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15)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15화(115/180)
< 115화 >
“까망아, 파!”
“컹!”
털실뭉치가 숨기 전에 까망이가 먼저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아악! 아팡, 아프당!”
덕분에 땅속에 있던 털실뭉치는 봉변을 당했고, 처참하게 파헤쳐지기 전에 내가 건져냈다.
“오랜만이다?”
“누, 누구세용. 처음 보는뎅.”
데롱데롱 붙들려서 딴청 피우는 털실뭉치.
그러거나 말거나 털실뭉치를 손에 들고 털실을 잡아당겼다.
“으악, 뭐 하는 짓이냥!”
“다시 만나면 꼭 한번 풀어보고 싶었거든. 원래 엉킨 털실은 풀어줘야지.”
“당장 그만둬랑! 그때도 말했지만 나는 엉킨 털실이 아니라 안내자당! 나를 죽일 셈이냥!”
“이전에 만난 적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냐.”
“뜨끔!”
‘뜨끔’을 말로 하는 건 살면서 처음 봤다.
“에잇, 빈틈!”
털실뭉치가 내 손을 탁, 내리치고는 공중에서 핑그르르 돌아 완벽하게 착지했다.
까망이 주둥이에.
“아악! 헬하운드에게 잡아먹힌당!”
“컹!”
이건 또 무슨 꽁트냐.
캐치볼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지, 까망이는 물고 있는 털실뭉치를 내게 내밀었다.
“어, 잘했어. 착하다, 착해.”
내 머리만 한 털실뭉치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물고 있는지 의문이다만. 일단은 침 범벅이 된 털실뭉치를 받아들고 까망이를 쓰다듬어줬다.
“컹!”
“이, 배은망덕한 헬하운드! 키워준 은혜도 몰라보다닝!”
키워준 은혜?
“우리 까망이를 알아?”
“헬하운드잖앙.”
“그러니까 아는 헬하운드냐고.”
“헬하운드는 원래 던전 마수당! 던전 안내자이자 관리자인 내가 모를 리 없징.”
털실뭉치가 가슴을 쫙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정확하게 가슴이 어느 부근인지는 모르겠는데, 앞판으로 추정되는 곳의 실이 팽팽하게 펴진 걸 보니 대충 그런 이미지다.
이거, 마플 잡으러 왔다가 까망이의 과거를 캐게 생겼는걸?
“컹.”
정작 까망이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제 좀 놔주랑. 아무것도 안 하고 얌전히 돌아갈겡.”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분홍. 우린 대화해야 할 게 있잖아?”
“그런 거 없당!”
“있당. 던전. 던전 마수. 헬하운드. 너는 할 말 없을지 몰라도 나는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거든. 던전은 바로 이 아래에 있는 거지? 안내해라, 안내자.”
“더, 던전이 이 아래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냥!”
“아까 등장하면서 던전을 전부 파낼 셈이냐고 화냈잖아.”
“그럴수강!”
털실뭉치는 사색이 되었다.
정확하게는, 분홍색의 털실이 연분홍색으로 변했다.
이거 재밌네. 그럼 화가 나서 얼굴 빨개지면 진한 분홍색이 되려나?
“안 된당! 내 던전! 또 부술 수는 없당!”
“안 부숴.”
“아직 보수도 안 끝났는뎅!”
“안 부순다고.”
바둥거리는 털실뭉치를 잘 구슬려 던전으로 안내받았다.
구슬리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
‘내가 찾아갈까, 아니면 네가 안내할래?’라고 질문 한번 던진 것만으로 설득 완료.
털실뭉치는 꺼이꺼이 우는 소리를 내면서 던전으로 안내했다.
“어서 와랑, 침입자는 처리했느야아앙! 악마다아앙!”
진짜 마계에 사는, 정체도 알 수 없는 자칭 던전 안내자한테 악마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거든.
“오랜만이다, 주황아.”
“으아앙! 악마가 말을 건당!”
주황이는 한동안 빽빽 소리를 지르더니 분홍이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배신자! 배신자당! 던전을 지켜야 하는 안내자가 던전 파괴자를 데려왔당!”
좀 전엔 악마라더니 이제는 던전 파괴자냐.
“오해양! 나도 붙들렸을 뿐이당. 던전 파괴자는 헬하운드를 조종하는 힘을 갖고 있당, 나도 물렸엉!”
“헬하운드를? 어떻게 인간이 던전 마수를… 역시 악마가 분명행! 끔찍하당!”
나는 너희 말투가 더 끔찍하당.
“던전 안 부술 테니까 대화나 좀 해보자.”
“못 믿겠당!”
“그러면 던전부터 부수고 시작할까?”
“죄송합니당. 믿겠습니당. 무슨 대화를 할까용.”
