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96)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9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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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도……!”
소속사가 없는 연습생까지 덤으로 잡으려 들 거란 말에 어떤 책임감이 솟았는지 우휘겸이 앞으로 나섰다.
“아니, 셋은 너무 많은 거 같아서. 나랑 채은성 둘이 갈게.”
예찬의 거절에 우휘겸의 눈동자가 흔들렸으나 예찬은 모른 척했다.
‘사실 둘도 필요 없지만 퀘스트를 해야 하거든.’
“왜 우휘겸이 아니라 나를…….”
예찬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채은성이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예찬은 이번에도 모른 척했다.
‘나라고 정찬양 팬과 사이좋게 공동 작업을 하고 싶겠냐고.’
연계 퀘스트를 실패했을 때 주어지는 페널티를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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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계 퀘스트 발생!>― 채은성을 파티원으로 등록하세요! (남은 기간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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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예찬을 응원이라도 하는 듯 홀로그램 창이 반짝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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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혁이랑 의탁이는 어쩌고 있어?”
“계속 똑같죠, 뭐. 일단 NJ랑 약속이 있으니 나갔다 와서 얘기하자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루벨 엔터 사장의 물음에 김실장이 대답했다.
“하, NJ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퍽이나 다녀와서 얘기가 되겠나? 보라고, 김 실장. 요즘 인터넷만 켜면 다들 츄마프 얘기야!”
루벨 엔터 사장은 코웃음을 쳤다.
‘니보단 나을 듯.’
루벨 사장이 스마트폰을 만지는 것을 경멸하는 눈으로 흘겨보던 김 실장은 사장이 고개를 들 기미가 보이자 표정을 바꿨다.
“남이 잘 키워 둔 애들을 쏙 빼 가서 자기들만 배불리려는 걸 내버려 둘 수 있겠냐고. 난 뭐 땅 파서 장사해?”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듯 루벨 사장은 자신의 가슴을 팡팡 쳐 댔다.
김 실장은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럼 츄마프에 내보내질 말든가. 왜 지가 내보내 놓고 계약서대로 하자니까 지랄하지?’
범세혁이 입사하기 직전, 루벨 엔터의 두 번째 남자아이돌 그룹이 데뷔했다.
참고로 데뷔 조와 재킷 사진까지 찍었던 정의탁은 평가 때마다 기복이 너무 심해 데뷔 직전에 빠지게 되었다.
한 소속사에서 후속 아이돌을 내는 텀은 보통 짧아야 2년.
루벨 엔터의 경우 남돌과 여돌을 번갈아 데뷔시켰기에 다음 남돌 데뷔는 아무리 빨라도 4년 이후였다.
범세혁을 연습생으로 받은 이후, 사장을 포함한 직원들은 모두 고민했다.
4년이나 묵혔다 데뷔시키기엔 다른 연습생들과 나이대가 맞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내보내기엔 너무나 뛰어난 인재.
한동안 계륵이니 뭐니 중얼거리던 사장은 NJ로부터 츄즈 마이 프린스 99 참여 제안을 받고 무릎을 쳤다.
‘어차피 망할 게 분명한 프로그램이니 인지도만 쌓고 빠져서 기존 그룹에 추가 멤버로 들여보내자! 개인 팬덤이 있으면 기존 그룹 팬들이 배척해도 어찌어찌 살아남겠지!’
생각하면 할수록 이득인 제안이었다.
‘츄마프로 데뷔하면 계약 기간이 7년이라고? 말이 7년이지 백 퍼센트 그렇게 오래 못 가니까 상관없다! 아니면 직전에 하차해 버리든지!’
심지어 참가 연습생 구하기가 힘들었는지, NJ 측은 츄마프에 연습생을 내보내는 소속사에 엔카운트다운 특별 MC를 비롯해 몇몇 프로그램 출연까지 보장해 주었다.
말 그대로 꿩 먹고 알 먹고였다.
루벨 사장의 원대한 계획은 츄마프가 너무 성공하면서 틀어져 버렸다.
루벨 엔터에서 데뷔한 신인 그룹보다 이름값이 훌쩍 높아져 버린 범세혁과 정의탁.
중간에 하차시킬까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런 짓을 했다간 대중들에게 몰매 맞는다는 직원들의 만류에 그만뒀다.
