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16)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16화(116/180)
< 116화 >
“몰랑.”
“몰라?”
“전혀 모른당.”
“모르는데 왜 그렇게 불러.”
“남들이 다 그렇게 부르길래 그렇게 부르는 건뎅.”
…말을 말자.
“마족들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 못행.”
“라 엘타에는 기록이라도 있던데. 그런 것도 없어?”
“없엉. 인간의 피가 섞였거나, 조상이 인간이었다는 건 마족한테 있어서 수치잖앙. 다른 지역 마족들에게 알리지 않으려고 숨겼겠징.”
“그래도 다른 지역 마족들이 이미 알고 소문을 퍼뜨렸거나…”
“마족들은 서로 교류도 안 행. 지금 남쪽 지역이 완전히 전멸했는뎅 아무도 모르잖앙.”
남쪽 지역은 왜 또 전멸했대?
“그래서 동쪽 지역의 마족들은 인간이 후손이라는 거지. 잘 알았어.”
“그 당시에는 동서남북으로 나누어져 있었던 게 아니어서 그때랑 지금은 지형이 다를텐뎅.”
“어떻게 다른데? 지도같은 건 없어?”
“지도는 없는뎅…”
털실뭉치들이 바닥에 슥슥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라마가 찾아낸 동화책에 있던 그림보다는 쓸만해 보이는 지도.
“이런 모양이었엉!”
털실뭉치가 그린 지도를 꼼꼼하게 살펴봤다.
라 엘타로 따지면 베라포드에서 황제성까지.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베라포드를 만들면서 예의상 황제성을 꼽사리 끼워준 느낌이지만.
생각보다 범위가 넓네.
마계 기준으로는 동쪽 전 지역과, 서쪽 끄트머리까지가 그 반경이다.
아마도 서쪽 마을 중에 퀘스트 보드가 있었던 그 마을인 거 같은데. 이건 나중에 확인해보도록 하고.
잠깐 생각을 정리해보자.
이걸로 조금 이해가 가긴 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인간미’ 넘치던 동쪽 지역의 마족들.
아주 인간과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인간이었을 때의 잔재가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일단은 알겠고.
범위 안에 있는 지역에서 퀘스트 보드가 발견된 것도 그렇고. 이게 퀘스트나 시스템과도 연관이 있는 거 같긴 한데 감이 잡힐 듯 말 듯 잘 안 잡히네.
“좋아. 나중에 제대로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은 돌아가 볼까.”
“가는 거냥!”
“드디어 가는 거구낭!”
옆에서 폭죽 터뜨리고 좋아하지 마.
괜히 심술 부려서 안 가고 눌러앉고 싶어지잖아.
의자에서 일어난 나를 털실뭉치들이 졸졸 따라왔지만, 아쉽게도 당장 갈 건 아니네요.
던전을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아냈다. 위험요소 없어 보이고, 나중에도 조형물이 추가되지 않을 거 같은 곳으로.
“뭐 하는 거냥.”
“보면 모르냐.”
“모르겠는뎅.”
“마법진 그리잖아.”
“무슨 마법진.”
“이동 마법진. 나중에 찾아오고 싶을 때 편하게 찾아와야지.”
“무머무엇! 또 안 와도 된당!”
털실뭉치들이 허둥지둥 마법진을 문질러 지우려고 했다.
미안한데, 이건 크레파스로 대충 그린 낙서가 아니거든. 마법진이거든.
그렇게 해도 안 지워진다고.
“안 와도 된당!”
“오지마랑!”
“오지마랑!”
“왜 또 오려고 그러냥!”
마법진이 멀쩡한 걸 보고 당황한 털실뭉치들이 방향을 바꿔서 오지 말라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람을 반겨주지 않으니. 서러워서라도 반드시 한 번쯤은 다시 와야겠네.”
“아니당! 반긴당! 와랑, 꼭 와랑.”
“반드시 다시 와랑.”
“그래. 다시 올게.”
“으잉?”
‘이게 아닌뎅’하고 쑥덕거리는 털실뭉치를 뒤로하고 마법진을 완성했다.
이렇게까지 뭔가가 있어 보이는 곳에는 다시 와야지, 안 올 수가 있나.
마플 놈을 찾아내고 뭐라도 알아낸 후에 와봐야 할 곳 1순위가 이곳이다.
“이 마법진 부수거나 지우려고 하지 말고 가만히 냅둬라.”
“노력은 하겠지망…”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공…”
열과 성을 다해 마법진을 부술 계획이구나.
