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46)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46화(146/180)
< 146화 >
“안 돼애!”
“돼!”
라 엘타로 도주하려는 나를 말리려고 덩치가 달려들었다.
내가 도주하려는 걸 덩치가 어떻게 알았냐고?
덩치도 나와 마그웨이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방에서.
이벤트 공지를 올리고 덩치에게 눈물 섞인 전화를 받은 후부터, 쭉 셋이 함께 연구소에 박혀 끝나지 않는 야근을 했다고.
‘너 혼자 어디로 튀려고.’
‘튀는 게 아니네만?’
‘아니긴 개뿔이 아니야. 좋은 말 하기 전에 앉아. 내 목에 칼이 들어오기 전까진 지구에서 한 걸음도 못 벗어난다!’
‘그럼 어디, 목에 칼을 들이대 보실까.’
라는 대화를 눈빛으로 나누는 마그웨이와 덩치를 버리고 짐을 챙겼다.
“진짜 가시는 거 아니죠? 정말 아니죠? 에이, 설마. 그렇게 무책임한 사람일 줄이야. 똥 싸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 개도 아니고. 제 똥을 제가 못 치울 리가.”
“더러운 얘기 그만하고 그쪽도 짐 싸요.”
“지금 저까지 손을 놓아버리라는 겁니까? 이벤트는 시궁창에 버려버리려고요? 우리를 믿고 기다려주는 플레이어들은 어쩌고! 연구소는! 연구원들은! 라엘타닷컴은!”
“거참.”
책임감이 하늘을 뚫고 올라가시네.
“초면에 막말하고 침 뱉어댄 사람치고는 남을 위하는 마음이 참으로 태산 같으시네요.”
“대체 그 이야기는 언제까지 우려먹을 셈입니까, 예? 그리고 내가 언제 그쪽한테 침 뱉었나, 바닥에 뱉었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를 받으면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짧아지는 게 특기인 덩치.
이럴 때 살살 달래주면 또 좋다고 쫄래쫄래 따라온다.
“아, 누가 다 버리고 가자고 했어요? 이벤트는 다른 사람한테 맡기면 되지.”
“다른 사람 누구요!”
“영웅 길드요.”
“……예?”
“영웅 길드요.”
365일 시도 때도 없이 일만 생기면 그쪽에 다 떠넘기는 거 같아 나도 마음이 편치 않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덩치 다음으로 만만한 게 태현온데.
영웅 길드라는 말에 덩치는 두 번 고민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 챙겨오겠습니다, 저 두고 가면 안 돼!”
행동력 한번 빠르기도 하지.
그래도 영웅 길드 쪽 사람한테 인수인계는 하고 가야 할 거 아냐!
일단 태현오한테 문자를 보냈다.
[이봐] [왜~? ^3^*]뭐지, 이 자식.
이모티콘이 한층 더 기분 나빠졌잖아?
나도 모르게 폰 던져버릴 뻔했다고.
[사람몇명만보내줘] [무슨 일에 필요한데?] [라무상이벤트담당하고관리하는일] [30분만 기다려^^]이쪽도 주절주절 설명할 필요 없어서 편하고 좋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니까.
웃음 표시 볼 때마다 영웅 길드로 달려가서 뒤통수 한 대 쳐주고 싶어져서 그렇지.
영웅 길드에서 보낸 사람들은 진짜 칼같이 30분을 지켜서 도착했다.
그냥 아무나 몇 명 손에 잡히는 대로 보낼 줄 알았는데.
나름 생각이라는 걸 하고 보낸 건지 이런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 왔다.
인수인계 비슷한 것도 안 했는데 오자마자 착착 알아서 정리하고 바로 일을 시작했달까.
솔직히 탐난다.
이벤트 끝나도 영웅에 안 돌려보내면 안 되나?
“다녀왔습니다.”
“금방 왔네요.”
“빨리 갑시… 이 사람들은 뭡니까?”
“영웅 길드에서 보낸 사람들인데요.”
“……어…”
짐 챙겨온 덩치가 먹던 도토리를 뺏긴 다람쥐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자리 뺏길까 봐 그러는 건 아니겠지.
왜 대타로 온 사람들이 딱 봐도 일 잘해 보인다고 그런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봐?
언제는 일 많다고 매일같이 패악질 부렸잖아.
이제 와서 나한테서 버려진 거 같은 얼굴 하지 마!
남들이 보면 오해하잖아!
“혹시 앞으로 저 사람들…”
“아뇨. 다녀와서 모든 일을 다 덩치 씨한테 되돌려줄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 갑시다.”
“뭐요? 상식적으로 일의 배분이라는 게 있잖아. 한사람한테 몰빵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단 거야, 뭐야. 솔직히…”
어쩌고저쩌고.
또 말 많아진 덩치를 질질 끌고 창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넵!”
