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66)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65화
“예찬이 어제 서포트 보고 다녔다며?”
다음날 GE 연습실에서 마주친 심상록이 물었다. 범세혁과 정의탁, 우휘겸이 일제히 예찬을 돌아봤다.
“서포트가 뭐예요?”
서치의 시옷 자도 모르는 범세혁에게 심상록이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있는 사이, 정의탁과 우휘겸이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와, 어제 그렇게 피곤했는데 서포트를 보러 갔어요? 진짜 형 인간 맞아요?”
“어땠어?”
“감동적이더라. 재밌기도 하고.”
예찬의 대답을 들은 두 사람의 눈이 맹렬히 타올랐다.
“와, 멋지다! 우리 지금부터 같이 보러 가요!”
때마침 심상록에게 눈높이 교육을 받은 범세혁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정의탁이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찬성합니다!’라며 범세혁을 지지하고 나서자 우휘겸도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도 오늘 연습을…… 할 분위기는 아닌 거 같네. 예찬이는 어때?”
심상록도 이미 마음은 광고판 앞인지 조심스럽게 예찬의 의견을 물었다.
예찬은 흔쾌히 네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같이 가죠. 어차피 아직 못 간 곳도 있고. 연습은 다녀와서 해요.”
이렇게 될 것 같아서 이 멤버의 광고가 적어도 하나 이상씩 걸린 홍대는 어제 코스에서 빼 둔 참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연예계 커뮤니티는 다섯 연습생의 서포트 관람기로 전에 없이 불타올랐다.
* * *
“빨리 빨리 빨리!”
“아, 가만히 좀 있어 봐요! 그렇게 재촉하니까 더 안 되잖아요!”
“……의탁아, 내가 해 볼까?”
“상록이 형…… 형도 마음 급한 거 엄청 티 나거든요?”
예찬은 소파 등받이에 기대앉은 채로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본방 3분 전입니다.”
“형이 제일 나빠요!”
TV 앞에서 씨름하던 정의탁이 거세게 뒤를 돌아보는 틈을 타 심상록이 리모컨을 차지했다.
다 같이 팬들이 의뢰한 광고판을 보고 돌아온 후, 평소보다 묘하게 흥이 오른 범세혁이 큰 화면으로 츄마프 본방송을 보고 싶다고 말한 것이 지금 상황의 계기가 되었다.
언제나처럼 늦은 시간까지 연습을 이어가다가 정신을 11시가 되기 십여 분 전쯤이 되어 있었다.
미리 검색해 둔 GE 건물 근처에 있는 멀티방을 찾아간 연습생들은, 모든 방이 다 찼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급하게 다른 멀티방을 찾아 들어온 게 대충 2분 전으로, N-net이 나오는 채널을 찾는데 버벅거리는 정의탁의 옆에서 범세혁이 서두르라며 추임새를 넣는 사이, 어느덧 방송 시작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됐다!”
간신히 N-net 채널을 켠 심상록이 외쳤다.
누가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세 사람이 빠르게 뒤로 돌아와 앉았다.
“시작했어요?”
화장실에 들렀다 온다던 우휘겸이 양손 가득 주전부리와 음료를 들고 돌아왔다.
“아 형, 이런 거 챙길 거면 같이 가자고 하시지!”
그룹 내 최연소자로서의 의무감이 있는지 정의탁이 동동거리며 쟁반을 건네받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 사이 화면에는 정의탁과 배새벽이 속한 ‘칠일 동안’ 조의 환장스러운 연습 과정이 고스란히 재생되고 있었다.
“와, 어떻게 이렇게 지나고 봐도 갑갑하지?”
정의탁은 속이 탄다며 방금 내려놓은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현란한 편집과 함께 다섯 사람의 갈등이 끓기 직전의 물처럼 수면 아래에서 부글거렸다.
마침내 절정으로 치달은 감정의 골은 그대로 정의탁과 김대영의 폭력 사태까지 이어졌다.
[야, 괜찮아?]밀치려고 내지른 주먹에 얼굴을 비켜 맞은 정의탁을 보고 당황한 김대영이 정의탁의 어깨를 틀어잡았다.
코를 부여잡은 손 틈 사이로 피가 비쳤다. 김대영은 거의 정신줄을 놓았다.
