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26)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26화(126/180)
< 126화 >
[이성한의 고유 능력]마기 접촉 시 그에 대항한다.
뭐야. 이게 다야?
왜 이렇게 짧아.
상세하게 보여준다면서. 이건 한 줄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짧잖아.
그리고 태현오가 내 고유 능력은 형이랑 비슷한 것일 거라고 그랬는데.
“마족이랑 관련된 것도 아니고 계약하는 것도 아닌데?”
“……”
“안 그러냐, 라마야.”
“……”
“김라마.”
“……”
라마는 묵언 수행 중이었다.
라디오처럼 틀어놓으려고 데려온 건데 제 임무를 제대로 안 하고 있다니.
대신 혈액 제공 해줬으니 봐준다.
그런데 내 상태창 왜 이렇게 부실하냐고.
“이거 혹시 몬스터의 피가 부족해서 상세하게 안 나온 거 아닌가요?”
구석에 엎드려서 죽은 척하고 있던 라마가 움찔하는 거 다 봤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 몬스터 중 최상위에 군림하는 드래곤의 피. 그것도 상당한 양이었으니 재료가 부족했을 리는 없고…”
에밀리가 곰곰이 생각하다 덧붙였다.
“제 능력으로는 이 이상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힘이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겠지요.”
“그 안에? 내 상태창 안이요?”
“상태창이라기보다는, 이성한이라는 사람 그 자체에 말이죠.”
말만 어렵게 했지, 에밀리의 스킬이 내 능력을 확인하기에는 급이 낮아서 못 본다는 거잖아.
C급 스킬로는 B급의 플레이어에게 영향을 주기 어려운 것처럼.
“아무래도 너가 빠르게 라 엘타에 적응하고 강해질 수 있었던 게 그 고유 능력 덕분인 거 같다.”
시체놀이 중이던 라마가 피나 더 뽑자고 할까 봐 무서웠는지 잽싸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마기에 접촉하면 대항한다. 그렇다는 건 마기에 대항할 힘이 생긴다는 뜻일 수도 있지 않은가.”
“환경에 맞춰서 내 몸이 더 빠르게 성장했을 수도 있지. 생존하기 위해서.”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서 한계를 넘어선다고 하던가.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라 엘타에 머물던 내내 내 육체는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는 거군.
원래라면 라 엘타에는 마기가 없었어야 했는데. 하필 베라포드에 오염된 땅과 오염된 몬스터가 많았지.
전부 어둠과 전 황제 놈 때문이었지만.
어쩐지 황권 전쟁에 참여한 후부터 더 빠르게 성장하더라니. 전 황제 그놈, 전쟁터에서도 마기를 뿌려대고 있었던 거구나.
황제가 된 후에도 계속 마기를 퍼뜨려서 땅을 오염시키려고 노력하고. 내가 오염을 정화하고 다니니까 더 많은 양의 마기를 퍼뜨리고.
나는 정화한다고 돌아다니면서 온갖 마기에 노출되고, 그만큼 대항력을 기르기 위해 더 빠르게 성장하고.
어둠은 그렇게 발버둥 쳐서 나한테만 좋은 일 했네?
덕분에 강해진 내가 어둠을 싹싹 깨끗하게 정리해버렸다는, 참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이지 않은가.
상태창 하단에는 고유 능력의 설명 외에 ‘주의사항’이 한 줄 더 있었다.
[주의사항: 자신보다 강한 마기에 반응해 경계심이나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어째 주의사항이 능력 설명보다 두 배 이상 긴 거 같은데.
게다가 주의사항보다는 부작용에 가까운 거 같고.
주의사항이건 부작용이건, 예전에 태현오랑 이야기 나눴던 거랑 비슷한 내용이다.
최근에 만난 마수나 마족들은 이미 내가 그들보다 훨씬 강해진 후에 만났으니 아무렇지 않지만.
내가 태현오를 처음 만났을 때는 약해빠진 평범한 10대였으니까 당연히 태현오보다는 약했을 테고.
덕분에 태현오를 볼 때마다 불쾌함을 느꼈다는 것.
아직도 태현오가 폐기물 이하로 보이는 이유는…… 당연하지만 태현오가 나보다 강해서는 아니고.
그냥 심리적인 이유다.
매일 구정물로 보이던 게 어느 날부터 이온 음료로 보인다고 해서 기분 좋게 마실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찝찝하잖아!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그 녀석, 별로 정감 가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태현오 그놈. 전에 내가 마기를 밀어내는 체질 어쩌고 하지 않았나?
내가 마기를 밀어낸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내 주변의 마기가 ‘가라앉기 때문에’라고 했었지.
그때는 그냥 대충 찍어서 아무 말 한다고 생각했는데 꽤 정확했네.
정감 가지는 않지만 유능한 건 확실하다.
***
상태창 구현을 한 번 더 부탁한다고 하니 에밀리는 흔쾌히 한국을 방문해줬다.
