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95)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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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의식 비대라고요?”
황당하다는 듯 목소리가 떨리는 배해선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예찬이 설명을 이어 갔다.
“대표님은 새벽이가 대표님 부부의 자식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아주 큰 인기를 끌 거라고 전제하고 계시는데요. 이런 말씀드리기 정말 유감스럽지만, 그 사실이 밝혀진다고 데뷔할 수 있을 만큼 여기가 말랑한 세계가 아니라서요.”
예찬은 안타깝다는 얼굴로 말했다.
“새벽이의 아버님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맞으십니다만, 그 팬층이 아이돌 팬층과 겹치지는 않습니다. 그분의 아들이라 새벽이의 투표수가 늘어 데뷔 조에 들었다는 건 착각이란 거죠.”
예찬의 냉정한 말에 배해선은 눈을 가늘게 떴다.
오랜 세월 어딜 가든 슈퍼스타 부부 대우를 받아왔으니 착각할 만하긴 했다.
예찬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
“이건 간단하게 정확한 수치로 확인할 수도 있는데요. 말씀하신 유포 글이 처음 올라온 게 지난 생방송 도중이었으니, 그 시간을 기준으로 전과 후의 새벽이의 투표 수 추이를 확인해 보면 답이 보일 겁니다.”
깔끔하게 결론을 내린 예찬이 자리에 다시 앉자 NJ 직원들은 슬그머니 눈빛을 교환했다.
예찬의 말대로 배새벽의 투표 데이터를 살펴보고 싶은 눈치였다.
배해선 대표는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기획사 대표로서도, 또 개인으로서도 높은 위치에 오른 이후 그녀에게 이처럼 당돌하게 구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당황함을 숨기고 침착한 척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하예찬 군 맞죠? 나이가 스무 살이었나?”
그녀가 예찬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예찬 군이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나랑 그이, 그리고 새벽이가 나온 프로그램 인기가 아주 대단했어요. 시청률이 무려…….”
“지금 대표님이 말씀하셨네요. 네, 저는 어려서 그 프로그램을 잘 몰라요. 츄마프의 시청자층이 폭 넓긴 하죠. 그런데 그중 ‘알콩 메이커’라는 프로그램을 아는 사람은 얼마고 새벽이가 알콩이라는 이유만으로 뽑아 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데이터로 확인하는 게 제일 정확하겠죠?
배해선의 말허리를 끊은 예찬이 친절하게 덧붙였다.
배해선 대표는 후, 하고 입김을 불어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치웠다.
도지윤 팀장을 돌아본 그녀가 날카롭게 외쳤다.
“뭐 하고 있어요?! 신 PD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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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연락이 닿지 않는 신 PD 대신 불려 온 메인 작가는 조심스럽게 모아 온 자료를 도 팀장과 배해선 대표의 가운데에 놓았다.
“저, 알 만한 분들이니 아시겠지만, 이거 대외비라 어디 새어 나가면 곤란하거든요.”
메인 작가는 연습생들 쪽이 신경 쓰이는지 힐끗거렸다.
예찬은 그런 작가를 배려해 반대쪽을 향해 고개를 과장되게 돌리고 두 사람이 그래프를 확인하는 것을 기다렸다.
차분히 종이를 넘기던 배해선은 몇 번이고 처음으로 돌아갔다.
팔락팔락!
얌전히 종이가 넘어가던 소리가 점차 거칠어졌다.
“후.”
구질구질하게 다섯 번이나 서류를 검토한 배해선이 짧고 굵은 숨을 토했다.
“……우선 새벽이의 데뷔가 새벽이 ‘혼자’ 이룬 성취라는 건 인정하겠어요.”
‘그냥 인정할 것이지 말이 길군.’
“하지만 연습생이 다쳤는데 아무 연락도 없이 촬영을 속행한 것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은 여전하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
“그래요, 도의적인 책임이죠.”
이왕 시작했으니 배해선을 완벽하게 물러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예찬이 나서려 했으나 배새벽이 더 빨랐다.
배새벽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어머니를 노려보았다.
“계약서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은 ‘도의적’인 일 말이에요.”
