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01)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01화(101/180)
< 101화 >
지구 플레이어 평균보다 강한 힘을 가진 마계 플레이어를 밧줄로 묶는 것이 소용 있을까.
정답은 ‘아니오’다.
마계 플레이어라면 밧줄이 아니라 쇠를 감아놔도 금방 풀어낼 수 있겠지.
그렇다면 왜 이 마계 플레이어 놈을 묶어놓았느냐.
그건, 그저 심문하는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다.
“빨리 우리 형 내놔.”
“고작 마기에 물들 정도로 약한 인간을 너무 열정적으로 찾는 거 아닌가? 나라면 더는 찾지 않고 버리겠어.”
저래 보여도 나름 지구에서는 제일 강한 거로 알려진 사람이라고.
내가 생각해도 터무니없이 쉽게 당해버리기는 했다만.
그건 형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상성의 문제라고 하자.
능력 자체가 마기를 온몸으로 포용하는 거라는데 어떡하겠어.
“됐고. 좋게 말할 때 끝내자. 우리 형 어디 있어.”
“좋아. 솔직하게 말하자면, 마왕이 된 그 인간은 나와 전혀 관계가 없다.”
“무슨 소리야. 언제는 마왕 부활이 목표라고 했잖아.”
“마왕을 부활시키려던 건 사실이지만 그자는 얻어걸린 것뿐. 내가 진행하던 퀘스트는 다른 방식으로 마왕을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원래 퀘스트가 가이드를 제시하지 길까지 터주는 게 아니긴 하지.
마계 퀘스트라고 해서 라 엘타 퀘스트 보다 친절하게 육하원칙을 지켜가며 ‘지구의 이성현이란 이름의 플레이어가 마기를 받아들이기 좋은 몸을 갖고 있으니 가서 물들여 마왕으로 만들어라.’고 하진 않을 거다.
아마 형이 얻어걸린 마왕이라는 건 사실일 거다.
“애초에 인간의 몸으로 마왕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내가 봐온 인간은 그 정도로 튼튼하지 않았는데.”
언제는 형 보고 고작 마기에 물들 정도로 약한 인간이라더니.
이제는 인간은 튼튼하지 못해서 마왕의 힘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고.
그래서 지금 우리 형이 마왕이 됐다고 무시하는 거야, 아니면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거야?
“결론은, 그 인간이 마기에 물든 것부터 마계에 오는 것까지. 어느 하나 내가 유도한 것은 없다는 거야.”
그렇고 보니 그렇네.
마기 담긴 수정을 뿌린 건 이놈이었지만, 수정을 형의 인벤토리에 넣은 것은 나.
마왕의 힘이 잠들어 있는 던전에 형을 데리고 간 것도 나.
있지도 않은 마계로 가는 길을 만들어서 형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도 나.
이 모든 게 누군가가 꾸민 음모라면, 나 말고는 용의자가 없긴 하다.
“마왕이 지구 플레이어 하나의 몸을 차지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상황에 끼워 맞춰 행동한 것뿐이야.”
“그건 또 어떻게 알았는데?”
“마계에 내 눈이 닿지 않은 곳은 없지. 이곳에 도착한 순간부터 너희를 지켜보고 있었어.”
즉, 스토커라는 거군.
“진짜 마왕을 이 자리에 앉히려고 임시 마왕을 세워놓고 기다렸다는 건 사실이야?”
“그래. 그게 퀘스트가 제시한 길이니까.”
생각보다 입이 가볍네.
그동안 해온 일들을 털어놓을 곳이 없었는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눈앞에 있으니까 신이 난 거 같기도 하고.
“원래 부활시키려고 한 진짜 마왕은 어디 있는데?”
“그건 나도 모르지. 부활을 진행하던 와중에 퀘스트에 실패했으니까.”
마계 플레이어는 퀘스트에 실패해도 죽지 않는 건가.
“네 놈의 형이라는 그 인간 속에 있는 것이 진짜 마왕일 가능성도 크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도 있지.
마계 시스템이 태현오한테 형을 동쪽 마왕으로 만들라고 시킨 것도 그렇고.
그 마왕 놈이 몸을 차지하자마자 이쪽으로 날아온 것도 그렇고.
확실한 것은. 무조건 형을 이 자리에 앉혀선 안 된다는 거다.
시스템까지 형을 마왕으로 인정해버려서 돌이킬 수 없게 되면 어떡해.
“그럼 형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거지?”
“몰라.”
“쓸모가 없다는 뜻이네.”
