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48)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48화(148/180)
< 148화 >
고대어로 된 책. 그리고 퀘스트.
분명 시스템에 대해 알아내는 키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퀘스트가 아닌가 싶다.
근데 무슨 퀘스트인지 궁금하지도 않아.
더는 어디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고.
라 엘타의 숨겨진 역사나 비밀 같은 거 궁금하지도 않다고.
난 그냥 대충 시간 보내면서 뒹굴거리다가. 엔릭 생일 축하해주고 영웅 길드 사람들이 이벤트를 마쳤을 때쯤 돌아가서. 조금 한가해지면 앞으로 일 벌이지 않고 평소처럼 모든 일을 덩치에게 떠넘기고. 어느 날 은근슬쩍 ‘어라?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네, 하하하. 지구도 평화롭고. 슬슬 백수 생활을 즐겨도 좋겠군.’이라고 말하며 퇴사해서. 집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놀고 싶어.
내 소원이 그렇게 거창한 거야? 거창한 거냐고!
“여긴 어디죠?”
하. 나도 알고 싶다.
“아시는 게 있으신가요, 집사님?”
새싹이 같이 왔다.
솔직히 왜 왔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은 플레이어도 아닌데. 지구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대어를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죄 밖에 없잖아.
“혹시 플레이어예요?”
“플…레어?”
“부모 중 하나가 지구 출신이에요? 아님 마계 출신?”
“예에? 마계요? 어떻게 그런 심한 말씀을…”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는 별로 상처받아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리고 지구는 뭔가요? 마계의 반대라면… 천계 같은 느낌?”
막상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천국보다 지옥 같다고 외쳐대는 사람들이 더 많을걸?
뭐 이것도 중요한 게 아니고.
“플레이어랑 전혀 연관된 게 없다고? 설마. 상태창, 하고 외쳐보세요.”
“상태창.”
“퀘스트 창, 해봐요.”
“퀘스트 창.”
“아이템 창.”
“아이템 창.”
“……”
“……”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인제 와서 갑자기 다른 플레이어들의 시스템 창 보는 능력이 없어졌을 리도 없고.
그렇다면 새싹에겐 시스템 창이 없고, 시스템 혜택도 받지 못한다는 뜻일 텐데.
그러면 대체 어떻게 퀘스트를 받아서 이 안으로 들어온 거냐고.
“파티 창.”
“파티…”
“아, 방금 이건 따라 하라고 한 말이 아니라 내꺼 보려고.”
“예?”
[파티 인원 2/10NPC 이성한
NPC 레이첼 C. 베렌]
같이 책 만진 게 전부인데 멋대로 파티까지 가입됐네.
심지어 나는 아직도 NPC로 표기되고 있고.
일단, 이 새싹은 플레이어도 아니고 나처럼 돌연변이 NPC도 아닌.
순수 100% 라 엘타 산 NPC가 맞는 거 같은데…
“고대어 할 줄 알아요?”
“설마요.”
“하아……”
혹시 새싹이 고대어로 적힌 표지의 제목을 읽은 게 문제가 된 건 아닌가 했는데.
역시 아니었군.
“저, 집사님도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시는 건가요?”
지금 내 표정이 아는 사람의 표정으로 보입니까?
“길을 찾을 방법도 없는 걸까요? 저는 무조건 연회 전에 돌아가야 해요.”
쉬고 있는 걸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계속 혼자 불평불만 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새싹이도 피해자다.
황제 탄생일을 축하하러 왔다가 봉변당한 거라고.
새싹은 누가 봐도 다급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툭 치면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얼굴.
연회 때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
“왜 연회 전까지 돌아가야 한다는 겁니까?”
“사실… 도서관은 핑계였어요. 제가 황성에 온 이유는 따로 있어요.”
역시 숨기는 게 있었군.
딱 봐도 수상하니까, 더 이상 수상한 티 내지 말고 빨리 털어놓으라고!
“저는…”
새싹은 말을 망설였다.
사실 흑마법사 세력인 ‘어둠’의 잔당이어서 황성 지하 어딘가에 갇힌 다른 흑마법사들을 구하러 왔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테니까 어서 말해봐!
“저는 영웅 이안 님을 만나러 온 겁니다!”
“커헉, 콜록.”
아, 뭐야. 이건 좀 놀랐다.
대놓고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린 줄 알고 깜짝 놀랐네.
“내……가 존경하는 이안 님이 온다는 건 대체 어떻게 알고?”
