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화 (프롤로그)(1/180)
< 프롤로그, 1화 >
C급 플레이어 김한비는 가만히 서서 눈앞의 대형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정확하게는, 산산조각이 난 몬스터의 잔해를 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말도 안 돼.
한국에. 아니, 전 세계 어디에서도.
대형 몬스터를 주먹 한 방에 산산조각낼 수 있다는 플레이어는 본 적이 없다.
그런 플레이어가 하나둘이라도 존재했다면 존재하는 몬스터 개체 수는 지금의 반절이었겠지.
김한비는 이 사달을 만들어낸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인지 검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남자는, 정장을 툭툭 털고 자전거에 올라타고 있었다.
“아, 피 튀었잖아. 핏자국은 잘 안 지워지는데.”
“저기…”
누가 쳐다보든 말든 자전거에 묻은 피를 검지로 빡빡 문질러 대던 남자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물론 김한비가 마주한 것은 눈코입이 달린 얼굴이 아닌 검은 비닐봉지였을 뿐이지만.
어떻게 몬스터를 처치한 거죠? 몬스터가 나타날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방금 사용하신 것은 기술인가요? 비닐봉지는 왜 쓰고 계신 거죠?
온갖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결국 튀어나온 질문은 하나였다.
“누구세요?!”
절규 섞인 김한비의 질문에 비닐봉지의 남자는 상큼하게 대답했다.
“회사원입니다.”
“네?”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
나, 이성한은 매일매일이 아주 바쁘다.
실컷 자고 일어나 시계를 보면 빨라도 11시.
30분 이내로 아침을 먹고 소화시킬 겸 드러누워 있다 보면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된다.
점심을 먹고 오늘은 무슨 신나는 사건이 있었나 인터넷을 좀 뒤적이다, 과자 몇 개를 집어먹다 보면 저녁을 먹을 시간.
저녁 시간을 시작으로 봐야 할 TV 프로그램이 매일 서너 개씩은 있다.
늦지 않게 채널도 돌려줘야 했고, 광고 시간에 맞춰 후다닥 화장실도 다녀와야 했다.
“자, 오늘도 저녁 식사를 무사히 마쳤으니 바쁜 일정을 소화해볼까!”
아주 바쁘게 TV를 보기 위해 소파에 드러누워 자세를 잡은 순간.
어김없이 날아오는 잔소리.
“아이고, 이 화상아. 밥 처먹고 하는 게 드러누워 TV 보는 거 말곤 없지.”
“아냐, 나 화장실도 가는데?”
“누워 있지 좀 말어!”
“옛, 알겠습니다!”
씩씩하게 외치곤 벌떡 일어나 그 자리에 서서 TV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대로 쫓겨났다.
누워있지 말라고 하셔서 서 있었는데 혼이 나다니, 이건 부조리한 처사입니다!
속으로만 외치며 집 근처 놀이터로 터덜터덜 걸어가 그네에 앉았다.
형이 올 때까지 조금만 버티면 되겠지.
“컹!”
멍하니 그네에 앉아있는데 저 멀리서 검은색 개가 다가왔다.
다 큰 대형견 보다는 조금 작은 사이즈에, 늘씬하고 길쭉한 다리를 가진 개는 발치까지 다가와 킁킁대더니 이내 그 앞에 납작 엎드렸다.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줬더니 헥헥대면서 좋아한다.
“앉아, 엎드려, 누워!”
한 십 년은 훈련받은 것처럼 말도 잘 알아듣네.
신이 나서 돌까지 던지며 ‘물어와’를 시켰다.
돌이 데굴데굴 멀리까지 굴러가고, 개는 꼬리를 흔들며 돌을 향해 달려갔다.
“뭐 하시는 겁니까!”
경악에 가까운 외침이 들리지 않았다면 ‘짖어’ 까지 시켜볼 수 있었을 텐데.
큰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니 한 남자가 빨리 이쪽으로 오라며 뭐라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
“아, 이 개. 그쪽 개인가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몬스터라고요!”
난 또. 남의 개한테 돌까지 물어오라고 시킨 줄 알고 미안해할 뻔했잖아.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위험합니다.”
남자는 뭐가 그리 다급한지 계속해서 크게 외쳐댔다.
몬스터가 있으면 큰 소리를 내는 게 더 위험하지 않나.
머리를 긁적이며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워낙 얌전해서 주인 있는 개인 줄 알았네요.”
잘 놀고 있었는데 방해를 받아 흥이 깨졌다.
저 멀리서 돌을 물고 돌아온 개가 총총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개도 남자도 무시하고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쯤이면 형도 집에 돌아왔겠지.