졸렬하게 차량 지원을 끊는 짓도 해 봤지만 꿋꿋하게 택시를 타고 둘 다 잘도 돌아다녔다.
그 후 손가락만 빨다가 NJ와 계약 날이 당도한 것이었다.
“난 절대 인정 못 해! 내가 세혁이랑 의탁이한데 해 준 게 얼만데! 걔들도 양심이 있으면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아무리 연예계가 더러워도 인간이라면 기본적인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나?”
‘뭐라는 거니.’
김 실장은 어이가 없었다.
백 번 양보해서 루벨에서 삼 년 넘게 연습생 생활을 한 정의탁이라면 몰라도, 범세혁은 츄마프에 들어갔을 당시 연습생 생활 시작한 지 반년도 채 안 됐었다. 참으로 뻔뻔했다.
‘정의탁도 데뷔시켜 줄 것처럼 희망 고문이나 했지, 뭘 그렇게 잘해 줬다는 건지 모르겠네. 방송 전까지 이름이나 알았으려나 몰라.’
그러나 월급쟁이 김 실장은 사장의 뻔뻔한 태도를 지적하는 대신 얌전히 비위를 맞췄다.
똑똑.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나고 직원이 문 너머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저, 사장님. 로비에 손님이 오셨는데요…….”
“뭐? NJ야? 나 없다고 해!”
루벨 사장은 당장이라도 어디든 몸을 숨길 태세였다. 직원이 재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설마 벌써 있다고 했어?”
“NJ 쪽이 아니라 츄마프 쪽이에요. 그 츄마프 연습생들.”
직원의 말에 이미 반쯤 소파 뒤에 숨었던 사장이 거북이처럼 목을 길게 뺐다.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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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 뒤, 예찬과 채은성은 극진한 안내를 받아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야, 요즘 제일 핫한 두 분이 이렇게 찾아와 주시다니. 오늘 운수가 아주 좋을 거 같아요. 집에 가는 길에 복권이라도 사야겠습니다, 하하하!”
손수 다과를 내온 루벨 엔터의 사장이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두 사람을 마구 띄웠다.
왜소한 체구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한 남자를 스캔한 예찬이 방긋 웃었다.
“아하하,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 가, 감사합니다?”
태연하게 웃는 예찬과 달리 채은성은 어색한 기색이 역력했다.
예찬은 테이블 아래로 채은성의 허벅지를 쳤다.
‘정신 차려라.’
다행히 루벨 사장은 예찬을 뜯어 보며 견적을 내느라 채은성의 태도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나저나 루벨 사옥이 정말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상상 이상이네요.”
찻잔을 든 예찬은 너무 티 나지 않게 루벨 엔터를 띄우기 시작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응접실 내부를 둘러보는 시늉까지 곁들이자 제법 자연스럽게 구멍가게 촌뜨기가 만들어졌다.
예찬의 칭찬이 싫지 않았는지 사장이 능글능글 웃었다.
“그런가요?”
“네, 구내식당이 특히 최고라고 합숙 내내 의탁이한테 들었어요.”
거짓말이다. 루벨의 식당이 괜찮다는 것은 리셋 도중에 알게 된 정보였다.
“아 의탁이가 그랬어요? 하하, 의탁이가 우리 회사에 애사심이 좀 강하긴 하죠!”
“직접 와 보니까 왜 두 사람이 그렇게 칭찬했는지 알겠어요. 의탁이랑 세혁이는 뿌리가 단단해서 부럽네요.”
루벨 사장의 눈이 빛났다.
“아니, 츄마프 1위 연습생이 왜 이렇게 약한 소리를 하세요. 아, 혹시 기댈 곳이 없어서 좀 힘든 건가?”
루벨 사장은 고작 스무 살 먹은 연습생을 경계하지 않았기에 지금 자신에게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굴면 사장 쪽의 의심을 살 수 있기에 대충 떡밥을 뿌린 예찬은 말을 돌렸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다른 소리만 계속했네요. 사장님 바쁘실 텐데.”
“아이고 아닙니다. 하하, 저 그래서 방금 하던 이야기 말인데…….”
“그래도 이렇게 큰 회사 사장님이면 엄청 바쁘시잖아요. 얼른 드릴 말씀만 드리고 가 봐야죠.”
세상 물정 모르는 얼굴로 예찬이 거듭 이야기를 돌리자 루벨 사장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한발 물러섰다.
