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47)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47화(147/180)
< 147화 >
빠르게 며칠이 흘러 연회 이틀 전.
어제부터 귀족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디 아는 얼굴 없나 구경이나 해볼까.
모르는 얼굴. 모르는 얼굴.
오, 저기 아는 얼굴이다. 전에 백작이었던가. 아들 마그를 처음 만난 무슨 귀족네 성에서 본 얼굴인데.
모르겠다. 사실 얼굴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받아야 할 지경이니 상관없지 않을까.
또 모르는 얼굴.
저건 전 황제 쓸어버리러 왔을 때 황성에서 본 얼굴.
저쪽도 아는 얼굴…
정말 징그럽게도 많이 오는구만.
다 함께 약속이라도 하고 오셨나. 왜 한꺼번에 몰아서 오는 건데?
내가 여기 있다는 정보는 통제된 건지. 내 방까지 올라와서 귀찮게 구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계속 없는 척을 하다가 연회의 마지막 날이자 엔릭의 생일 당일에만 얼굴을 비추기로 했다.
이미 영웅 이안이 살아있다는 사실은 귀족들 사이에서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고.
딱히 숨길 일도 아니고.
현 황제 뒤에 내가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고 땅땅 못 박아두면 좋으니까.
게다가 엔릭이 나랑 친하다고 여러 번 언급됐었는데 생일에 인사도 하러 오지 않으면 말이 나올 게 뻔하다.
귀찮은 귀족 놈들.
당일에도 미리 가서 않고 막판의 막판의 막판에 나타날 예정이다.
대충 얼굴도장만 찍고.
다른 귀족들 앞에서 누가 봐도 끝내주는 선물 하나 던져주고.
바쁘니 이만 가보겠다고 하면 누가 날 붙잡겠어.
문제는 지금부터 무슨 선물을 줄지 고민을 좀 해봐야 하는데…
“이것 좀 보시죠!”
‘쾅!’
아, 또 시작이다.
“이거 보이십니까? 황제한테서 받은 반지라고요!”
저 문.
덩치 방이랑 내 방을 막고 있는 벽에 직사각형 모양의 구멍을 뚫어서 만들어놓은 문.
내가 필요할 때 덩치 부르려고 만든 건데 막상 덩치가 더 많이 쓰고 있다.
하루에도 12번씩 문을 열고 내 방으로 쳐들어와서 난리를 치고 있다고.
지금도 말이야, 어?
반지를 받아와서 좋다고 뛰어다니고.
그러다 아주 지붕 뚫고 날다 못해 승천하시겠네!
“그러니까 지금 애 딸린 남자한테서 반지 받았다고 좋아하는 걸 저 보고 같이 축하해달라고요?”
“그게 뭔 지…”
지, 뭐요?
입이 뚫려있으면 끝까지 말 해봐!
물론 덩치가 끝까지 말하는 일은 없었다.
“꽤 좋은 걸 줬네?”
상태창을 열어보지 않아도 좋은 아티팩트라는 게 한눈에 보인다.
딱 덩치에게 필요한 아이템이겠지.
근력을 올려준다거나 마력을 올려준다거나, 체력을…
아, 몰라.
덩치한테 필요한 능력치가 뭔지 내가 어떻게 아냐.
그냥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걸 보니 필요한 걸 얻었겠거니, 때려 맞춘 거지.
“새 황제, 퀘스트를 겁나게 펑펑 퍼준다니까요? 누가 보면 황제가 아니라 퀘스트 제조기인 줄 알겠네!”
“그렇게 좋으면 여기 눌러앉으시죠?”
“황제 폐하 만세! 만만세!”
‘쾅!’
덩치는 자기 할 말, 즉 새로운 아이템 자랑만 하고 가버렸다.
저놈의 문짝.
다시 막아버리든가 해야지.
엔릭한테 분명. 간단한 심부름이 있으면 덩치에게 말해보라고 하긴 했다.
가벼운 보상을 약속하면 더욱 좋다고 하기도 했지.
하지만 그건 퀘스트 보상으로 능력치 상승을 기대하고 한 말이었다고!
누가 저렇게 아이템을 퍼주래!
간단한 심부름을 주고 후한 보상을 내리라는 말은 아무도 안 했잖아!
아니, 덩치 저거. 별로 하는 것도 없는데 저런 귀한 보물들을 던져주는 건 너무하지 않아?
그렇게 아티팩트가 썩어 넘쳐나면 나를 줘!
덩치도 그래!
솔직히 덩치가 예뻐서 엔릭이 잘 해주는 거겠냐.
내가 데려왔다니까 그냥 이것저것 해주는 거야, 착각하지 마!
라고 외쳐봐야 뭐하냐.
