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2)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2화(12/180)
< 12화 >
뭐야. 왜 저게 보이는데.
왜 남의 퀘스트 창이 나한테 보이는 건데.
저거 원래 보이는 거 아니잖아.
난 내 시스템 창도 없는데 왜 보이냐고.
라엘타닷컴을 그렇게 열심히 정리했지만 남의 시스템 창이 보인다는 이야기는 루머로도 들어본 적 없다.
‘근데 이 정도면 내가 이안인 거 들키는 거 아냐?’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퀘스트가, 정확하게 나를 향해 이름을 말한 순간 완료됐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정도면 벌써 눈치를 채고도 남았겠지.
어떡하지. 숨겨왔던 정체가 이렇게 드러난다면 큰일.
이지 않다.
딱히 숨겨왔던 것도 아니고. 들켜도 상관없지 않나?
그래. 차라리 깔끔하게 들켜버리고 형한테도 사정 설명하고 떵떵거리면서 살자.
“그렇습니다. 제가 사실…”
“이야, 죄송합니다. 갑자기 서브퀘가 완료가 되어버려서요. 가끔 이런 경우가 있거든요. 성한 씨는 퀘스트를 못 받는다고 하셨죠? 그럼 모르시겠네~ 퀘스트 창이 어떻게 생긴 지는 아세요? 게임 같은 거 해 보셨으면 아실 텐데, 그런데 나오는 시스템 창이랑 똑같이 생겼어요. 아니지. 연구소 직원이시니까 이런 정보는 잘 알고 계시겠구나. 아, 근데 내가 무슨 말 하고 있었더라.”
전생에 말 못 해서 죽은 귀신이 들러붙었나.
아까도 말 많다고 생각했는데 흥분하니까 진짜 말이 아니라 랩을 하네, 이 사람.
심지어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고 있다.
나도 화끈하게 내 정체를 까발려주려고 했는데.
이 사람의 머릿속에는 내가 그 이안 경 일 거라는 가능성은 단 0.0001퍼센트도 열어두지 않은 것 같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눈치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보구나.
“서브 퀘스트가 갑자기 완료되었는데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셨어요. 그게 어떤 경우죠?”
“이 퀘스트는 여러 명이 동시에 받은 퀘스트거든요. 같은 퀘스트를 공유받은 사람 중 누군가가 퀘스트를 깼을 때 다른 사람들도 같이 퀘스트 완료가 되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러고 보니까 그런 경우가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 것 같다.
퀘스트와 관련된 세세한 정보는 내가 담당하는 부분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가령 이번 퀘스트 같은 경우에는 이안 이라는 사람을 찾아서 자기소개하는 퀘스트인데, 제가 아는 누군가가 그를 찾은 후에 자기소개를 하면서 제 소개도 같이한 거죠. 또 예를 들어 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냐면···”
말 많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엄청난 수다쟁이다.
그 후로도 뭐라고 계속 말하는걸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래서 그렇게 됐답니다. 아. 서브퀘 얘기 중이었죠? 이야, 저도 그 이안이란 사람 면상 한번 보고 싶었는데.”
지금 보고 있습니다.
“아쉽게 됐네요. 직접 만나서 호감도도 높이고 연계퀘도 받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누가 제 퀘까지 달성해준 건진 아직 모르겠지만 아마 이안이라는 사람 만나는 게 엄청 힘들어서 제가 깨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깨 준 것 같아요.”
연계퀘?
나는 연계 퀘스트를 줄 생각도 없고 주는 방법도 모르는데 이 사람들이 김칫국 들이키고 있었구나.
“연구원 직원이시니까 서브퀘 상세 내용은 알고 계시죠? 몬스터 퇴치에 관심이 있다고 어필하면 다음 몬스터 퇴치에 데려갈 수도 있다는 거. 그게 연계퀘가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죠.”
혹시 이 사람이 ‘몬스터 퇴치’를 언급한 것만으로 연계 퀘스트가 발동하는 것은 아닌지 살폈지만, 또 다른 상태창은 나오지 않았다.
‘저는 몬스터 퇴치에 관심 있습니다.’ 같이 정확하게 의사 표현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쪽에서 ‘몬스터 퇴치를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라고 물어야 하는건지.
어떤 방식으로 퀘스트가 생성되는지는 모르겠다만 언급하는 것만으로 생기진 않는다는 건 잘 알겠다.
