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93)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9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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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히 속을 모르겠단 말이지.’
친한 사람이 없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그만큼 마음을 연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날카로운 말에 뭐라 말을 덧붙일 줄 알았는데, 선우이경은 그런 말을 듣고도 싱글싱글 웃으며 실없는 농담을 던질 뿐이었다.
그 후로도 게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서포트 전광판을 찾아 인증 사진을 남기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다.
“밥 좀 먹고 더 돌까?”
시계를 확인한 선우이경이 권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고깃집에 들어온 두 사람은 벽 쪽 자리에 앉았다.
“예찬이 너 SNS 계정은 없지? 임스타나 츄위터.”
“네, 형도 안 하시죠?”
선우이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이 관리하는 건 솔직히 좀 힘들지. 개인적으로 연예인의 SNS는 이점보다 단점이 더 크다고 생각하고.”
“의견이 저랑 맞으시네요.”
예찬의 눈이 빛났다.
실제로 리스피릿은 예찬이 마지막 리셋을 하던 순간까지 ‘공식적인’ 개인 SNS가 없었다.
여러 소속사가 제휴해서 만든 아이돌 소통 어플리케이션에도 굉장히 늦게 합류했고, 거기에 글을 올릴 때도 무조건 검수를 받았다.
좀 느슨하게 풀어 준 회차에서 제대로 피를 봤기 때문이었다.
‘리스피릿에선 내 발언권이 강하니 밀고 갈 수 있었지만, 이번 팀은 그럴 수 없으니 고민이었는데 잘됐군.’
팀 내 최연장자 중 하나인 선우이경이라면 예찬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었다.
나머지 한 명도 심상록이니 설득하기 쉬울 것 같았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지금 모습에 속아서 풀어 주면 안 되지.’
말을 섞어 본 적 없는 채은성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곱은 사고 칠 것 같은 인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이 변하는 건 순간이라 생각하는 예찬은 방심할 생각이 없었다.
“삼겹살 4인분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찬이 나설 새도 없이 빠르게 집게를 집어 든 선우이경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형, 제가 할게요.”
이런 건 어린놈이 하는 거였다. 내용물이야 어떻든 주민 등록상 나이가 세 살이나 어린 예찬은 집게의 양도를 요청했다.
“어허, 됐어. 난 고기 굽는데 진심이기 때문에 남한테 집게 안 준다.”
‘흠, 그런 사람들이 종종 있지.’
빠르게 납득한 예찬은 얌전히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았다.
예찬은 말과 달리 어설프게 고기를 굽는 선우이경을 구경하며 생각했다.
‘괜찮은 차에 옷이랑 시계도 명품. 고기도 딱 보니 구워 본 적 없으면서 나한테 시키기 싫어서 거짓말한 거군.’
날라리 같은 생김새와 달리 참 좋은 놈이었다.
고기를 굽는데 자꾸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거슬리는지 선우이경은 연신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예찬이 물었다.
“머리는 언제 자를 거예요? 오늘 같이 갈래요?”
데뷔 조에 들면 자르겠다고 공약을 걸었으니 지켜야 했다. 선우이경은 고개를 저었다.
“말만 들어도 영광이긴 한데, 이왕 자를 거 우리 데뷔 다큐 찍을 때 자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팬분들도 자르는 모습을 같이 볼 수 있잖아.”
‘데뷔 다큐라…….’
츄마프 촬영 끝물 즈음, 신 PD가 츄마프로 데뷔하는 그룹의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있다고 알음알음 소문이 돌았었다.
‘실제로 츄마프가 잘나갔던 해에는 제작된 적도 있었지.’
다만 지금 신 PD가 낙하산에게 자리를 뺏기고 제정신이 아니라 과연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N-net이 생각이 있으면 다른 팀이라도 투입해서 찍겠지만…… 방송국도 실무진 말고 위쪽은 은근 감각이 이상한 양반들이 많단 말이야.’
트렌드에 누구보다 민감하고 열려 있을 것 같은 직종이었으나, 윗물로 가면 꼰대도 그런 개꼰대들이 없었다.
메인 PD가 바뀐 걸 보니 윗선에서 알력 다툼이 있는 것 같았다. 괜히 데뷔 준비에 불똥이 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과거가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보니 이 앞은 정말 미지의 영역이군.’
