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7화
‘뭐 저런 놈들이 다 있어?’
S등급에 있는 조작돌 두 사람 중 하나인 이민규는 카메라 앞인 것을 잊고 잔뜩 구겨질 뻔한 얼굴을 간신히 폈다.
미소 지은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민규의 소속사는 이미 석 달도 전에 ‘Choose your prince’의 노래와 안무를 전달받아 익히게 했다.
이민규는 그렇게 철저히 준비해 온 춤과 노래로 첫 연습부터 실력파 이미지를 선점하려고 했다.
어젯밤에는 다 같이 죽어라 연습하는 분위기라 중간에 빠지기 뭐해서 예상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런 것치고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실제로 지금도 평소보다 절도 있는 동작은 더 절도 있게, 부드러운 동작은 더 부드럽게 잘 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왜 저놈들이 더 눈에 들어 오냐고!’
연습실 한 면을 가득 채운 거울을 통해 춤을 추고 있는 S등급 연습생 전원의 움직임이 이민규의 눈에 훤히 들어왔다.
분명 아홉 명 모두 같은 안무를 추고 있음에도 주인공과 들러리가 명확히 보였다.
그리고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라 들러리라는 것도 말이다.
‘저 새끼들도 미리 연습해 왔나?’
‘라고 생각하는 얼굴이군.’
거울 너머로 이민규의 흔들리는 눈을 확인한 예찬은 감흥 없이 생각했다.
고작 몇 달 연습한 실력으로 이 시대의 진정한 고인물 앞에서 무게를 잡아 보려 하다니.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예찬이 리셋을 시작하기 전 츄마프 99는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한 프로그램이었다.
츄마프의 주제곡 또한 연습생이라면 한 번 이상은 연습해 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리셋을 시작한 후에도 2회 차까지는 츄마프가 성공한 세계였기에, 이 노래를 부르거나 출 일은 제법 많이 생겼었다.
그 후 한참 동안 출 일이 없어서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머리 어딘가에 제대로 기억을 남겨 둔 것인지 연습하다 보니 점점 몸이 기억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아니면 이것 때문일 수도 있고.’
춤 : A+
예찬은 연습실에 들어오면서 띄워 둔 상태창을 힐끗 확인했다.
이 보기만 해도 절로 배가 부른 스탯은 예찬의 노력의 결실 그 자체였다.
등급 테스트 촬영 이후 일주일간 죽어라 번 포인트들에 이번 합숙 레벨 업과 퀘스트로 받은 포인트들까지 전부 춤에 쏟아부었다.
스탯이 A로 넘어갔을 때까지만 해도 순간순간 생각과 몸이 다르게 움직여 짜증이 났었는데, +를 뒤에 다니 원하는 그대로 몸이 섬세하게 움직였다.
A+가 이 정도 레벨이니 스탯을 한 단계 더 올렸을 때가 절로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S 찍으면 예전보다 더 잘 추는 거 아니야?’
예찬이 홀로 신나 있는 사이 노래가 끝났다.
“다들 안무는 거의 외운 모양이네. 그럼 이제부턴 각자 연습할까?”
극악무도한 난도를 자랑하는 ‘Choose your prince’를 방금 끝까지 췄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뽀송한 얼굴의 심상록이 연습생들을 돌아보았다.
연습생들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심상록은 작가에게 건네받은 태블릿을 간이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태블릿은 여기 둘게.”
보고 싶은 사람은 편하게 보라고 심상록이 덧붙였다.
심상록은 S등급 연습생 중 나이도 연습생 경력도 제일 길다 보니 자연스레 리더 역할을 떠맡고 있었다.
“저 형, 이 부분 말인데요.”
그래서인지 저렇게 귀찮게 구는 놈들과 줄줄이 엮이고 있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미션을 수행하면서 남을 돕는다니. 보통 오지랖은 아니었다.
심상록과 달리 다른 연습생들과 어울릴 생각이 없는 예찬은 연습실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예찬아, 같이 맞출까?”
밤새 연습하면서 자연스레 말을 놓은 범세혁이 다가왔다.
그 뒤엔 우휘겸도 붙어 있었다.
“나는 바로 부스에 갈 거라 혼자 정리해 보려고.”
예찬은 재빠르게 거절했다.