“나를 죽이려는 거야?”
신나게 나불대던 마계 플레이어가 조금은 긴장한 듯 눈치를 봤다.
그래도 아직 도망가지 않은 건, 어차피 도망칠 시도를 해봤자 쓸모없다는 걸 알아서 그런 거겠지.
물론 죽이진 않을 거다. 마계 플레이어에 대해 좀 더 알아내야 하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어떡한다.
무작정 나가서 형을 찾아봐야 하나.
“인간! 임시 마왕은 벌써 잡은 건가!”
“어? 라마.”
라마와 태현오를 어떻게 찾아내서 만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둘이 먼저 찾아왔다.
그것도 입구로 당당하게 입장해서.
“어떻게 들어온 거야? 경비 있지 않았어?”
“그냥 들여보내 주던데?”
이렇게까지 출입이 자유로울 거면 경비가 있는 이유가 있나?
“마침 잘 왔다. 태현오, 저거 봐봐.”
“저거? 저 마족?”
“그래. 저놈이 마계 플레이어야. 딱 봤을 때 아, 얘는 마계 플레이어구나. 하는 뭔가가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보면 다른 마족하고 다른 무언가가 느껴지는 게 있냐고.”
“잘 모르겠는데?”
같은 마계 플레이어끼리는 서로 알아볼 수 있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꽝이었네.
“그런데 그건 왜?”
“그런 기능이 있으면 지나다니다 마계 플레이어가 보이면 골라낼 수 있잖아.”
“하하, 마계 플레이어를 길 가다 동전 발견하듯 주워보려고 하는 거야?”
일단 마계 플레이어 놈은 조금 더 가둬놓고 감시하기로 했다.
형 문제부터 해결하고 시간 나면 좀 더 알아봐야지.
이로써 동쪽 마왕 성도 내가 먹었네.
나름 임시 마왕도 처리하긴 했는데. 마왕이 됐다는 시스템 창이 안 뜬 거로 봐서는 다른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 건가.
아니면 마왕이 됐지만 시스템 창만 안 뜬 걸까.
이 시스템이라는 게 제멋대로니까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네.
마왕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니까 상관없지만.
“근데 형은 안 찾고 여긴 왜 왔어?”
“그거 때문에 온 거야. 성현이를 발견했다.”
“정말? 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
“우리 뒤를 쫓아오는 게 아무래도 함정 같아서, 네가 직접 가보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도 이 둘에게 맡기는 것보다 내가 직접 해결하는 게 나을 거 같다.
“태현오 넌 여기서 저놈 좀 지키고 있어. 라마는 나랑 같이 가자.”
“나도 가는 건가. 너 혼자 가도 되지 않나.”
“마지막으로 형을 발견한 곳은 안내해줘야지. 빨리 따라와.”
별로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감시역으로 태현오를 두고 라마와 함께 성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정말, 이 잡듯이 도시를 뒤졌다.
형은커녕 형 비슷하게 생긴 마족도 안 보였다.
“이 마을을 날려버리면… 형도 금방 찾을 수 있을 텐데.”
“이 마을을 날려버리면 너네 형도 같이 말려들 거다.”
“생명체는 해가 가지 않게 놔두고 건물만 날려버리면……”
“너는 마왕이라는 이름이 참 잘 어울리는 인간이다.”
라마가 형을 감지하는 것도, 방향 정도만 가늠하는 거지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어서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삼십 분쯤 더 돌아다녔을까.
확실히. 누군가가.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그것도 익숙한 누군가가.
형이다. 아니, 함정인가?
무슨 이유로 먼저 나서서 따라오는 건지. 어떤 함정을 파놓고 유인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만.
그건 이쪽에서 먼저 물어보면 그만이지.
형한테는 미안하지만, 몸 안에 있는 마왕 놈께서 적대적인 관계로, 한 대만 쳐서 기절시켜주겠어.
형의 가까이 다가왔을 때,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몸을 틀어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어?”
‘쾅!’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뛴 건 형도, 마왕도 아니고 라마였다.
“뭐 하는 짓이냐!”
“아. 미안, 미안.”
형을 공격하려다가 몸을 틀었더니 옆에 있는 라마가 맞을 뻔했다.
안 맞았지만.
“미쳤는가? 왜 나를 공격하는 거냐!”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라마가 펄펄 날뛰는 사이, 바로 옆까지 다가온 형이 몸을 휘청이며 쓰러졌다.
“맞을 뻔한 건 난데 성현 인간이 왜 쓰러진 거지!”
“바꼈네.”