“그분께서 오신다는 말은 없었지만…”
아. 확신하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그럼 왜 그렇게 당당하게 말해.
난 또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안이 연회에 참석한다는 소문이 쫙 퍼진 줄 알았잖아.
“분명 오실 겁니다. 황제 폐하와 이안 님은 서로에게 유일한 친구니까요.”
“아, 예.”
서로 인간관계가 참으로 편협하여 그 외의 친구라는 게 존재하지 않기는 합죠, 예.
그런데 그게 일면식도 없는 새싹까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지.
“이안 님께서 아직 살아계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정말이지 감격했습니다!”
“네에……”
눈이 살짝 맛이 갔는데, 이 사람?
“도서관에 간 것도, 황성이라면 제가 모르는 이안 님의 기록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갔을 뿐입니다!”
“모르는 기록?”
“예! 라 엘타에 존재하는 모든 기록과 역사서는 다 모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안 님과 한평생을 함께한 전 황제와,”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한평생 함께하지 않았어.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게 들리잖아.
“몇십 년이 지나도 계속해서 우정의 깊이를 더해가시는 현 황제 폐하께서 머문 황성이라면. 분명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아, 예.”
그런 거 없어.
“가장 가치 있는 건 그분의 검술에 대한 기록이지요. 기존의 다른 기사님들과는 색다른 검술… 아아, 분명 이안 님이 창안해 낸, 이 세상에 단 한 명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검술이 분명해…”
그런 거 아닐걸.
그냥 휘두르는 거랑 찌르는 거가 전부야. 검술이랄 것도 없어.
“인간의 육신으로 태어나 어찌하면 그리 강해질 수 있는 것일까요!”
그거 그냥 마기에 대항하여 더욱 강해지는 능력을 타고난 상태에서 마기가 있는 곳들만 골라 돌아다니면 되더라.
“부끄럽게도 저는 그분을 실제로 뵌 적이 없답니다.”
그렇겠지. 나도 너를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나는 이전에 너를 만난 적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하지만 이안 님께선 저희 아버지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으시지요.”
아. 그럼 감정표현이 조금 격할 뿐이지, 그냥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정도인 건가.
오해할 뻔 했잖…
“저희 아버지를 구한 것은 곧 저를 구한 것. 이안 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세요! 그분이 아니었다면! 저는! 태어나지도 못했을 거예요! 숨 한번 내쉴 수도 없었을 거라고요!”
아니, 그건 너무 갔다.
감정표현이 조금 격한 정도가 아니잖아, 이건.
“아버지께서 이안 님에 관한 건 전부 모아두신 덕분에 어렸을 적부터 그분이 늘 곁에 있는 것처럼 자랄 수 있었답니다.”
나를 주제로 조기교육 시키지 마!
“서적뿐 아니라 그분에 관한 것은 싹, 전부, 모조리, 몽땅 모으고 있죠!”
거기에 초상화는 없더랍니까? 그 정도면 웬만하면 내 얼굴 보고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
“이안 님을 너무 만나보고 싶어요!”
지금 바로 앞에 앉아있습니다만.
“그분의 일기장도 갖고 있다고요!”
“아니, 그걸 왜 니가 갖고 있냐!”
아. 생각만 한다는 게 그만.
“예? 혹시 화를 내신 건가요?”
“아니, 설마요. 제가 화를 낼 이유가 있나요.”
완전 있지! 화를 낼 이유 엄청 많거든! 내 일기 왜 갖고 있냐고!
라 엘타에 처음 와서 전쟁에 참전할 때까지 시간 날 때마다 한두 줄씩 쓴 거였단 말이야!
심지어 별 내용도 없었을걸?
[김밥 먹고 싶다.] [샴푸로 머리 감고 비누로 세수하고 칫솔 치약으로 양치하고 싶다.] [콜라 한잔 마셨으면 소원이 없겠네.]이런 내용이 전부였을걸?
“그분의 일기는 처음 보는 언어로 적혀있었는데.”
당연히 처음 보겠지, 한글로 적었으니까!
“무슨 언어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히 아름다웠어요. 그래서 저희 가문에서 연구, 분석을 했죠.”
그사이에 검을 한 번이라도 더 휘둘러서 실력을 키웠겠다!
“그리고 어느 정도 해독하는 데 성공했지요. 발음을 모르니 소리 내 읽을 수도 없고, 정확한 뜻을 이해하는 것도 아직은 어렵지만, 패턴은 완벽하게 파악했어요!”