간다는 사람들이 밖으로 안 나가고 창고 방으로 들어가는데도 영웅 길드 사람들은 손톱 때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뭐를 하든 관심 두지 말라고 단단히 교육받고 온 건가?
그게 아니면 이쪽 방에 별도의 출구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창고 방에 들어와 봤자 있는 거라곤 마법진 뿐.
나만큼 마법진을 잘 다루는 사람이 오는 게 아니고서야 상식적으로 훔쳐 갈 수도 없다.
물론 조금은 비상식적이지만 바닥을 통째로 뜯어가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진지하게 나 말고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 거 같은데.
그렇다고는 하나, 이런 게 있다는 건 보통 들키는 것보단 숨기는 게 낫다.
혹시 몰라서 문을 꼭 잠가두고 형에게 톡을 남겼다.
[형 나 라엘타감 라마좀 보내줘]언제나처럼 형의 답장은 그 무엇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언제 가는데?] [지금] [언제 오는데?] [몰라] [라마는 어디로 보내면 돼?] [연구소로ㅓ] [라 엘타에 함께 데려가려고?] [ㄴㄴ나랑덩치일 맡아줄사럼들 영웅에서왓는데 일잘하나안하나감시ㅏㅎㅎ라고] [그래. 조심히 다녀와라.] [ㅇㅇㅇㅇ]“좋아. 갑시다.”
“잠깐만요! 먼저 가겠다고 말을 꺼낸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마그웨이, 너는 말을 해라.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마법진을 작동시키겠다.
“너무 갑작스럽게 가는 거 같, 우아악…!”
마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마법진은 빛을 뿜어냈다.
약 한 달의 고난과 역…경이 아닌 평화 끝에, 라 엘타로 돌아왔다.
***
나와 마그웨이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라 엘타의 황제, 엔릭이 직접 성문 앞까지 달려 나왔다.
“이안! 제이스! 덩치 경!”
제이스는 누구였… 아, 맞다. 아들 마그 쪽 이름이 그런 거였지.
맨날 마그라고 부르고 다녔더니 자꾸 까먹네.
덩치나 라마는 잊을 때쯤이면 한 번씩 본명을 언급해주던데.
마그는 마그라고 부르면 애칭을 불러주신다며 팔짝 뛰고 좋아해서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지도 못하겠더라.
“갑자기 찾아왔는데 별로 안 놀라네?”
“벽을 열고 방문하기도 하는 사람이 정문으로 찾아왔는데 놀랄 일이 있나.”
“그러네! 하하하.”
“허허허.”
온갖 환대 속에서 성안으로 들어갔다.
전 황제 때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방문한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문으로 들어온 게 손에 꼽히는구나.
반가울 만도 했네.
“자네의 저택으로 초대장을 세 번이나 보냈지만, 매번 부재중이더군.”
“어. 내가 지난 한 달간 지구에 있었거든.”
“그곳은 여전한가?”
내가 지구라는 다른 차원에서 왔다는 건 믿지도 않으면서 잘 아는 척한다?
“여전하지.”
“제이스는 그곳에 잘 적응하고 있고?”
“내가 알바생으로 써먹고 있어.”
“알…바샌? 그게 뭔가.”
“응, 노예처럼 부리고 있다는 뜻이야.”
“그렇군. 자네라면 믿을 수 있지, 허허허.”
“하하하.”
덩치가 어이없어하며 저 멀리 뒤에서 없는 척, 투명인간인 척 조용히 따라왔다.
“지난번에 왔을 땐 일 얘기만 해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근황 얘기도 하고 좋네.”
“마찬가지일세. 앞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방문해줬으면 좋겠군.”
“노력해볼게. 연회는 언제야?”
“일주일 후, 사흘간 진행된다네.”
“짧네?”
“아직 정세가 안정되지 않았는데 고작 생일 파티에 긴 시간을 낭비할 순 없지.”
이야. 전쟁 끝나자마자 2주 내내 연회를 열었던 전 황제야, 듣고 있냐?
“여기라네.”
황제가 직접 손님방까지 안내해준다는 영광을 누리며 방을 배정받았다.
나는 제일 좋은 방, 덩치는 옆 방.
마그웨이는 손님이 아니라 이 집 자식이니까 진작에 인사하고 자기 할 일 하러 가버렸다.
자, 이제 덩치도 방에 들어갔으니.
“우린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볼까?”
할 말 많아 보이는 엔릭을 따라 복도를 걸어갔다.
기껏 제일 좋은 방을 받았으니 구경할 법도 한데. 전 황제 때도 늘 저 방을 받아서 딱히 감회가 새롭거나 그러진 않는다.
짐을 싸 들고 온 것도 아니니까 짐 풀러 들어갈 필요도 없고.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이는데. 뭐야?”
“사실 자네를 연회에 부를 생각은 없었네.”