아무도 내 말 안 듣고 있는데.
신경 끄고, 내일이면 아주 그냥 귀족들이 떼로 쏟아져 나올 텐데 지금 즐길 수 있을 때 여유나 즐기자.
한동안 미친 듯이 몰려오던 귀족 행렬이 잠잠해지자 방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귀족들은 전부 연회홀에 몰려있을 거다.
마주칠 걱정은 할 필요 없지.
연회는 분명 이틀 후부터라고 초대장에 대문짝만하게 적혀있을 텐데.
아마 금박… 아니, 진짜 금가루까지 뿌려져 있을 텐데.
하루도 아니고 이틀씩이나 일찍 와서 연회홀에 자리 잡고 앉아있다니. 엄청난 민폐 아닌가?
‘허허,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오.’ 하면 신경이 안 써져? 더 신경 쓰이지.
그러면 괜히 다과라도 준비해야 하고, 분위기 있는 음악도 준비해야 하고.
손이 많이 가잖아!
늦는 것도 무례하지만 너무 일찍 오는 것도 예의에 어긋난다는 걸 모르는 건가.
괜히 열 내는 거긴 한데.
내가 한번 이벤트에 시달리고 왔더니 이런 자잘한 거에 예민해져 있단 말이지.
이쪽 귀족들이랑은 영 안 맞는 거 투성이다.
아무튼, 일찍 와봤자 한곳에 몰려있을 놈들이라 우연이라도 마주칠 걱정 따위 하지 않…
“안녕하세요?”
…지만 아직 파릇파릇한 새싹들은 예외다.
사교계에 발을 내민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귀족 영애 하나가 인사를 건네왔다.
정원을 구경하다 온 건가?
황성이 처음이라 이곳저곳 구경해보고 싶은 새싹들은 막힘이 없지.
꼭 저러다 사고 치는 애들이 하나둘 정도는 나온다니까.
이러다가 보물창고나 무기고가 어디 있냐 거나. 기사단의 수련을 보여달라는 말만 안 하면 다행…
“혹시 도서관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이지만 이번 새싹은 그런 생각 없는 사람은 아닌가 보다.
그런데 웬 도서관?
“제가 꼭 읽고 싶은 책이 있어서요. 황성 도서관에 출입하려면 황제 폐하께 허락을 받아야 하나요?”
사교계에는 별 관심 없는데 부모한테 끌려오듯 온 경우인 거 같다.
어쩌면 도서관을 목적으로 온 걸지도 모르고.
근데 저걸 왜 나한테 물어봐?
보통 복도에서 마주친 다른 귀족한테 도서관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진 않잖아.
설마 지금 날 지나가던 황성 시종 A 같은 거로 착각하고 있는 거야?
설마. 아니지?
“듣고 계신가요?”
“이 길로 쭉 걸어가서 한층 더 올라가시면 됩니다. 오른쪽 세 번째에 커다란 문이 도서관이에요. 허락은 따로 받지 않으셔도 좋지만, 황성 밖으로 반출은 불가능합니다. 다 본 책은 제자리에 꽂아두세요.”
무시하기도 뭐해서 빠르게 설명해주고 그냥 내 갈 길을 갔다.
시종 A라고 착각하면 뭐 어떠냐.
어차피 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감사합니다!”
그래도 아직 새싹이라 예의는 바르네.
아마도 시종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시종치고는 무례하게 굴었는데 끝까지 말도 높이고.
뒤돌아서 가는 사람 등 뒤로 인사까지 하고.
저 정도면 나를 시종이 아니라 다른 귀족으로 여기는 거 아냐?
에이, 설마.
남의 성 도서관 위치를 꿰고 있는 귀족이 어디 있다고 길 가던 귀족 붙들고 물어보겠……
도서과아안?
아니, 잠깐. 도서관을 왜 가.
보통 도서관은 장식용이지. 진짜 중요한 도서는 따로 보관하는 거잖아.
누가 남의 집까지 가서 장식용 책을 보고 앉아있냐고!
어차피 장식용 책이니까 남이 읽든 말든 상관없어야 하는데. 지금 도서관에는 그게 꽂혀있단 말이야!
‘그’ 책. 엔릭이 나 보여주겠다고 따로 빼서 도서관에 꽂아둔 그 책!
그걸 남이 보면……
아. 상관없나?
책을 다른 곳으로 가져갔다가 엄한 사람이 보는 것만 아니면 문제 될 일은 없다.
그리고 도서관 문 내가 분명 잠가뒀어. 어차피 못 들어갈걸?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기는 개뿔.
손님들이 오시는데 장식용이지만 도서관을 닫아둘 수 없다며 누군가가 활짝 문을 열어뒀겠지.
