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6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67화
대기석 맨 말석에 앉아 있던 기태랑과 송규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로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될 것을 각오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걷는 모습이 비장했다.
‘기태랑, 쟤는 이걸로 커트라인에 걸친 것만 세 번째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MC 옆에 선 기태랑은 지난번보다 많이 늠름해진 걸음걸이와 달리 얼굴이 반쯤 죽어 있었다.
그 옆에 선 송규하는 남지유와 함께 ‘Raindrop’ 조에 속했던 연습생이었다.
기태랑보다 분명 한 살 어린 열여덟 살임에도 훨씬 의젓한 얼굴이었다.
‘아니, 의젓하다기보다 초월했다고 해야 하나?’
[두 후보생은 이번 콘셉트 경연에서 ‘도미노’와 ‘Raindrop’이란 무대로 훌륭한 기량을 보여 주었는데요. 안타깝게도 다음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은 한 사람뿐입니다.]MC는 먼저 기태랑에게 지금 심경을 물었다.
[기태랑 후보생은 이 자리에 벌써 세 번째로 서게 됐는데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한 마디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어, 진짜 츄마프에 참여해서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너무 좋은 일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정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어여.]탈락의 예감이 강하게 들었는지 기태랑은 이번에도 하차 소감에 가까운 말들을 읊었다.
그래도 세 번째라고 울거나 말을 더듬지는 않았다.
이어서 송규하가 짧은 소감을 말하고 순서는 다시 MC에게로 돌아갔다.
[생방송으로 가는 티켓의 주인공, 18위는! 기태랑 후보생, 축하합니다!]“헉!”
기태랑이 입을 틀어막았다.
태연하게 서 있던 송규하는 그제야 눈물을 찔끔 보이곤 기태랑과 가볍게 포옹했다.
눈물 콧물을 쏟으며 기태랑이 합격자석으로 이동한 후, MC 앤드류가 분위기를 전환했다.
[자, 그럼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을 만날 차례입니다. 3차 왕위 계승식의 Top 3 후보생들을 무대로 모시겠습니다!]한결 가벼워진 분위기 속에 아직 대기석 가장 앞줄에 남아있던 세 사람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러분, 이 세 후보생에게 힘찬 박수를 부탁드립니다!]지난 발표식 순위대로 나란히 선 세 사람을 향해 MC가 먼저 박수를 보냈다.
나머지 연습생들은 영문도 모르고 MC를 따라 손뼉을 쳤다.
[훌륭한 무대로 공주님들의 마음을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은 후보생들인데, 박수 받아 마땅하지 않겠습니까?]MC의 너스레에 예찬은 수줍은 미소를 지어 냈고, 범세혁은 기분이 좋은지 특유의 눈웃음을 지었다.
강해솔은 불편해 죽겠다는 게 티가 났지만 꾹 참고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자, 그럼 먼저 3위입니다!] [3위는 ‘시나들다’ 조에서 뛰어난 실력을 선보인 후보생입니다!]‘시나들다’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는지 MC는 예찬의 조를 부를 때는 꼭 조 이름을 언급했다.
남은 세 사람 중 ‘시나들다’의 조원인 예찬과 강해솔의 얼굴을 각각 카메라가 클로즈업해서 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예찬은 카메라를 의식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사실 이번 순위 발표식은 전처럼 긴장하지 않고 있었다.
‘초반에 공개하는 온라인 투표 추이도 그렇고, 현장 반응이나 방송 후 반응. 거기다 베네핏까지 이번엔 내 완승이었는걸.’
강해솔도 범세혁도 분명 빛나는 재능의 소유자였으나, 재능에 연륜을 더한 예찬을 상대하기에는 아직 애송이였다.
지난 경연 이후 1위로 데뷔할 가능성을 8할 이상으로 확신한 예찬은 그보다 9명의 멤버 구성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3위는, ‘시나들다’ 조의 리더인 AOB의 강해솔 후보생입니다! 축하합니다!]예상대로의 결과였다.
강해솔은 잠깐 머뭇거리다 예찬을 향해 한 손을 들어 보였다.
