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8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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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대기실에 합격자 가족들 모였다고 하더라. 너도 얼른 가 봐.”
“아, 감사합니다.”
찾아올 가족은 없었지만 예찬은 남지유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복도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예찬은 옆에 있는 대기실로 자리를 옮겼다.
“의탁아!”
“이경이 형!”
“오빠!”
아쉬운 기색으로 무대에서 내려온 연습생들은 가족들이 와 있다는 소식에 급하게 옆 대기실로 달려갔다.
초대석에서 빠져나와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이 금의환향한 연습생들을 반겼다.
탈락한 연습생들이 있던 대기실과 마찬가지로 이쪽 대기실에도 카메라가 돌고 있었다.
신 PD가 성의 없이 카메라 감독을 향해 무언가 지시하고 있는 걸 확인한 예찬은 카메라들을 한번 쭉 훑었다.
‘다음 주에 방영될 비하인드 영상에 쓰려고 찍는 거 같군.’
안면이 있는 우휘겸의 어머니와 짧게 눈인사를 마친 예찬은 카메라에 걸리지 않을 벽면으로 조용히 이동했다.
비밀이 없는 21세기 첨단 사회에서 가정사를 숨기려고 전전긍긍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굳이 어색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예찬의 곁으로 배새벽이 조용히 다가왔다.
예찬은 곁눈질로 배새벽을 살폈다.
“…….”
“…….”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별다른 말 없이 군중 속의 고독을 공유했다.
‘배새벽네 부모는 역시 얘가 아이돌 하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하나 보군.’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가설에 확신이 섰다.
배새벽은 3차 계승식에서 이미 데뷔권에 들었다.
그 정도면 이번 마지막 촬영에 유명 인사인 부부 중 한 사람이라도 충분히 얼굴을 비출 만했다.
‘그런데 둘 다 오지 않았다니. 지금 배새벽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겠지.’
배새벽이 배우로 데뷔한 이전 회차들에서, 부부가 직접적으로 배새벽의 츄마프 시절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다만 예찬은 종종 접한 부부의 인터뷰에서 ‘아이돌’이란 직업에 대해 은연중에 무시하는 인상을 느꼈었다.
‘배우와 아이돌을 각기 다른 직업이 아니라 상하 관계로 보는 경우는 의외로 적지 않으니까.’
배새벽이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했을 때부터 좋은 배우가 될 거라며 설레발쳤던 오브 기획사의 대표 배해선 씨가 떠올랐다.
배새벽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을지는 쉽사리 예측이 갔다.
‘그렇지만 이번엔 내가 뺏었군.’
예찬은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기분을 만끽하며 배새벽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다시 봐도 배우를 하기엔 아까운 얼굴이었다.
‘좋은 원석을 손에 넣었으니, 앞으로 잘 써 드려야지.’
사악한 웃음을 속으로 삼킨 예찬은 이번엔 가족들과 감동의 재회에 여념이 없는 연습생들을 살폈다.
어느 정도 친분을 쌓은 이후에도 파고들기 힘든 것이 가정사였다.
이렇게 대놓고 구경할 기회를 주었을 때 최대한 단서를 얻어 두는 것이 좋았다.
‘범세혁은 어머님만 오신 것 같고, 우휘겸도 어머님만 오셨군. 선우이경은 동생이 둘인가? 아, 해솔이 형네는 부모님에 해수 형까지 왔잖아. 하마터면 아는 척할 뻔했네.’
낯익은 얼굴들의 등장에 잠시 긴장이 풀렸던 예찬은 정신을 차리고 다른 연습생들도 마저 확인했다.
부모 없이 남자 형제만 둘 찾아온 채은성.
그 옆에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누나 셋과 부모님까지 대인원에 둘러싸인 정의탁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심상록은…….’
“음, 밥은 잘 먹고 다니고?”
“네.”
“어, 그래. 아무리 바빠도 끼니는 거르는 거 아니다. 흠, 흠.”
“네. 걱정 마세요. 와 주셔서 감사해요, 아버지.”
어딘지 어색한 공기가 심상록과 그의 아버지 사이에 흘렀다.
‘아버지가 종종 자취방에 들러서 청소도 해 주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것치고 서로 굉장히 불편해 보이는데.’
예찬의 촉이 날카롭게 반응했다.
예찬은 태연한 표정을 가장하며 귀를 심상록 쪽으로 고정했다.
“……어머니랑 상엽이는 잘 있죠?”
