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65)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64화
‘물론 그 전에 야무지게 굴려질 예정이지만.’
4차 합숙이 끝나고 주어진 휴일은 단 하루.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사흘 연속으로 사인회가 이어졌다.
순식간에 휴일이 지나가고 시작된 사인회는 오늘로 벌써 셋째 날이었다.
간단한 오프닝 무대를 마치고 자리에 앉은 예찬은 테이블에 놓여 있는 더럽게 맛이 없는 스폰서 음료를 단번에 들이켰다.
이번 사인회는 지난 3차 경연의 6개 조를 둘씩 묶어 진행했다.
‘시나들다’ 조는 첫날엔 ‘도미노’ 조, 둘째 날엔 ‘Raindrop’ 조, 마지막 날인 오늘은 ‘Auspicious’ 조와 함께였다.
“풉!”
“콜록콜록!”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시원하게 음료를 마시는 예찬을 보고 음료 맛이 혹시 변한 것인가 호기심이 발동한 연습생들이 줄줄이 고통받기 시작했다.
그 사이 옆자리에 앉은 심상록이 말을 걸어왔다.
“그래도 오늘은 여태까지 했던 사인회 중 제일 마음이 편하다.”
“확실히 그렇죠.”
예찬도 동의하는 바였다.
이번 사인회는 3차 순위 발표식 이전에 열린 터라 탈락한 연습생이 껴 있지 않았다.
‘그때도 나름 스포 방지하느라 다들 티 내지 않으려고 한 거 같은데,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군.’
연습생들은 글피에 있을 순위 발표식에 대한 걱정은 싹 잊고 눈앞에 있는 팬들에게만 집중했다. 그 모습에 팬들도 평소보다 더 들떠 보였다.
‘뭐, 여기 있는 놈들은 많이 떨어져 봐야 한둘이겠지만.’
최상위권 연습생을 모아 둔 ‘시나브로’ 조야 말할 것도 없고 ‘Auspicious’ 조도 대부분 다음 합격선인 18위 안에 드는 연습생들이었다.
“예찬아!”
잠시 연습생들의 순위를 헤아리고 있던 예찬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객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인형이 달린 머리띠를 쓴 채로 자신의 홈마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방긋방긋 웃어 주자 셔터 소리가 한층 커졌다.
이런 행사가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홈마들의 인상착의는 전부 기억한 지 오래였다.
“내일도 꼭 본방 사수할게!”
“고마워요, 공주님!”
다음날이 츄마프 9회 방영일이다 보니 자연스레 화제가 그쪽으로 이어지곤 했다.
스포일러를 묻는 팬은 첫째 날과 둘째 날보다 훨씬 적었다.
‘나한테 스포 물어봤자 칼같이 차단당한다는 후기가 많긴 하더라.’
손을 흔들어 배웅을 마친 예찬이 심상록을 지나 자신 쪽으로 넘어온 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드디어 왔군.’
지난번에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서 있는 팬을 향해 예찬은 환하게 웃어 보였다.
“공주님, 오랜만이에요.”
오프닝 무대 중에 이미 객석에서 자신의 이름이 쓰여진 슬로건을 흔드는 것을 봤던 터라 놀라지 않고 인사를 건넸다.
예찬의 태연한 인사에 놀란 것은 상대 쪽이었다.
“어, 음, 아, 안녕…… 하…… 세요…….”
이전 사인회에서 다짜고짜 자기 오빠가 떨어졌다며 시비를 걸었던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 직후 SNS에 예찬을 애틋하게 앓는 글을 쓴 사람처럼도 보이지 않았고.
‘나, 날 알아봤어!’
예찬이 자신을 알아보는 건 몰라도 반겨 줄 거라곤 차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팬이 앉을 생각도 못 하고 우물쭈물하였다.
예찬은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의자를 향해 손짓했다.
“다리 아프지 않아요? 앉으세요.”
“아아, 네에…….”
상대방이 앉는 것을 확인한 예찬은 사인지에 사인을 시작했다.
“지난번엔 공주님 이름을 못 들었네요. 이름이 뭐예요?”
“기, 김단비예요.”
“김단비 공주님, 다시 만나러 와 줘서 고마워요.”
예찬이 이번엔 이름을 채운 사인지를 내밀었다.