우휘겸과 더 엮이기 싫은 마음도 있었지만 실제로 세 번만 더 연습해 본 후 바로 2층 부스로 내려갈 생각이기도 했다.
어차피 이미 다 익힌 곡을 계속 연습해 봤자 피로만 쌓일 뿐이고, 99명의 연습생 중 가장 먼저 도전한 연습생이란 서사도 챙길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었다.
“그래? 그럼 해솔이 형, 같이하실래요?”
강해솔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이쪽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불려서 놀란 모양이었다.
거울을 통해 범세혁의 말간 눈과 마주친 강해솔이 조금 인상을 썼다.
“난 혼자 할게.”
“그래요? 그럼 우리 둘이 해야겠다.”
고개를 끄덕인 우휘겸을 데리고 범세혁이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예찬은 엄지를 관자놀이로 가져갔다.
‘저것들은 언제 어떻게 떼놓지.’
내버려 뒀다간 우휘겸의 절친이란 이유로 범세혁이 괜히 돌을 맞을 것이었다.
학폭 가해자랑 어울린 걸 보면 범세혁 인성도 좀 걱정된다는 헛소리가 각종 커뮤니티에 우후죽순 올라오겠지.
물론 그런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범세혁은 언제나 가장 높은 꼭대기에 올랐지만, 예찬은 자신의 팀원이 근본 없는 날조 때문에 값이 깎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잘 놀고 있는 둘을 인위적으로 떼놓다가 하예찬이 누굴 따돌린다더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곤란했다.
눈매가 매서워서 그런지 노려보는 것처럼 찍힌 사진 하나로 관상이 어떻고, 인성은 어떻고 SNS를 활활 불태우던 피로한 지난날을 떠올린 예찬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눈앞에 주어진 미션에 집중하는 게 먼저였다.
예찬의 눈에 상태창 아래에 떠 있는 또 다른 창이 들어왔다.
연계 퀘스트
― 츄마프 99의 주제곡 ‘Choose your prince’ 등급 테스트에서 S를 받으세요!
그렇다.
제작진은 센터와 위치를 나누기 위해 개별로 촬영하는 것이라 했지만, 실은 이번 촬영은 연습생들의 등급을 재조정하는 일종의 깜짝 미션이었다.
미래에서 방송을 보고 온 예찬은 이미 아는 내용이었는데 퀘스트가 쓸데없는 친절을 베풀어 한 번 더 짚어 주고 있었다.
‘애초에 부스라는 말부터 장난친 거고.’
이마에 엷게 베인 땀을 수건으로 닦은 예찬이 연습실을 나섰다.
아직 이른 시간이다 보니 다들 연습 중인 건지 복도에는 몇몇 스태프를 제외하곤 인적이 드물었다.
예찬은 곧장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어, 하예찬 연습생. 벌써 부스에 가려고요?”
중간에 마주친 프로그램 작가가 예찬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말을 걸었다.
“네에.”
예찬은 어울리지 않게 말꼬리를 늘리며 수줍은 듯 웃었다. 작가의 뺨이 빨갛게 물들었다.
‘사람 취향은 어디 안 가는군.’
찔러도 바늘 하나 안 들어갈 것처럼 보이는 남자가 말랑말랑하게 구는 것을 못 견디게 좋아하는 김상희 작가는 리스피릿 하예찬의 광적인 팬이었다.
참고로 말해두자면 저 터무니없는 취향은 그녀가 본인의 입으로 직접 말한 것이었다.
처음 인터뷰 도중으로 리셋되었을 땐 제정신이 아니라 눈치채지 못했지만, 지난 등급 테스트 촬영 때 예찬을 보고 눈을 빛내는 김상희가 딱 눈에 띄었다.
리스피릿으로 활동하던 예찬은 딱히 물렁한 구석이 없었던 것 같지만, 김상희 눈에는 예찬만큼 성질머리 더럽게 생기고 본업 잘하는 아이돌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김상희의 눈에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인지 그녀는 예찬이 마지막으로 리셋했던 시점까지 꾸준히 그의 팬이었다.
김상희가 작가라는 것은 팬 사인회에서 본인에게 들었지만 어떤 프로그램을 맡았는지는 쑥스러워하면서 말해 주지 않아 모르고 있었다.
