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9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96화
?
?
정의탁은 쪼르르 달려가 예찬의 손에 계약서를 쥐여 주었다.
예찬은 그대로 연습실 바닥에 주저앉아 계약서를 천천히 살폈다.
정의탁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일이 좀 풀릴 것 같았다. 예찬은 머리 위에 떠 있는 홀로그램을 확인했다.
?
[옥장판 팝니다]남은 시간 : 00:03:11
?
루벨 엔터 사장과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 전, 예찬은 언변 스탯을 올려 주는 아이템을 사용했다.
덕분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사장과 대화는 예찬이 원하는 대로 순조롭게 흘러갔고.
이제 루벨 엔터의 두 사람에게 계획을 설명하고 다시 사장을 만나야 했다.
20분짜리 아이템이다 보니 벌써 종료 시간이?임박해 있었다.
아깝지만 루벨 사장을 다시 만날 때 또 써야 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오래간만에 대단한 악덕 계약서를 볼 줄 알았는데 멀쩡하네.’
21세기에 사람을 강제 억류하기에 또 얼마나 엉망일까 했는데, 의외로 연습생 표준 계약서와 크게 다른 점이 없는 평범한 계약서였다.
‘계약 기간은 범세혁이 2년, 정의탁이 3년짜리인가.’
연습생 계약은 최대 3년.
아마 처음 입사할 땐 2년으로 계약하고 그 후 연장하게 되면 3년으로 계약하는 모양이었다.
남은 기간은 범세혁이 1년 2개월, 정의탁은 1년이 채 안 됐다.
‘계약이 중간에 끊겼을 경우 어떻게 한다는 사항은 없군. 이럴 땐 보통 일시 정지로 처리하긴 하는데…… 뭐 법대로 하자고 하면 못 갈 것도 없고.’
제법 꼼꼼하게 만들었지만 그래 봐야 연습생 계약서인지라 군데군데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여기 맨 윗줄에 NJ와 계약이 만료되면 남은 기간 계약을 이행한다, 이 한 줄을 추가하고 도장 찍으라는 거지?”
“네…… 어때요?”
정의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족스럽게 계약서의 마지막 장까지 확인한 예찬은 호기롭게 대답했다.
“좋아. 도장 찍자.”
“네?”
예찬은 경악하는 정의탁과 그 뒤에서 눈만 깜빡거리는 범세혁을 향해 좀 더 자세하게 계획을 설명했다.
“그리고 군대 가자.”
“네에?”
더더욱 경악으로 물든 정의탁의 얼굴을 본 예찬은 조금 반성했다.
‘하긴 쟤는 7년 뒤면 스물다섯이니 좀 이른 감이 있지.’
혼자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인 예찬이 말했다.
“난 다 같이 다녀오는 걸 추천하긴 하는데, 영 가기 싫으면 그때 가서 불공정으로 무효화 주장을…….”
“아니, 그게 아니라! 왜 갑자기 얘기가 군대로 튀는 거예요?”
“아.”
그제야 설명이 부족했음을 깨달은 예찬은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지금 우리한텐 크게 세 가지 선택지가 있어. 첫 번째, 지금 당장 불법 감금으로 루벨 엔터를 경찰에 신고한다.”
“아, 형들은 폰이 있으니 이제 가능하군요.”
“그런데 기사 1면에 날 건 각오해야겠는데.”
정의탁과 채은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예찬이 말을 이었다.
“두 번째, NJ 측에 연락해 상황을 전달하고 회사 대 회사로 붙게 한다.”
“그거 괜찮다. 경찰은 좀 지은 죄가 없어도 부담스럽달까…….”
루벨의 두 사람 못지않게 진지한 얼굴로 경청하던 채은성이 옳다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NJ가 잘 해결해 줄까요? 저희가 츄마프에 나간 것도 그쪽이랑 저희 회사가 뭔가 유착이 있어서일 텐데…….”
반면 정의탁은 갇혀 있는 사이 세상에 대한 불신이 싹텄는지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예찬은 대답 대신 세 번째 방법을 계속 말했다.
“세 번째는 루벨이 원하는 대로 남은 기간 연장 계약을 하는 거야.”
“……그걸 하기 싫어서 여기 잡혀 있던 거잖아.”
