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51)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51화(151/180)
< 151화 >
“자. 그럼 이제 대화를 해볼까요?”
“사람을 납치해놓고 대화를 하자고 해도 되는 건가요, 집사님?”
“네.”
“그렇군요.”
남자는 당황한듯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표정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그렇군요, 로 대충 퉁치지마!’ 정도가 되려나.
물론 새싹이가 하는 말은 알아듣지 못하니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만.
“해를 끼치려고 끌고 온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말고. 아까 하던 말이나 더 해보죠.”
방금까지 덜덜 떨고 있던 남자는 재앙 얘기나 더 해보자는 말에 눈을 빛냈다.
갑자기 끌려왔는데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다니.
그동안 말을 들어주던 사람이 한 명도 없었나 보다.
“아까 말했던 대로입니다. 곧 세상에 혼돈이 올 거고, 그 재앙으로 인해 세상이 둘로 나눠질 겁니다!”
“그게 끝인가요?”
“이게 끝인데요.”
진짜 설마 이게 다라고?
아무 근거나 이유, 추가 설명, 설득 없이?
그냥 재앙이 온다는 말 한마디 찍 뱉어놓으면 모두가 믿어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설마 이 남자가 말하는 세상이 나눠진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그게 아닌 거 아냐?
혹시 오해로 인해 땅 파고 헛물켜는 짓을 한 건 아닌가 싶어 다시 한번 물어봤다.
“세상이 둘로 나뉜다는 게, 땅이 두 쪽으로 갈라진다는 말인가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남자는 답답해하며 혼자 가슴을 쳐댔다.
라 엘타와 마계가 둘로 분리된다는 의미가 맞나 본데…
그런 대단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치고는 너무 아는 게 없잖아.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신 건가요?”
“어…… 저는 사실 예언가입니다.”
“……”
“……”
“거짓말이네.”
“아, 아닙니다!”
거짓말이네.
갑자기 신빙성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무슨 일이예요? 이 사람은 왜 데려온 건가요?”
우리 둘이 대화를 멈추고 침묵하자 새싹이 끼어들었다.
이 퀘스트는 망했어.
거짓말쟁이 예언가랑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새싹과 함께 퀘스트 클리어를 하라는 거잖아.
안 해.
의욕은 뚝 떨어졌지만 새싹이에게 상황 설명은 해주기로 했다.
“우리는 과거, 고대의 라 엘타로 왔습니다.”
“그건 아까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이 세상이 곧 둘로 나뉠 예정이라네요.”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그렇겠지.
“그런데, 그러면 큰일인 거 아닌가요?”
“딱히 그 정도까진 아닌 거 같은데. 어차피 떨어져 나가는 쪽은 마계니까 상관없을걸요.”
“마계요?”
“네.”
“제가 아는 그 마계요?”
“네.”
“마족들과 마수가 있는. 어둡고 축축하고 끔찍하고 지옥 같은 그 마계요?”
“잘 아시네요.”
“아, 그렇구나.”
상황 수용력이 빨라서 좋군.
새싹은 보통의 정상적인 사람처럼 당황하거나 놀라서 이성을 잃는 대신.
플레이어도 아니고 퀘스트를 받은 적도 없으면서 혼자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상이 둘로 갈라지는 걸 막는 게 아닐까요?”
아마도 그렇겠지.
그런데 나는 그렇다 치고. 새싹이는 왜 이렇게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거냐.
“흠. 그럼 세상이 둘로 나뉘는 이유를 먼저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건 뭐. 상관없을 거 같은데.”
“그런가요?”
이거 봐봐. 보통은 그런 이유나 진상을 파악하는 게 훨씬 어렵고 시간이 걸린단 말이지.
그런 자잘한 건 그냥 무시하는 게 나아. 후딱 할 것만 하고 빠져나오는 게 최고라고.
나도 한때는 궁금해서 밤에 잠을 못 자겠다며 이런 일 있을 때마다 발 벗고 나섰는데.
그러면서 몇 번 고생 아닌 고생 하니까 이젠 그냥 집에서 발 뻗고 자고 싶다는 마음만 남았다.