‘낯가림쟁이가 장족의 발전을 이루다니……!’
감동한 예찬은 자신도 손을 들어 올려 강해솔과 손바닥을 마주쳤다.
“해솔이 형!”
“……?”
두 사람 사이에 껴 있던 범세혁도 손을 들었다.
강해솔은 관성적으로 그 손에도 자기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갑작스러운 세 사람의 하이 파이브가 완성되었다.
[세 후보생의 뜨거운 우정이 아주 보기 좋네요. 강해솔 후보생,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아, 네…… 조금 건방진 말일지 모르겠지만, 이번 경연을 준비하면서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도 시청…… 공주님들도 즐거운 무대를 만들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아리송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건네받은 강해솔이 소감을 말하고 합격자석으로 이동했다.
MC는 전과 똑같은 얼굴들이 남았다며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무려 지금까지 있던 모든 왕위 계승식에서 1, 2위를 두고 겨루고 있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그럼 운명의 라이벌인 서로를 향해 한 마디씩 부탁드립니다!]먼저 마이크를 받은 범세혁이 예찬을 향해 웃었다.
지난번과 똑같은 이 얼굴을 아무래도 마지막 생방송에서도 볼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다음은 생방송이라니, 벌써 기대된다.]‘그건 나한테 하는 말이라기보다 지금 기분을 발표한 거 아니냐?’
태클은 속으로만 삼킨 예찬이 대답했다.
[생방송에서도 좋은 무대를 만들자.]예찬의 말에 범세혁이 더 환하게 미소 지었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메인 MC가 봉투를 손에 들었다.
[이 숙명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범세혁 후보생이냐, 하예찬 후보생이냐! 하예찬 후보생이냐, 범세혁 후보생이냐!]말을 멈춘 MC는 가죽 봉투에서 종이를 꺼내 확인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예찬의 심장은 기분 좋게 두근거렸다.
[3차 왕위 계승식, 그 영광의 1위는!]‘이번엔 소감도 준비해 왔는데 혹시 홀로그램 끼어들진 않겠지?’
예찬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하고 태연히 생각했다. 그런 예찬의 귀에 기다리던 MC의 1위 호명이 들렸다.
[범세혁 후보생, 축하드립니다!]‘……뭐?’
예상치 못한 상황에 표정이 무너지려던 순간.
시야 가득 홀로그램 창이 튀어 올랐다.
[선택지 발생!>1위를 탈환한 선의의 라이벌을 축하해 주세요!
― 축하해.
― 축하한다.
― 축하할게.
‘……세 개 다 같은 소리잖아.’
예찬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란 것이 민망해 듣는 사람도 없는데 불평을 내뱉었다.
상상도 못 한 결과였지만, 갑작스레 튀어나온 홀로그램 창 덕분에 실수하지 않을 수 있었다.
예찬이 선택지를 누르며 범세혁을 향해 양팔을 벌렸다.
범세혁이 그런 예찬을 덥석 끌어안았다.
“축하해.”
“응, 고마워.”
제작진에게 다시 마이크를 건네받은 범세혁의 소감이 이어지는 동안, 예찬은 자신의 경솔함을 반성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내가 얕봤군.’
때 안 묻은 순진한 연습생들과 희희낙락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다만 어쨌든 여기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으면 안 되는 것을 순간 잊었고, 그 결과 홀로그램 창에까지 도움을 받아 버렸다.
예찬은 가슴 깊은 곳에서 샘솟아 오르는 굴욕감을 꾹 눌러 참았다.
2차 순발식까지 예찬과 범세혁은 엇비슷한 순위와 득표율, 그리고 무대 결과를 유지했다.
그 때문에 양측 팬들 모두 방심하지 않고 투표에 열을 올렸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3차 순발식은 예찬이 너무 눈에 띄게 승승장구했다.
‘그게 패인이 된 건가.’
베네핏 30만표까지 획득하며 예찬이 마음이 느슨해진 만큼 예찬의 팬들 또한 방심했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범세혁의 팬들은 전보다 더 이를 악물고 투표에 열중했을 거고.
‘……그렇다고 30만 표나 뒤집혀?’
