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00)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00화(100/180)
< 100화 >
“플루프 꼬리를 우린 차입니다.”
그러니까 플루프가 뭔데?
작은 마족 하나가 오묘한 색의 차와 케이크처럼 생긴 무언가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임시 마왕은 그 마족이 방 밖을 빠져나가자마자 입을 열었다.
“인간이 마왕이 되다니, 역사에도 기록된 적 없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내가 마왕이 된 건 어떻게 안 거지?”
다른 마족들은 가면 벗은 얼굴을 봐야 알아채던데.
어차피 마왕인 거 다 들킨 마당에, 갑갑한 가면은 벗어버렸다.
“마왕만이 가질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아직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는 만들지 못한 모양이군.”
그래서 내 타이틀이 마왕 (임시) 인 건가?
시스템적으로 조건을 달성하거나 특정 퀘스트를 해야 정식 마왕이 되는 식인가보지.
마왕 될 생각은 없으니 나랑 상관없는 일이지만.
“어서 차를 들게. 지구와 마계에 공통점이 생긴 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니.”
임시 마왕을 만나면 바로 날려버리고 형의 행방을 물으려 했는데. 마계 플레이어라는 사실에 신경 쓰다 얼떨결에 방까지 안내돼서 같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 자식이 ‘지구’라고 정확하게 언급했다는 건 저쪽도 어느 정도 상황은 알고 있다는 뜻이겠지.
지구의 정보를 모으는 방법이 있는 걸까, 아니면 지구와 마계를 왕래할 수 있는 걸까.
“지구 플레이어여. 내 이름은…”
“됐어. 서로 자기소개나 하자고 만난 게 아니잖아.”
무슨 퀘스트를 진행 중인지 확실하지 않으니까 이쪽 물어볼 것만 물어보고 빠져야지.
플루픈지 플루튼지 몸통은 찜으로 만들고 꼬리는 차로 우리는 마수 차나 마시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여기 동쪽 성으로 형을 부른 게 너냐?”
“형? 마왕의 힘을 받아들인 인간 껍데기를 형이라 부르는 건가.”
받아들이기는 개뿔.
그쪽 마왕께서 무단침입한 겁니다만?
양심이 있으면 남의 형을 껍데기 취급하지 말고 꺼져주지 그래?
“내가 그를 이곳으로 부른 것이 맞다.”
“왜.”
“그가 있어야 할 자리는 이곳이니까.”
있어야 할 자리는 무슨. 보나 마나 퀘스트겠지.
그런 대단한 마왕이라는 사람이 왜 지구의 던전에 몸통도 없이 힘만 흩어져 널브러져 있었냐.
“그동안 진행한 퀘스트는 어떤 것들이지?”
“알고 있는 대로다.”
“내가 뭘 알고 있는 줄 알고.”
“너무 많은 것을 알아가려 하지 않는가, 인간이여.”
“……”
대답 없이 조용히 임시 마왕을 노려보았다.
임시 마왕 놈은 느긋해 보이는 표정으로 마주 볼 뿐이었지만. 곧 백기를 들고 입을 열었다.
“흑마법사 집단, ‘어둠’을 만들었다. 그들이 행한 모든 것. 땅을 오염시키고 마기가 깃든 수정을 퍼뜨리고. 라 엘타에 혼란을 가져오는 그 모든 일이 내 명령에서부터 시작됐지.”
아주 자랑스럽다는 표정이다.
결국 우리 쪽에서 막아내서 ‘어둠’도 잃고 하던 일도 다 헛수고가 되었을 텐데 뭐가 저렇게 뿌듯한 거지.
“이 모든 것은 마왕의 부활을 위하여.”
아, 그런 거였나.
땅을 오염시키고 마기를 퍼뜨리는 퀘스트의 목적을 알 거 같다.
마왕의 힘을 깊은 잠에서 깨우려고 한 거였다거나. 형처럼 마기를 받아들이기 적합한 몸을 찾는 과정이었거나.
뭐, 대충 그런 거였겠지.
결론적으로 마왕을 반쯤은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으니. 중간에 방해를 받았다고 해도 뿌듯해할 만하네.
내가 마지막까지 방해할 거니까 성공은 못 하겠지만.
“플레이어씩이나 되어서 직접 마왕이 될 생각은 안 해본 건가?”
“마왕의 부활, 그것이 나의 최종 목표이니.”
“웃기고 있네.”
