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50)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50화(150/180)
< 150화 >
얼마 전에 내 플레이어 기능이 돌아오면서, 플레이어가 받을 수 있는 다른 혜택들도 돌아왔다.
대표적인 예로 통역 기능.
하지만 나는 통역 기능 없이도 이미 라 엘타 공용어로 혼자 알아서 잘 소통하고 있었단 말이지.
다른 혜택들도 있어도 없는 듯 별 쓸모 없었고.
덕분에 플레이어 기능이 돌아오기 전과 후의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면서 지내왔다.
언젠가 마계처럼 내가 모르는 언어를 사용하는 곳에 가면 시스템 덕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 #$^&?”
“……”
그딴 건 없었다.
높은 확률로 저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고대어.
고대어에 대해 단 1그램도 아는 게 없기는 한데.
전에 라마가 고대 문헌 내용을 설명해주면서 고대어로 몇 문장을 읽어줬는데 그거랑 비슷한 느낌이네.
그리고 시스템 통역 기능까지 먹히지 않을 정도면 고대어라는 게 가장 들어맞긴 하지.
장난하냐, 시스템.
퀘스트를 통해서 들어왔으면 퀘스트 중에는 대화가 가능하게 설정해놔야 할 거 아냐.
아니면 처음부터 고대어로 된 책을 읽지 못한 플레이어는 퀘스트 진입을 못 하게 막던가.
플레이어한테 퀘스트는 줘야겠고.
고대어 통역은 못 해주겠고.
사람 약 올려?
“어떡하죠?”
이러다 새싹 울겠다.
“어쩔 수 없이 그 방법을 써야겠네요.”
“역시 집사님! 생각해두신 게 있는 모양이군요!”
“예. 바로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이곳의 언어를 배운 후에 도움을 청하는 겁니다.”
“예?”
“그 외의 다른 방법은 없어 보이네요.”
“진심이신가요?”
농담이다.
물론 그 외의 방법은 있다.
바로 라마의 통역 마법!
지구의 온갖 과학적 문물을 접하더니 그걸 마법에 접목한 라마.
집에서 TV 볼 때 아니면 마법 연구한다고 이것저것 손대고 있더라.
그러다가 만들어낸 게, 마법을 스위치 켜고 끄듯 조절할 수 있게 하는 기능.
제일 먼저 통역 마법에 설정해뒀다.
통역 마법 같은 걸 상시 유지하려면 24시간 마력이 소모되어 부담스럽고.
매번 사용할 때마다 새로 마법을 걸려면 시전자가 늘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스위치 설정은 그 모든 것을 보완해줬다.
필요할 땐 켜고, 필요 없을 땐 끄고.
켜져 있을 때만 마력을 사용하면 되고. 시전자가 옆에 없어도 알아서 조절할 수 있어서 상당히 편리하다.
마법계에 한 획을 긋는 대단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드래곤이니까 가능한 거겠지만.
원래 통역 마법에 고대어를 통역할 수 있는 기능은 없는데.
고대 문헌 혼자 뒤져보기 싫으니 같이 하자며 라마가 추가해놨다.
이것도 드래곤이니까 가능한 거지만.
라마에겐 안타깝게도, 아무리 드래곤의 통역 마법이라도 고대어를 읽게 하는 건 불가능하더라.
대신 고대어로 듣고 말하는 건 가능했다.
그때는 이미 사라진 언어로 누구와 대화하겠냐 싶었는데.
이런 날이 올 줄이야.
한동안 연구실에 박혀있느라 계속 꺼놓고 있었던 통역 마법을 켰다.
“여기는 무슨 일인가요?”
오. 된다.
방금까지만 해도 외계어로 들리던 남자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번역되어 귀에 쏙쏙 꽂힌다.
“안녕하세요.”
“세, 상에! 집사님. 저는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이 언어를 아시는 거예요?”
조용히 좀 해봐라, 새싹.
“여기는 어딥니까?”
“타지에서 오셨습니까? 드문 일이네요. 이곳은 라 엘타라고 합니다.”
역시 라 엘타인가.
차라리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라 엘타의 베라포드인가요?”
“베라포드는 이쪽으로 쭈욱 가다 보면 나옵니다. 걸어서 두 시간 정도?”
“혹시 최근에 이상한 일은 없었나요?”
“이상한 일?”
“몬스터가 쏟아져나왔다거나. 땅이 오염됐다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자연재해가 흘러넘치는 일 같은 거요.”
“전혀 없었습니다.”
“이상한 예언 같은 것도 내려온 적 없고요? 세상이 붕괴한다거나 종말이 온다거나…”
고대인의 시선이 수상한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바뀌고 있어서 닥치기로 했다.
