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7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77화
“일단 현장에 분실물 들어온 게 없는지 제가 연락해 보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예찬은 기운 없이 대답하고 배새벽을 돌아보았다.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워낙 사람들이 붐볐다 보니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나을 거야.”
“그렇죠.”
좀 전에 겪었던 인파를 떠올렸는지 배새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찬은 조심스럽게 좀 더 나쁜 상황을 상기시켰다.
“……주운 사람이 네 폰인 걸 알고 가져갔을 수도 있고.”
“그렇죠. 번호를 저장해 둔 분들께 연락드려야겠네요. 형 번호도 있는데…….”
배새벽은 본의는 아니었으나 번호 유출 사고를 일으켜 죄송스럽다고 덧붙였다.
고개를 저은 예찬은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 주변 피시방 위치를 찾았다.
“비번 걸려 있으니까 벌써 열지는 못했을 거야.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게 좋으니 일단 피시방에 들어서 원격 초기화를 시도해 보자.”
“아, 그러면 되겠네요.”
“어…… 그런 것도 있나요?”
신기해하는 스태프에게 제작진에게 연락을 맡긴 예찬은 단체 메신저 방에 다시 메시지를 남겼다.
– 새벽이 폰이 없어져서 좀 더 걸릴 듯합니다. 먼저 연습하고 계세요.
이번에도 메시지들이 물밀듯이 쏟아졌지만 지금은 그런 걸 확인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바로 옆 건물에 있는 피시방으로 자리를 옮긴 세 사람은 곧장 인터넷을 켜서 배새벽의 스마트폰의 위치를 추적했다.
“와, 이게 계정만 있으면 멀리서도 가능하구나. 초기화도 이렇게 하는 거죠?”
“스마트폰이 켜져 있어야 하지만요.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유출되면 곤란한 거 있어? 뭔지는 말할 필요 없고.”
스태프에게 조건을 덧붙여 설명한 예찬은 한 손으로 더듬더듬 로그인만 하고 옆자리로 빠진 배새벽에게 물었다.
“지인들 번호랑 가족들 사진 정도 말곤 없는 거 같아요.”
“그래, 아무튼 일단 초기화할게.”
고개를 끄덕인 예찬이 능숙하게 마우스를 움직였다.
예찬이야 지난 아이돌 생활 중 스마트폰을 도둑맞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알고 있었지만,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배새벽이 원격 초기화에 대해 빠삭한 것은 의외였다.
‘부모님이 조기 교육을 시킨 건가? 연예계랑 담을 쌓고 살게 할 거면 굳이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나 싶은데.’
지금까지 배새벽이 부모님의 뜻을 꺾고 연예계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어.”
그때 화면을 바라보던 배새벽이 짧은 소리를 냈다.
예찬도 짧게 혀를 찼다.
방금까지 위치가 확인되던 스마트폰의 연결이 끊어졌다.
“배터리는?”
“70퍼센트 이상이었어요.”
예찬의 질문이 완성되기도 전에 배새벽이 냉큼 대답했다.
혼자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던 스태프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어, 어떻게 된 거죠?”
“어떻게 되긴요.”
스마트폰의 위치를 원격으로 확인하게 되면 스마트폰으로 알림이 간다.
‘……즉 주운 놈이 알림을 보고 냅다 끈 거지.’
최선은 물 건너간 지 오래고 최악을 면하기 위해 힘을 써야 할 때였다.
* * *
“아니, 아저씨! 이게 뭐예요? 이거 분실 폰이에요?”
파릇파릇한 이십 대 청년에게 아저씨라니!
평소라면 단어 선택이 왜 그 모양이냐고 버럭 화를 냈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바닥에 떨어진 배새벽의 스마트폰을 슬쩍 주운 남자는 위치 추적 알림이 뜨는 걸 보고 낚아챈 폰의 전원을 끄면서 슬며시 뒤로 숨겼다.
“아,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럼 그 알림은 뭐고, 왜 그렇게 급하게 끄는데요?”
침착하게 말하고 싶은데 떨려서 말이 더듬거렸다. 그런 남자의 태도에 데이터 복구 업체의 사장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들어 있는 사진이 급하게 필요한데 패턴이 이상하게 변경된 거 같다던 남자는 본인의 신분증까지 쥐여 주고 믿어 달라며 사정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딱 갤러리만 복구해 줘야지 했던 건데,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었다.
