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52)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52화(152/180)
< 152화 >
“재앙의 계기가 되는 씨앗이 있습니다.”
“씨앗?”
씨앗이라는 건 그냥 비유인가? 아니면 진짜 심으면 나무나 꽃이 자라는 그 씨앗?
“아직은 해가 되지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끔찍한 악몽이 될 씨앗이죠.”
“씨앗이 어떻게 세상을 반으로 쪼갠다는 거죠?”
“그것은 저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아는 게 뭔데?
“그러니까 그 씨앗이 다 자라면 해가 될 거라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게 얼마나 걸리는데요. 100년? 1000년?”
“5년입니다.”
코앞이잖아!
게다가 신탁치고는 엄청 디테일하지 않나?
원래 신이라는 게 저렇게 상세한 것까지 다 세세하게 알려주고 그래?
해석하다가 머리 터질 정도로 배배 꼬아놓는 게 신탁 아냐?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죠.”
“뭔가요?”
“이 사실을 왜 숨기고 있는 건가요?”
“……”
“이렇게까지 상세한 내용을 알고 있으면 5년 기다릴 것도 없이 지금 당장 그 씨앗을 없애버리면 되잖아.”
“……”
대답하지 못하는 걸 보고 대충 눈치챘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네.
이쪽은.
세상이 분리되길 바라는구나?
왜지?
혹시 신전의 의지가 아니라 신의 뜻인 건가?
뭐. 내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지.
대충 퀘스트만 하고 나가자. 나는 이런 일에 더 이상 크게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성녀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아하게 떠나……지 않고 주섬주섬 성수를 챙겨갔다.
아주 물욕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이 보기 좋군요.
“씨앗이 있는 장소는 어딘가요.”
“아까의 질문이 마지막이라고 하셨습니다.”
“대답을 안 해줬잖아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탁’
성수 한 병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마,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관심 없는 척이라도 좀 해라.
뚫어져라 성수만 쳐다보고 있지 말고.
성녀는 몇 번이고 고민하다가 결국 대답 없이 방을 나갔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미련 가득한 표정으로 성수를 바라보던 성녀.
그럴 거면 그냥 싹 다 불어버리고 가든가!
이쪽은 대체 성수가 얼마나 메말라 있는 거야. 왜 저렇게 성수를 못 얻어서 안달이냐.
성녀가 감추고 있는 진실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거 같긴 한데.
그래도 뽑아낼 건 다 뽑아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왜냐?
퀘스트 창이 새로 업데이트됐거든.
방금 들은 이야기 중 무언가가 퀘스트 진행 상황을 충족시켰다.
이 퀘스트를 하러 들어온 플레이어는 당연하게도 고대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보통은 말이지.
그래서 플레이어는 퀘스트 클리어를 위해 고대어를 익히고, 신전에서 숨기고 있는 사실을 알아낸 후. 씨앗까지 찾아내 없애고 재앙을 막아야 한다.
이걸 하라고 5년이란 시간을 준 거겠지.
운이 나빠서 시간을 못 맞추면 다 자란 새싹과 치열한 전투를 해야 할지도.
어디까지나 보통의 기준에서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나의 경우, 고대어 통역 덕분에 이 정도는 가뿐히 돌파.
5년이고 나발이고. 이틀 내로 끝내주겠다고.
불만 있냐, 시스템?
불만 있으면 나와서 직접 얘기해.
신전 밖으로 나오니 새싹과 사제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제는 퀭한 눈을 하고 있었고. 새싹은 옆에서 혼자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그래서 이안 님이, 거기서 바로 이렇게…!”
“으, 으으…”
“그리고 요렇게!”
“으아아…”
아니,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고 있는데 소통이 되나?
사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텐데 뭐가 그리 신난다고 그러고 있어?
저 새싹, 일주일만 더 여기 남았다가는 이안교 같은 걸 설립해버리겠네.
당장 라 엘타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사제님.”
“세상에, 이제 오셨습니까! 기다렸습니다!”
사제가 미친 듯이 반겨주었다.
그사이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것 좀 해석해주세요.”
새싹이가 들고 다니는 ‘검’이라는 이름의 나뭇가지로 퀘스트 내용을 바닥에 적었다.
“뭐라고 적혀있죠?”
“‘마신의 씨앗’의 행방을 찾아냈, 이라고 적혀있네요.”