도서관에 우연히 눈에 띄는 책이 있어서 손을 뻗었는데, 아뿔싸! 하필이면 내가 있는 듯 없는 듯 신경도 쓰지 말라고 했던 그 책이네? 라는 전개가 될 확률이 89% 이상인 상황이라고!
하필 엔릭이 책 무덤에서 그걸 찾아와 밖에 꽂아뒀고.
하아필 내가 그걸 보고도 책을 갈기갈기 찢어놓지 않았고.
하아아필 어차피 아무도 안 볼 거라고 내버려 둔 도서관에 들락거리는 사람이 생겼고.
하아아아필 도서관에 간 사람이 책 찾겠다고 뒤적거리다 그 책 찾을법한 첫인상을 가진 사람이네?
기다려!
새싹을 막기 위해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도서관 문은 모두를 위해 활짝 열려있었다.
그래봤자 안으로 들어가는 건 저 새싹밖에 없겠지만.
“어? 가신 줄 알았는데, 돌아오셨네요? 제가 책을 찾는 걸 도와주시려는 건가요?”
그럴 줄 알았다.
새싹은 이미 그 책을 뽑아 들고 펼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떻게 이 많은 책 중에 그걸 벌써 찾아냈냐.
이 정도면 누군가가 나를 골탕 먹이려고 뒤에서 조작하는 거 아닌가?
시스템, 너냐?
“설마 찾고 있었다는 책이 그 책은 아니죠?”
“예? 그건 아닌데, 책이 빛나고 있길래 신기해서 보고 있었어요.”
책이 빛나?
저건 무조건 우연이 아니다.
우연이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 보고 나한테 관심 좀 가져달라고 책이 시위한 거라고!
“책 찾는 거 도와드릴 테니까 그건 저 주세요.”
“아. 집사님이 찾고 계시던 책이었구나.”
날. 집사로. 보고 있었던 거냐.
내 어디를 보면 집사로 보이냐고!
하긴.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이유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도서관의 위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성의 사람으로밖에 안 보이겠지.
딱 봐도 황족일 리는 없고.
반대로 평민으로 보이지도 않으니 집사라고 짐작한 거겠지.
일단은 집사도 준귀족이니까.
일반적인 집사보다 훨씬 젊어 보이니까 아마 부집사 정도로 생각했을걸?
그래놓고 ‘부집사’가 아니라 ‘집사님’이라고 불러줬으니 내가 좋아할 거라고 혼자 착각하며 박수치고 있었겠지.
맘대로 생각해라.
일단 책은 내놓고.
“예. 제가 찾고 있던 책입니다. 이리 주시죠.”
“빛이 나는 책이라니 정말 신기하네요. 여기 있어요.”
새싹은 순순히 책을 넘겼다.
좋아. 이제 이걸 잘 챙겨서 덩치 방 침대 밑에 숨겨두면…
번쩍.
책에서 빛이 났다.
반짝반짝 수준의 빛이 아니라.
도서관 전체를 환하게 물들이는 강력한 빛이.
아, 진짜.
“장난해?”
***
[퀘스트: %&%&$#???^&]^*&!%@&∵^&*%……
저게 뭐냐면.
내가 이 빌어먹을 빛나는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본 시스템 창이다.
퀘스트라고 떡하니 적혀있으니 퀘스트 창이겠지.
그 외에는 읽을 수도 없었다.
책을 덮었더니 퀘스트 창도 함께 사라졌다.
강제로 이해할 수도 없는 퀘스트를 받게 되는 줄 알았는데 잘 됐지, 뭐.
엮이고 싶지 않아서 엔릭에게 모른 척하고 대충 책을 꽂아두고 나갔던 거다.
괜히 펼쳐봤다가 퀘스트 수락이라도 되면 큰일이니까.
그런데 왜!
책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만지기만 했는데!
“강제 퀘스트 수락이 말이 되냐고!”
집에 가고 싶다!
눈앞에 둥둥 떠다니는 퀘스트 창을 확 밀어서 치워버렸다.
어차피 ‘퀘스트’를 빼면 한 자도 못 읽어.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저건 고대어겠지.
책도 고대어로 쓰여있었고.
고대어로 적힌 책이 퀘스트랑 연관이 있다, 라.
설마 시스템이라는 게 그때부터 있었던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마족 놈들.
그 오랜 세월 동안 퀘스트를 해왔는데 아직도 마신 하나 소환 못 했다는 뜻이잖아.
참으로 한심하다는 말밖에 해줄 말이 없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실한 건 여기가 황성은 아니라는 것.
방금까지 도서관 안이었는데 갑자기 초원 위에 서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여긴 어디냐고!”
차라리 사무실에 앉아 이벤트 준비나 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주 자아아암깐 들었다.
< 14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