“소, 손이 미끄러져서…….”
누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다.
복구 업체 사장이 더 크게 코웃음을 치더니 남자를 윽박질렀다.
“하이고, 되지도 않는 개소리하지 맙시다! 나 그런 문제 있는 폰이면 못 맡는다고 분명히 말했어요!”
손님한테 개소리라니!
이번에도 평소의 남자라면 당장 호통을 친 다음 고래고래 날뛰었겠지만, 지금은 후퇴할 때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서른여섯 가지 계책 가운데 달아나는 것이 제일이었다.
남자는 그 계책을 충실히 따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이봐요! 거기 서요! 야, 이 도둑놈아! 서라니까?!”
* * *
배새벽의 스마트폰을 주운 남자가 한창 뜀박질하고 있을 무렵.
예찬과 배새벽, 말단 스태프는 피시방을 벗어나 츄마프 합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언제 배새벽의 폰이 다시 켜질지 모르지만, 한창 합숙 중인 세 사람이 모니터만 온종일 들여다보고 있을 순 없었다.
예찬은 배새벽의 어머니께 상황을 전달하고 뒷일을 부탁한 후였다.
– 연락해 줘서 고마워요. 뒷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핸드폰 건은 잠시 마음 놔도 되겠군.’
전화기 너머로 들린 오브 기획사 대표 배해선의 듬직한 목소리를 떠올리자 일이 잘 해결될 것 같았다.
“왔어? 손은 어때? 폰은?”
“병원에선 뭐래?”
세수도 하지 않고 그대로 연습실로 직행하자 문이 열리기 무섭게 조원들이 달려들었다.
예찬은 배새벽이 말할 수 있도록 한걸음 물러섰다.
“그게…….”
배새벽이 천천이 말을 이었다.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던 연습생들은 삼 주라는 깁스 기간을 듣고 어색하게 눈빛만 주고받았다.
불편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배새벽이 말했다.
“그래도 경연은 그대로 할 수 있어요. 개별 곡 마지막 안무도 할 수 있습니다.”
배새벽은 결연한 눈으로 말했다.
배새벽이 맡은 개별 곡 마지막 안무는 바닥을 짚고 도는 동작이었다.
“그건 말도 안 되지.”
가장 먼저 정색한 것은 남지유였다.
“손을 안 짚고 돌면 돼요. 예찬이 형이랑 해솔이 형은 그렇게 하잖아요.”
“해 본 적도 없는 걸 어떻게 하려고? 연습도 제대로 못 할 텐데, 그게 가능하겠어?”
“……가능하게 만들게요.”
“그게 마음만으로 가능한 일이야?”
배새벽의 말을 남지유가 끊었다.
“또 그러다 덧나기라도 하면? 삼 주면 나을 수 있는 부상을 평생 달고 다닐 거니? 간절한 마음은 알겠지만 이번 무대가 네 인생의 마지막은 아니잖아.”
평소 방실방실 웃고 다니는 남지유 같지 않은 단호한 말투였다.
‘그러고 보니 예전 그룹 멤버가 다쳐서 탈퇴했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예찬이 워낙 망돌이라 희미한 남지유의 예전 그룹을 떠올리는 사이 기태랑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래, 새벽아. 나 옛날에 태권도 하면서 많이 봤는데 부상은 인내와의 싸움이야. 다 나을 때까진 꾹 참는 게 이기는 거야.”
“그렇지만…….”
“나도 아예 빠지라는 건 아닌데, 손목을 쓰는 동작은 빼는 게 맞을 거 같아. 다친 애한테 이런 말해서 미안하지만, 무리해서 그대로 했다가 실수라도 하면 무대 퀄리티에도 영향을 끼치잖아.”
배새벽이 무언가 항변하기도 전에 윤여울이 양손을 들며 반대에 표를 하나 더 던졌다.
본인의 건강이 아닌 팀에 끼치는 악영향을 지적받자 배새벽은 할 말이 없었는지 입술만 달싹거렸다.
분위기가 자연스레 배새벽의 안무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을 때였다.
지금까지 중 제일 차가운 목소리가 연습실에 냉랭하게 퍼졌다.
“그거야말로 아니죠.”
목소리의 주인공은 예찬과 배새벽이 돌아왔을 때부터 팔짱만 끼고 상황을 지켜보던 강해솔이었다.