“그래, 잘 있다. ……엄마가 네 걱정 많이 하고 있어.”
아버지의 말에 잠시 눈을 크게 뜬 심상록이 이내 기운 없이 웃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예찬은 저도 모르게 엄지로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하…… 냄새가 난다, 냄새가.’
저 정도면 가정 내에 찜찜한 무언가가 제대로 있다고 광고하는 수준이었다.
혹시 옆에 있는 배새벽도 들었을까 슬쩍 곁눈질했다.
‘피곤했나 보군.’
다행히 병든 닭처럼 졸고 있었다.
아직 ‘레굴루스’라는 그룹으로 첫발을 내딛기도 전.
한 번 찝찝한 마음이 들자 파블로프의 개처럼 훗날 각 멤버들이 칠 만한 문제가 뭐가 있을지 이런저런 가설을 떠올리던 예찬은 더 이어지려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미리 걱정하느라 혼자 머리를 쥐어뜯는 짓은 이제 그만두자. 나도 예전부터 남들이 보기엔 조실부모한 가엾은 천애 고아였지만, 그걸로 문제가 된 일은 한 번도 없잖아.’
확실하지도 않은 타인의 가정사를 보이는 것 이상으로 무례하게 추측할 필요는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예찬에게 동생 둘을 거느린 선우이경이 다가왔다.
“예찬아, 내 동생이 네 팬이라는데 사인 좀 해 줄 수 있어?”
‘멤버 찬스~’라며 덧붙인 선우이경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혼자 있는 모습을 보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걸 보니 눈치 빠른 놈답게 뭔가를 느낀 모양이었다.
예찬은 프로답게 동료의 동생을 향한 미소를 장착하고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저 선우이슬이요! 사인은 여기다가 해 주세요!”
선우이경과 눈이 닮은 건장한 체격의 소녀가 힘차게 자신이 메고 있던 백팩을 내밀었다.
예찬은 두말없이 매직 뚜껑을 열고 백팩의 앞주머니에 사인을 남겼다.
“와, 감사합니다! 가보로 남길 거예요!”
“야, 집에 오빠 물건이 얼마나 많은데. 그건 다 어쩌고 그걸 가보로 남겨.”
선우이경의 말에 선우이슬이 귀찮다는 듯 말했다.
“오빠 건 적당할 때 다 팔 건데.”
“뭐? 아이고, 예찬아. 내가 이렇게 산다. 동생 놈들 키워 봐야 다 소용없어.”
죽는 소리를 내며 예찬의 팔에 매달린 선우이경을 이번엔 남동생 쪽이 차갑게 떼어 냈다.
“그 무거운 몸으로 예찬이 형의 귀한 팔에 매달리지 말아 줄래?”
‘개성 넘치는 동생들이군.’
예찬과 눈이 마주친 남동생이 친형을 볼 때와 전혀 다른 선량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예찬이 형, 완전 팬이에요. 악수 한 번만 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와, 영광입니다! 전 선우이서라고 해요!”
자신의 이름을 밝힌 선우이서가 예찬의 옆에 서서 졸고 있는 배새벽을 힐끔거렸다.
‘아하, 이놈은 내가 아니라 배새벽 팬이었군.’
예찬은 약간의 호의를 발휘하기로 했다.
“새벽아, 이경이 형 동생분들이래.”
“네?”
깊게 잠든 것은 아니었는지 예찬이 가볍게 팔을 건드리자 배새벽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선우이서가 헉, 소리를 내며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아, 안녕하세요! 선우이서입니다! 저 완전 팬이에요!”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찬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두 청소년의 인사를 지켜보았다.
그때였다.
“이서후 배우님 데뷔작부터 최신작까지 전부 다 봤습니다!”
‘누구?’
여기서 왜 배새벽의 아버지 이름이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배새벽 또한 예찬과 마찬가지로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굳었다.
“야! 다짜고짜 아버님 칭찬을 하면 어떡해! 죄송해요, 얘가 좀 멍청해서…… 악의는 없어요, 악의는!”
선우이슬이 다급히 양손을 내저었다.
예찬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동안 선우이경이 먼저 물었다.
“아버님이라니 무슨 말이야? 이서후 배우님이라면 ‘해피홈’의 그 이서후 배우님? 그분이 새벽이 아버님이라고?”
“어어. 음, 오빠. 혹시 몰랐어?”
선우이경의 반응에 무언가 잘못된 것을 느꼈는지 선우이슬이 머뭇거렸다. 배새벽이 물었다.