[이거 놔요.] [실수라니깐? 그냥 너도 나 한 대 치고 쌤쌤 하자고!] [뭘 쌤쌤 해요. 실수인 거 알겠으니 그만하라고요.] [알겠다는 말투가 아니잖아!]다른 조원들은 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번지자 발을 빼고 싶은지 두 사람의 실랑이에 끼어들지 않고 뒤에서 주춤대느라 바빴다.
자기 멱살을 잡아 정의탁에게 쥐여 주려는 김대영을 말린 건 다른 조인 남지유였다.
[아니, 말로 하세요, 말로!]남지유가 김대영을 떼어놓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사이, 옆 연습실에 있던 심상록과 범세혁, 선우이경이 뛰어 들어왔다.
그 이후 상황은 예찬이 본 것과 같았다.
[과연 ‘칠일 동안’ 조의 운명은?]메인 PD에게 따로따로 불려간 두 사람이 훈계를 듣는 모습과 함께 커다란 자막을 끝으로 중간 광고가 시작되었다.
“왜지?!”
어느 순간부터 말을 잊고 있던 정의탁이 소리를 질렀다.
“뭐가?”
범세혁이 멀뚱멀뚱 정의탁을 올려다보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정의탁은 허둥지둥 손발까지 써 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아니, 저도 김대영 형 밀쳤다고 했잖아요. 정당방위였지만! 아무튼 어깨를 밀긴 밀었는데 그 장면은 완전히 편집됐어요. 나만 일방적으로 손찌검당한 것처럼 나왔다고요.”
‘그게…… 문제가 되나?’
예찬의 표정을 읽은 정의탁이 크게 고개를 저었다.
“뭔가 나만 편애받은 거 같잖아요! 찝찝하게!”
진심으로 찜찜해 죽겠다는 듯 정의탁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잠깐 말을 고른 심상록이 정의탁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음…… 제작진분들이 판단했을 때 의탁이 네가 100% 억울한 피해자니까 일부러 빼 주신 거 같은데.”
“맞아. 그 장면이 나왔으면 어쨌든 둘 다 나쁘다고 헛소리하는 사람들 분명 나온다.”
“와, 정말? 그건 진짜 헛소리다.”
“…좋게 생각하자, 의탁아.”
심상록의 말에 나머지 세 사람도 옳다구나 합류했다.
‘범세혁은 아무 의도 없이 그냥 끼어든 것 같긴 하지만.’
그러나 네 명의 형이 달래는 말에도 정의탁의 얼굴은 불만으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되면 욕은 덜 먹어도 괜히 김대영 형 보면 찜찜할 것 같다고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그런 걸로 찜찜해하지 마라.”
예찬이 단호하게 정의탁의 말을 잘랐다.
심상록도 거들었다.
“의탁이 네가 괜히 이런데 엮이면 네 팬들도, 또 우리도 마음이 안 좋을 거야. 그러니까 잘됐다고 생각하자.”
“……네.”
그제야 한결 누그러진 정의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끝도 없이 정의탁의 스마트폰 화면이 반짝거렸다.
“문자 오는 거야?”
“네, 어제 9화 마지막 예고편 공개되고 나서도 난리였는데 지금도 그 못지않네요.”
정의탁은 질린 표정으로 메시지함을 내려다보았다.
‘칠일 동안’ 조의 갈등을 절묘하게 편집해 올라온 예고편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라 해도 긴박한 분위기의 유혈 사태였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누가 어디를 어떻게 때렸는지는 나오지 않고, 피를 본 게 정의탁이라는 것만 보여 준 예고편은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했다.
아이돌 연습생끼리 카메라 앞에서 피가 날 정도로 치고받았다는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에 일반 대중들의 관심 또한 굉장했다.
– 막상 까 보면 별거 아니겠지 다들 중립기어 박으셈ㅋㅋ
– 요즘 K-아이돌 스웩.jpg
– 그래서 누가 이김?
└ 안알랴줌
└ 좀 치네?
어그로와 함께 높아진 시청률만큼 쏟아지는 반응 때문에 정의탁도 곤란했던 모양이었다.
“하, 그래도 더는 자기한테만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 보라는 메시지는 안 올 테니 다행이네요. 누군지 기억도 안 나는 사람들한테 막 그렇게 온다니까요?”
내일 당장 핸드폰 번호도 바꿔 버릴 거라며 정의탁이 코웃음을 쳤다.