어? 저건 좀 대단하다.
몇 시간만 붙들고 가르쳐도 금방 한국어 마스터하겠는데?
“아아~ 이안 님이 어쩌고, 이안 님이 저쩌고. 이안 님이 이랬고 그랬고 또 요랬고……”
한번 달리기 시작한 새싹은 멈출 줄을 몰랐다.
“사실 제가 바로 그 이안인데요.”
“아이, 참. 집사님도. 재미없는 거 아시죠? 어디서 우리 이안 님을 사칭하고 난리야.”
그쪽 네 이안 님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아닌 거 같다.
“새싸, 악… 이 아닌 레이첼 씨.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
“응? 제가 제 소개를 했던가요?”
아니, 안 했지.
그쪽이 한 자기소개라고는 ‘취미: 이안, 특기: 이안, 한 마디: 이안 사랑해’ 밖에 없지.
“역시 집사님이셔! 황성에 방문하는 모든 손님의 이름을 외우고 계신 거군요. 정말 유능하셔요.”
“아뇨. 저는 집사가 아니라 이안이고. 제 능력 중에 같은 파티 일행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그쪽이 레이첼 베렌 이라는 걸 확인했을 뿐인데요.”
“아하하, 우리 집사님. 그런 재미도 없는 농담만 안 하셨어도 훨씬 좋았을 텐데.”
이제 아예 사람을 막 치네?
맞은 곳은 안 아픈데 귀가 아파. 제발 그만해.
새싹은 멈추지 않았다.
자기는 빨리 황성으로 돌아가 이안 님이 언제 왔다 언제 가버리실지 모르니 붙박이처럼 붙어있어야 한다고 우겼다.
“그분의 검술을 직접 보고 말 거예요.”
“저의 마지막이 그분의 검에 의한 것이라면 정말로 영광일 거예요!”
“그분의 의지를 이어 이 세상의 몬스터들은 제 손으로 싹 다!”
내 의지는 지금 당장 침묵 속으로 다이빙하는 거밖에 없으니까 제발 좀 조용히 해 봐라!
“저는 꼭 이안 님을 이번에 만나야 해요… 다음번엔 제게 기회가 없을 테니까요.”
“앞으로도 연회는 많을 텐데, 뭐.”
“제겐 쌍둥이 남동생이 하나 있어요. 저만큼이나 이안 님을 존경한답니다.”
저런 새싹이 하나 더 있다고?
“이번에 제가 왔으니, 다음 기회는 남동생에게 돌아가겠죠. 연회를 즐기지 않는 이안 님이 방문할 확률이 가장 높은 이번 연회에 제가 오게 되어 영과… 광… 영광…”
새싹이 서러워했다.
“하지만 여기서 나가지 못하면 이안 님을 만날 수가 없어요. 아아…!”
연인도 가족도 아닌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이렇게까지 서글퍼할 수 있다니.
근데 그거 아냐?
그 사람 지금 네 눈앞에 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연회 전까지 나가려면 지금이라도 발 빨리 움직여야 해요!”
새싹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뭐지? 방금까지 서러워하고 있지 않았냐?
나 얘가 진심으로 무서워지기 시작했어.
***
“이거 좀 보십쇼!”
‘쾅!’
“제가 방금 연회홀에 갔다가…… 어?”
덩치는 텅 빈 이성한의 방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없네.”
일 안 하고 쉬니까 어찌나 좋은지.
좀 오버했나.
이성한, 그놈이 못 참고 도망친 거 같다.
“이성한 님. 부장님. 이성한 씨. 이성한. 성한아. 야, 이성한!”
여기저기 둘러보며 찾아봤지만, 이성한 닮은 사람도 안 보였다.
어디를 간 거야?
문득 덩치의 발걸음이 도서관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긴 뭔가 위화감이……
“으으.”
당연히 위화감이 들지!
연구소에서 그렇게 서류 더미를 주구장창 봤는데.
또 종이 위에 적힌 글자를 보려고 하니까 뇌가 뒤틀리는 기분이다.
빨리 이 앞을 벗어나자!
덩치는 빠른 걸음으로 도서관에서 멀어졌다.
이성한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금방 사라졌다.
어차피 어디선가 알아서 잘 먹고 잘 숨 쉬고 있겠지.
덩치는 맛있는 거나 챙겨 먹고 드러누워 자기로 했다.
< 14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