“혹시 어떻게 아셨어요?”
“어, 좀 전에 기사 떴거든요. 다들 아직 못 보셨구나…….”
예찬은 망설임 없이 스마트폰 검색창을 열었다.
배새벽의 이름만 쳤을 뿐인데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츄마프 99 최종 데뷔 연습생 배새벽, 국민 배우 이서후의 아들?] [알콩이가 돌아왔다! 배해선 대표와 이서후의 아들 배새벽] [이서후의 아들이 아이돌이 되었다? 본격 배새벽 알아보기]“와…… 진짜네. 새벽이 너는 기사 뜰 거 알고 있었어?”
마찬가지로 기사를 확인한 선우이경이 배새벽에게 물었다.
배새벽은 들리지 않는지 자신의 스마트폰의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힐끗 확인한 예찬은 침착하게 가장 먼저 뜬 기사를 찾았다.
‘이게 제일 처음이군.’
기사는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배새벽 가족의 가족사진 이야기로 시작해, 지금 진행 중인 츄즈 마이 프린스 99에서 배새벽이 데뷔를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로 마무리 지었다.
아직 순위 발표가 시작되기 전에 기사가 터진 모양이었다.
기사의 첫 문장부터 마지막 단어까지 차분히 다시 읽어 내려간 예찬은 기사의 소스가 되었다는 가족사진 게시글을 찾았다.
예찬은 결론을 내렸다.
‘이 기사, 오브에서 뿌렸다.’
인터넷에 유포된 사진을 운운하며 우연히 이 사실이 퍼진 것처럼 꾸몄지만, 사진이 실린 게시물과 기사가 올라온 시간 사이의 간격이 너무 짧았다.
또 그 간격에 비해 기사 내용은 과하게 탄탄했다.
‘꼭 기다리고 있다가 올린 것처럼 말이지. 배해선 대표, 철저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건은 좀 어설펐네.’
그보다 배해선 대표는 분명 배새벽이 아이돌로 데뷔하는 걸 꺼린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예찬은 배새벽의 안색을 살폈다.
‘저 표정은 당황했다 정도가 아닌데.’
파랗게 질린 배새벽의 손이 희미하게 떨렸다.
아무래도 이 기사는 단순히 배새벽을 띄우는 용도가 아닌 듯했다.
예찬이 배새벽의 어깨를 잡았다.
“……!”
깜짝 놀란 배새벽은 그제야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낸 모양이었다.
“괜찮아?”
“네? 아, 네…….”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 배새벽이 힘없이 말했다.
“죄송해요.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이렇게 기사로 알게 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동생들을 저 멀리 밀어 둔 선우이경이 손사래를 쳤다.
“아냐. 갑자기 기사가 난 거잖아.”
“그래도…….”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우리 아빠는 유명 배우고 엄마는 소속사 대표입니다, 하고 말하는 것도 웃기지. 신경 쓰지 마.”
예찬이 선우이경을 거들었다.
배새벽은 여전히 개운치 못한 얼굴이었다.
‘흠, 부족한가?’
“우리 말고 다른 애들도 다 똑같이 생각할걸?”
“그럼, 그럼!”
이번엔 예찬의 말에 선우이경이 추임새를 보탰다.
두 사람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어렴풋이 웃은 배새벽은 고맙다고 말했다.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짐작이 안 간단 말이지.’
조금 더 캐 봐야 하나 싶던 찰나, 바쁘게 움직이던 작가가 연습생들을 불렀다.
“자, 그럼 이제 슬슬 마무리하겠습니다!”
어느 정도 그림이 나왔는지 스태프들이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벌써 집에 가?”
“잠깐, 잠깐만!”
아직 의상도 갈아입지 않고 있던 연습생들은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겼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번잡했던 대기실이 순식간에 정돈되었다.
슬쩍 옆 대기실을 보니 탈락한 연습생들은 한발 먼저 떠났는지 텅 비어 있었다.
짐을 챙긴 연습생들이 하나둘 가족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날 준비를 마쳤다.
챙겨야 할 가족이 없는 예찬은 누구보다 빠르게 대기실을 벗어났다.
‘저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배새벽을 더 들쑤실 순 없지. 내일쯤 한번 만나자고 해야겠어. 내가 놓친 게 있는지 기사랑 반응도 좀 더 찾아보고…….’
“예찬아!”
빠른 걸음으로 체육관을 벗어난 예찬을 누군가 뒤에서 불렀다.
예찬은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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