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71)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70화
선우이경 말대로 강해솔의 성격상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팔짱부터 끼고 삐딱하게 나오고도 남았다.
비록 표독스럽게 예찬을 째려보았으나 별말 없이 다시 식사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아 강해솔도 예찬이 리더가 되는데 동의한 모양이었다.
예찬은 나머지 조원들의 얼굴도 한 번씩 확인했다.
예찬과 눈이 마주치자 한숨을 푹 쉰 임버들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아니 오전에 리더가 할 일들을 그렇게 착착 해 놓고 뭘 의심하는 거야. 내가 너 리더하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말 꺼냈어.”
‘임버들이?’
당연히 선우이경이 주도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2차 등급 평가 때 S등급으로 올라왔던 임버들과는 타이틀곡 촬영 때나 몇 마디 한 게 전부였다.
“오전에 하는 거 보니, 얘 믿고 가면 되겠구나 싶어서 말 꺼낸 거야. 좀 전에 너 물 가지러 같을 때 슬쩍 얘기하니까 다들 흔쾌히 그러자고 한 거고. 방송으로 볼 때마다 생각했던 것도 있고, 다른 애들한테 들은 얘기가 있어서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 것도 있고.”
“맞아. 너 리더 해 본 적 없다고 해서 되게 의외였어. 너랑 같은 조였던 애들이 너 대단하다는 얘기 엄청 했거든.”
윤여울이 임버들을 거들고 나섰다.
얼굴에 열심히 금칠을 해주는 조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자니 정말이지…….
너무 아까웠다.
‘이런 좋은 얘기는 식당이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 해 줘…….’
“그럼 리더는 제가 할게요.”
어찌 되었든 감투를 굳이 찾아 쓰지는 않아도 주는 것은 거절하지 않는 예찬은 리더 자리를 받아들였다.
* * *
식사가 끝난 후 아홉 명의 연습생들은 오전에 나눈 파트에 맞춰 작사를 시작했다.
“자, 십 분만 더 하고 쉬어요.”
원래도 나서는 데 소극적이지 않던 예찬은 리더 명찰까지 달았으니 더욱더 거리낌 없이 연습생들을 쥐어짰다.
마지막 경연을 앞두고 의욕으로 불타던 연습생들의 눈이 흐려지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후후, 내가 쥐어짜던 애들도 이런 기분이었겠군…… 이건 색다르네…….”
“이경이 형, 딴소리하지 말고 여기 고치자고요.”
강해솔을 제외한 대부분 조원이 지난 미션 때 처음 작사를 해 본 햇병아리들이라 더 헤매고 있었다.
예찬은 조원들 사이를 수시로 돌아다니며 수정 작업을 돕고 있었다.
“살려 줘…….”
기태랑이 중얼거렸다.
평소라면 예찬도 첫날부터 이렇게 스파르타식으로 조원들을 굴리지 않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 5차 합숙은 11박 12일. 하지만 그중 이틀이 게릴라 콘서트와 사인회에, 중간 점검할 때 들어가는 로스 타임까지 고려하면 시간이 빠듯해. 생방송 전날은 리허설로 정신없을 테고.’
거기에 지난 경연들과 달리 새로 익혀야 하는 곡도 둘이었다.
‘심지어 작사와 안무도 조원끼리 알아서 해야 하는 곡으로 말이지.’
게다가 지금까지 경연 중 조원이 제일 많다 보니, 한 사람씩 의견을 들어 보는데도 평소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불만이 쌓이더라도 강압적으로 분위기를 몰고 갈 생각이었으나 기우였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남은 놈들이라고 근성은 어느 정도 갖춘 모양이었다. 앓는 소리는 내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다들 이를 악물고 있었다.
어느 정도 작사가 끝나자 예찬은 악보를 전부 걷어 챙겼다.
“다들 고생했어요. 제가 취합한 다음 흐름이 매끄럽지 않은 곳을 다듬을게요. 그다음 다시 한번 다 같이 보죠.”
거기까지 말한 예찬은 옆에 서 있는 선우이경을 돌아보았다.
“곡 주제는 정해졌으니, 그걸 생각하면서 안무 작업을 하고 있으면 돼요. 취합하기 전에 악보도 먼저 복사해 올게요.”
“그래…….”
선우이경은 어딘지 애틋한 눈빛으로 예찬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LEE 사장이 나를 보는 눈이랑 비슷한데, 저거?’
예찬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하던 전 소속사 사장이 잠시 떠올랐다.
