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76)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75화
1조와 2조 모두 부르는 공통 곡의 제목은 ‘I’m your prince’였다.
제목에 맞춰 두 조 모두 마지막으로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공주님들에게 자신을 왕자로 만들어 달라는 내용의 가사를 써 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1조는 왕자가 되고 싶다고 부탁하는 거고, 여기 2조는…… 이걸 협박이라 해야 하나?’
유피테르의 메인 보컬이자 츄마프 심사 위원 중 하나인 이가원은 강해솔의 강렬한 랩을 들으며 생각했다.
[빛나는 것이 전부 황금은 아니지.네 눈에 담기에 도금은 좀 그렇지.
Yes, Princess, 네 안목을 믿어.]
날 고르지 않으면 안목이 없는 거라고 당돌하게 말하는데 그게 매력 있었다.
“확실히 마지막이 되니까 애들이 기합이 들어갔네요.”
“잘하는 애들만 남은 것도 있고요.”
2조의 무대를 감상하며 트레이너들이 눈을 떼지 않은 채 작게 속닥거렸다.
이가원은 트레이너들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눈앞의 무대에 집중했다.
‘마음이 가는 건 상록이가 있는 1조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이쪽이구나.’
흔들림 하나 없이 음을 쭉 내지르는 예찬을 보니 절로 감상에 젖어 들었다.
열일곱 살에 데뷔해서 그다음 해 정상을 찍고 지금은 벌써 데뷔 8년 차.
변함없이 응원해 주는 팬들을 생각해 항상 마음을 다잡았을 뿐, 사실은 진작 권태감에 젖어 있었다.
얌전한 얼굴과 달리 호전적인 성격인 이가원은 새로 데뷔하는 그룹의 메인 보컬들을 항상 확인하고 끊임없이 자신과 비교했다.
실력은 어떤지, 자신보다 나은 부분이 있는지, 만약 겨뤄 마땅한 호적수라면 어떻게 이겨서 상대를 때려눕힐 것인지.
가장 노래를 잘하는 아이돌 그룹 메인 보컬의 자리를 놓고 이가원은 항상 탐욕스럽게 정상을 노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점차 대단한 보컬 실력을 갖춘 아이돌이 데뷔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실력파 아이돌들은 하나둘 스러지고 요즘은 회사 기획으로 성패가 갈리고 있는 게 현실이니.’
기술도 꼼수도 비약적으로 발전해 라이브라 쓰고 라이브 용 AR을 까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입만 벙긋거리면서 퍼포먼스만 하는 게 무슨 가수냐고 분개하던 이가원은 점차 기대를 놓았다.
‘그나마 괜찮았던 건 정찬양 정도.’
삼 년 전 혜성처럼 등장한 리스피릿의 메인 보컬 정찬양은 드물게 뛰어난 실력을 갖췄으나, 이미 무료함에 절여진 이가원은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요즈음엔 바깥에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고 회사에 틀어박혀 햇병아리 연습생들이나 구경하면서 호되게 트레이닝시키는 게 유일한 낙일 정도였다.
‘이제 내 호승심도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고작 중간 평가에 모든 걸 다 내건 것처럼 앞뒤 재지 않고 자신을 불사르고 있는 예찬을 보니 이가원의 가슴도 끓어올랐다.
‘이런 햇병아리가 빨리 데뷔하길 바라게 되다니.’
오랜 지루함이 드디어 깨졌다.
이가원이 기분 좋게 웃었다.
츄마프 심사 위원을 맡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 * *
예찬이 속한 2조의 공통 곡이 끝나고, 다음은 1조의 개별 곡 차례였다.
범세혁과 조원들이 공통 곡에 절대 뒤지지 않는 완성도를 뽐냈다.
무엇보다 뛰어난 보컬 멤버들의 활용이 돋보였다.
자신들의 장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무대였다.
순서는 다시 예찬과 2조로 돌아왔다.
“개별 곡 시작하겠습니다. 제목은 ‘무대 위로’입니다.”
예찬의 말이 끝나자 부드러운 분위기의 간주가 스피커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서브 래퍼 1을 맡은 선우이경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막연한 꿈을 꿨어.무대에 올라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그래 바로 지금처럼 말이야.]