“무슨 대화를 하신 건가요?”
새싹이가 질문했지만 대답해주지 않았다.
나는 지금 심란하니까.
아무래도.
과거로 온 거 같은데?
그것도 고대어를 쓸 정도의 아주아주 옛날로.
이걸 어쩐다.
“나뭇가지 좀 빌려주세요.”
“제 검을요?”
그건 검이 아니라 나뭇가지라고.
정신 차려, 새싹!
“예, 뭐. 나뭇가지요.”
퀘스트 창을 해석해달라고 하고 싶지만. 시스템 창을 보여줄 수도 없고, 읽을 수 없으니 읽어줄 수도 없지.
하지만 보고 그리는 건 할 수 있다, 이 말이야.
퀘스트 창을 열어놓고 나뭇가지로 보이는 대로 똑같이 땅에 받아 적었다.
“이것 좀 해석해주시겠습니까?”
고대인의 시선이 더욱 경계하는 이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그래. 내가 봐도 수상하긴 해.
이 시대 사람이 보기엔 천 쪼가리 이상으로는 안 보이는 옷을 입은 사람 둘이. 나뭇가지 하나 달랑 들고 와서 자연재해랑 전염병 얘기만 하다가. 잘 쓰고 있는 언어 직접 적어놓고 해석해달라고 우기는 것처럼 보이겠지.
나라도 그런 사람 만나면 경계하겠다.
그런데 어쩌겠어.
그 잘난 드래곤 마법이 통역은 해주지만 번역은 안 해주겠다는데.
고대인은 수상한 사람 보는 눈을 하면서도 바닥에 적힌 글을 읽어줬다.
친절하기도 하지.
“과거, 하나였던 두 세계가.”
오, 역시 고대인! 고대어쯤은 바로 해석 가능하구나!
“……”
“……”
“설마 방금 그게 끝인가요?”
“그게 끝입니다.”
설마 했는데 진짜로?
하필 여기서 끊기냐.
역시 라마를 데려와서 읽게 해야 했는데.
하나였던 두 세계…
라 엘타랑 마계 이야기인가.
마계. 마계라.
문득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두 고대인에게 시선이 갔다.
그중 오른쪽에 있는 고대인. 정확하게는, 그의 머리에 달린 뿔이 계속 신경 쓰인다.
저 뿔, 설마 마족들의 뿔인가.
“혹시 마족이신가요?”
“아닌데요.”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역시 그건가?
라 엘타와 마계는 원래 하나였고, 뿔이나 날개, 꼬리가 있건 없건 그건 그냥 ‘인간’이라는 그런 설정.
그럼 나는 방금 멀쩡한 사람한테 마족이냐고 물어본 게 되는 건데.
도움까지 받아놓고 완전 무례했네.
고대인이 대놓고 경계하며 자리를 뜨려고 하길래, 이쪽에서 먼저 인사하고 빠져나왔다.
“잘 해결된 건가요?”
새싹이 기다렸단 듯이 질문을 해왔다.
“네.”
“그럼 저희는 이제 어디로 가나요?”
“베라포드요.”
“베라포드의 위치를 안내받은 것이군요! 알겠습니다, 앞장설게요!”
방향이 어느 쪽인지는 알고 앞장서는 거냐.
염려와는 다르게 새싹은 올바른 방향으로 쭉 걸어 나갔다.
아까 고대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이 베라포드 쪽이라는 걸 눈치챈 거구나.
그런데 얘는 갑자기 다른 장소로 이동한 데다가 머리에 뿔 달린 사람까지 만났는데 왜 이렇게 태연해?
“아까 그 남자 말입니다.”
“예.”
“오른쪽에 있는 남자요.”
“예.”
“머리에 뿔이 달려있었죠?”
“달려있었지요.”
혹시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인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군.
“사람 머리에 뿔이 달렸는데 아무렇지 않으신 건가요.”
“개인의 취향은 존중해줘야죠!”
그거 멋으로 붙여놓은 거 아니야. 무슨 오해를 하는 거냐.
개인의 취향도 아니라고.
자기 멋대로 상황에 모든 걸 끼워 맞춰 해석하는 놀라운 재능이 있는 새싹이네!
하지만 그런 천하태평의 새싹이라도, 베라포드에 도착한 후로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이게…”
새싹이 더듬거리며 베라포드를 가리켰다.
“이게 베라포드라고요?”
“그렇다고 하네요.”
“세상에!”
온갖 화려하고 다양한 건물들로 가득했던 도시 베라포드.
그런 베라포드가 소소한 마을이 되어 있었다.
베라포드가 바뀐 게 아니라 우리가 과거로 온 거니까 ‘되어 있었다’라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지만.