‘조금 파 보면 알 수 있었겠지만 팬이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 비밀은 지켜 주자는 주의라.’
리스피릿이 아닌 개인 연습생 하예찬이 되어서 이렇게 현장에서 마주치니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지금 중요한 건 김상희가 탑 아이돌 하예찬에겐 직업이 작가인 팬일 뿐이었지만, 연습생 하예찬에겐 든든한 뒷배가 되어 줄 프로그램의 작가님이란 것이었다.
생글생글 웃는 예찬의 얼굴을 잠깐 넋 놓고 바라보던 김상희가 돌연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했다.
“흠흠, 자신이 있나 봐요. 좀 더 차분히 생각해 봐도 되지 않을까요?”
슬쩍 주변을 살핀 김상희는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돌려 말했다.
부스에서 촬영을 마친 연습생은 숙소로 돌아가 남아 있는 연습생들과 접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다들 스마트폰 하나쯤은 들고 있는 이 합숙소에서 완벽한 보안이 유지가 될 리 없었다.
입과 손이 날개보다 가벼운 연습생이 룸메이트에게 메신저로 떠들 수도 있는 것은 물론.
남아 있는 같은 소속사 연습생이 걱정된 마음 따뜻한 연습생이 오지랖을 발휘해 문자를 보낼 수도 있었다.
김상희는 그런 식으로 먼저 부스에 다녀온 연습생들을 통해 알음알음 정보가 도는 것을 예찬이 주워듣고 준비를 했으면 싶은 모양이었다.
자기 일에 프라이드가 강한 김상희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호의를 베풀었다는 게 느껴져 절로 웃음이 나왔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금 컨디션이 무척 좋아서요. 더 연습하면 오히려 기운이 빠질 거 같아요.”
“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힘내요.”
김상희는 입이 근질근질해 보였지만 그 이상 털어놓지 않았다.
예찬은 만족했다.
낮말을 누군가 듣고 밤말도 누군가 듣는 이 연예계에서 둘만의 비밀은 없었다.
어차피 츄마프 99에 대해선 알 만큼 아는데 괜히 김상희가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는 걸 누가 보기라도 하면 제작진 픽이라고 모함당할 게 뻔했다.
‘그냥 나 나올 때 자막 예쁘게 써 주고 효과 잘 넣어 달라고 편집실에 말해 주는 정도가 딱이지.’
지상파나 다른 케이블 방송과 달리 N-net은 자막을 PD가 아니라 작가들이 쓰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공사 구분이 확실한 작가라 해도 결국 사람인데 제 눈에 예쁜 놈한테 더 정성이 가지 않겠는가.
예찬은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부스가 있다는 2층의 어떤 방 앞에 도착했다.
다른 층과 달리 이쪽은 제작진들이 꽤 많이 있었다.
제작진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예의 바르게 인사한 예찬은 이윽고 힘차게 문을 열어젖혔다.
방 한가운데에는 투명 비닐로 만든 정사각형 모양의 부스가 있었다.
그리고 예찬이 들어온 문을 제외한 세 면에는 부스를 에워싼 모양으로 트레이너들과 외부 심사 위원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무게를 잡고 앉아 있었다.
부스라고 해서 그 안에서 셀프로 촬영하리라 생각한 연습생들을 뜬금없는 압박 면접장에 밀어 넣는 이 2차 등급 테스트는 예찬이 아주 좋아한 코너였다.
리셋하기 전에는 이런 중압감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준비한 무대를 펼치는 연습생들의 모습에 감동했었다.
리셋을 여러 번 한 후부턴 저 정도 중압감도 넘지 못해서야 아이돌로 밥 벌어먹긴 글렀으니 자질을 알아보기 참 좋은 방법이라고 감탄했었고.
항상 브라운관 너머로만 봐 왔던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이 되자 절로 이전에 보았던 범세혁이 떠올랐다.
지금의 예찬은 실력으로 범세혁을 압도할 수 없었다.
그보다 인상 깊은 놀란 얼굴을 지을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예찬은 태연하게 부스 안으로 들어가 여상히 웃었다.
“안녕하세요, 연습생 하예찬입니다.”
여유로운 자기소개도 덤으로 얹어 주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