 얹어 가려는 수작이 괘씸하단 거지.’
연습하는 꼴을 보아하니 리스피릿의 인기에 한발 얹어 보려는 게 너무 티 났다.
‘대놓고 찬양이 팬이라고 캐릭터 잡은 놈도 있고.’
늙어 빠진 주제에 아직도 지들이 전성긴 줄 아는 유피테르 팬덤이 세상에서 제일 꼴 보기 싫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데뷔도 안 한 츄마프 연습생들의 팬들이 그 아성을 넘보기 시작했다.
무슨 일만 있으면 다 같이 몰려와서 게시판을 점령해 버리니 이쯤 되면 거의 세뇌에 가까웠다. 본의 아니게 오늘 3차 경연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A양은 게시판을 10페이지까지 넘겼음에도 아직 빌어먹을 경연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냥 검색창을 이용하기로 했다.
‘오늘 새로 떡밥 돈 거 없나.’
이것저것 검색하던 A양의 눈에 이상한 제목이 눈에 띄었다.
[오늘 츄맢 경연에 ㄹㅅㅍㄹ 김큰훈 왔던데?]‘우리 애가 거길 왜 가?’
눈이 어떻게 삐었길래 그런 착각을 했는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게시글을 클릭하자 입장 팔찌 인증샷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 전날 밤부터 줄 서서 10번대로 입장했거든?
그래서 1열에서 애들 아주 잘 구경함.
무대 진짜 재밌게 잘 보고 있는데 무대 오른쪽 아래에 후드 뒤집어쓴 남자가 얼쩡거리더라고
담 차례 연생인가 해서 유심히 봤는데 후드 살짝 넘어가서 얼굴 딱 보이니까 ㄹ스피ㄹ 김큰훈 같던데 혹시 나 말고 본 사람 있음?
팔찌 말고는 증거도 뭣도 없는 글이었다.
리스피릿의 인기에 또 어떻게 편승해서 관심을 끌어 보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짜증이 난 A 양이 댓글을 달기 위해 스크롤을 내리다 멈칫했다.
– 나도 봄. ㅅㄴㅂㄹ 무대 맞지?
└ ㅇㅇ 오 내 착각 아니었구나.
– 진짜? 아 개부럽다ㅠㅠ 리바디 울고 간다……
└ 222
└ 나도 리바디고 오늘 경연도 둘째 줄에서 봤는데 왜 못 봤지?ㅠㅠㅠ
자칭 리바디 주제에 쫄랑쫄랑 경연장에 갔다는 댓글에 일단 비추천을 누른 A양은 미간을 좁혔다.
‘뭐야? 어디서 짜고 몰려온 거 아니야?’
그 아래 달린 댓글은 더 가관이었다.
– 전에 하ㅇ찬이랑 둘이 만난 거 봤다는 말 있지 않았음?
진짜면 이번에도 하ㅇ찬 보러 온 거 아님?
ㅇ찬 ㅅㄴㅂㄹ잖아.
└ 헉 이거 맞는 듯
‘궁예질 오지네. 뭐라는 거야?’
찬양이를 멘토라고 언급하는 놈에 더해 찬양이를 따라 한다는 놈까지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거슬렸는데, 김대훈과 친목으로 엮으려 드는 놈마저 나타나다니.
정말 인기 아이돌은 극한 직업이었다.
‘하, 애들이 순하고 착해서 이렇게 남들이 이용해 먹어도 가만히 있다니까.’
A 양은 팔을 걷어붙이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인터넷에 이런 헛소리가 판치는 것을 참아 줄 수 없었다.
3차 경연이 끝나고 반쯤 넋이 나간 채 독서실로 돌아온 수험생 최모 양도 A양과 같은 게시글을 보고 있는 참이었다.
“리스피릿 김대훈이 왔었다고?
댓글들을 쭉 내려 보고 있는데 눈에 띄는 댓글이 있었다.
– ㄱㄷㅎ이 미쳤다고 연생들 재롱 잔치 보러 가겠냐? 댓글에 무슨 망상증 환자들만 모였나 개 소름이네.
“재롱 잔치?”
정말 어이가 없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아직도 최모 양의 머릿속엔 예찬의 휘날리는 도포 자락이며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마저 우아하던 갓이 선명했다.
그 예술적인 무대를 재롱 잔치 따위로 폄하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낙지가 꿈틀거리듯 손가락을 움직여 푼 최모 양은 스마트폰의 자판을 미친 듯이 두드리기 시작했다.
* * *
인터넷이 한창 츄마프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을 무렵, 연습생들은 하나둘 짐을 챙겨 돌아가고 있었다.
예찬도 막 자신의 캐리어를 찾아서 대기실을 빠져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스태프가 다소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와 연습생들을 막았다.
“아직 남아 있는 연습생들은 조금 대기해 주시겠어요?”
“무슨 일이라도 났나요?”
“아, 그게…….”
스태프의 말에 의하면 어디서 정보가 샌 건지 공연장 밖에서 팬들이 연습생들의 퇴근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거기에 연습생들을 데리러 온 차들의 동선이 얽혀서 혼잡한 상태라 스태프들이 교통정리에 나선 모양이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다시 안내해 드릴 테니 잠시 기다려 주세요!”