“그게 끝인가요?”
“그게 끝입니다.”
아, 또 중간에 끊겼어.
이것도 책을 끝까지 안 읽어서 그런 거야?
아니면 성녀가 제대로 말을 다 안 해줘서?
진짜 답답하네.
“재앙의 해결법에 대해서는 알아 오셨습니까?”
“대충? 무슨 씨앗이 있어서 그걸 찾아내야 하는데, 위치를 모르겠네요.”
“씨앗 말씀입니까?”
“네.”
사제는 그 말을 듣더니 생각에 잠겼다.
“짐작 가는 곳이 한군데 있습니다.”
“정말로?”
“예. 신탁이 내려온 직후, 다른 성기사님들과 사제님들이 브로키아 산맥으로 보내졌습니다. 무언가가 그곳에 있으니 보내진 게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쉽게 위치를 찾는다고?
말만 들으면 가능성이 큰 정도가 아니라 저게 그냥 정답이긴 한데…
이쪽에서도 일단 사람을 보내긴 했었구나.
그 씨앗이란 걸 없애기 위해서?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우리의 다음 목적지가 브로키아 산맥이라는 거지.
“갑시다!”
“지금요?”
“그럼 지금 당장 가야지 언제 가려고요? 재앙 후에 가시려고요?”
“듣고 보니 맞는 말입니다. 갑시다!”
***
브로키아 산맥으로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근방까지는 마차로 이동할 수 있어도 산을 타고 오르는 건 직접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게 문제였지만.
“허어, 헉… 흐, 헉… 크흡… 언제… 언제 도착…”
“금방입니다.”
“크허어억, 나 죽어어… 흡… 안, 되겠… 허억…”
“다 왔습니다.”
저런 대화를 반복하며 산을 오른 지 4시간째.
결국, 다리에 힘이 풀린 사제는 흐물거리며 땅바닥에 엎어졌다.
“신이시여. 저는 신의 곁으로 갑니다.”
“체력이 많이 약하시네요. 조금만 더 기운을 내시죠, 사제님!”
언어도 안 통하면서 사제를 위로하는 새싹.
새싹은 의외로 전혀 지치지 않고 잘 따라왔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거의 다 와 간다는 말은 사실이니까.”
“그 말씀은 세 시간 전부터 하셨던 거 같습니다만!”
“하지만 이번엔 진짜예요. 저기 봐요. 뭐가 보이잖아요.”
“대체 뭐가 보인다는 겁니까.”
“저기, 저거요.”
손가락으로 거대한 무언가를 가리켰다.
“저 몬스터요.”
[크아아아, 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악!”
두 눈 크게 뜨고 뭐가 있나 둘러보던 사제는 미친 듯이 괴성을 질렀다.
“누가 봐도 이 장소랑 안 어울리는 몬스터가 있는데. 딱 봐도 뭔가를 지키고 있다는 삘이 오지 않나요?”
“저 몬스터, 지금 저희 쪽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뒤쪽에 동굴이 있네요. 마신의 새싹이 저기 있는 게 확실해요!”
“몬스터가 지금 저희 쪽으로 달려오고 있다고요!”
“이렇게 쉽게 찾을 줄이야. 운이 좋네.”
“몬스터가 오고 있다고오!”
사제가 괴성을 질러대는 와중에, 새싹이 나뭇가지를 들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제게 맡겨주세요!”
그래. 저 몬스터는 새싹에게 맡겨두면…응?
아니, 저기! 잠깐. 기다려! 상식적으로 진짜 몬스터를 앞에 두고 나뭇가지 하나만 달랑 들고 나가는 건 무슨 멍청한…
‘서걱!’
새싹이 멋지게 몬스터를 베어냈다.
……베어냈다?
“제가 지켜드린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집사님?”
멋진 마무리 포즈를 지으며 허세 듬뿍 들어간 대사를 던지는 새싹.
“어… 예. 그런 말 했었죠.”
“저를 믿지 않고 계셨죠? 제가 허언증 심한 조금 이상한 귀족이라고 생각하셨죠?”
아니. 조금 이상하지 않고 많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보셔요! 이안 님처럼 나뭇가지로도 몬스터를 베어낼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건 좀 아니지 않나.
내가 이해하는 ‘나뭇가지로 몬스터를 벤다.’랑 방금 네가 한 거랑은 상당히 다른 거 같은데.