“뭐가?”
“마왕에서 형으로 돌아왔다고.”
날개도 뿔도 없는 인간 이성현의 모습이다.
마기도 거의 느껴지지 않고.
“아까 봤을 때도 이 모습이었어?”
“그때는 마왕의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를 유인하다가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처음부터 유인하고 있었던 게 아닌 거 같은데.”
“그러면?”
“아무래도 이 싸움. 우리 형이 이긴 거 같다.”
라마는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즉, 형의 몸을 차지하려는 자리싸움에 마왕 놈이 이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승자는 형이었다는 거지.
확실한 건 형이 일어나면 물어보고 확인해야겠지만.
형이 라마와 태현오를 따라다닌 건 유인하거나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마왕의 기운을 누르고 몸을 되찾는 과정에서 두 사람을 찾아 나선 게 아닌가 싶다.
태현오 말대로 몸을 마계에 적응시킨 게 정답이었나.
형도 되찾고, 마계 플레이어도 잡고. 일석이조네.
설명은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형을 데리고 마왕 성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일석이조의 두 마리 새 중 한 마리를 담당하고 있는 마계 플레이어 놈이 없었다.
태현오 혼자 자리에 앉아있었을 뿐.
“성현이 되찾아 온 거야? 다시 인간의 모습이 됐네. 수고했다.”
“마계 플레이어는?”
“놓쳤어.”
뭐? 그게 저렇게 담백하고 간단하게 말할 내용인가?
“놓쳐? 그런 거치고는 싸운 흔적이 전혀 없는데? 너는 두 눈 뜨고 뭘 하고 있었길래 그걸 놓치냐.”
“실은 내가 그냥 놓아줬어.”
뭐라고? 이 자식은 뭘 잘했다고 저렇게 당당한 거지.
“좀 더 알아보니까 마계 플레이어들은 서로 접점이 있는 거 같더라고. 지구 플레이어처럼 퀘스트가 다양하지 않고 목표가 같으니까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야.”
그래서 뭐. 너도 마계 플레이어니까 시스템적으로 이 자식은 놓아줘야겠다, 싶어서 놔줬다는 거야, 뭐야.
그럴 거면 같이 따라가지 왜 여기 죽치고 앉아있냐.
“즉, 서로에 대해 알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연락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태현오가 눈앞에 핸드폰을 불쑥 내밀었다.
화면에는 지도처럼 생긴 이미지에 빨간 점 하나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게 뭐야.”
“그 마계 플레이어가 도망치기 전에 선물을 하나 줬지.”
“선물이라는 게 위치추적 앱이야?”
“정확하게는 핸드폰을 준 거지.”
“그 폰은 어디서 났는데.”
“실은 성현이가 우리를 따라다닐 때 흘리고 간 걸 내가 주웠거든. 선물로 그 마족 아이 주머니에 넣어놨다.”
스스로의 업적이 자랑스럽다는 듯 뺀질뺀질한 미소를 짓는 태현오.
“다 좋은데 왜 남의 휴대폰을 멋대로 다른 놈한테 주고 그러냐.”
“앱이 깔려있는 건 성현이 핸드폰밖에 없잖아.”
웃기고 있네. 네 폰에도 깔려있는 거 다 알아.
줄 거면 니 껄 주고 형 거를 갖고 있었어야지.
“그러면 성현 인간이 정신 차리면 마계 플레이어를 찾으러 가는 건가.”
“아마 이 마족은 하루 이틀 정도 경계를 하다 안전하다고 확신할 때 다른 마계 플레이어와 접촉할 거야. 그때 뒤를 쫓으면 다른 마계 플레이어도 잡아낼 수 있겠지.”
“그렇군. 그전까지는 어디로 향했는지 미리 파악해놓으면 좋을 거 같다.”
라마와 태현오가 마계 플레이어 추적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쩌지.
“둘 다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응?”
“착각?”
“우리는 형을 찾으러 온 거지 마계 플레이어를 잡으러 온 게 아니거든.”
“응?”
“그렇기는 하지만…”
“형이 깨어나면 상태를 보고, 마왕을 확실히 제압한 게 맞다면 바로 지구로 돌아간다.”
“정말인가!”
“마계 플레이어는 안 잡을 거야?”
마계 플레이어는 내 알 바 아니지.
눈앞에 있었다면 심문이라도 해보겠는데. 굳이 귀찮게 추격하고 찾아낼 의지까지는 없다고.
즉.
괜한 핸드폰만 날렸다는 거다.
< 101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