저 멀리 뒤쪽에서 남자의 비명소리와 컹컹거리는 듯한 사나운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만,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대며 집으로 돌아갔다.
***
약 3년 하고도 6개월 전, 세상이 변했다.
책이나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몬스터와 던전이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계 곳곳은 아비규환이 되었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일부 사람들이 몬스터에 대항할 힘을 얻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들을, ‘플레이어’라고 불렀다.
플레이어들은 랜덤하게 생성된 포탈을 통해 ‘라 엘타’라는, 지구와는 다른 세상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곳에 다녀온 모두가 공통되게 이야기한다. 마치 게임 같은 세상이라고.
그곳에서는 ‘퀘스트 보드’를 통해 퀘스트를 받고 그것을 완료하면 레벨업을 할 수 있다는데.
레벨업을 하면 능력치를 올릴 수 있었으며, 운이 좋으면 스킬도 배울 수 있다고.
플레이어들은 그렇게 얻은 능력으로 지구에 나타난 몬스터 들을 잡고 던전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플레이어. 헌터. 각성자.
대한민국에서 판타지 소설 꽤 읽어봤다고 하는 사람들한테는 익숙할 만한 단어들.
플레이어라는 명칭보다는 각성자나 헌터처럼 좀 더 진중한 쪽이 낫다는 의견도 많았는데, 정부 쪽에서 ‘라 엘타’의 세상이 게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플레이어’로 결정해버렸다고 한다.
사실 그 이유보다는 많은 이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하듯 적극적으로 퀘스트를 깨도록 유도할 목적인 듯하지만.
강한 플레이어가 많을수록 세상이 안전해지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다만 국내의 경우, 이 상황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진짜 게임인 양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가 죽은 사람도 상당했다.
이런 류의 판타지 소설에 익숙한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들은 신난다고 퀘스트에 뛰어들었다나 어쨌다나.
‘라 엘타 퀘스트’는 난이도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너도나도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처럼 히든피스를 찾아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보겠다며 최고 난이도인 10을 선택했고.
그 대부분이 단 한 개의 퀘스트도 깨지 못한 채 죽었다.
뭐, 그만큼 살아남은 수도 꽤 많았기에 한국은 현재까지도 유독 상위권 플레이어들을 많이 보유한 나라에 속하는 거겠지만.
지난 몇 년간 신나게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녔더니 이런 기초적인 정보는 달달 외울 정도.
줄곧 내 업무는 인터넷을 하고 TV를 보는 게 전부였으니까.
무슨 일을 하면 TV와 인터넷을 보는 게 주 업무냐고?
나는 백수다.
***
숨겨 뭐하랴.
나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식물인간 상태였다.
나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아주 평범한 가정의 아주 평범한 둘째 아들이었다.
불운한 사연을 가득 담고 있거나 가난에 시달리는 집안도 아니었고.
부유한 집의 자식도 아니었던 아주 평범한 집안의 아주 평범한 사람.
갓 스물이 되자마자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나는 대학을 가는 대신 돈을 벌기 위해 사회로 뛰어 들어갔다.
대학도 다니지 않았고 군필도 아닌, 이력서에 이력 한 줄 없는 사람을 반겨주는 회사는 없을뿐더러 어차피 입대 전까지 돈을 모을 목적이었기에 아르바이트를 선택했다.
알바라도 하면 제대 후에 이력서에 뭐라도 하나 추가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카페, PC방, 레스토랑 등등.
다양한 아르바이트 중에서 야간 편의점 알바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첫 번째는 개중에 시급이 괜찮았다는 이유이며.
두 번째자 진짜 이유는, 고작 알바라도 알바 이력 없다고 다 까이고 남은 게 그것이었기 때문.
아니, 회사도 아니고 복지가 좋은 것도, 월급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닌데 이력을 요구하다니.
사회 초년생은 사회생활을 어디서 시작하라고?
저녁 타임 알바와 교대를 한 직후엔, 늦은 시간임에도 회사원들이 많이 찾아왔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회사원.
오늘도 야근했다며, 곧 퇴근할 거라고 전화를 하며 담배 한 갑을 사가는 회사원.
회식을 마치고 술에 절어 숙취 음료를 사가는 회사원.
온갖 중소기업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리의 편의점이라서 그런지 야근과 회식에 괴로워하는 회사원들을 매일같이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부럽다.
야근해도 좋으니까 회사원인 편이 야간 편의점 알바보다는 나을 텐데.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던 그때, 어김없이 그것이 찾아왔다.
그것.
다른 말로, 진상.
술에 취해 들어왔다가 편의점 구석에 토하고 가는 진상.