피식 웃어줬더니 여유롭던 임시 마왕의 표정이 구겨졌다.
저쪽이 좀 더 사악해 보이고 마족다워서 잘 어울리네.
임시지만 마왕인 주제에 인자한 척하는 건 솔직히 좀 어이없었거든.
“그게 네 목표인 거처럼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거잖아. 어차피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면서.”
“하하하.”
재미있냐?
동쪽의 임시 마왕이 뭐를 위해서 다른 마족이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그 자리에 앉아 ‘임시’라는 타이틀까지 달고 이전 마왕을 기다리나 궁금했는데.
고작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일 뿐이었다니.
허무하기 짝이 없군.
“마계 플레이어는 너 하나뿐이야?”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가?”
“전혀.”
일단 지구 플레이어의 수도 한둘이 아닌데.
아무리 마계 플레이어는 시작부터 남달랐다고 해도, 고작 한 놈을 상대하라고 그 많은 지구 플레이어들을 뽑아냈을 거 같진 않다.
그리고 태현오 놈이 마계 플레이어인 시점에서 이미 마계 플레이어는 이놈 혼자가 아니라는 말이 되지.
임시 마왕 그리고 태현오. 최소 둘이네.
그렇다고 그 수가 많은 것 같지도 않다.
순전히 감일 뿐이지만.
“다른 마계 플레이어가 있다 하더라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몇 명이야? 다섯 명? 열 명? 스무 명?”
“나는 모른다.”
“서로에 대해서 알고 있어?”
“나는 알지 못한다.”
“퀘스트를 같이 깨기도 해?”
“나는 아는 것이 없다.”
“혹시 태현오라는 이름은 아냐?”
“나는 이 주제에 관하여 무지하다.”
다른 마계 플레이어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정보를 탈탈 털어주려고 했는데.
임시 마왕 놈은 도움 될만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그래? 그러면 허수아비 놀이는 여기서 끝내자.”
“허수아비?”
“남의 형한테 껍데기 운운하지 말고 네 껍데기나 벗어던지고 본 모습을 보이라고.”
“무슨 말인가.”
이 임시 마족 놈에게 특별한 건 없었지만.
연기력 하나만큼은 칭찬해줘야겠네.
처음 봤을 때부터 의심하긴 했는데. 대화하면서 확신했다.
모르는 척하는 마왕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문을 열었다.
프뭐시기 차를 갖다 준 동글동글한 인상의 마족이 문 앞에 서 있었다.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마족은 방긋 미소지었다.
“너냐?”
“네?”
“너구나.”
이쪽도 마주 웃어주며 오른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내밀었다.
케이크…처럼 생긴 무언가와 같이 갖다 준 포크.
물론 그 음식은 먹지 않았으니까 원래의 용도로 사용되지는 않은 포크다.
대신 검처럼 휘둘러졌지만.
“으악!”
마족은 바보 같은 비명을 지르기는 했지만 피했다.
스쳤으니까 완벽한 회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저 정도면 훌륭하네.
“머, 뭐 하는 짓입니까! 일개 하인인 저를…”
마족 놈은 뻔뻔하게 피가 흐르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헛소리를 해댔다.
일개 하인은 무슨.
“포크라고 만만하게 보이나 본데. 일개 하인은 그거 못 피해.”
마왕 성에 있는 식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귀여운 포크지만. 내가 들면 충분히 멋진 검이라고.
마족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고한 하인 연기를 이어갔지만. 상처에서 피와 함께 짙은 마기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속이려고 해도 몸 안쪽까지는 속일 수 없었나 보네.
내가 속기는커녕, 자신의 정체를 확신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자칭 일개 하인이 불쌍한 척 웅크리고 있던 몸을 곧게 폈다.
동시에 방 안에 우두커니 서 있던 임시 마왕… 정확하게는 임시 마왕 껍데기가 풀썩 쓰러졌다.
역시 이쪽이 진짜 마계 플레이어인가.
“어떻게 알았지?”
“뭐를? 저 뒤에 있는 임시 마왕이 허수아비라는 거? 저 껍데기 뒤에 숨어서 말을 전하는 놈은 따로 있다는 거? 그게 너라는 거?”
“……전부 다.”
“어떻게 알긴.”
대답을 해주는 대신 포크 어택을 날렸다.
‘콰과강-!!’
“포크에 맞은 벽이 왜 무너지는 거냐고!”
약해서 답답한 건 알겠는데 왜 벽한테 화풀이냐.