겸사겸사 빌리까지 따라오고.
이쪽에서 부탁하는 거니까 형을 미국에 데려오려고 했는데, 저쪽에서 먼저 한국에 가고 싶다고 따라온 거다.
형을 찾아가기에 앞서 연구소부터 방문했다.
원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텔레포트 마법진을 연구소에 설치해둬서 그쪽으로 간 것뿐.
어차피 몬스터 피라고 쓰고 라마 피라고 읽는 스킬 재료도 다시 뽑아내야 하니 연구실에 잠깐 들렀다.
에밀리와 빌리를 데리고 연구실로 들어가니 연구원들 전원이 동시에 이쪽을 쳐다봤다.
‘처음 보는 생명체가 둘.
인간처럼 생겼지만, 또 어디선가 튀어나온 알 수 없는 존재일 가능성 있음.
마수, 마족은 이미 넘쳐나기도 하고 첫 발견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희귀성도 떨어짐.
어디서 굴러온 천사나 외계인이나 미래인 등등, 뭐든 좋으니 새로운 무언가를 데려온 거였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게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나는 우리 연구원들.
아쉽게도 이들은 보통의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플레이어입니다.”
이쪽을 바라보던 연구원들이 동시에 하던 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플레이어고 자시고 인간은 필요 없다 이거지?
아아. 플레이어 연구하고 싶다고. 스킬을 눈앞에서 직접 보고 싶다고 난리 치던 순수했던 연구원들은 대체 어디로…
“일단 여기서 모든 준비를 마친 후에 따로 형을 만나 상태창을 구현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라마, 피 한 번 더 뽑자.”
“싫다! 거절한다! 절대 안 된다!”
라마가 기겁하며 반대했다.
그냥 반대만 한 게 아니라 아예 구석으로 도망쳐 숨었다.
숨어봤자 다 보이거든.
“네가 안 도와주면 대신할 건 묵이 밖에 없는데 걔는 급이 안 되잖아.”
“묵이요?”
대답한 건 라마가 아니라 에밀리였다.
“아, 묵이라고. 있어요. 저희 집 이무기.”
“LA의 던전 아웃브레이크 사건 때 잠시 등장했던 그 이무기 말씀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알고 계시네요.”
미국에서 던전 터져서 몬스터들 막을 때 라마 소환하려고 했다가 이무기도 같이 소환돼서 대환장 파티를 벌인 적이 있었지.
그 뉴스를 봤나 보네.
그때 대형 몬스터 이무기가 출몰했지만, 우리 쪽의 빠른 판단으로 바로 제압됐다고 말이 퍼졌었지.
그 후에 우리가 생포한 이무기를 펫으로 등록해서 키우고 있다는 보도까지 났었다.
“이무기 몬스터의 피로도 충분합니다. 오히려 드래곤 님의 피를 사용하는 것이 과분하지요.”
“들었냐, 인간. 과분하다지 않는가! 소중한 드래곤의! 소중한 드래곤 피는! 그렇게 쫙쫙 뽑아내라고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방방 날뛰는 라마를 향해 혀를 차 줬다.
“이묵처럼 말 못 하는 몬스터에게 그러고 싶을까.”
“말하는 몬스터에겐 그래도 된단 말인가!”
라마가 날뛰든가 말든가.
에밀리와 빌리는 연구실에 두고 라마만 끌고 이묵이 있는 라 엘타를 방문했다.
“부장님! 오셨습니까!”
어째 여기. 마지막으로 봤을 때랑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 있는데?
순간 다른 곳으로 잘못 이동된 줄 알았잖아.
라마의 브레스를 맞고 처참한 상태였던 곳에 다시 나무와 풀도 자라고 있고. 집도 세워져 있고.
무슨 공원처럼 꾸며둔 곳도 있네?
저건 뭐야, 미니바? 아니, 라 엘타에 어떻게 냉장고가 있어?
“아, 놀라셨나요? 냉장고의 전력은 마법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흑마법사 플레이어들은 어디서 뭐 하나 했더니 여기서 전력이나 굴리고 있었구나.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연구원들이랑 우리 부서 소속 플레이어들이 여기에 마을을 짓고 있었다.
몇 년 후에 다시 오면 놀이공원까지 세워져 있을 기세잖아.
정말 솔직히 말해서 이쪽으로 파견 나와서 연구하고 이묵 돌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는데.
대단하다, 한국인.
정착 못 하는 장소가 없구나.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묵이 피를 좀 뽑아가려고 하는데요.”
“연구라도 하시려고요? 잠시만요, 금방 뽑아드릴게요.”
연구원이 작은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아뇨, 그 정도가 아니라요.”
“예?”
“한 20리터 정도만…”
“예?”
“20리터 정도만 뽑아주세요.”
“예?”
부족하려나.
급이 높은 몬스터일수록 필요한 피의 양이 적어진다고 하긴 했는데.