“왜?”
“이런 자리를 싫어하지 않나. 자네가 왔다고 하면 다른 귀족들도 가만있지 않을 테고.”
“그렇긴 한데. 그러면 왜 세 번이나 초대장을 주러 사람을 보낸 거야?”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
황제라는 사람이 영웅을 사적으로 모신다고 몇 번이나 저택으로 사람 보냈다는 게 드러나면 여러 면에서 좋을 게 없으니까 초대장 핑계를 댄 거구나.
“이쪽으로 따라오게.”
엔릭을 따라간 곳은 도서관이었다.
“여긴 왜?”
“지난번에 다녀간 후에 자네에게 도움 될만한 게 더 없을까, 한번 둘러봤다네. 고대 문헌을 읽는 건 무리였네만…”
그거야 무리였겠지.
“왠지 계속 관심이 가는 책을 발견해서 말이야. 라 엘타의 학자들도 이해하지 못한 책이지만. 자네라면 뭔가를 알아낼지도 모른다 여겼지.”
오, 무슨 책이길래.
“여기 있네.”
엔릭이 깔끔한 표지의 책 한 권을 책장에서 뽑아 건넸다.
표지부터 고대어로 적혀있는데?
라마랑 같이 온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내가 봐도 아무것도 모를 텐……
“……”
밝은 미소와 함께 그대로 책을 덮고.
조용히 그 책을 있던 자리에 꽂아두고.
엔릭을 데리고 밖으로 나와서.
도서관의 문을 닫아버렸다.
아니, 그냥 잠가버렸다. 어차피 안에 사람도 없잖아!
“이안? 이건 왜…”
“잊자.”
“음?”
“첫 페이지를 보는 순간 사건에 말려들게 될 거 같은 책 따위는 잊어버리자고.”
인간적으로 나도 궁금하긴 한데 저런 건 안 봐도 돼!
적어도 엔릭이랑 있을 때 보는 건 사양이다.
괜히 슬쩍 봤다가 일 년도 안 되는 사이에 황제가 두 번이나 교체되는 일이 일어나면 안 되잖아?
“대체 무슨 내용이 적혀있었기에 그러는가. 그 책에서 무엇을 발견한 건가.”
“몰라도 돼. 모르는 게 낫고. 솔직히 나도 모르겠어.”
“모르는데 왜…”
“아, 몰라. 그냥 잊어버리자고.”
귀찮은 일에 말려드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다.
***
“최고다!”
덩치는 침대 위로 뛰어들어 그 위에서 굴러다녔다.
“천국이다, 천국.”
일도 없고. 이성한도 없고!
물론 이성한은 바로 옆 방에 있지만. 알게 뭐냐!
일주일 동안 방 밖으로 안 나가고 누워만 있으면 마주칠 일도 없다.
정말 여기가 최고…
‘쿵!’
“흐어어억!”
‘쾅!’
뭔가 세게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벽이 흔들렸다.
뭐지? 테러? 지진? 던전 아웃브레이크? 반란? 부실공사?
뭔데, 뭐냐고!
‘쿠웅!’
한 번 더 크게 울리는 소리가 나고 벽이 쩌억 벌어졌다.
아니, 진짜로.
벽이 무슨 입을 벌리듯이 쩍하고 양쪽으로 나누어졌다니까?
대체 왜 라 엘타에서 최고로 안전해야 할 곳의 벽이 저렇게 허술하게 찢겨 나…
“안녕.”
아. 그래.
저 인간 정도면 벽쯤은 찢고 들어올 만하네.
황제한테 초대받고 와서 남의 성을 종이 찢듯 찢어버리는 놈이 저 사람 말고 어디 있겠어.
“아, 신경 써서 부수느라 힘들었네.”
“저기요! 안 부순다는 선택지는 없었던 겁니까?”
“잠깐만 기다려봐요. 여기 문만 만들어놓고 금방 갈 테니까.”
“문? 무운? 문을 왜 만들어! 오지마!”
그러거나 말거나 이성한은 예쁘게 문 모양으로 벽을 잘랐다.
“됐다.”
되긴 뭐가 돼!
안 돼! 꺼져!
손잡이 하나 없는 문은, 당길 수는 없지만. 밀어서 열고 다른 방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의 역할을 완벽하게 하고 있었다.
덩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침대 위로 엎어졌다.
“아아아아악!”
“이제 필요할 때 마음껏 부를 수 있겠군.”
“아니! 황제가! 무려 황제가! 마음껏 사용인을 불러서 쓰라고 했는데! 여기 종 보여요? 종에 달린 줄은 보여요? 이 줄을 당기면 사람이 와서 도와준다는 개념은 아냐고!”
“그럼 나중에 만나요. 안녕~”
괴로워하는 덩치를 뒤로하고 이성한은 문 너머로 도망쳐버렸다.
< 14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