그래서 무슨 의미가 있냐며 채은성이 기운 빠진 목소리를 냈다.
예찬은 계약서를 들어 올렸다.
“말만 계약 연장이지, 실제로 여기랑 일할 필요는 없어. 이거 연습생용 계약서다 보니 대충 날린 부분들이 많더라고.”
“네? 어떤 점이요?”
대답 대신 계약서를 톡톡 친 예찬은 그대로 정의탁의 손에 계약서를 건넸다.
“대중문화예술인 전속 계약서의 경우엔, 보통 군 복무 기간은 계약 기간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 들어가거든. 근데 이건 연습생용이라 그런지 군대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어.”
어느새 정의탁 옆으로 다가온 채은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정의탁 대신 계약서를 빠르게 훑었다.
“……정말이네.”
“그런고로 NJ와 7년 계약이 끝나고 루벨에 남은 계약 기간은 군대에서 보내면 제대할 땐 기간 만료란 거지.”
마침 7년 후면 팀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심상록과 선우이경이 서른 살이 된다.
‘한방에 다 같이 갔다가 오면 좋지. 난 안 가지만.’
“잘도 이런 허점을 찾았네요.”
“난 마지막이 좋아! 뭔가 한 방 먹이는 거 같잖아!”
루벨 엔터와의 계약을 핑계로 군대까지 손잡고 보내 버리려 마음먹은 예찬이 세 번째 방안을 밀기도 전에 정의탁과 범세혁이 감탄했다.
“첫 번째는 너무 시끄럽고, 두 번째는 솔직히 NJ를 얼마나 믿어야 할지 모르겠으니 저도 세 번째가 좋아요.”
예찬의 검은 속내를 전혀 알지 못하고 눈을 빛내는 정의탁의 모습에 아주 조금 양심이 찔렸다.
결국 예찬은 헛기침을 하고 제4의 방안을 살짝 풀었다.
“그래, 그리고 사실 너흴 가둔 것부터 시작해서 문제가 될 부분이 한둘이 아니잖아. 지금은 대충 원하는 대로 도장 찍어 주고 나중에 때려치우게 하는 것도 가능해.”
“정말요?”
“물론이지.”
한 점의 망설임도 없는 예찬의 확답에 세 사람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우리의 이름값이 높아질수록 우릴 도와주는 사람들도 늘어날 거야.”
특시 레굴루스의 이름값이 높아질수록 NJ가 루벨을 비롯한 다른 소속사들이 침 바르지 못하게 잘 돌봐 줄 터였다.
이야기가 정리된 분위기에 예찬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이제 협상을 하러 가 볼까? 짐 챙겨라.”
예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범세혁과 정의탁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연습실 안을 정리했다.
채은성은 휩쓸리기 쉬운 성격인지 그런 두 사람 사이에서 같이 우왕좌왕 댔다.
팔짱을 끼고 세 사람을 지켜보던 예찬이 좀 전부터 계속 머리에 맴돌던 생각을 말했다.
“그나저나 너희 회사 사장님 진짜 멍…… 순진하시더라.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어.”
금지옥엽으로 자라 세상 물정 모르는 걸로 유명하긴 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그러게요. 형을 여기 집어넣어 주다니…….”
그새 바리바리 짐을 싸든 정의탁이 한결 긴장이 풀린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보다 계약서가 맹탕이라 다행이었지.’
그게 아니었으면 일단 얘들 얼굴을 본 다음 법정으로 끌고 갈 각오도 있었다.
예찬은 품속에 들어 있는 우휘겸 어머니의 명함을 떠올렸다.
연습생 계약서에 원하던 대로 한 줄을 추가한 루벨 사장은 범세혁과 정의탁이 서명하는 내내 웃음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사장은 내친김에 예찬과 채은성에게도 계약서를 들이밀었으나, 두 사람은 가족과 상의해 보고 바로 연락하겠다는 빈말을 남겼다.
범세혁과 정의탁의 계약서의 나머지 한 부를 챙겨 들고 루벨 엔터를 나선 예찬은 잠시 뒤를 돌아봤다.
‘잠깐이나마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보지 않는 걸로.’
이제 제일 급한 것은 채은성을 파티원으로 등록하는 일이었다.