“그래, 번호는 종종 바꾼다고 생각하는 게 낫겠더라.”
대형 소속사의 연습생 출신답게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보고 듣고 겪은 심상록이 공감했다.
범세혁도 요즘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자주 와서 알림을 꺼 두었다고 말했다.
예찬은 새삼스레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냥 리셋해서 돌아온 시점에 가지고 있던 번호를 그대로 쓰고 있네.’
그런데 스팸 문자 말고는 딱히 연락이 오는 곳이 없었다.
이전의 예찬과 달리 고등학교까지 멀쩡히 졸업했는데 연락처도 텅텅 비어 있었고.
예찬은 다시 스마트폰을 보았다.
여전히 하나의 알림도 없이 깔끔했다.
‘……혹시 나야말로 진정한 왕따였나?’
“오! 시작한다!”
중간 광고가 끝나자 범세혁이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츄마프만 끝나면 이 ‘예찬’의 과거를 좀 털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예찬은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그 후 중간 점검이 빠르게 지나가고 화면은 본 무대로 이어졌다.
카메라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워킹을 선보였다.
방송이 끝난 이후 음악 방송 PD들은 츄마프 무대를 보고 반성하라는 글들이 쏟아져 나올 정도였다.
‘확실히 다른 프로보다 더 신경을 썼어.’
예찬 또한 자신이 머릿속으로 구상한 무대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담은 영상에 감탄했다.
참 재능만큼은 뛰어난 제작진들이었다.
***
9회 방영 이후, 츄마프 최고의 빌런은 김수영에서 김대영으로 바뀌었다.
– 이것이 ‘영’의 저주……?
└ ㅋㅋㅋㅋㅋㅋ
└ 현지영(츄마프 보컬 트레이너) : ?
└ 글고 보니 첨 등급 평가 때 자기 S등급이라 했던 연생도 임건영임
└ 다음에 터지는 건 선우이경……?
└ 걘 경이잖아 ㅂㅅ아
└ 영 까지 마라ㅠㅠㅠ우리 주영이도 영이었다ㅠㅠㅠ
└ 네 다음 듣보
무대를 앓는 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의탁과 김대영의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거기에 같은 조였던 윤지우랑 진용호도 심심하면 소환되어 까이고.’
윤지우는 1차 순위 발표식에는 데뷔권 안에 들었을 만큼 꽤 인기가 있었는데, 이번 일로 민심이 완전히 바닥을 쳤다.
청순가련한 소년 캐릭터로 인기를 누렸던 연습생이 알고 보니 일진 졸개 1, 그것도 의리가 없는 졸개 1이라는 것은 확실히 질릴 만했다.
‘그게 아니었어도 이번 회차엔 나나 우휘겸, 정의탁 같은 보컬 포지션들이 많아서 점점 순위가 떨어졌을 것 갈긴 해.’
그밖에 눈에 띄는 것은 뭐든지 따라한 거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따라무새’들이 대거 등장한 일이었다.
9회 방송 이후 ‘츄마프 누구누구가 아이돌 누구누구를 따라 한 것 같지 않냐?’라는 요지의 글이 쏟아지고 있었다.
예찬의 이름만 해도 오늘 아이돌 여섯 명과 따로따로 묶여서 끌려 나왔고, 범세혁과 정찬양을 비교하는 글도 심심하면 하나씩 올라오고 있었다.
‘원래 팬들끼리 싸움이 잦다는 건 알았지만, 서바이벌 오디션은 진짜 남다르군.’
지금까지의 싸움은 9할이 츄마프에 참여한 연습생의 팬들끼리 다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젠 체급이 커진 츄마프 팬덤을 견제하기 위해 다른 아이돌 팬들도 발을 벗고 나서고 있었다.
새로고침을 하자 비슷한 요지의 글이 또 주르륵 나타났다.
연예계에 잔뼈가 굵은 예찬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다행인 것은 따라 한다는 글이 하도 많이 쏟아지다 보니, 벌써 밈화가 되어 진심으로 듣고 상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 * *
츄마프 9회가 방영된 다음 날 늦은 오후.
츄마프 커뮤니티에 ‘따라 하기’ 프레임에 대한 피로를 성토하는 글이 하나 올라왔다.
[뭐만 하면 손민수래 피곤하다 진짜]그냥 묻히고 지나갔을 글이 화제가 된 것은, 그 글 아래 달린 댓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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