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4)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4화(14/180)
< 14화 >
베라포드에서 보내는 일주일은 평화롭고 편안했지만, 아주 짧았다.
뭘 했다고 시간이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가는 건지.
상식적으로 다른 나라로 출장을 가도 최소 일주일은 잡고 보는데, 다른 차원으로 출장 가는 경우엔 한 달 정도 시간을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사람이 일하고 부지런하게 사는 거 다 좋다 이거야.
그래도 인간에게는 가끔 이렇게 슬라임처럼 늘어져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물론 일주일간 마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드러누워 있던 것은 아니다.
포션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대충 구상해 놓았고.
내가 없는 동안 라 엘타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보고도 받았고.
여관 앞에서 죽치고 앉아 사람들 째려보던 또라이가 조금 거슬리긴 했는데, 삼 일쯤 그러고 있다가 여관에서 쫓겨난 거 같더라.
그놈이 공격할까 봐 무서워서 사람들이 지나다니지를 못했다나?
그러게 처음부터 그런 미친놈은 손님으로 받지 말았어야지.
그 외에는 불편한 것 하나 없이 먹고 마시고 잘 지냈다.
지구로 돌아가기 싫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귀환했다.
이러다가도 라 엘타에서 아예 살라고 하면 싫어, 지구로 갈 거야! 하면서 뛰쳐나가겠지만.
원래 사람 마음이 이렇게 청개구리와도 같고…
“이게 뭡니까?”
지구로 돌아온 후 첫 출근.
99%가 거짓으로 채워진 보고서를 제출했더니 3층 김 대리가 플라스틱 카드처럼 생긴 뭔가를 내민다.
“라 엘타 출입 허가증. 주 1회 사용할 수 있는 거야. 한번 들어가면 최대 이틀간 체류할 수 있어.”
“어? 저 그럼 매주 출장 가나요?”
5일 중 이틀을 라 엘타에서 보낸다면 사실상 일주일의 반 이상을 노는 거나 다름없다.
만세!
“아니. 근무시간에 보내주는 거 아냐. 이번처럼 또 라 엘타에 가게 될 일 있으면 7층이랑 협의하고 날 잡아서 보낼 거니까 걱정 마.”
좋다 말았잖아.
그럼 이건 왜 줘?
“성한 씨도 플레이어는 못 됐지만, 라 엘타 가서 신났을 거 아냐. 주말에 가고 싶으면 맘껏 가서 쉬라는 위쪽의 배려인 거지.”
왜 배려는 위쪽이 하는데 대리님이 으스대요?
물론 속으로만 생각했다.
나는 아주 개념 있는 사회인이니까.
“그래서, 어때?”
“네? 뭐가요?”
“라 엘타 말이야. 진짜 게임 같아? 지구랑은 다르고 엄청 판타지스럽고 그래?”
“그럼요. 진짜 가상현실게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죠. 근데 제가 퀘스트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서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냥 맛있는 거 먹고 플레이어들 구경하다 왔지.”
보고서에 썼던 그대로, 여관에 묵으면서 다양한 음식을 접했고, 퀘스트 보드를 관찰했다며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캬, 좋겠다. 내가 성한 씨였으면 말야, 있는 재산 다 털어서 라 엘타 금화로 환전해서 평생 거기서 먹고살 거야.”
대리님은 뭐가 좋은지 책상까지 두드려가며 낄낄댔다.
만약 저 사람이 포탈 이용이 가능해져서 전 재산을 환전해 라 엘타에 가게 되면.
한 달 만에 거지꼴이 돼서 겨우 살아 돌아올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라 엘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길드 같은 데서 오란다고 가면 안 된다?”
그럼 길드에서 주는 것만큼 월급을 주세요.
“그건 그렇고, 7층에서도 성한 씨 보고 싶어 하더라.”
“아, 네.”
가기 싫다. 보내지 말아줘.
“일단 성한 씨가 쓴 보고서는 7층에도 올라갔으니까, 그쪽에서도 필요하면 호출 할 거야.”
그 후로도 대리님은 이번 출장 건은 일이 아니라 사실상 휴가나 다름없네.
이게 다 회사에서 너를 아끼니까 그런 거니 그만두면 안 되네.
어쩌고저쩌고 말을 해대다 내 참을성이 목 끝까지 차올랐을 때쯤에야 보내주었다.
혹시라도 붙잡을까 봐서 후다닥 자리로 돌아와 허가증을 살폈다.