컵라면을 먹고 쓰레기통에 버리나 싶더니 쓰레기통 앞에 국물 다 쏟아놓고 도망친 진상.
왜 이렇게 물건이 비싸냐며 5천 원어치 도시락을 집고 천 원만 받아가라며 화를 내는 진상.
평범한 회사원 손님과 진상 손님은 정말 한 끗 차이였다.
저쪽 건물에서 갑질을 당하던 회사원들은 이쪽 건물에선 진상이 되어 갑질을 하곤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술에 잔뜩 취한 진상이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고래고래 떠들고 욕을 해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진상을 겨우겨우 떼어내려 개고생하고 돌아왔더니, 그사이에 들어온 손님은 몇 분을 기다렸다며 화를 냈다.
정말 거지 같은 인생.
알바를 갓 시작했을 때만 해도 드디어 나도 수입처가 생겼다며 즐거워했었는데.
미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할 수도 있겠다고 좋아했었다.
일을 끝내고 집에 오면 빨리 자고, 일찍 일어나 자격증 공부라도 하자.
영어나 중국어도 배워볼까?
하루 10시간씩 일을 하고 6시간 잠을 자면, 씻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대여섯 시간은 미래의 취업을 위해 할애할 수 있을 거야.
개뿔.
현실에는 미래의 ‘미’ 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만 하고 돌아오면 침대에 드러누웠다.
힘들었다고.
이 정도는 쉬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며 잠에 든다.
일어나서는 열심히 일했으니 보상이 필요하다며 컴퓨터 게임을 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 알바를 갈 시간이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면 또 진전없는 나날이 반복될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쉬어야겠다며 드러누워 폰 게임이나 할 뿐이다.
아, 정말 거지 같은 인생.
이렇게 한탄하고 욕하면서도 집에 가서는 결국 대충 씻고 손에 책을 드는 대신 핸드폰이나 노트북 마우스를 잡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무기력한 삶의 원인은 나인가, 아니면 이 세상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알바 시간이 끝나고, 또 그렇게 어영부영 하루가 끝나버렸다.
남들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에 그렇게 내 하루는 끝나곤 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의미 없이 폰 화면만 바라보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뀐 것을 슬쩍 확인하고 건넜다.
그리고, 그대로.
변하는 신호에 멈추지 않고 달려오던 차에 치였다.
무언가가 자신을 쳤다고 깨달은 순간 이미 몸은 공중에 떠 있었던 것 같다.
고통보다는 차에 치였다는 자각이 먼저 찾아왔다.
그 순간 머릿속에 든 생각은, 어이없게도 자신을 친 차가 버스인지 트럭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소설 같은 데서 보면 보통 버스나 트럭에 치이면 차원 이동 같은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생각하면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를 친 차는 평범한 승용차였다.
***
나를 치고 간 차종과 관계없이 차원 이동이나 판타지적인 요소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처음 보는 세상이었으니까.
심지어 입고 있던 옷도 차에 치이기 전까지 입고 있던 청바지에 흰 티가 아닌 가죽 옷이었다.
판타지 영화나 게임에서나 볼 법한 허접한 가죽옷.
순간 게임 속으로 들어왔나 라는 생각과 함께 지푸라기나 풀로 만든 옷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같은 현실감 없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당황했고,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차차 그곳에 익숙해져 갔다.
처음 20년은 검술을 연마하고 수련을 했다.
그쪽에 재능이 있었는지 빠르게 강해졌다. 일정한 경지에 오르자 신체의 노화도 멈춰 그 후로도 내 모습은 30대 후반의 그 모습을 유지했다.
그다음 10년은 전쟁에 참전해 나름 전쟁 영웅이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고.
그 후 10년은 처음 눈을 떴던 그 마을에서 큰 저택을 사, 그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대부분 수련을 하거나, 지구로 돌아가는 방법은 없나 알아보기도 하면서.
마지막 10년 동안은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몬스터들을 토벌했다.
그리고 흔한 판타지 소설의 귀환자처럼 그곳의 그 누구보다도 강해졌지.
여전히 지구로 돌아가는 방법은 알 수 없었지만.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처럼 여관 침대에 홀로 누웠다.
외로웠다.
어쩐지 갑자기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판타지 소설 같은 것을 보며 이런 삶을 꿈꿨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몇십 년 만에 이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평범했던 삶의 소중함을 왜 알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줄곧 볼 수 없었던 가족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잠이 들어, 눈을 떴을 때.
그렇게 이세계로 전송되고 50년이 지난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듯 지구로 돌아와 있었다.
< 프롤로그, 1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