예찬의 주도로 주제를 정한 ‘무대 위로’의 도입부는 연습생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옮겼다.
언젠가 아이돌이 되어 무대 위에서 빛나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끝나고, 노래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강렬하게 변한다.
빙글, 턴을 돌자 눈에 들어온 놀란 얼굴의 1조 연습생들 덕에 예찬은 기분이 좋아졌다.
미리 듣기 1분만으로는 절대 눈치챌 수 없었던 화려한 전개에 맞춰 연습생들은 한 몸처럼 군무를 소화했다.
이어지는 메인 보컬 파트도 예찬은 난도 높은 안무를 그대로 소화하며 불렀다.
[그래, 이제 꿈꾸던 그 무대 위로!]원래 주어진 곡보다 좀 더 높고 웅장하게 편곡한 절정 파트에 작곡가 계정엽이 소름이 돋은 팔뚝을 쓸어내렸다.
예찬은 그런 계정엽의 반응에 고무되었다.
끝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끓어오르는 4분여의 무대가 끝나고 예찬과 조원들은 어깨로 숨을 쉬었다.
음악이 끝나고 조용해진 장내에 한동안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짝, 짝, 짝.
넋을 놓고 ‘무대 위로’를 감상하던 계정엽이 언제 일어난 건지 기립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계 작곡가님.”
“아.”
옆에 앉아 있던 보컬 트레이너가 주책바가지를 보는 눈을 하고 계정엽의 옷깃을 끌어당겼다.
계정엽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얼굴이 여전히 뭐에 홀린 것처럼 몽롱했다.
“계 작곡가님이 아주 마음에 드셨나 봐요. 저도 정말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후보생 여러분이 데뷔하는 날이 벌써 기다려져서 큰일이에요.”
이가원이 가장 먼저 평을 시작했다.
의미심장한 눈빛이 예찬을 향했다. 예찬은 눈치채지 못한 척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거, 시동 걸렸네.’
이가원의 메보에 대한 집착은 연예계에서 은연중 유명했다.
리스피릿 시절에도 은근슬쩍 예찬과 접점을 늘리려고 수작을 부렸던 전적이 있는 터라 그리 낯설진 않았다.
‘이번엔 나한테 별 관심 없어 보이길래 그 버릇 고쳤나 했는데 다 끝날 즈음에 왜 저런대.’
그사이 다른 심사 위원들의 평가도 이어졌다.
“이건 될 수밖에 없는 무대네요. 기태랑 후보생이랑 김세경 후보생한테는 미안한데, 이걸 기태랑 후보생이 어떻게 췄지 싶은 정도예요. 동선을 정말 절묘하게 잘 짜서 좋은 모습만 영리하게 잘 보여 줬네요.”
댄스 트레이너 리리가 감탄했다.
그녀의 말처럼 실력이 눈에 띄게 쳐지는 김세경과 기태랑은 단체 안무에서 항상 뒤쪽 양 끝을 맡았다.
‘일부러 어려운 동작은 동선을 조정해 가리고, 김세경과 기태랑이 파트를 주고받도록 구성했지.’
두 사람은 적당히 리듬만 타며 노래 부르고 나머지 일곱이 몸을 부술 기세로 춤을 춰서 밸런스를 맞췄다.
이 ‘무대 위로’의 디테일한 안무를 짠 것은 선우이경이었고, 작전을 세운 것은 예찬이었다.
예찬은 자신의 노림수가 완벽히 맞아 들어간 것에 굳이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다.
“두 팀 모두 훌륭하게 준비해 온 것 같아서 기쁘네요. 본 무대도 기대하겠습니다.”
마지막엔 1조와 2조 모두를 칭찬하며 끝났으나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눈치챘을 것이었다.
공통 곡이라면 몰라도 개별 곡은 명백히 승자와 패자가 갈렸다는 것을.
‘개별 곡 퀄리티는 이대로 계속 다듬…… 깜짝이야.’
1조 연습생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언제부터 이쪽을 보고 있었던 건지 범세혁과 눈이 마주쳤다.
범세혁의 눈동자가 호기롭게 빛나고 있었다.
‘저 자식도 하여간 싸우는 거 되게 좋아한다니까.’
역경이 닥치면 더 불타오르다니, 이상한 취향이라 생각하며 예찬은 범세혁을 향해 마주 웃어 주었다.