떨리는 두 손으로 사인지를 받아서 든 팬이 서둘러 옆으로 넘어가려던 순간이었다.
예찬의 속삭임이 팬의 귓가에 닿았다.
“오늘은 목 괜찮으셔서 다행이에요.”
돌아본 예찬은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팬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었다.
예찬만 아는 작은 해프닝이 지나가고 순식간에 사인회가 끝날 시간이 다가왔다.
지난 게릴라 콘서트 때 본방송이 나간 후 무대 영상을 올려 달라는 안내가 있었음에도 스포일러가 돌았던 것을 의식했는지, 이번 사인회에는 주제곡인 ‘Choose your prince’ 외엔 무대가 없었다.
‘게릴라 콘서트 때보다 더 오픈된 장소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아서 더 통제하기 힘들기도 하겠고.’
마지막까지 이쪽저쪽 공평하게 돌아보며 인사를 마친 예찬이 무대에서 내려오고 있던 때였다.
“예찬이~!”
지난 경연 이래로 부쩍 친한 척을 하는 선우이경이 마지막 계단 한 칸을 남겨 둔 예찬의 목에 팔을 확 걸었다.
순간 휘청거린 예찬이 날카롭게 선우이경을 노려봤다.
“넘어져서 코 깨지면 진짜로 고소할 거예요.”
예찬의 서릿발 같은 으름장에도 선우이경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미안 미안~ 네가 종잇장 같은 건 알았는데 이렇게 쉽게 휘청거릴 줄은 몰랐네!”
“종이…….”
날렵한 춤 선을 위해 평균보다 일부러 마른 체형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180cm가 넘는 건장한 청년에게 종이라는 모욕적인 수식어를 붙이다니 어이가 없었다.
‘기껏해야 나랑 5센티 정도 차이 나는 주제에.’
물론 예찬과 이런저런 몸통의 두께가 다르긴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은 제쳐 두기로 했다.
“이경아, 조심해야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뒤에서 따라오다가 예찬이 휘청거리는 걸 보고 깜짝 놀라서 잠시 굳어 있던 심상록이 낮은 목소리로 선우이경을 타박했다.
선우이경은 이번에도 장난스레 사과했다.
“상록이 놀랐어? 미안해!”
“내가 놀란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앞에 뭔 일 있어요? 왜 멈췄어?”
드물게 발끈한 기색의 심상록이 뭔가 더 말을 하려던 순간.
뒤쪽 계단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연습생들이 흐름을 끊었다.
의도치 않게 계단 앞을 점령하고 있던 예찬과 심상록이 빠르게 옆으로 비켜섰다.
“…….”
그 후에도 심상록은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으나, 바로 해산하는 분위기가 되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이제 남은 건…….’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이동한 뒤 따라오는 팬이 없는 것을 확인한 예찬은 지하철역 화장실로 빠르게 내려갔다.
그리고 마스크를 눈 바로 아래까지 끌어 올리고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함께 챙겨 온 도수 없는 안경을 쓰고 리버시블 점퍼도 뒤집어 입은 예찬은 거울을 확인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변장했으나 잘생김이 그 변장을 뚫고 나왔다.
‘눈썰미 있는 사람은 바로 알아볼 거 같긴 한데…… 장소도 장소고…….’
지금부터 할 일에 아예 목격담이 하나도 없으면 곤란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눈에 띄는 건 또 예상 외였다.
체형이나 머리 크기가 일반인으로 보기 어려운 점도 예찬이 군중 속에 묻히지 못하는데 한 몫 단단히 했다.
‘인파가 너무 몰리면 바로 돌아가지 뭐.’
이렇게 준비를 했는데 도전도 하지 않은 채 물러날 순 없었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 둔 지하철 동선을 확인한 예찬은 늠름하게 개찰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기군.’
개찰구 바로 옆에 있는 광고판 앞에 사람들이 부자연스럽게 뭉쳐 있는 것을 확인한 예찬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기다렸다.
한참 동안 사진을 찍던 일행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개찰구 너머로 사라졌다.
그제야 광고판이 장애물 없이 온전히 눈에 들어왔다.
게릴라 콘서트 무대에서 환하게 웃는 예찬의 얼굴 아래, 예찬을 응원하는 문구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우리의 왕자님, 하예찬! 네 꿈을 응원해!]잠시 눈부신 것을 본 사람처럼 그 문구를 바라보던 예찬은 사람이 다시 몰리기 전에 행동에 나섰다.