“맛있어?”
선우이경이 예찬의 앞으로 다소 바싹 익은 고기를 밀어 주며 물었다.
예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선우이경의 앞으로도 고기를 좀 분배했다.
그릇을 깨끗이 비운 두 사람은 다시 서포트 투어에 들어갔다.
가끔 두 사람을 알아보는 팬들이 있었지만, 인증샷만 찍고 바로 다른 장소로 이동하다 보니 소란이 벌어지진 않았다.
“이제 곧 퇴근 시간이겠는데?”
“그럼 돌아갈까요?”
퇴근 지옥에 한몫 보탤 생각이 없는 두 사람은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예찬의 집 앞 골목에 차를 세운 선우이경이 예찬을 향해 씩 웃었다.
“나 완전 베스트 드라이버지?”
확실히 그랬다. 예찬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오늘 재밌었다. 너에 대해서도 좀 더 잘 알게 된 것도 좋고.”
못하는 걸 못하는 예찬이라고 말이야.
선우이경이 덧붙이면서 웃기에 예찬도 느낀 바를 솔직히 말했다.
“저도 형이 좋은 사람인 걸 알겠어요.”
“고기 구워 줘서?”
예찬은 바로 정색했다.
“아니요, 형 고기 되게 못굽던데요.”
정성을 봐서 오늘은 끝까지 집게를 잡게 뒀지만 두 번은 없었다.
‘고기에 대한 모독이야.’
“진짜 많이 맛이 없었구나…….”
예찬의 싸늘한 표정에서 진심을 읽은 선우이경이 꼬리를 내렸다.
“흠흠, 아무튼 내일이면 진짜 한 팀으로 묶이겠네. 잘 부탁해.”
“저도요.”
선우이경을 배웅한 예찬은 집으로 돌아와 SNS에 접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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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찬이랑 이경이 서폿 탐방하던데 본 사람?? 나 내 눈을 의심했음ㅠㅠ
– 둘이 성격 안 맞을 거 같았는데 방송에서도 잘 지내고 누나 참 흐뭇하다
– 진짜 얘네 왜 이렇게 귀여워ㅠㅠㅠ
– ㅋㅋㅋ인기 있는 애들이랑만 노는 거 ㅈㄴ 투리구슬
– 이경이랑 예찬이 두 번 연속 같은 팀 하더니 친해졌나 봐 이런 친목 너무 좋다!
– ㅎㅇㅊ 왜 ㅅㅇㅇㄱ이랑 놈? 원래 놀던 애들 팽한 거?ㅋ
– 예찬이가 저희 서포트 앞에서 인증샷 찍고 갔대요 진짜 살아 있는 보람을 느낀 오늘입니다 예찬아 사랑해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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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섞여 있는 어그로를 깨끗하게 무시한 예찬은 목격담에 종종 첨부된 사진을 살폈다.
‘예쁘게 찍어 주셨네.’
신경 써서 입은 보람이 있게 사진발이 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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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예찬은 정식 계약을 위해 N-net이 속한 NJ 주식회사 엔터테인먼트 빌딩에 도착했다.
그리고 잠시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서 있는 빌딩을 감상했다.
‘LEE 엔터 말고 다른 회사, 그것도 N-net 직속이 된다니, 참 재미있군.’
리스피릿으로 활동하던 시절,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N-net과 엮인 연예인들을 여기저기 꽂아 넣는 통에 방송사의 횡포라고 혀를 차곤 했다.
그런데 지금부터 예찬은 그보다 더한 N-net의 자식놈이 될 예정이었다.
역시 세상사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소규모 기획사로 시작해 서러운 꼴을 더럽게 많이 당했는데 이번엔 그래도 좀 쉽게 쉽게 가겠군.’
대기업의 아들이 되어 달달한 꿀 좀 빨아 보겠다는 포부를 다지며 예찬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데스크로 다가가자 예찬의 얼굴을 알아본 직원이 반색했다.
온 얼굴에 화색이 만연한 직원은 예찬이 묻기도 전에 호들갑을 떨었다.
“하예찬 연습생! 아니, 하예찬 씨! 14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꺄, 진짜 실물이 훨씬 미남이세요!”