“제가 성한 씨를 좀 더 도와드리고 안내도 해 드리려고 했는데, 서브퀘가 완료되는 바람에 이거에 대해서 좀 알아보러 가야겠어요. 누가 저 대신 깨줬는지도 알아보고요. 여관은 이쪽으로 쭉 가다가 나오는 빵집 맞은 편에 있습니다.”
그 여관으로 가는 길 내가 당신보다 더 잘 알 겁니다.
물론 여관으로 갈 생각은 없지만.
“네. 감사합니다. 서브퀘 누가 어떻게 깼는지 알게 되시면 꼭 연구소로 보고서 넣어주세요.”
나중에 아는 사람 중 자신 외에 퀘스트를 깬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떨까.
그때는 눈치채려나?
김천호는 퀘스트를 깬 것이 마냥 좋은지 계속 헤실거리고 있었다.
“일 열심이시네요. 아, 성한 씨 이름이나 개인정보는 저만 알고 있을 거니까 걱정 마시고요.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즐라되세요~”
“안녕히 가세요.”
가끔 생각하는 거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은 라 엘타니, 몬스터니.
엄청 심각하고 진지한데 한국만 전국의 사람들이 대규모 VR 게임을 하는 양 행동하고 있다.
라 엘타 주민들을 NPC라고 부르는 거 하며.
포탈 이동을 로그인, 로그 아웃이라고 부르거나.
즐거운 라 엘타 되세요. 줄여서 ‘즐라되세요’를 인사말로 쓴다든가.
김천호는 손에 금화 하나, 1골드를 쥐여주고 떠나갔다.
1골드면 여관에서 일주일간 머물면서 먹고 자고 마시고 할 거 다 할 수 있는 금액이긴 하지.
연구소에서 꽤 신경 써줬는걸?
직장생활을 하다가 지구에서 다른 차원으로 출장까지 갈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바로 저택으로 향하는 대신 퀘스트 보드 앞에 서서 한동안 플레이어들을 관찰했다.
김천호의 퀘스트 창이 보인 게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나와 관련된 퀘스트여서 보였을 뿐인 건지.
혹은 모든 시스템 창이 보이는 건지 알고 싶었으니까.
“와, 진짜 보이네.”
확실하게 보인다.
김천호의 퀘스트 창뿐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들의 것들까지.
나는 확실하게 시스템 창을 볼 수 있다.
퀘스트 창은 물론 상태창도.
대체 어떻게 왜 볼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생각을 포기하기로 했다.
상태창도 없으면서 포탈 이동은 가능한 이유도 모르겠고.
그 전에 사고로 누워있을 동안 라 엘타에 있었던 것도 의문인데 여기서 더 궁금해한다고 답이 나오겠냐.
남의 시스템 창이 보인 것도 그렇고.
서브 퀘스트 건도 그렇고.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혼자 고민한다고 답이 나올 건도 아니지만.
알아보려고 해도 어디서부터 파봐야 하는지 감이 안 잡히는걸.
근데 이걸 굳이 고민해봐야 하나?
그냥 정말 좋은 능력이군, 하고 춤추면서 회사 그만둬도 될 만한 상황 아니야, 이거?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푹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볼까?”
시간이 일주일이나 있는데 뭘 못하겠어.
한동안 잔소리 안 듣고 늘어져 있을 생각을 하며 저택으로 향했다.
“나 왔어.”
이번엔 문도 안 두드리고 그냥 들어갔다.
어차피 내 집이니까.
내 목소리를 듣고는 1층 어딘가에서 집사가 빠른 걸음으로 나왔다.
“벌써 오셨습니까?”
“어째 반응이 14년 만에 왔을 때보다 더 놀라는 것 같다?”
“아닙니다.”
“아니긴 뭘.”
집사에게 방금 받은 금화 하나를 던져주었다.
갑자기 웬 1골드입니까? 하고 물어볼 만도 한데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는다.
“나 일주일은 여기 있을 거야. 오늘 저녁은 잘 좀 준비해줘.”
“예. 주방장에게 전해 놓겠습니다.”
집사가 슬쩍 나를 위아래로 스캔하더니 금방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왔다.
“옷부터 갈아입으시죠, 이안 님.”
방금 눈빛 굉장히 ‘며칠 전에도 그 옷 입고 있었는데 아직도 그 옷이냐’라고 말하는 거 같은데 말이지.
그런 거 아니거든.