수틀리면 변호사라도 찾아갈 기세인 아들과 한참 동안 눈싸움을 벌이던 배해선 대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디 네 맘대로 해 보렴. 도 팀장님,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더 머무를 수가 없겠네요. 계약서는 저희 회사로 보내 주시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지윤 팀장의 대답을 들은 배해선은 배새벽과 예찬을 한 번씩 흘기고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예찬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대답도 듣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 예찬이 배해선 대표를 불러 세웠다.
“배해선 대표님.”
“또 하예찬 군인가요? 이번엔 또 뭔가요.”
예찬을 돌아본 배해선은 원하던 거 다 받아 가지 않았냐는 듯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예찬은 상대의 짜증스런 표정에 기죽는 일 없이 성큼성큼 다가갔다.
“대표님, 사람 일에 완벽이란 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다짜고짜 던진 질문에 배해선은 눈살을 찌푸리며 예찬을 올려다봤다.
“나랑 선문답이라도 하려고 따라왔어요? 결론만 말해요.”
시계를 확인하는 모습에 예찬은 원하는 대로 빠르게 할 말만 하고 퇴장하기로 했다.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특히 엮인 사람이 많을수록 더 그렇죠. 그 사람이 업계 측 사람이 아니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명백히 배새벽의 가족사진 유출에 대해 짚은 예찬이 씩 웃었다. 배해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데이터를 보셔서 알겠지만, 괜히 득본 것도 없던 유출 사고로 새벽이가 뒷말을 듣는 일이 없길 바라거든요. 유포하신 분 입단속 잘 부탁드립니다.”
이젠 아예 툭 까놓고 말하는 예찬이 어이가 없었는지 배해선이 코웃음을 쳤다.
예찬은 이번에도 굴하지 않고 생글생글 웃었다.
“대표님께서 어련히 잘하셨겠지만요.”
“너, 참 맹랑하구나.”
배해선이 말했다. 그러나 올라간 입꼬리는 어쩐지 재미있는 걸 발견한 사람처럼 활기차 보였다.
배해선은 NJ 사옥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명함을 꺼냈다.
“자, 받으렴.”
명함을 건넨 배해선은 볼일을 다 봤다는 듯 타이밍 좋게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7년 후에 새벽이 손잡고 오렴. 연기도 꽤 하네.”
예찬은 별다른 대꾸 없이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어머님, 죄송하지만 아드님은 7년 후엔 저랑 재계약할 건데요.’
그게 NJ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그때쯤 오브가 아이돌 육성에도 뛰어들었으면 고려는 해 보겠다고 생각하며, 예찬은 탄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걸 잠시 지켜보았다.
예찬이 회의실로 돌아왔을 땐 NJ 직원들은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처럼 넋이 나가 있었다.
심상록이 자리로 돌아와 앉은 예찬에게 귓속말을 했다.
“새벽이네 어머님 따라갔던 거지? 볼일은 잘 끝냈어?”
예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상록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다행이다. 츄마프만 끝나면 이제 다 잘될 거라 생각했는데 세상일이 쉽지 않구나.”
그래도 큰 고비를 넘겼다며 심상록은 슬며시 웃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슬슬 정신이 돌아왔는지 목덜미를 주무른 도지윤 팀장이 머쓱하게 입을 열었다.
“흠, 첫 만남부터 볼썽사나운 꼴을 보여서 미안합니다. 다시 한번 소개하겠습니다. 레굴루스 전담팀 팀장을 맡게 된 도지윤입니다.”
도 팀장이 안경을 치켜올렸다. 예찬과 연습생들은 가볍게 박수를 보냈다.
“전속 계약서 작성 때문에 이렇게 여러분을 모셨는데, 어쩌다 보니 일정이 많이 틀어졌네요. 그럼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계약서를…….”
“저, 팀장님.”
NJ 직원이 도지윤에게 작게 말을 걸었다.
“뭐죠?”
“죄송한데 루벨 엔터의 범세혁 씨와 정의탁 씨가 못 왔는데요.”
“……예?”
얼빠진 목소리를 낸 도지윤이 황급히 연습생들을 살폈다.
“하나, 둘, 셋…… 여섯, 일곱…… 정말 둘이 없잖아?”