벽이 포크에 맞으면 좀 무너질 수도 있지.
절규하는 자칭 일개 하인을 기다려주지 않고 한 번 더 공격했다.
‘콰앙!’
벽이 부서지면서 마왕 성의 한쪽 면이 뚫리고, 그 위로 돌무더기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크흑…”
마족은 곳곳에서 피를 흘리며 주저앉았다.
안 죽을 정도로 조절했으니까 엄살피우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은폐는… 완벽했을 텐데…”
“완벽하지 않으니까 걸린 거잖아.”
마족은 분하다는 듯 나를 노려봤다.
노려봐 봤자 할 수 있는 건 없겠지만.
“어차피 임시 마왕과 나의 대립 구조를 만들어서 긴장감을 조정한 후에. 싸움에 휩쓸린 선량한 피해자 마족인 척 내게 도움을 요청하며 호감을 살 생각이었겠지.”
마족한테 선량하다는 단어가 어울리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렇게 슬쩍 우리 일행에 끼어들어, 내부에서 혼란을 주며 서서히 갉아먹고. 나중에 대단한 등장이라도 하는 것처럼 ‘사실 내가 너의 진정한 적이다!’라고 외쳐서 물리적 피해는 물론 정신적 충격을 줄 생각이었겠지!”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말이다!!!”
마왕은 고통에 괴로워하면서도 분노는 터뜨려야 했는지.
크게 외치며 달려들어 공격해왔다.
‘쿠콰앙-!’
“끄아악!!”
반격 한방에 나가떨어졌지만.
저 정도면 분노와 함께 상처가 같이 터졌겠는데?
심지어 벽으로 내던졌더니 벽과 천장이 같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
“크흑…”
관심 없는 척하지만 궁금해하는 거 다 티 난다.
“그 정도는 말이지. 대한민국에서 십몇 년만 살아도 다 알아.”
“……뭐?”
이 계획을 세워놓고 참신하다며 좋아했을 텐데 어쩌지.
“우린 그런걸 클리셰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마족을 향해 포크 찌르기를 시전했다.
“우리 형 내놔!!”
***
“여긴 정말 베라포드와 똑같네.”
“하지만 베라포드와는 달리 위화감이 든다. 마음에 안 드는 곳이다.”
라마는 태현오와 함께 큰길 위주를 돌아다니며 이성현을 찾아다녔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골목이나 숨겨진 길을 찾아보는 게 정석이지만. 라마는 처음 방문하는 마계를 구경하느라 바빴다.
라마는 길거리에서 산 무슨 고기인지 알 수 없는 꼬치구이를 먹으며 두리번거렸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거 같다.”
“꼭 그렇지만도 않은 거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냐.”
태현오는 무덤덤하게 골목 한구석을 가리켰다.
“아까부터 성현이처럼 생긴 마족이 주변에 있었거든.”
“뭣!”
꼬치구이 먹을 때가 아니었잖아.
라마는 두 눈을 크게 뜨고 태현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진짜다.
뿔과 날개가 달린 이성현이다.
마왕한테 몸 빼앗긴 성현 인간이다!
라마가 다가가려고 했지만 태현오가 어깨를 잡아 말렸다.
“또 배가 뚫리고 싶은 거야? 저건 분명 함정이니까 가까이 가지 마.”
“진짜 성현 인간이면 어떡하려고!”
“저게 진짜 성현이라면 더더욱 함정이겠지. 아까부터 보란 듯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우리를 유인하려는 게 분명해.”
라마도 말귀를 알아듣고 멈춰 섰다.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이쪽에서 발견한 걸 눈치챘으면 공격하거나 도망가야지.
어서 오라고 서서 기다리고 있진 않을 거 같았다.
그 사이에 이성현의 모습을 한 미끼는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진짜 성현 인간은 맞는 거 같다. 나는 알 수 있다.”
“성현이가 이쪽에 있다면 성한이를 데리고 와야겠네.”
“연락 수단이 없는데 어떻게?”
“글쎄. 마왕 성으로 찾아가야 할까?”
“그 사이에 마왕 성 밖으로 나왔다면 어떡하려고. 성한 인간이 마왕 성안에 있다고 해도 정확한 위치를 찾기는 힘들 거다.”
‘콰앙-!!!’
“아.”
라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성의 한쪽 벽이 터지듯 뜯겨나갔다.
“저기 있네.”
< 10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