이무기 피는 얼마나 있으면 충분할지 모르겠네.
물어보고 올걸.
다행히 묵이는 대형 몬스터 중에서도 대형이어서 피 20리터 정도는 뽑아도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을 거라고 한다.
조금 많이 헌혈해서 어지럽고 기운이 없는 정도라나.
연구원들은 전문가답게, 전혀 아프지 않게 이묵의 피를 쑥쑥 뽑아냈다.
“몸에 비늘이 있는데도 피가 잘 뽑히네요.”
“아, 전에도 몇 번 연구한다고 피를 뽑아간 적이 있었지요. 그때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이묵 님의 피를 효율적으로 뽑는 방법을 알아냈답니다.”
뒤에서 지켜보던 라마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나는 피 뽑힌다고 그 고생을…”
미안하다.
피를 뽑힌 묵이는 기운 없이 축 처져 있다가, 이묵 관리 담당이라는 플레이어가 어디서 곰 한 마리를 통으로 가져오니 그걸 먹고 정신 차렸다.
그런데… 우리 부서에 이묵 관리 담당이라는 직책이 따로 있었구나.
덩치한테 묵이 관리하라고 떠넘긴 건 기억나는데. 언제 그걸 남한테 던져줬대.
“덩치, 이거.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일을 이렇게 벌여놔도 되는 거야?”
“덩치는 노력한 거라고 본다. 덩치와 비교하면 너는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다니는 거 같다.”
나도 엄청 바빴는데. 이것도 알아보고 저것도 알아보고 그것도 해결하고.
연구소랑 관련된 일이 거의 없다뿐이지.
“다 덩치에게 떠맡기지 말고 할 일 좀 해봐라.”
그래도 떠넘길 수 있는 건 떠넘기는 게 현명한 거 아닐까.
“일은 하나도 안 하면서 어디 가서 회사원이라고 우기고 다니지나 말아라.”
라마에게 말로 뼈를 맞으며 지구로 돌아왔다.
“에밀리 씨. 피는 이 정도면 충분한가요?”
“새, 생각보다 많이 가져오셨네요. 이 정도면 두 명분의 상태창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행이네. 부족하다고 하면 한 번 더 다녀오려고 했는데.
“성한아.”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세상에서 가장 한가한 길드 마스터 태현오가 들어왔다.
“너는 어떻게 허가도 안 받고 자유롭게 연구소 출입을 하고 있냐. 누가 카드키라도 주든?”
“하하, 1층에서 이제 내 얼굴을 알아보는지 그냥 문을 열어주던데?”
“와, 외부인이 오면 제대로 확인하고 절차를 밟아서 들여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 자주 오면 수상하니까 더 까다롭게 조사해보고! 직무 태만이네!”
“진짜 직무 태만 그 자체인 인간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은 라마가 한 말이다.
나한테 불만이 많은 드래곤 한 마리가 자꾸 대화하는데 끼어드네.
인간들 대화하는 데 몬스터는 빠져!
“미국은 잘 다녀왔나? 처음 보는 분이 두 분 계시는데?”
정감 가지는 않지만 유능한 놈이 에밀리와 빌리를 향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속지 마세요.
저놈, 저거. 사람 좋아 보이지만 사실 사람도 아니니까.
반은 마족이라고요.
“반갑습니다. 영웅 길드의 길드 마스터, 태현오라고 합니다.”
“영웅 길드!”
짧은 자기소개와 함께 태현오가 오른손을 내밀자, 빌리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마주 잡았다.
태현오 놈. 모르는 척 빌리, 에밀리와 인사하고 있지만 이미 상황파악 끝낸 상태겠지.
빌리 사진까지 찍혀있는 기사 다발 들고 찾아온 장본인이면서.
“태현오.”
난 분명 태현오만 불렀는데 태현오에 빌리랑 에밀리까지 세 명이 동시에 나를 쳐다본다.
아까부터 뚫어지라고 내 뒤통수만 노려보고 있는 라마는 제외한다고 치고.
“온 김에 고유 능력이나 확인하고 가라.”
마침 몬스터 피도 넉넉하다고 하고.
태현오의 고유 능력도 나랑 연관이 전혀 없지는 않으니 궁금하기도 하고.
타이밍 좋게 찾아온 기념으로 고유 능력 창 한번 확인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구현된 태현오의 고유 능력 상태창은.
“나랑은 달리 엄청 길고 상세하잖아?”
“네 상태창은 어떤데?”
“딸랑 한 줄이야.”
진짜 제대로 구현된 상태창이란 이런 건가.
그리고 상태창을 읽어보려는 순간.
눈앞에 다른 상태창들이 미친 듯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팟. 팟.
이게 뭐야.
팟. 팟. 팟.
엄청나게 빨리 지나가서 제대로 읽지는 못했지만.
확실하다.
팟. 팟.
이것들, 그동안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내 플레이어 상태창이잖아.”
< 12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