리스피릿, 그중에서도 정찬양을 제일 좋아한다는 놈의 호감을 어떻게 끌어내야 할지 예찬은 고민했다.
‘노래 얘기를 해야 하나? 내가 만든 거니까 할 말은 많은데…… 음?’
마침 예찬을 돌아본 채은성과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
[퀘스트 성공!> [축하합니다! 연계 퀘스트를 훌륭하게 성공한 당신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1 포인트가 추가됐어요!>?
어, 이게 이렇게 된다고?
갑자기 튀어나온 홀로그램 창에 예찬의 발이 멈췄다.
“왜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예찬은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정의탁에게 손을 내젓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런 예찬을 잠시 바라보던 채은성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왜 성공한 거지?’
별다른 시도 없이 퀘스트를 성공한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나 방금 예찬을 보던 채은성의 얼굴엔 이전에 파티원으로 등록된 다른 멤버들처럼 ‘호감’이란 감정이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지며 예찬은 습관처럼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
* * *
?
며칠 뒤, 다시 NJ 회의실에 모인 연습생들은 드디어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계약서 깔끔하고 좋네.’
“다음 주쯤 정식 계약 기사가 나갈 겁니다. 원래는 준비된 곡도 있어서 다음 달 말로 데뷔를 잡고 그 기사도 같이 낼 예정이었는데요. 여러분이 전체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프로듀싱에 참여하시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거 같아서요.”
도지윤 팀장이 은근히 예찬과 강해솔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츄마프를 보긴 했나 보네. 아니면 보고를 제대로 받았던지.’
어느 쪽이든 일만 잘해 주면 상관없었다.
날로 먹으려는 놈들이 워낙 많은 판이라 걱정했는데, 그래도 최소한은 하는 놈이 윗선에 앉아서 다행이었다.
“데뷔 시기는 여러분과 일정을 조율한 다음 정하는 걸로 하죠.”
방금 정식으로 한 팀으로 묶인 레굴루스의 멤버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츄즈 마이 프린스 99의 열기가 식기 전에 데뷔하는 것이 화제성 측면에선 좋을 터였다.
그러나 만족스럽지 못한 곡을 내는 것보단 시간을 들이는 편이 예찬의 생각에도 나았다.
‘아이돌에게 첫 앨범이 얼마나 특별한데. 당연히 공들여 만들어야지. 어차피 좋은 곡에 좋은 콘셉트, 거기에 실력까지 받쳐 주면 화제성은 끌어 올 수 있어.’
띠링.
기분 좋게 앞으로의 일정을 떠올리는 예찬의 앞으로 홀로그램 창이 튀어 올랐다.
?
[메인 퀘스트 발생!>― 신인상을 수상하세요!
(진행 상태 0/5, 남은 기간 255일)
?
이제 홀로그램 창이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데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
예찬은 은은한 미소를 유지한 채 퀘스트 내용을 살폈다.
메인 퀘스트가 단 한 번으로 끝나리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지 놀랍진 않았다.
예찬은 퀘스트 끝자락에 적혀 있는 숫자들을 확인했다.
‘진행 상태가 5라는 걸 보니 신인상을 다섯 개 받으란 거고. 기간이 255일이면 12월 말까지인가? 내년 초에 열리는 시상식은 포함이 안 되니, 그전까지 있는 시상식에서 전부 받아 오란 뜻이군.’
지난 메인 퀘스트도 그랬지만 의외로 어렵지 않은 미션을 주었다.
예찬은 만일을 대비하는 의미로 올해 데뷔한 아이돌들과 데뷔할 아이돌들을 떠올렸다.
‘적수가 될 만한 놈들은…… 없군.’
3분기 안으로만 앨범을 내도 신인상 다섯 개는 충분히 쓸어 올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해솔이 형한테 작업한 곡 있는지 묻고, 내 곡도 분위기 맞는 걸로 하나 골라서 넣고, NJ 쪽에서 먼저 픽스해 둔 곡들도 들어 보고…….’
그런 예찬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듯 홀로그램 창이 또다시 튀어 올랐다.
?
[연계 퀘스트 발생!>―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수상하세요!
(진행상태 0/15, 남은 기간 255일)
?
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