며칠 내내 이 옷 입고 있었던 거 아니거든.
이 옷 입은 채로 지구로 돌아간 후에, 옷을 갈아입고 다시 들어와도···.
말을 말자.
설명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그냥 속으로만 외치고 묵묵히 2층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 틈을 타 집사는 1골드를 들고 지하로 내려갔다.
저택의 규모만큼이나 큰 지하에는 딱 두 개의 방이 있었다.
지하 수련장, 그리고 금고.
방 하나를 통으로 사용하는 것이, 금고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컸지만, 집안사람 모두가 그렇게 불렀다.
금고의 문은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어 집사를 포함한 소수의 몇 명만이 열고 닫을 수 있었다.
금고문을 열자 산더미처럼 쌓인 재화 더미가 보였다.
왜 현금으로 보관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의 금화와.
이곳이 드래곤의 레어인가 의심 가게 만들만한 양의 보석들.
누구라도 탐을 낼 만한 장신구나 구하기도 힘든 아티팩트들까지.
집사는 그 위에 들고 있던 금화를 대충 던져 넣었다.
고작 금화 하나 늘어난 것으로는 티도 나지 않는 변화였지만.
집사가 금화 더미에 1골드를 던져놓고 주방에 성대한 저녁을 요청하는 동안.
나는 2층의 방에서 메리가 가져다준 간식을 주워 먹고 있었다.
“뭐? 벌써 결혼을 했다고?”
“벌써라뇨. 제 큰 애가 벌써 8살 인걸요.”
“큰 애? 작은 애도 있어?”
“제가 애가 셋이에요, 이안 님.”
처음으로 메리를 봤을 땐 울보 꼬맹이였는데 벌써 애가 셋이란다.
“큰 애는 좀 더 크면 저택에 들여서 일이라도 시키려고요. 수잔의 딸도 올해 18살이 되어서 저택에 들어왔는데. 알고 계신가요?”
어쩐지 마지막에 떠날 때보다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더라니.
착각이 아니라 진짜 사용인들 수가 늘어나고 있었구나.
증식하는 거야, 뭐야.
저택 하나를 관리하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한가 싶었지만.
집사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싶어서 그냥 과자나 먹었다.
장난 아니게 중독성 있잖아, 이 과자.
결국, 한 접시를 다 해치운 후에야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지금부터.”
“업무를 보러 가시나요?”
“아니, 수련하러 갈 건데.”
아니, 메리야. 왜 그렇게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니.
원래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갈수록 집사를 닮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수련을 하셨는데 아직도 안 끝나신 거예요? 이번엔 몇 년 동안 수련할 생각이신데요?”
“몇 년이라니. 이번에는 일주일만 있다 갈 거라서, 한···. 일주일?”
“······”
몇 년간 뒹굴고 놀아서 감 떨어진 거 돌려놔야지.
그리고 남들은 다 쉽게 배워서 쓴다는 그 스킬들 좀 연구해보려고 했다.
시스템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배울 수 있는 스킬들인가.
“일주일만 계실 거면 더더욱 수련이 아니라 업무를 봐 주셔야죠!”
메리가 방 맞은편의 책상 위를 가리켰다.
장식으로 쌓아놓은 건 줄 알았는데 저게 다 결재해야 하는 서류라고?
미친 거 아냐?
“생각해보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었어. 왜, 몇 년 전부터 베라포드에 나타나는 이상한 사람들 있지. 그 사람들에 대해 조사해야 해. 하하하.”
회사에서 시켰거든, 알아 오라고.
괜히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방 밖으로 뛰쳐나갔더니 메리가 어휴, 하고 한숨을 쉬며 따라 나왔다.
“사실은 업무를 보실 필요 없으세요. 몇십 년 간 이안 님 없이도 잘 돌아가던 저택이 갑자기 이안 님을 필요로 할 리 있겠어요?”
얘가 뼈를 때리네?
“하지만 지하 수련실은 못 써요. 이안 님이 떠나고 10년째 되던 해부터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거든요.”
“다른 용도?”
“창고처럼 쓰고 있었어요. 조금··· 잡다한 게 많이 쌓여서.”
잡다한 거?
대체 수련장을 창고로 개조해야 할 정도로 쌓일 만한 물건이 뭐가 있다는 거야.
결국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바로 지하 수련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보았다.
수련장을 꽉 채울 만큼 가득 찬 포션 병들을.
< 12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