여튼 그렇게 됐다.
반 이상이 숲과 나무로 뒤덮여있었고.
가구 수도 적은지 집도 몇 없고.
그냥 평범한 판타지 세상의, 너무 작아서 곧 허물어지기 직전의 마을 같은 느낌.
먼 미래 황성이 생길 장소에도 황성은 없었다.
그저 빈 초원뿐.
잠깐만.
지금 여기서 땅을 좀 사두면 원래 시간대로 돌아갔을 때 땅 부자가 될 기회인가?
아니겠지. 여긴 퀘스트를 위한 가상세계나 마찬가지니까. 실제 라 엘타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할 거야.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새싹이 정신을 차렸다.
“여긴 대체 어디죠?”
“아마 과거인 거 같은데요.”
“과거요?”
“네.”
“그렇구나.”
생각보다 덤덤한데?
그냥 생각을 포기하기로 한 건가?
놀라고, 드러눕고, 징징대고,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는 건 고맙긴 한데.
이렇게 빠르게 납득하고 넘어가도 정말 괜찮은 건가.
“저희는 흑마법에 당한 걸까요? 그때 그 책에 마법에 걸려 있었다면… 발동 조건이…”
심지어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혼자 그러라고 놔두고.
우선 이쪽에서도 고민을 좀 해보자.
퀘스트는 라 엘타와 마계가 두 개로 나뉜 것과 관계가 있다.
높은 확률로 그걸 막거나 혹은 더 빠르게 진행되게 돕는 거 아닐까.
제일 중요한 건 그 책을 어떻게든 보거나 파악을 해야 한다는 건데……
모르겠다.
이럴 때 방법은 역시 하나뿐이지.
“어디 가세요?”
“어. 별건 아니고요. 저기 있는 산 하나만 부숴놓고 금방 올게요.”
“예?”
“보통 이럴 때는 다 부수다 보면 뭐가 나타나더라고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만두세요!”
새싹이가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면 네가 퀘스트 깨 보던가.
나도 원래 시간대로 돌아가서 발 뻗고 자고 싶다고!
“조금만 있어 봐요, 내가 다 해결한다니까?”
“살인은 안 돼요!”
무슨 소리냐. 사람 부술 생각 없어. 이거 놔.
“재앙이 시작될 겁니다!”
이미 과거로 온 것부터가 재앙…… 재앙?
새싹이 한 말이 아니었다.
방금 들린 건 남자 목소리였으니까.
“재앙이 곧 시작됩니다, 여러분! 대피하셔야 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글쎄요.”
내가 산을 부숴서 산사태를 일으키려고 했던 것에 대한 예언?
“저쪽에서 소리가 나요, 집사님. 가보죠!”
새싹이 앞장서서 베라포드 안쪽으로 달려갔다.
마을 한복판에서 한 남자가 혼자 열심히 외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놀랍게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보통 누가 저러고 있으면 신경 쓰이지 않냐?
“여러분! 당장 여기서 도망쳐야…”
“안녕하세요?”
“…하읍니으악!”
왜 이렇게 놀라시나.
“재앙이 시작된다는 게 무슨 소리인가요?”
“아! 재앙에 관심이 있으셔서 오셨군요!”
관심이 있는 거까진 아니고.
“곧 라 엘타에 심각한 재앙이 닥쳐올 겁니다. 어서 모두를 데리고 대피해야 해요.”
옆에서는 새싹이가 무슨 대화 중인지 빨리 알려달라고 두드리고 있고.
앞에서는 남자가 관심 좀 받았다고 신나서 설명하고 있다.
집에 가고 싶다.
“무슨 재앙이 오는데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지진일 수도 있고 산사태일 수도 있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습니다.”
“뭔가요?”
“재앙의 끝에는 이 세상이 둘로 갈라지게 될 겁니다!”
남자의 말에 눈이 확 띄었다.
찾았다.
퀘스트를 해결할 단서.
“그러니 어서 대… 어? 어! 으아악!”
남자를 들고 냅다 달렸다.
“무슨 짓입니까! 납치다, 납치! 살려주세요!”
남자가 고래고래 외쳐댔지만, 다른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기뻐하며 손을 흔들어줬다.
“드디어 가는구먼. 좀 조용해지겠어.”
“이보게 총각, 그래도 폭행은 안 된다네. 어디 멀리 갖다 버리고 와.”
“집사님, 같이 가요!”
마지막은 새싹이 한 말이다.
마을 사람들한테 어지간히 밉보이고 살았나 보네, 이 남자.
“살려주세요!”
안 죽인다니까?
그 재앙이라는 거. 내가 해결해주지!
< 15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