어차피 안 부서지겠지만.
“던전 장소를 옮길 생각도 하지 마.”
“하지만 필요하며엉…”
“나한테 헬하운드 있는 거 알지? 너네 추적하는 건 일도 아니야.”
“안 돼앵…”
털실뭉치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역시 긴 세월 살아온 거 치고는 너무 하찮아.
시무룩해져서 바닥에 널부러진 털실뭉치들을 뒤로하고 라 엘타로 귀환했다.
돌아오자마자 오늘 크게 한 건 한 까망이를 쓰다듬어주며 칭찬했다.
“아주 잘 했어, 까망. 큰 건 했네.”
“컹!”
“뭐 먹고 싶어, 다 말해봐. 최고급 스테이크? 닭고기?”
“컹!”
“마음만으로 좋다고? 아이고, 예쁜 것.”
“끼잉…”
물론 농담이다.
까망이에게는 진수성찬을 차려주고 아직도 갇혀 있는 라마를 꺼내줬다.
“고서와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은 어때?”
“전혀 즐겁지 않다.”
라마는 잽싸게 탈출해서 다시 갇히기 전에 복도 끝까지 도망쳐버렸다.
“고서는 많이 읽었어?”
“……많이 읽었다.”
“거짓말하지 말고.”
“실은 반도 못 읽었다. 생각보다 양이 많고 책이 두껍다.”
“눈에 띄는 건 없었고?”
“없었다.”
저렇게 잔뜩 쌓여있는 고서를 반이나 털었는데 건진게 동화책 밖에 없다고?
라마의 말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라마의 판단력은 못 믿겠다.
이건 관계 없어 보인다고 휙 던져버린 책이, 사실은 이 세상과 관련된 중대한 비밀이나 역사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잖아.
나중에 시간 나면 고서들 전부 라 엘타 공용어로 번역해놓으라고 시켜야지.
“……어쩐지 끔찍한 눈빛이다.”
번역은 나중으로.
우선은 마플을 찾아내는 게 먼저다.
“우리가 놓친 마플, 좀 더 본격적으로 찾아봐야 할 거 같아.”
“지금까지는 본격적이지 않은 것이었나?”
“형 고유 능력에 관한 건 태현오가 알아서 하겠거니 싶었지.”
그래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봐 슬렁슬렁 마계까지 와서 찾아본 거긴 한데.
이젠 슬렁슬렁 찾을 때가 아닌 거 같거든.
그 마플을 찾아내서 알고 있는 걸 전부 털어내야 하니까.
“뭐라도 찾아낸 게 있는 건가.”
“응. 의심 가는 게 있기는 해.”
털실뭉치들과 만나서 알아낸 정보를 라마에게 공유했다.
“흥미롭군. 그런데 그게 성현 인간의 고유능력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아주 상관없지는 않아 보이는데?”
만약 레오가 동쪽의 마족이라면 계약 조건이 ‘인간의 피가 섞인 마족’일 수도 있지.
반마족인 태현오와 조상이 인간인 레오.
물론 그런 경우에는 다른 동쪽 마족들도 싹 다 형이랑 계약돼야 했지만.
뭐, 모르지. 다른 조건이 있거나. 사실 모든 동쪽 마족과 계약 됐는데 형도 마족들도 모르고 있는 거거나.
인간의 피가 섞인 마계 플레이어여야 하거나.
“하여튼 그 마플을 잡는 게 우선이야. 그놈은 태현오, 레오와 어떤 점이 달라서 형이랑 계약이 안 된 건지. 동쪽 마왕 성은 왜 지키고 있었던 건지. 찾아내서 탈탈 털어줘야지.”
“그건 마음에 든다. 그런데 어떻게?”
***
마플이 날고 긴다고 하는 은신술의 달인이라도 찾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그래봤자 라 엘타, 지구, 마계 어딘가에는 있을 거 아냐.
인제 와서 사실은 저 세 군데 외에 새로운 세상이 있었네요, 같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우선 지구로 돌아가 마플놈의 몽타주를 만들었다.
나, 태현오에 라마까지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는 얼굴이라 어렵지도 않았고. 요즘 이런 기술이 엄청나게 좋아져서 마플 놈의 사진을 갖다둔 것처럼 완벽한 몽타주가 탄생.
그 사진을 갖고 라엘타닷컴에 글을 올렸다.
[제목: 사람을 찾습니다.]작성자: dltjdgks1103
[사진]위 사진 속의 인물을 찾습니다.
제보도 받습니다.