털실뭉치들이 어디서 의자를 가져왔다.
이 던전과 안 어울리게 딱 인간이 앉기 좋은 사이즈인데. 어디서 난거지.
“우리 까망이를 알아?”
“헬하운드잖앙.”
“헬하운드인 건 나도 알아. 아까 분홍이가 헬하운드는 던전 마수라고 했지. 던전 마수라는 게 뭐야?”
“던전 마수는 던전에 사는 마수징.”
지금 말장난하자는 건가.
“까망이가 이 던전에 사는 마수였어?”
“그럴지동.”
“그렇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확신할 순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인당. 몇 년 전에 우리 던전의 마수가 여러 마리 사라졌으니깡. 그중에 한 마리 아닐깡?”
마수가 사라져? 갑자기?
‘어둠’이 지구로 보낸 몬스터들이 라 엘타 몬스터가 아니라 마계 마수였던 걸까.
어쩐지 지구에 나타난 몬스터들 중에 유독 처음 보는 놈들이 많다 싶었는데. 마수여서 그랬구나.
나는 마수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니까.
“우리가 몇십 년간 힘들게 만든 마수들이 사라져서 엄청 고생했당. 그런데 던전 파괴자의 펫으로 자라고 있었다닝. 이건 수치당!”
고작 이 정도로 수치라니, 마수가 던전 파괴자의 펫일 수도 있지… 아니, 잠깐.
“마수를 만들어?”
“으잉? 몰랐냥? 던전 마수는 던전 관리자가 만드는 거당.”
“어미 헬하운드가 새끼 헬하운드를 낳는 게 아니라 너희가 만든다고?”
“그런뎅?”
“설마 너네가 시스템 관리자냐?”
분명 처음 만났을 때 이 던전은 ‘함정 퀘스트’같은 거라고 했지.
만약 이 털실뭉치들이 퀘스트도, 던전도, 마수도 만드는 거라면. 얘네가 시스템 그 자체 아니야?
“아닌뎅. 우린 던전 관리자당. 시스템이 뭐냥?”
아, 그래. 시스템 관리자치고 너무 허접해 보이긴 했어.
“너희들이 던전도 다 만드는 거 아니야? 마수만 만들어?”
“던전의 설계와 관리는 우리가 하지만 건축과 보수는 전문가에게 맡기는뎅?”
“아… 그래. 전문가.”
내가 생각하는 시스템의 이미지와는 한 걸음씩 더 멀어져가고 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냥.”
“그러면 퀘스트는?”
“그건 또 뭔강.”
“이 던전이 퀘스트라며. 지구 플레이어들이 퀘스트 하다가 특정 난이도를 선택하면 꽝 같이 발생하는, 라 엘타나 마계 퀘스트 중 하나 아니었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넹!”
“이 던전이 함정 퀘스트라고 했었잖아.”
“이 공간이 던전이라고 불리지만. 무작정 탐험하고 돌파하는 일반 던전이 아니랑, 특정 임무나 행동을 해야 하는 퀘스트 형식이라는 뜻이었는뎅.”
그게 뭐야.
그럼 이 털실뭉치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을 듣고 나 혼자 지레짐작하고 있었다는 거야?
이 던전이나 털실뭉치들은 시스템이랑 정말 아무 관련 없다는 거야?
털실뭉치들이 뭔가 심오한 걸 아는 척 말하길래 이 세상의 비밀 같은 무언가랑 관련 있는 줄 알았는데.
역시 꽝인가.
“이 던전 내가 한번 클리어 해봐도 돼?”
“30년 후에 다시 와랑.”
“30년? 왜 30년이야.”
“20년이면 보수 끝날 줄 알았는뎅. 전문가 왈, 앞으로 30년은 더 걸릴 거란당.”
적당히 부술걸.
“아, 던전은 됐어. 그럼 마계에 대해서 아는 거나 얘기해봐.”
“마계에 대해성?”
털실뭉치들은 아마도 고민하는 듯 보이더니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마계는… 엉… 마수가 산당.”
“던전도 있당.”
“던전 안내자도 있당.”
“그것이 바로 우리당!”
뭐라는 거야.
“누가 던전에 대해 말하래? 그 외에 바깥세상에 대해 말해보라고. 무슨 동서남북 마왕 성 기준으로 지역 나뉘어서 마족들이 살고 어쩌고. 그런 거 있을 거 아냐.”
“마족들이 산당.”
“동서남북으로 나누어져 있당.”
“마왕 성도 있당.”
“방금 내가 해준 말이잖아.”
생각보다 대화가 안 되는 놈들이었네.
계속 대화하고 있다간 정신 붕괴만 올 거 같다.