역시 납득하기 어려웠다. 순간 예찬의 머릿속을 투표 조작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아니, 이건 너무 갔나.’
지난 리셋 중 여러 가지 문제가 터진 츄마프였지만 투표 조작만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전과 같다고 확신할 순 없었다.
이미 예찬이 이곳에 있는 것부터 과거와는 달랐다.
예찬은 섣부른 의심도, 무조건적인 믿음도 거두기로 했다.
‘본방송에서 표 수를 확인하고 판단하자. 일단 이게 최종 순위가 아닌 것에 감사해야지.’
쓰디쓴 예방 주사였다.
다음번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예찬은 범세혁에게 마이크를 받았다.
[이번 경연도 좋은 조원들을 만나 정말 즐거웠어요. 마지막 경연에는 더 많은 공주님과 직접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 기대가 되네요. 열심히 준비할 테니, 응원하러 많이 와 주세요.]순위가 떨어진 것에 대해 섭섭함은 일절 드러내지 않았다.
산뜻하게 소감을 마친 예찬은 범세혁과 함께 합격자석으로 내려가 2위 의자에 앉았다.
두 사람이 앉는 것을 확인한 MC 앤드류의 마무리 멘트를 끝으로 3차 순위 발표식이 종료되었다.
* * *
“……PD님, 이래도 되는 걸까요?”
박구형 FD의 말에 메인 PD가 혀를 찼다.
“넌 또 그 얘기냐.”
“아니, 그런데 좀 그렇잖아요.”
박구형 FD는 3차 순발식 득표수가 기록된 종이를 곁눈질하며 찝찝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FD의 시선을 따라가 종이 뭉치를 확인한 메인 PD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우리가 뭘 어떻게 한 거 아니잖아. 왜 그렇게 소심하게 굴어. 그리고 거기, 김상희 작가도 언제까지 그렇게 입을 댓 발 내밀고 있을 거야?”
김상희는 튀어나온 입을 집어넣는 대신 고개를 푹 숙였다. FD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 진짜 찜찜한데…….”
최종 집계 직전까지 1위 예찬과 2위 범세혁의 득표는 굉장한 접전이었다.
9회 방영 직후 위기를 느낀 범세혁 측의 표가 가파르게 늘어나긴 했지만, 30만 표라는 차이를 뒤집을 정도는 아니었다.
상황이 묘하게 변한 것은 투표 마감 여섯 시간 전이었다.
갑자기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대량의 표가 들어왔다.
‘매크론가? 아니, 위치를 보면 아닌데…….’
투표 위치도, IP도 각각 달랐다. 그러나 매크로를 돌린 듯 기계처럼 갑자기 투표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있는 상황.
정황상 일반적인 투표라고 보긴 힘든 상황에 모니터링을 하던 스태프는 메인 PD에게 바로 보고했다.
잠시 고민하던 메인 PD는 이렇게 말했다.
– ……이거 꼭 잡아야 하나?
매크로가 의심된다는 말에도 메인 PD는 고개를 저었다.
–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이잖아.
초췌한 몰골의 메인 PD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스태프들을 설득했다. 순위가 너무 고이는 것보다 좀 변화가 있는 쪽이 더 재미있었기에 이 상황이 마음에 든 눈치였다.
– 어차피 중요한 건 이번 3차가 아니라 마지막 생방이잖아. 그때나 칼같이 잡자고. 다들 다음 방송 편집은 잘하고 이런 말 하는 거지?
그 자리에 있던 스태프들은 납득하지 못했으나 짜증스레 대꾸하는 메인 PD의 기세에 밀렸다.
수상한 표를 그대로 두고 집계한 결과, 범세혁은 2위인 예찬보다 25만 표를 더 획득해 1위가 되었다.
베네핏을 제외하면 무려 55만 표를 더 받았다는 뜻이었다.
김상희는 여유롭게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메인 PD를 보며 한숨을 삼켰다.
‘이거 방송 나가면 100퍼센트 논란 생긴다.’
덕질 좀 해본 덕후로서 장담할 수 있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감당은 메인 PD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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