“그리고 그것 말고 좀 전에 조작 기사 뜬 것도 처리를 좀…….”
한 고비를 해치웠더니 다른 고비가 곧장 닥친 도 팀장에게 예찬이 말했다.
“도지윤 팀장님, 지금부터 루벨 엔터에 좀 가 보려고 하는데요. 계약은 그 이후에 해도 될까요?”
도지윤 팀장의 눈이 커졌다.
예찬이 배해선에 이어 루벨 엔터의 문제까지 해결하려 드는 것을 깨달은 도 팀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누, 눈부시네요.”
“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흠흠.”
예찬의 뒤에 후광이라도 본 모양이었다. 전 회사에서 자주 있었던 일이기에 예찬은 자연스레 납득했다.
‘막 팀이 꾸려지자마자 일이 연속으로 터지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겠지.’
“범세혁 씨와 정의탁 씨 없이 계약을 논할 수 없으니 오늘은 일단 여기서 파하는 걸로 하죠.”
그새 냉정을 되찾은 도지윤의 말에 연습생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NJ 직원들이 먼저 자리를 떠나고 남은 연습생들이 저마다 참고 있던 숨을 토해 냈다.
“하, 진짜 데뷔 쉽지 않군. 예찬이 너는 루벨에 가서 애들을 데려오려는 거지?”
머리를 거칠게 헤집은 선우이경이 예찬에게 물었다.
“네. 좀 전에 NJ와 통화하는 걸 보니 제대로 된 이유도 대지 않고 그저 오늘은 갈 수 없다고 우기고 있더군요. 직접 가서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예찬은 범세혁과 정의탁에게 받은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두 사람은 구조 요청을 보낸 후 무슨 일인지 묻는 심상록의 메시지를 읽지도 못하고 있었다.
‘루벨 사옥 내에 있다면 보안이니 뭐니 해서 폰을 가져간 거겠지. 21세기에 이게 말이 되냐고.’
빠르게 돌아가는 상황에 내내 인상만 찌푸리고 있던 강해솔이 입을 열었다.
“너 혼자 가는 건 좀 그래. 같이 갈까?”
“감동적이지만 괜찮아요. 대충 루벨 쪽에서 뭘 원하는지 알 거 같거든요.”
예찬의 예상이 맞다면 소속사가 없는 연습생이 방문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예찬은 조건에 맞는 멤버를 돌아보았다.
“채은성, 같이 가 줄래?”
“나?”
의외였는지 채은성이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래, 너. 널 빨리 파티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금 이 시각에도 착실히 줄어들고 있을 제한 시간을 떠올린 예찬은 빠르게 자신의 추측을 털어놓았다.
“아마 루벨 측에선 NJ와 계약이 끝나고 자기들과 계약하자고 두 사람을 붙잡고 있을 거예요.”
“뭐? 그건 7년 뒤잖아. 그게 말이 돼?”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는지 강해솔이 인상을 구겼다.
“맞아. 그리고 NJ와 7년 계약은 방송 시작 전에 합의된 부분이잖아. 왜 이제 와서 그러는 거지?”
지극히 상식적인 심상록 또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턱을 괴고 고민에 빠졌다.
반면 눈치가 빠른 선우이경은 알겠다는 얼굴을 했다.
“사람은 화장실 갈 때랑 올 때 마음이 다르다잖아. 생각보다 츄마프가 너무 뜨고 세혁이랑 의탁이의 주가가 터무니없이 올라서 아까워진 거지.”
“계약서가 있는데 그런 비열한 짓이 가능한가요?”
끔찍하다는 듯 강해솔이 눈을 찌푸렸다. 대답은 예찬이 받았다.
“그러니까 그쪽도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거죠. 아마 7년 계약이 끝나면, 지금 루벨이랑 한 연습생 계약에 남아 있는 기간을 이행하라는 방향으로 밀고 있을 거 같네요. 새 계약을 하자는 건 누가 봐도 사기니까.”
“그래서 소속사가 없는 사람들이 가려는 거구만.”
선우이경이 눈치챘다는 듯 벽에 삐딱하게 기대섰다.
“뭐, 루벨 입장에선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 절로 기어 들어온 것처럼 보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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