루벨 사장이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아, 그렇죠. 오늘은 어쩐 일로 오셨을까요?”
예찬은 놀란 얼굴을 꾸며 냈다.
“오늘이 NJ랑 계약하는 날인데 세혁이랑 의탁이가 오질 않아서요. 회사에 있다는 메시지를 끝으로 연락이 끊겨서 와 봤는데…… 혹시 모르셨나요?”
“아, 계약. 아아, 그게 오늘이었군요. 하하, 사실 저희도 오늘 두 사람과 남은 계약에 대해 의논하던 중이라 완전히 잊어버렸네요. NJ 측과 레굴루스 여러분께는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뻔뻔하기는.’
예찬은 속내를 감추고 신나게 장단을 맞췄다.
“그러셨구나! 와, 그럼 세혁이랑 의탁이는 NJ랑 계약이 끝나도 루벨로 돌아오면 되는 거군요.”
“……!”
은근히 부럽다는 기색을 흘리자 루벨 사장이 덥석 걸려 들었다.
“이렇게 오늘 만난 것도 인연인데, 예찬 씨도 NJ와 끝나면 저희와 함께하시는 게 어떨까요?”
“엇, 정말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하죠…….”
“그러면 당장 계약서를……!”
“그런데 좀 걱정도 되긴 하네요. 아직 NJ랑 계약서도 안 썼는데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세혁이랑 의탁이도 아직 논의 중인 거죠?”
예찬이 쐐기를 박았다.
“둘을 만나서 좀 얘기해 봐도 될까요?”
루벨 사장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이윽고 사장은 혼자 앓는 소리까지 내며 고민했다.
‘이놈, 진짜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지금 범세혁이랑 정의탁을 보여 주면 역효과 나는 거 아니야? 그렇다고 안 된다고 하면 수상해 보일 것 같고.’
기껏 넝쿨째 굴러 들어온 호박을 놓치기 싫었던 루벨 사장은 한참을 끙끙 앓다가 조심스레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 지금 세혁이랑 의탁이가 만나기 좀 그런 상태인데…….”
“네? 혹시 어디 다쳤나요?”
예찬이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자 사장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건 아닌데. 아마 예찬 씨처럼 NJ랑 계약하기 전이라 마음이 복잡한지 우리랑 연장하는 걸 고민하는 거 같더라고! 하하, 물론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히 괜찮은 일이지! 예찬 씨도 좋겠다고 생각했잖아?”
“그렇죠. 세혁이랑 의탁이는 왜 그러는 걸까요? 이상하네…….”
루벨 사장의 말에 예찬은 완전히 몰입해 말끝을 흐렸다.
예찬이 루벨 엔터에 호의적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연기력이었다.
‘저거 완전 능구렁이네.’
채은성은 어색함도 잊고 속으로 감탄했다.
잠시 고민하던 예찬이 루벨 사장과 눈을 마주쳤다.
“그럼 제가 한번 설득해 볼까요?”
“예찬 씨가?”
“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어느 쪽이 좋은지 명확하게 보이잖아요. 두 사람도 분명 저희랑 얘기해 보면 알 거예요. 그치, 은성아?”
“어? 으음…….”
‘이 자식, 혹시 지금 진심 아냐?’
예찬의 말과 행동 모두 진심으로 루벨 엔터에 심취한 것 같아서 채은성은 혼란스러워졌다.
‘당장 이놈이라도 데리고 나가야 하나?’
채은성의 동공이 흔들리는 걸 본 예찬이 다시 한번 무릎으로 채은성의 허벅지를 쳤다.
‘아, 그거 아니었네.’
정신을 차린 채은성은 루벨 사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애들이랑 얘기 끝나고 우리는 다시 얘기합시다.”
사장은 예찬을 완전히 순진무구한 연습생 그 자체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친절하게 범세혁과 정의탁이 갇혀 있는 연습실로 예찬과 채은성을 안내했다.
밖에서 잠겨 있는 문을 사장이 여는 것을 못 본 척한 두 사람은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네, 감사합니다~”
손을 흔들고 있던 예찬은 문이 완전히 닫히기 무섭게 몸을 돌렸다.
“예찬이 형!”
“예찬아!”
문이 열리자마자 벌떡 일어난 정의탁과 벽에 기대앉아 있는 범세혁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예찬은 차가운 눈으로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계약서 먼저 보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