[email protected]덩치 이메일로 제보하세요.
덧글:
-뭐지? 누군데 이성한이 아이디까지 까고 찾는 거지??
-나 저 사람 어디서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근데 제보하면 보수는?? 왜 보수 얘기가 없는겨?
└알아서 챙겨주겠지. 이성한이자너
-보수로 영웅 길드 들어가고 싶다고 하면 가입시켜줌?
└그니까 왜 영웅 일을 맨날 이성한한테 와서 찾냐고. 쟤는 연구소 소속인데.
-제보할테니까 라무상 무기 구매권이라도 줬음 좋겠다ㅠㅠ
└제보할 거리는 있고?
└아니ㅠㅠ
└ㅠㅠ
지구 쪽은 라엘타닷컴에 글 하나 올린 것만으로 끝!
인 줄 알았으나, 한 시간 후부터 해당 게시글에 덧글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당장 라 엘타 접속해봐. 당장!!!!!!
└뭔데그래
└진정하고 말을 해봐
-이안이 서브퀘 뿌렸다. 이성한이 게시글 올린 거랑 같은 내용임.
└???
└?!
└이안이 덩치 이메일주소로 제보글 보내래?
└아니, 등신아. 똑같은 사람 찾고 있다고ㅡㅡ
-진짜임. 근데 퀘스트 보드에 있는 건 아니고 이안 저택으로 가야 해. 이안 저택 앞에 수배 중 전단지 붙어 있는데 그거 보고 퀘보로 가면 섭퀘 받을 수 있음.
└대박적
이렇게 지구 플레이어들을 굴려서 지구와 라 엘타 양쪽을 꽉 잡아놨다.
지구 쪽은 태현오도 여러 기술을 동원해 찾아본다고 했으니까 나머지는 그쪽에 맡겨놓고.
엔릭에게 부탁해서 라 엘타 곳곳에도 수배 포스터를 붙여놨으니 저쪽도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엔릭이 실물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몽타주 보고 깜짝 놀라던데. 나중에 사진이라도 찍어줘야겠다. 놀라서 자빠질지도 모르겠네.
마지막으로 마계 쪽.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가면을 벗고 서쪽 성까지 찾아가서 마플놈을 공개수배했다.
덕분에 난리가 났지만.
“전쟁이다!!”
“서쪽의 마왕이 동쪽 마왕에게 전쟁선포를 했다!”
아니야, 그거 아니라고.
“이얏호, 전쟁이다! 싸운다! 죽인다! 이긴다!”
“꼬리 말고 숨어 들어간 동쪽의 마왕은 나와랏!”
그게 아니… 아니지. 아닌게 아니어도 괜찮지 않나?
전쟁을 한다고 해서 내가 잃을 것도 없고.
서쪽 마왕이면서 동시에 동쪽 마왕인 게 시스템적으로 막혀 있다면. 서쪽이랑 동쪽을 통합해서 양쪽 다 내가 먹어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전쟁이라는 게 그런거잖아.
마플이 제 발로 찾아오면 끌고가면 되고.
나오지 않는다면 공식적으로 동쪽 마왕 성을 점령해버리면 된다. 그러면 동쪽 성에 대한 정당한 소유권은 나한테 오겠지.
마플놈은 동쪽 성을 지키려면 꼬리 말고 기어 나오지 않을 수 없겠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마플을 발견할 때까지 동쪽 성을 신나게 파헤쳐보면 된다.
“완벽해. 그 마플 놈이 레오처럼 외형을 바꿔서 도망갔다면 소용없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잡히겠지.”
“…대단하다. 정말이지… 너는 마왕이라는 이름이 참 걸맞는 거 같다.”
칭찬 고맙다.
“라마, 너도 도망가면 이렇게 찾아줄게.”
“……나는 애초에 도망 못 간다는 걸 알면서 약 올리는 건가.”
“물론이지.”
“……”
자, 그럼 마플 놈의 흔적을 발견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볼까.
오랜만에 연구소로 출근했다. 덩치 일은 얼마나 밀려있는지도 보고. 3층에도 잠깐 들러서 이지혜에게 부탁해둔 서류도 받아오고.
레오 쪽 검사하는 건 얼마나 진행됐는지 확인하고…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연구소로 향해 걸어가는데 머리 위가 번쩍 빛났다.
‘콰아앙!!!’
뭐야. 폭발음?
“뭐가 터졌다!”
“나도 알아!”
“저쪽이다!”
라마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7층.
연구실 쪽이다.
< 11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