운전면허증이랑 별 다를 바 없게 생긴, 엄청나게 단순한 디자인.
플레이어는 보통 신분증이 포탈 사용 허가증이나 다름없으니, 이렇게 별도로 출입 허가증을 발급받은 건 내가 전 세계 최초임이 분명하다.
앞으로 라 엘타에 어떻게 출입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알아서 방법을 제시해 주신다니 감사하지.
없는 것보다는 낫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양날의 검이다.
이걸 사용하면 분명 기록에 남을 테니까.
연합 쪽에도, 연구소 쪽에도.
그랬다간 언젠가 굉장히 귀찮은 일에 말려들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번거로운 건 싫은데.
“그러고 보니 그, 수원 포탈 관리원이 그랬지.”
이름이 뭐였지? 김…성준? 준성..? 모르겠다. 김 씨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름 같은 건 됐고.
그때 분명 모든 포탈이 관리하에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포탈이라는 게 규칙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작위로 생성되고 가끔은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니까.
그리고 보통은 인구밀집도가 낮은 곳에 생성된다고 한다.
대부분은 뭔 첨단기술로 찾아내긴 하는데 아직 발견되지 않은 포탈도 여러 개일 거라고.
‘한번 찾아볼까?’
시도했다가 실패해도 손해 볼 것은 없다.
그리고 맨땅에 헤딩하자는 것도 아니다.
왜냐?
나는 연구소 직원이니까.
쌓여있는 일 더미를 한쪽으로 슬쩍 밀어서 치우고 연구소 공유 폴더를 열었다.
각 부서별로 나누어져 있지만, 직원이라면 모두가 자유롭게 열람이 가능한 연구소 공유 폴더.
포탈과 관련된 폴더를 열고 쭉 뒤져, 지구상에 존재하는 포탈들의 위치를 정리해 놓은 파일을 찾아냈다.
발견된 날짜까지 기록되어 있고.
사라진 포탈의 리스트도 별도로 기록되어 있는 상당히 유용한 리스트다.
라엘타닷컴에도 ‘내 근처 포탈 찾기’가 있어서 쉽게 포탈을 검색해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이것처럼 모든 리스트가 공개되어 있지는 않다.
일부 포탈의 경우 특정 길드들에 의해 관리되는 경우도 있고, 아무리 플레이어여도 출입을 허가하기 어려운 위치에 존재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내 근처 포탈 찾기’에 등록되는 포탈들은 모든 플레이어가 제약 없이 출입할 수 있는 포탈뿐이다.
리스트에 적힌 포탈의 위치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업무 관련 파일이라서 뒤에서 누가 지켜보더라도 열성적으로 일하는 사람으로 보이겠지.
생성되거나 소멸하는 특정한 패턴은 없는 것 같고.
완전 무작위네.
포탈을 찾는 것은 더 어려워지겠지만 그만큼 숨어있는 포탈도 많다는 뜻이니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이미 포탈이 존재하는 곳 근방으로 새로운 포탈이 생성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그러니까 확인해야 하는 구역들은.
근처에 다른 포탈이 없고,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
그리고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 위주로.
회사 프린터기를 써서 칼라로 크게 지도를 프린트해 놓고 빨간 펜으로 원을 그려가며 몇 군데를 추려보았다.
벌써 포탈을 두 군데나 가봤으니 비슷한 기운을 가려내는 방식으로 포탈을 찾아낼 수 있다.
주말이나 퇴근 후에 시간 내서 리스트 뽑아놓은 곳에 한군데씩 방문.
포탈이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곳이 있다면 그 주변을 쥐 잡듯 뒤져서 찾아내면 끝.
그렇게 주인 없는 포탈을 찾아낸 후 몇 가지 조치를 취해 놓으면 그 후로도 누군가에게 발견될 걱정은 없다.
“안녕하세요?”
한창 지도에 동그라미 치고 있었는데 이지혜가 다가와 커피를 건넸다.
“아, 지혜 씨. 안녕하세요.”
“엄청 열심이시네요. 포탈? 이거 성한 씨 담당 아니지 않나요?”
“이번에 제가 라 엘타 다녀왔잖아요. 플레이어도 아닌데 포탈 이용이 가능한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냥 틈틈이 공부하고 있었어요.”
당황하지 않고 뻔뻔하게 받아 쳐줬다.
내가 내 시간 들여서 회사랑 관련된 공부 자발적으로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거야.