말을 마친 스태프가 자리를 뜨기 무섭게 남아 있던 연습생들은 짐을 내려놓고 소파며 벽에 기대 늘어졌다.
긴 합숙 동안 뒤로 미뤄 두었던 피로가 한순간에 몰려드는 기분이었다.
캐리어를 다리 사이에 끼운 채 벽에 등을 기댄 예찬의 시선에 길쭉한 다리가 걸렸다.
눈에 익은 운동화였다.
“옆에 앉는다?”
예찬이 대답하기도 전에 냉큼 옆자리에 철퍼덕 앉은 선우이경이 시선을 맞추고 미소 지었다.
예찬은 이왕 시간이 뜬 거, 내심 가지고 있던 궁금증이나 해소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랑 해솔이 형한테만 찝쩍거린 이유가 뭔데요?”
언제나 나른하게 뜬 선우이경의 눈이 드물게 동그랗게 변했다.
어디서 봐도 기분 좋은 티가 나는 얼굴로 선우이경이 느물거렸다.
“와, 기억하고 있었네? 좀 좋은데?”
“그래서 뭔데요.”
예찬이 다시 한번 본론을 재촉했다. 선우이경이 더 빼지 않겠다고 손을 내젓더니 되물었다.
“예찬이 너는 츄마프에 왜 나온 거야? 음, 이게 아닌가? 넌 왜 아이돌이 되고 싶은 거야?”
“그게 형이 지금부터 말할 이유랑 관계가 있어요?”
“아니.”
이 자식이?
예찬의 얼굴에 어이없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예찬이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 같았는지 선우이경이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나는 츄마프에 같이 데뷔할 멤버를 찾고 싶어서 나왔거든.”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예찬은 더 해 보라는 듯 선우이경을 향해 돌아앉았다.
“그룹으로 음악 활동을 하면서 직접 춤과 노래, 랩을 포함한 전반적인 퍼포먼스를 꾸며서 보여 주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 그래서 소속사에 들어간 건데, 회사에 있는 연습생들은 프로듀싱 쪽엔 흥미가 없더라고.”
당시를 회상하는 듯 턱을 쓰다듬으며 선우이경이 말을 이어 갔다.
“다른 회사에 들어가 새로 시작하기엔 나이도 좀 있고. 근데 보통 서바이벌 오디션에는 이런저런 재능을 가진 애들이 나오잖아. 그런 애들을 찾아서 데뷔권이면 함께 데뷔해 버리고, 데뷔권이 아니면 잘 꼬셔서 프로그램 끝나고 같이 데뷔하려고 했지.”
본인이 원하면 데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서 재수 없을 만도 했는데,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으니 할 말이 없었다.
예찬은 자신감에 차 반짝이는 선우이경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형의 눈에 든 게 저랑 해솔이 형이군요.”
“바로 그거지.”
이제야 선우이경이 회차마다 프로그램 중간에 하차했던 이유가 이해됐다.
‘썩 마음에 드는 인재가 없는데 그대로 끝까지 가면 빼도 박도 못 하게 데뷔할 거 같아서였군.’
그와 달리 이번 회차에선 초반부터 뛰어난 편곡 실력을 보여 준 예찬과 강해솔의 존재에 호감을 느끼고 접점이 생기길 기다린 모양이었다.
“흠흠, 이 이상은 말 안 해도 이제 알겠지?”
‘사람 보는 눈은 있군.’
다 말해 놓고 이제 와서 쑥스러워하는 선우이경을 예찬은 차분히 평가했다.
아직 두 사람에게 작곡 능력이 있다는 건 알지도 못할 텐데 제법 배짱이 있었다.
‘지금까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이라고 생각해서 걸렀는데…… 생각보다 행동 논리도 단순하고, 아이돌로서 지향점도 나쁘지 않아.’
그렇게 재지 않아도 1차와 2차 순위 발표식 모두 5위였던 것만 봐도 선우이경의 아이돌로서 가치는 증명된 셈이었다.
‘성격…… 이 나랑 안 맞긴 한데…… 팀에 들어왔을 때 밸런스는 솔직히 괜찮고. 눈치도 빠르고, 실력도 있는데 노력도 하지…….’
짧은 시간 머리를 한참 동안 굴린 예찬은 결론을 내렸다.
지금 이 츄즈 마이 프린스 99에서 아홉을 뽑으라 한다면, 선우이경은 선 안쪽의 사람이 분명했다.
예찬은 한쪽 손을 내밀었다.
“시원하게 들으니 좋네요. 잘 부탁합니다.”
예찬이 한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들은 선우이경이 반갑게 그 손을 덥석 잡았다.
“나한테 손 내민 거, 후회할 일 없게 해 줄게.”
‘나야말로.’
씨익 웃는 선우이경의 얼굴 앞으로 어쩐지 간만에 보는 것 같은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 파티 (5/9)
― 하예찬 (파티장)
― 선우이경
― 심상록
― 우휘겸
― 정의탁
이걸로 반수 이상의 파티원이 모였다.
남은 순위 발표식은 앞으로 두 번.
‘그리고 남은 경연은 앞으로 단 한 번.’
길었던 츄마프도 마지막 합숙과 생방송으로 치러질 마지막 경연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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