* * *
중간 점검 다음 날은 츄즈 마이 프린스 99의 마지막 사인회 일정이 잡혀 있었다.
“와, 이번에도 그냥 후드 티 입으래요? 너무하다!”
“사인회 때 입으려고 백화점도 다녀왔는데!”
아침 식사를 하는 도중 굿즈로 판매 중인 츄마프 후드가 사인회 복장임을 전달받은 김세경이 툴툴거렸다.
그 옆에 앉은 기태랑도 사복을 괜히 챙겨 왔다며 징징거렸다.
“그럼 PD님께 가서 따지고 오든가.”
“새로 샀다는 사복도 입고 가자, 태랑아.”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던 연습생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동갑내기 둘을 놀렸다.
“오늘도 다녀와서 연습할 거지?”
옆자리에 앉은 강해솔이 물어 오기에 예찬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생방송까지 오늘 포함해서 사흘 남았으니 하루도 허투루 쓸 수 없죠. 콘서트 때처럼 숙소 도착하면 바로 샤워하고 연습실로 모입시다.”
“네!”
전날 얻어 낸 판정승에 들떴는지 연습생들이 힘차게 입을 모아 대답했다.
시작이 참 좋은 하루였다.
……시작은 말이다.
마지막 게릴라 사인회는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열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 첫 사인회도 여기였지? 그게 벌써 몇 달 전이야. 시간 참 빠르다.”
우연히 옆자리에 선 범세혁이 들뜬 목소리로 떠들었다.
예찬도 첫 번째 사인회를 떠올렸다.
‘그게 벌써 몇 달 전이라니…….’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감상에 젖어 있으려니 심상록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때 귀요미 츄유프도 했던 거잖아.”
“아, 맞아요. 오늘도 하면 좋을 텐데!”
아쉽다는 듯 범세혁이 말끝을 흐렸다.
오늘 사인회는 콘서트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서인지 열여덟 명의 츄유프 무대 외엔 다른 공연은 없을 예정이었다.
‘지난번에 죽어라 맞춘 유닛 무대나 재탕하지.’
기대에 부풀어 한달음에 달려왔을 팬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보여 주고 싶었지만, 연습생 신분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공주님, 오늘도 와 주셔서 고마워요.”
“나야말로 고마워! 진짜 태어나 줘서 고마워!”
예찬과 같은 나라에서 사는 게 최고의 복지라며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한 팬이 옆으로 이동했다.
예찬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연습생들이 여느 때처럼 선착순으로 사인회 장소에 도착한 백 명의 팬에게 사인을 마쳤을 무렵.
장내는 소문을 듣고 몰려든 관중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연습생들이 이쪽저쪽을 돌아보며 깊게 허리를 숙일 때마다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세혁아! 생방송 힘내!”
“하예찬, 결혼하자!”
“은성아 여기 좀 봐 줘!”
팬들은 목이 쉬도록 연습생들을 불렀지만, 안전을 걱정해서인지 제작진이 정한 선 너머로는 다가오지 않았다.
연습생들은 그런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한 줄로 서서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악! 미쳤어?! 매너 지키라고!”
그 순간, 질서가 갑작스럽게 무너지며 사람들이 앞으로 쏟아졌다.
가장 뒤쪽에 있던 예찬과 그 앞에 있던 배새벽 사이가 순식간에 벌어졌다.
밀려드는 사람들에게 부딪힌 배새벽은 입도 뻥끗하지 못한 채 그대로 넘어졌다.
“배새벽!”
배새벽을 향해 뻗은 예찬의 손이 허망하게 허공을 갈랐다.
“새벽아!”
“꺅!”
배새벽이 넘어진 것을 본 팬들이 필사적으로 밀려드는 인파를 막았다.
예찬은 곧장 배새벽을 일으켜 세웠다.
짧은 사이에 사람들에게 치인 배새벽은 안경이 날아가고 머리는 엉망이 된 채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다들 진정하세요!”
그제야 제작진들의 통제를 받은 사람들이 진정했다.
예찬은 말없이 배새벽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훑었다.
이제야 좀 정신이 들었는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배새벽이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형.”
배새벽의 인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찬은 자신이 발견한 것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물었다.
“너, 손목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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