예찬은 황급히 고개를 젓고 복사기가 있는 사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자, 그럼 아까 정한 대로 첫 번째 곡은 나랑 해솔이, 새벽이, 세경이가 짜고 두 번째 곡은 여울이랑 지유, 버들이, 태랑이한테 맡길게. 1차 시안을 짜고 공유하자.”
문이 닫히기 전 빠르게 안무 제작에 들어가기 위해 지시를 내리는 선우이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힘들다고 징징거려 놓고 막상 예찬이 잠시 자리를 비우니 바로 기강을 잡는 게 역시 ‘연습 광인’다웠다.
‘리스피릿 때는 나 나가면 당연히 놀겠거니 생각하고 자리를 비웠는데…….’
츄마프에 참여하는 내내 제법 믿음직한 조원들이 있었음에도 오랜만에 리더라는 직함을 달아서인지 생경한 기분이었다.
조원 전원이 일분일초를 아껴가며 곡의 큰 토대를 완성한 합숙 첫날이 빠르게 흘러갔다.
다음날 이른 새벽, 예찬의 눈이 떠졌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시간은 새벽 네 시.
눈을 붙인 지 두 시간 정도 지난 후였다. 예찬은 망설임 없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역시 수정해야겠어.’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어느 정도 타협하고 넘어갔던 가사가 영 마음에 걸렸는지, 수정 작업을 하는 꿈을 꿨더니 잠이 달아나 버렸다.
같은 방을 쓰는 강해솔과 선우이경이 깨지 않게 발뒤꿈치를 세워 방을 빠져나왔다. 예찬은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후, 잠귀가 어두운 우휘겸이 그리워질 줄이야.’
첫 녹화 때만 해도 함께 엮일까 봐 가슴을 졸였는데 지금은 같이 데뷔하기로 결심한 사이가 되었다니.
세상일은 역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일이었다.
마지막 합숙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선지 조금만 틈이 생기면 감상에 젖게 되었다.
예찬은 굳이 집 나간 이성을 찾지 않았다.
‘이 감성으로 작사를 마무리한다.’
나머지 조원들이 연습실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네 시간 정도가 더 흐른 뒤였다.
“뭐야? 예찬이 너 밤새웠어?”
기운차게 문을 열고 들어온 남지유가 바닥에 앉아서 악보와 씨름하고 있는 예찬을 보고 기겁했다.
그 뒤에 서 있던 기태랑이 쪼르르 달려왔다.
“형, 괜찮으세여? 안색이 너무 안 좋아여!”
“과장하지 마. 밤샌 거 아니고, 조금 일찍 눈이 떠진 거예요.”
부담스럽게 들이대는 기태랑을 밀어낸 예찬이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남지유에게 말했다.
그러나 둘은 영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조금은 무슨! 가사 고치고 있던 거지? 어디 봐봐.”
예찬의 손에서 악보를 낚아챈 남지유가 수정한 가사를 확인하는 사이, 두 사람에게 가려져 있던 배새벽이 들고 온 자신의 물병을 내밀었다.
가져온 물병을 다 비운 예찬은 거절하지 않고 기껍게 받아 들었다.
“땡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배새벽은 몸을 돌려 남지유가 들고 있는 악보를 같이 살폈다.
‘이 셋이 룸메이트였군. 셋 다 못 일어나는 스타일인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지?’
마지막 합숙이라는 압박이 잠꾸러기들을 새 사람으로 만든 모양이었다.
기태랑은 여전히 예찬이 걱정되는지 시무룩한 얼굴로 주변을 맴돌았다.
“형, 어제보다 얼굴이 영 말이 아닌데여. 의무실 가 봐야 하는 거 아닐까여?”
‘얘 나 멕이는 거 아냐?’
예찬은 기태랑을 슬며시 노려보고 연습실 벽면에 붙은 거울을 확인했다.
‘……그렇게 심한 거 같진 않은데. 기태랑 저 자식, 좀 다크서클 생긴 걸로 오버하네.’
나름대로 외모에 예민한 예찬의 기준에도 방송에 나갈 정도는 됐다.
‘……혹시 어린 애들 눈엔 다르게 보이나?’
괜히 신경 쓰인 예찬이 이리저리 얼굴을 돌려 가며 확인하는 사이, 뒤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뭐야, 하예찬! 대박 오래 했네! 엄청 고쳤잖아!”