찰칵.
빙글 몸을 돌린 예찬은 광고판이 자신과 함께 담기도록 사진을 찍었다.
츄즈 마이 프린스 99를 시청하는 공주들이 본격적인 서포트 작업을 시작했다.
‘다음은 서울역 먼저 보고 동대문 쪽으로 넘어가야겠다.’
지하철 광고판은 기본이고 스크린 도어에 신문 광고, 빌딩 전광판이나 랩핑 버스 등 다양한 방식의 광고가 흘러넘쳤다.
예찬은 미리 SNS로 자신의 광고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동선을 짜 온 상태였다.
어떤 사진이 어떤 문구와 함께 걸려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실제로 눈앞에 두니 묵직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직접 보러 다니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
‘I choosed my prince’라는 글자 옆으로 손 키스를 날리는 자신의 사진이 담긴 전면 래핑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영상으로 촬영하며, 예찬은 리스피릿 시절의 과거를 회상했다.
리셋 초창기에는 광고가 걸렸다는 말에 멤버들과 손을 잡고 구경하러 갔었는데, 언젠가부턴 그냥 화면 너머로만 확인하는 게 자연스러워졌었다.
‘……그땐 직접 보는 게 이렇게 다른지 몰랐단 말이지.’
예찬을 알아보고 몰려들 인파를 감당할 수 없어 그렇게 행동했지만, 막상 이렇게 다시 실물로 광고를 보고 있으려니 후회가 됐다.
‘이 기분을 잊고 살았다니. 인생 손해 봤네.’
남들보다 길게 살고 있는 인생이지만 억울한 것은 억울한 것이었다.
“저기 하예찬 아니야?”
“어디? 헉! 맞는 거 같은데!”
‘여긴 이 정도로 끝내야겠군.’
슬슬 사람이 몰리는 걸 확인한 예찬은 앞으로도 종종 구경을 하러 나와야겠다고 다짐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의도한 바대로 그날 저녁, 예찬이 서포트 광고들을 보고 다녔다는 후기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한 사람이 우연히 봤다며 함께 첨부한 흐릿한 사진을 시작으로, 이곳저곳에서 예찬을 봤다는 증언들이 쏟아졌다.
– 아까 봤는데 예찬이 닮았다고 생각만하고 예찬이라고 상상도 못 했음
└ 그니까 아니 팬싸 착장이랑 다르자너ㅠㅠ 글고 오늘 영등포에서 팬싸했으니 봐도 거기 것만 보고 바로 귀가했을 줄ㅠㅠ 후기들 보니까 나랑 똑같은 코스로 돈 거 같아ㅠㅠㅠ
└ 나도 서울역에서 웬 남자가 광고판이랑 셀카 찍고 있길래 우리 애는 왕자님들한테도 인기 폭발이네ㅋ 했는데 진짜 어떻게 못 알아봤지???
– 와 진짜 개이뻐 진짜 ㅋㅋㅋㅋ 너무 예쁜 사람을 보면 기억을 잠시 잊는다는데 무슨 그런 말을ㅋ 말도 안 돼ㅋㅋㅋㅋ와진짜 개이뻐 진짜 ㅋㅋㅋㅋ 너무 예쁜 사람을 보면 기억을 잠시 잊는다는데 무슨 그런 말을ㅋ 말도 안 돼ㅋㅋㅋㅋ
– 오늘 입은 잠바 (링크)
└ 리버시블ㅋㅋㅋㅋ 아 울애긔 철저하네
– 서포트 또 모집하는 데 없냐?
– 부산에도 있는데…… 부산은 못 오겠지?
– 오늘 투표 안 한 사람 얼른 투표해! (링크)
– 총머들 진짜 고생 많았다! 나도 예찬이 다녀갔다는 후기 보고 방금 보고 왔는데 진짜 예쁘더라!
– 예찬이 언젠가 스느스 개설하면 오늘 찍은 사진 올려주려나?
└ 존.버.는.승.리.한.다.
기특함과 아쉬움, 뿌듯함과 설렘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묻어나는 글들이었다.
예찬은 머지않은 언젠가, 오늘 찍은 사진을 꼭 올리겠다고 생각하며 사진을 폴더에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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