“해솔이 넌 그럼 새벽이가 이 팔을 하고 안무를 그대로 해야 한다는 거야?”
“그건 제가 아니라 걔가 정해야죠.”
강해솔이 고갯짓으로 배새벽을 가리켰다.
이어 강해솔은 남지유와 기태랑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마지막 무대일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그게 무슨!”
강해솔의 후진 없는 막말에 남지유가 발끈했으나 강해솔은 개의치 않았다.
“여기서 떨어져서 데뷔 못 하면 마지막일 수도 있죠.”
“그건 너무 억지 아니에여? 지금까지 지켜봐 주신 팬들이 이번에 다쳤다고 빠진 거로 새벽이를 탓하거나 욕하시진 않을걸여?”
기태랑의 말에도 강해솔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마지막 무대에서 얘가 안무를 했든 안 했든 떨어질 수도 있고 붙을 수도 있긴 하지. 근데 만약 하지 않고 떨어졌을 때, 그거 했으면 붙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안 들겠어?”
“으, 그건…….”
“어쩌면 더 심하게 다쳐서 후회할 수도 있겠지. 중요한 건 어느 쪽이 더 싫은지 생각하고 결정하는 건 배새벽이지 우리가 아니란 거야.”
“그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아? 새벽이는 아직 열일곱 살이니 우리가 더 책임감 있게 옳은 길을 제시해 줘야지!”
남지유의 말을 들은 강해솔이 그렇지 않아도 신경질적인 얼굴을 더 구겼다.
“열일곱 살이라서 얘가 여기서 득 본 거 있어요? 나이가 몇 살이든 지금까지 다 똑같은 연습생으로 대해 놓고, 이제 와서 나이가 어리다고 자기 앞가림도 자기가 못 하게 하는 건 이상하지 않아요?”
강해솔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임버들이 슬며시 말을 꺼냈다.
“나도 해솔이 말이 맞다고 생각해. 여울이 형은 팀의 퀄리티를 말했지만, 이건 개인전이니까 새벽이 하나 틀린다고 우리 점수가 깎이는 것도 아니잖아. 본인이 하고 싶으면 하는 거 아닌가?”
“맞아요. 근성으로 버티면 되죠! 새벽이 할 수 있어!”
김세경이 조금 결이 다른 의견을 보태 순식간에 삼 대 삼으로 찬반이 나뉘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연습생들 사이에 흘렀다.
배새벽의 손목을 유심히 바라보던 선우이경이 어깨를 으쓱였다.
“버들이 말대로 우리 지금 개인전하고 있는 거 맞긴 한데, 정말 그렇게 딱딱 개인으로 볼 거면 왜 이렇게 조를 나눠서 경연하겠어. 누구 하나가 실수하면 당연히 팀의 평가가 떨어지는 거지.”
거기까지 말한 선우이경이 동의를 구하듯 예찬 쪽을 한번 보더니 말을 이어 갔다.
“팀으로서도 개인으로서도 이번엔 빠지는 게 맞다고 생각해. 만약 부상이 악화된 채로 데뷔하면 그땐 활동은 어떡하려고.”
“…….”
배새벽은 처음처럼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켰다.
작게 한숨을 내쉰 선우이경이 예찬을 돌아보았다.
“남은 건 예찬이뿐인가?”
선우이경은 이 천지 분간 못 하는 망나니를 예찬이 함께 말려 줄 것이라 믿으며 깊은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예찬이 입을 열었다.
“저는 솔직히 지금 나온 얘기가 다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빠져야 한다는 쪽 손을 들어 줄 수가 없네요. 이걸로 사 대 사예요.”
믿음을 배신해서 미안하지만 선우이경의 편을 들 생각은 없었다.
예찬은 배새벽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니까 이제 새벽이 네가 정해야 해.”
배새벽의 색이 옅은 눈동자가 전에 없이 흔들렸다.
예찬은 배새벽과 눈을 마주하며 천천히 말을 계속했다.
“새벽이 너도 얘기들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겠지. 네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리고 팀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봐. 네가 어느 쪽을 덜 후회할 것 같은지.”
예찬의 말에 배새벽은 고개를 떨구고 침묵했다.
벽에 걸린 시계 초침 외엔 어떤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 연습실에서, 배새벽의 침묵은 오래 지속되었다.
이윽고 기운 없이 고개를 든 배새벽이 예찬과 연습생들의 눈을 마주 보았다.
“저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