악보를 한 차례 훑은 남지유가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남지유는 자기가 쓴 가사가 있는 악보를 한 장 들고 예찬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와, 이거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분명 내가 쓴 가산데 어떻게 이렇게 변했지?”
연장자로서 예찬의 수면 시간을 훈계하려던 계획은 이미 잊힌 지 오래였다.
예찬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 짧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렇게 많이 건드리지도 않았어요. 형이 앞에 쓴 부분이랑 겹치는 부분을 좀 부각하고, 여기는 단어 순서를 바꾸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고치고. 아, 이 부분은 앞에 버들이 형 가사랑 잘 안 어울려서 임시로 손봤는데 형이 최종적으로 보고 수정해 주세요.”
예찬의 말이 이어질수록 남지유의 눈이 더 거세게 빛났다.
“……예찬이 너 진짜 대단하다. 난 솔직히 어제도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고쳐 놓으니까 완전 때깔이 다른데?”
‘보는 눈은 있군. 아니, 듣는 귀라고 해야 하나?’
남지유가 감탄할 만큼 예찬은 절묘하게 가사를 수정해 두었다.
다른 연습생이 쓴 가사를 최대한 살려 세련되게 이어 붙이는 것은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쓰는 것보다 오히려 더 피곤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대로 가사를 바꾸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단 말이지.’
결과물이야 훨씬 훌륭하겠지만 자작 가사를 쓰는 미션을 굳이 넣은 프로그램의 취지가 우선이었다. 좀 완성도가 떨어져도 역시 원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게 맞았다.
그 사이 나머지 조원들도 연습실에 얼굴을 비쳤다.
“예찬이 여기 있다, 해솔아.”
선우이경이 강해솔의 등을 떠밀어 연습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머리가 산발인 강해솔이 예찬을 보더니 인상을 팍 구겼다.
“너는 연습실에 갈 거면 간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하하, 해솔이가 너 없다고 어찌나 놀라던지. 얘 지금 신발도 짝짝이야.”
선우이경의 말에 고개를 숙여 발을 확인하려는 예찬의 코앞으로 강해솔의 검지가 들이밀어졌다.
“앞으로 어디 갈 일 있으면 꼭 말하고 가라.”
강해솔과 눈을 마주친 예찬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연습 시작하죠.”
그사이 예찬이 손 본 가사를 재빠르게 복사해 온 기태랑이 악보를 나누어 주었다.
악보를 확인한 연습생들은 대체로 남지유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와, 새벽부터 이걸 한 거야? 진짜 존경한다, 하예찬!”
“난 진짜 쿨쿨 잠만 잤는데.”
강해솔만이 악보를 쓱쓱 훑어보더니 찜찜하단 얼굴을 했다.
“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아이돌은 몸이 재산인데 건강도 챙겨 가면서 해야지. 이러다 컨디션 망쳐도 아무도 보상 못 해 준다.”
다소 차가운 강해솔의 어조에 마냥 기뻐하던 다른 연습생들이 머쓱해 하는 것이 느껴졌다.
‘형이 건강 걱정을 하다니.’
그러나 예찬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작업에 들어가면 밤새우는 게 일상다반사인 강해솔에게 이런 지적을 듣다니 색달랐다.
‘그땐 자기가 아이돌이 아니라 작곡가라 좀 갈아 넣어도 된다고 생각한 건가?’
강해솔에 대해서는 본인보다 더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새롭게 알게 되는 부분이 있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예찬의 눈빛에 반성하는 기색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강해솔이 한마디 더 얹으려 했으나, 선우이경이 타이밍 좋게 끼어들었다.
“그래, 그래.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이제 곧 사인회도 있고 콘서트도 있잖아? 거기다 경연도 생방송에 관객들도 지난 경연보다 수배는 더 올걸?”
‘10배 정도였던가?’
예찬은 선우이경의 말에 잠시 초기 회차의 츄마프 생방송을 떠올렸다.
나중에는 마지막 화도 녹화 방송으로 때운 회차도 있던 거 같긴 한데…….
“아, 이경이 형 때문에 갑자기 긴장되잖아요!”
“잊고 있었는데!”
“저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되나여…….”
생방송이란 주제에 흥분한 연습생들이 하나둘 말을 보태기 시작했다.
완전히 화낼 타이밍을 놓친 강해솔은 한 번 한숨을 내쉬고 말을 아꼈다.
예찬은 손뼉을 쳐서 조원들의 주의를 끌었다.
“자, 그럼 그 중요한 생방송에서 좋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 연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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