“그러면 둘로 나뉘는 건 어떻게 막을 수 있죠?”
“그러게요.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나와 새싹이 동시에 거짓예언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 뭡니까?”
그러고 보니 이 남자는 나와 새싹이 하는 대화를 못 알아듣지.
마음 놓고 미래의 라 엘타 이야기를 해도 되겠네.
서로를 앞에 두고 편하게 말하는데도 비밀유지가 되다니. 참 편리하다.
“세상이 둘로 나뉘는 그걸 막는 방법은 모르시나요.”
“그, 그게… 신전이… 자연재해가… 재앙이…”
뭔 소린지?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저건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하지 않는 것도 아냐.
말은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사람처럼 횡설수설하던 거짓예언가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는, 사실 주신을 모시는 사제입니다.”
그리고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
“……”
그런데, 뭐. 사제인데 어쩌라고.
사제니까 대우해 달라는 건가?
“……사제라니까요?”
“예. 그런데요?”
거짓예언가사제는 허허, 웃더니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제가 아는 것을 전부 말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도의 신전…”
“자기소개는 건너뛰고 바로 재앙 이야기로 넘어갑시다.”
“……얼마 전에 제가 있던 신전에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꽤 좋은 신전에 계셨나 봅니다.”
“성녀님이 계시는 신전이었으니까요.”
“그래서요?”
“……제가 있던 신전이 성녀님이 계시는 곳이라 해도 놀라지 않으시네요.”
우와아아, 세상에! 정말이요? 정말 대단한 신전에 머무셨군요! 멋져요!
라는 반응이라도 기대한 건가.
꿈 깨고 하던 말이나 계속해줬으면.
“그 신탁이 재앙에 관한 것이었나요?”
“그렇습니다.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은 사실이니까요. 저도 운이 좋아 일부 내용을 알게 됐을 뿐입니다.”
음. 무려 세상이 반으로 쪼개지는 재앙이 온다는데 신전에서 쉬쉬하고 있단 말이지.
“저는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고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쫓겨난 건가.
“그래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쫓겨난 건 아니었나 보군.
“저 혼자라도 나서서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그것이 제 사명. 일개 사제인 제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신의 뜻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 한복판에서 그렇게 대책 없이 소리만 지르고 있었습니까?
마을 주민들은 싫어하던데.
“사명이고 뭐고. 신전으로 가죠.”
“예?”
“신전으로 가서 정확한 신탁인지 예언인지의 내용이 뭐였나 들어봐야죠.”
“시, 신전으로 간다고요…?”
“사람들을 구하고 싶으시다면서요. 갑시다.”
“아…… 아! 예!”
혼자 뭘 이해한 건지.
사제는 벌떡 일어나 달려나갔다.
신전까지 뛰어가려고?
***
다행히 신전이 있다는 수도까지 달려가는 일은 없었다.
사제가 마을에서 구해온 마차를 타고 이동하니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수도로 들어가는 것도 사제라는 신분 덕에 가뿐히 통과!
신전에서 도망쳤다고 지명수배라도 당하고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딱히 그렇지는 않나 보네.
그게 아니면 이 사제가 워낙 존재감이 없어서 아무도 없어졌단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거던가.
“우와, 엄청 크네요!”
새싹이 신전 앞에서 서성대며 말했다.
확실히 원래 내가 알던 라 엘타의 신전보다 두 배 이상 크다.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의 위력이 줄어들기라도 한 건가.
“그런데 어떻게 들어가죠? 무작정 들어간다고 하면 바로 쫓겨날 거 같은 분위기네요.”
“기부한다고 하면 만나주겠죠.”
“이 시대의 돈은 있으세요?”
물론 없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너무 눈에 띄게 수상한 사람들처럼 얼쩡거렸나 보다.
신전 앞을 지키고 있던 사제 하나가 다가와 이쪽을 살폈다.
내 뒤에 숨어있듯 서 있는 사제를 알아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워낙 거지꼴이어서 못 알아본 건가? 아니면 원래 모르는 사이인 건가.