“라 엘타가 굉장히 마음에 드셨나 봐요. 부러워라. 저도 가고 싶은걸요?”
“그러게요. 저 외에도 다른 일반인분들이 라 엘타에 출입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면 좋겠네요.”
물론 입에 침도 안 바른 거짓말이다.
온갖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면 베라포드가 시장 바닥이 될 텐데 뭐 좋다고 사람들이 오길 바라겠나.
“그럼 포탈 열심히 알아보세요. 뭐라도 발견하시면 제일 먼저 알려주셔야 해요?”
이지혜는 커피를 놓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 후로도 회사에서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충실하게 월급을 루팡하며 포탈 찾기 계획을 짰다.
퇴근 후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포탈을 찾아 돌아다녔다.
며칠간 나름대로 열심히 찾아봤다고 생각하는데 딱히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하긴, 포탈이 그렇게 찾는다고 툭 하고 나오는 게 아닐 테니까.
며칠 더 찾아보고 없으면 그냥 포기해야지.
“라 엘타에서 차원 포탈을 만들 수 있는 마법사를 찾아서 하나 만들어달라고 의뢰하는 게 더 빠르겠네.”
여차하면 그냥 형을 졸라서 영웅 길드 이름으로 출입하면 되지 않을까?
길드에서 관리하는 포탈의 경우, 포탈을 사용한 플레이어나 상세 정보 등에 대해 길드 외부로 보고가 올라가지 않는다.
잘해봐야 이번 달엔 몇 명이 포탈을 이용했습니다. 정도의 보고가 고작.
형이 내 행태에 대해 파악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만 일반 포탈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자유롭게 라 엘타에 출입할 수 있다.
영웅 길드는 길드 전용 포탈이 서울에 하나, 부산에 하나 있던데.
길드 전용 포탈이 두 개씩이나 있는 것은 국내에서는 영웅 길드가 유일했다.
그래, 딱 오늘까지만 찾자.
마침 주말이기도 하니 하루 종일 여기에 시간을 쏟아붓고, 내일부터는 깔끔하게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요즘 어딜 그렇게 돌아다녀?”
집을 나서려 신발을 신고 있는데 형이 말을 걸어온다.
“나? 그냥 산책.”
형은 미심쩍다는 표정이다.
그렇겠지. 나라도 수상하겠다.
삼 년을 집에서 컴퓨터랑 TV 보는 것밖에 안 하다가. 취직한 후에도 일하고 돌아오면 쉰다는 핑계로 주말에도 집 밖으로 꼼짝도 안 하던 동생이 갑자기 바깥출입을 밥 먹듯이 하니.
“너 회사 가는 길목에 통제된 구역. 그쪽 구역에 벌써 두 번이나 몬스터 나왔다는 건 알지? 회사 갈 땐 어쩔 수 없지만 급한 일 아니면 웬만하면 근처로는 가지 마라.”
“보통 몬스터들 나오면 플레이어들이 관리하지 않아? 통제 구역 안쪽으로만 안 들어가면 되는 거잖아.”
나는 매일 출근길에 그 안쪽으로 출입하고 있지만.
“물론 그렇지만 담당하는 길드 쪽에서 제대로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아서 그래. 내가 있는 길드로 담당을 바꾸려고 지금 조율 중이니 그때까지만 불편하더라도 좀 참아.”
지금 그 구역을 담당하는 길드가 어디인지는 모르겠다만, 1위 길드가 작정하고 구역 집어삼키겠다는데 버틸 수 있겠냐?
힘내라.
“그럼 언제 영웅으로 흡수되는데?”
“글쎄. 지금 담당하는 길드에서 통 내놓을 생각을 안 하네.”
“그거 담당하고 있으면 국가에서 돈 줘? 왜 안 주려고 하는 건데.”
“보통 몬스터들은 마나 밀집도가 높은 곳에서 출몰하는데, 그런 곳에는 높은 확률로 포탈이나 던전이 있거든.”
응? 방금 뭔가 무지하게 중요한 정보를 들은 것 같은데.
“통제 구역을 길드가 담당한다고 혜택이 돌아오는 것은 없지만, 관리 도중에 포탈이나 던전을 발견하면 우선권이 돌아가니까. 그쪽에서도 몇 달간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으면서 갑자기 우리 길드에서 구역 받아간다니까 뭔가 있겠구나 싶은 거 같다.”
이거다.
우리 집 근처 통제 구역.
포탈, 아니면 던전.
무조건 있겠구나.
< 1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