“하지만 말해주고 싶어도 실제로 아는 게 별로 없는뎅.”
“예전에 라 엘타와 마계가 이어져 있을 때는 밖에 자주 놀러 다녔는데. 교류가 끊기고는 던전 안에만 있었당.”
“아, 라마도 라 엘타와 마계가 연결된 통로가 있었다고 했었지. 몇백년 전인가 그때…”
“그때를 말하는 게 아니당. ‘두 세상이 하나였을 때’를 말하는 거당.”
두 세상이 하나였을 때?
저거 라마가 봤다는 동화책에 관한 내용이잖아.
“그거 그냥 전설이나 동화 같은 거 아니었어?”
“동화라닝. 엄연한 현실이당. 역사이자 과거당!”
“그래, 그래. 그거에 대해 좀 더 말 해봐.”
“그때 우리가 살던 던전 앞에는 커다란 강이 있었공…”
“그딴 거 말고.”
“그딴 거라닝!”
아무도 털실이 살던 던전 앞에 강이 있는지 바다가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아.
“라 엘타와 마계가 어떻게 원래는 하나였는지. 왜 두 개로 갈라졌는지. 왜 지금은 서로 교류가 없는지. 그런 이야기를 해보라고.”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물어봐랑!”
누가 봐도 내 질문은 그때의 즐거웠던 추억에 대해 말해달라는 게 아니잖아.
“라 엘타와 마계가 원래 하나였다가 두 개로 갈라졌다기보다는, 똑같이 생긴 두 개의 나라가 다른 장소에 있었다는 게 좀 더 정확행.”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마계의 특정 지역이 라 엘타를 따라 만들어진 곳이니까 가능하징!”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 특정 지역은 동쪽이고?”
“어떻게 알았냥? 보기보다 똑똑한뎅.”
놀리는 건가.
“라 엘타의 탐험가가 마계로 통하는 길을 뚫어놓고, 허허벌판이었던 동쪽 땅을 자기가 살던 곳처럼 꾸며놨다고 행. 그게 베라… 베라베리? 베라펄?”
“베라포드 아니야?”
“그런 비슷한 거당.”
그런 비슷한 게 아니라 그거 맞다.
“그 탐험가는 왜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한 건데?”
“번거로운 짓이라닝?”
“마계를 베라포드처럼 꾸며둔 거.”
“그거야 당연히 정착하기 위해서징!”
진심이냐. 마계에?
허허벌판이었다면 마족이나 마수와 마주칠 일도 없었겠지. 인간의 본능 상 새로운 땅을 발견했으니 한번 정착해보고 싶었을 수도 있고.
그런데 하필 마계에?
“우리는 그 근처에 던전을 짓고 살고 있었는뎅. 갑자기 인간들이 많이 몰려왔엉. 참 괜찮은 인간들이었징. 우리를 처음 보는 동물 취급하긴 했지만.”
그 사람들은 베라포드에서 온 사람들이겠지.
그리고 마계를 ‘익숙한 곳’처럼 느껴서 부담 갖지 않고 정착할 수 있도록 베라포드의 형태로 마을을 꾸몄던 것 같다.
“인간들이 말해줬는뎅, 인간들이 정착하고 몇백 년 정도는 베라포? 거기랑 똑같은 모습으로 발전했다고 그랬엉. 교류가 끊긴 이후로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보고 왔을 땐, 아직 베라포드의 흔적이 남아있긴 하지만 마계에 가까웠다.
“지금은 거기에 마족들만 살고 있던데, 그때 정착한 사람들은 마족들에게 몰살당한 건가?”
“아닝. 그 인간들이 다 마족이 된 건뎅?”
“응?”
“그때 정착한 인간들은 인간으로 와서 인간으로 죽었지만, 그 후손들은 점점 더 마족에 가깝게 태어났엉. 다른 곳에서 온 마족과 인간 사이의 자식들도 있었공.”
“마기에 노출된 기간이 길어지면서 인간도 결국 마족에 좀 더 가깝게 변했다는 건가…”
“그렇징. 애초에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하는 거양. 고작 수백 년 정도가 아니라공?”
고작 수백 년 정도가 아니다, 라.
최소 천 단위라는 건데. 그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그렇다는 건 그때부터 살아온 이 털실뭉치들은 얼마나 긴 세월을 살아왔다는 거야?
“엣헴. 드디어 우리의 위대함에 대해 조금은 깨닫게 되었다는 표정이구낭!”
아닌데. 그 긴 세월을 살고도 고작 털실뭉치 신세라니 안타까워하는 표정인데.
“그건 그렇다고 쳐. 그런데 왜 라 엘타랑 마계를 ‘하나였던 두 세상’이라고 부르는 거야?”
< 115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