“감사합니다.”
츄마프를 감명 깊게 본 게 분명한 직원에게 친절하게 예찬이 친절하게 미소 지었다.
아직 사원증이 없기 때문에 예찬은 다른 직원의 도움을 받아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예찬아!”
14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무섭게 심상록의 목소리가 예찬을 반겼다.
“제가 꼴찌예요?”
“아니. 아직 세혁이랑 의탁이, 그리고 새벽이도 안 왔어.”
시계를 확인하니 아직 20분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예찬은 먼저 와 있는 다른 멤버들과 인사를 나눴다.
‘채은성은 어디 있는 거지?’
다른 놈들은 다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연계 퀘스트로 파티원으로 만들어야 하는 채은성만 보이지 않았다.
예찬은 가장 가까이에 서 있는 심상록에게 물었다.
“채은성은요?”
“은성이? 조금 전까지 있었는데…… 아, 저기 온다!”
심상록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자, 손수건으로 손의 물기를 닦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채은성이 보였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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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계 퀘스트 발생!>― 채은성을 파티원으로 등록하세요! (남은 기간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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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은성과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순간, 두 사람 사이로 닫아 두었던 퀘스트 창이 튀어 올랐다.
예찬은 숫자로 바뀐 남은 기간을 먼저 확인했다.
‘만나면 퀘스트 시작, 뭐 이런 거였나.’
그래도 1일이면 홀로그램 창 치곤 후하게 기간을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음. 얘들아, 기사 좀 확인해야 할 것 같은데?”
‘기사?’
무겁게 가라앉은 선우이경의 목소리에 멤버들은 말에 각자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어떤 기사인지 물을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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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유명 연습생 오디션 프로그램, 조작 논란? 빛나는 세계를 가장한 추악한 뒷거래?
‘이게 하필 지금…….’
아니, 지금이기 때문에 나온 건가?
유명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려 있는 기사의 제목을 본 예찬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마침 여기 다 모여 있군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익숙한 얼굴의 중년 여성이 멤버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 뒤를 따라 내린 배새벽이 본 적 없는 표정으로 화를 냈다.
“엄마! 진짜 하지 마시라고요!”
그러나 배새벽의 어머니이자 오브 기획사의 대표 배해선은 아들의 말을 깨끗하게 무시했다.
“학생들한테도 이야기하는 게 맞는 거 같아서 말할게요. 우리 새벽이는 NJ와 계약하지 않을 겁니다.”
“엄마!”
“엄마 귀 안 먹었다. 자세한 얘기는 지금부터 NJ 측에 할 예정이니 학생들은 그쪽에게 전해 들어야 할 거예요.”
배새벽이 소리를 질러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배해선을 보고 있으니 머리가 아팠다.
‘이게 무슨 난리야…….’
“아니, 배해선 대표님. 그게 무슨 소립니까?”
로비가 소란스러운 것을 느꼈는지 안쪽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예찬이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이 맹렬한 기세로 진동했다.
‘……느낌이 안 좋다.’
순간, 어째서인지 안 좋은 일은 연달아 터진다는 말이 떠올랐다.
불길한 기운이 등줄기를 스쳤다.
예찬은 조심스럽게 화면을 켰다.
진동의 출처는 예찬이 번호를 바꾼 이후 다시 개설한 GE 사옥 연습팸의 단체 메신저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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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들, 큰일 났어요! 사장님이 저희 오늘 안 보낸대요! 지금 루벨 연습실에 갇혔어요!!
– NJ 쪽에 연락한다는데 혹시 들은 거 있어(? ? ?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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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무슨 소린데……?’
“배해선 대표님, 이거 엄연한 사기 계약입니다? 처음 방송 들어가기 전에 분명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거기에 대해서 지금부터 설명해 드리죠. 안으로 안내해 주시겠어요?”
“들으실 필요 없어요! 엄마, 그냥 돌아가세요!”
“네, NJ 엔터의 김철우입니다. 아, 루벨이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순식간에 시장 한복판이 돼 버린 NJ 엔터 빌딩 14층 로비에서 예찬은 강한 예감을 느꼈다.
결코 쉽게 갈 수 없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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