“성녀님은 안에 계신가요?”
“서, 성녀님 말씀입니까?”
“네. 성녀를 만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그저 당당하게 원하는 걸 요구했을 뿐인데, 뒤에 서 있던 사제가 왜 그러냐며 옷을 잡아당긴다.
당신이야말로 왜 그러십니까. 남의 옷 잡아당기지 마!
“성녀님을 만나 뵙는 건 불가능합니다. 죄송하지만 돌아가 주시지요.”
“그러면 교황이나 아무나 높은 사람 좀 데려와 주세요.”
“어, 어디서 그런 무례한…!”
신전을 지키던 사제는 눈을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뜨고 바들바들 떨어댔다.
어디 아픈가.
“기부할 게 있어서 그러니 성녀 좀 만나게 해주세요.”
“기부라면 여기서 하셔도 됩니다만!”
“제가 기부할 게 돈이 아니어서요.”
사제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다.
돈도 아닌 별 쓸모없는 거 기부한다고 무시하는 건가.
돈보다 더 값진 걸 가져왔는데 뭘 모르네.
“저야 여기에 기부하고 가도 괜찮지만. 혹시 문제 생기면 책임은 그쪽이 지실 건가요?”
“기부를 하는 것에 무슨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생기겠습니까.”
“아.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에이, 성녀 만나게 해주는 거 아니면 돌아갈래. 기부 안 하지 뭐. 어쩌면 이 기회를 날린 것에 대한 책임도 그쪽이 져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기부란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아…”
“성수인데도?”
“뭐?”
“내가 기부하려고 하는 거. 성수인데.”
“……허억!”
이 시대의 돈은 없어도 화폐가치로 사용할 만한 건 쌓여있다고.
신전에 왔으면 성수 좀 풀어줘야지.
어차피 남아돌아서 좀 줘도 타격하나 입지 않는다.
“그, 저… 어… 이, 이쪽으로!”
고대의 라 엘타는 성수가 넘쳐나서 필요 없다고 하면 뭐를 제시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다행히 이 시간대에도 성수는 귀한가 보다.
성수를 날려 먹은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았던 사제가 안쪽으로 뛰쳐들어가더니, 10분도 되지 않아 다시 나왔다.
“성녀님께 안내하겠습니다.”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출입허가를 받은 것은 나 하나뿐.
새싹과 사제는 신전 밖에 남아있게 되었다.
새싹을 혼자 두면 무슨 돌발행동을 할지 몰라 걱정됐을 텐데. 말은 안 통하겠지만 그나마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네.
“이쪽입니다.”
신전 앞에 서 있던 사제는 안내가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사라져버렸다.
“실례하겠습니다.”
방으로 들어가자 넓고 밝은 방 안에 한 사람이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아마 성녀겠지.
성녀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저는 무슨 일로 찾으셨는지요.”
“세상이 둘로 갈라질 거라는 신탁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인사 같은 건 생략하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성녀도 딱히 즐거운 대화시간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지 칼같이 답했다.
“안 됩니다.”
“왜 안 된다는 거죠?”
“그것도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알려주기만 하면 성수를 기부할 건데?”
“그래도 안 됩니다.”
단호하시네.
“이것은 성수 조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
‘와르르륵’
성녀의 앞에 아공간 주머니를 탈탈 털어냈다.
대량의 성수가 와르르 쏟아져나왔다.
“헉…! 세상에.”
성녀는 말도 끝맺지 못할 정도로 당황해 더듬거렸다.
성녀 정도 되면 이런 상황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하는 거 아냐?
방금까지 짓고 있던 가식 미소는 어디 갔어?
그게 아니면, 내 생각보다 성수가 더 귀한 건가.
성녀는 성녀답지 않게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다.
“어허. 아직 거래가 안 끝났는데 어딜 만지려고 해요.”
“하지만… 기부란 거래가 아니…”
“그럼 기부 취소. 기부할 생각 없으니까 거래로 하죠.”
성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여기 있는 성수랑 정보 교환. 콜?”
성녀가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양의 성수였다.
< 151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