“그건 그냥 나뭇가지에 마법을 두르고 휘두른 거잖아.”
“앗, 들켰나요?”
새싹이 해맑게 웃었다.
앗, 들켰나요? 가 아니라고.
언제는 이안 님을 존경하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 훌륭한 검술이 어쩌고 하지 않았나?
나뭇가지도 멋진 검이 될 수 있다며!
이미 엄청 훌륭한 마법사구만 뭔 놈의 검사?
“검술을 배우기는 했지만. 역시 한계가 있더라고요.”
나뭇가지를 휘두르던 포즈가 예사롭지 않았던 걸 보아 검술도 상당히 열심히 배웠던 거 같은데.
“저는 이안 님처럼 하고 싶은데. 아무리 해도 나뭇가지로 몬스터를 써는 건 무리더라고요!”
그러니까 나뭇가지에 집착하지 말라고.
누가 들으면 내가 나뭇가지로 몬스터 퇴치하고 다닌 미친놈인 줄 알겠다!
그냥 급할 때 한두 번 쓴 게 다라고!
“그래서 답은 마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이안 님은 마법의 마 자도 모른다만.
“분명 역사서에는 실려있지 않지만 이안 님도 그런 식으로 나뭇가지를 운용했다고 생각해요.”
아니, 전혀 달라. 그냥 진짜 검처럼 휘둘렀던 게 맞아.
“이안 님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어요.”
골치 아프네.
새싹이의 해맑은 미소를 보니 머리가 아파진다.
어쨌든 이 새싹은 드물게도 검과 마법을 같이 다룰 수 있는. 요컨대 마검사라는 건가.
보아하니 재능이 조금 있는 수준도 아니고.
나름대로 천재라고 불릴만한 인재다.
라 엘타의 미래가 밝네.
잘 됐다, 엔릭.
근데 마무리가 약해.
[키야아아악!]쓰러진 줄 알았던 몬스터가 벌떡 일어나 새싹을 덮쳤다.
“아앗!”
상식적으로 저만한 몬스터가 한 대 맞고 뒈지겠냐!
덩치 크고 사나운 곰처럼 생긴 몬스터가 새싹의 머리를 앞발로 후려치기 직전.
[끄,아아아아!]‘콰-앙!’
이쪽에서 먼저 주먹으로 패서 날려버렸다.
[켁,]몬스터는 날아가 구석에 처박혔다.
“와아, 집사님도 꽤 하시네요!”
평정심 마스터 새싹은 밝게 웃는 것만으론 모자랐는지 박수까지 쳤다.
“이안 님과 같은 곳에서 오신 분들은 모두 그렇게 강한가요? 물론 이안 님이 제일 강하시겠지만요!”
그게 나라고.
“아아, 저도 이안 님의 고향에 가볼 수 있었으면… 어쩌고저쩌고…… 이안 님이 이렇고 이안 님이 저렇고…”
또 시작이다.
처음 만났을 땐 저런 이미지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새싹의 말이 길어지기 전에 몬스터가 지키고 있던 동굴로 들어갔다.
“저기 뭐가 있어요.”
저게 씨앗인가?
……씨앗?
작고 검은 그것은, 몸을 웅크리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이건…
“새끼 용?”
“귀여워라!”
이거 죽여야 하는 건가?
까망이랑 라마가 동시에 생각나서 좀 그렇네.
“이것 보세요, 집사님.”
새싹이 용을 집어 들고 고양이 다루듯 쓰다듬었다.
쟤는 겁도 없나?
괜히 만졌다가 갑자기 눈을 확 뜨고 공격해오면 어쩌려고 저래?
“이리 주시죠.”
“죽여야 하나요?”
“그래야 할지도 모르죠.”
“정말 슬픈 일이네요.”
전혀 안 슬퍼 보이는데?
새싹한테서 용을 받아들었다.
이게 마신의 씨앗 맞겠지?
이렇게 작은 용이 5년 후에 세상을 두 개로 나눌 정도의 힘을 갖게 된다는 건 이해가 안 되지만.
신이랑 시스템이 동시에 그렇다는데 믿어야지 어쩌겠어.
용을 한 손으로 잡아 들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단칼에…!
처리하지 않고 아공간 주머니에 쏙 넣어버렸다.
“앗! 뭐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업데이트된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동시에 눈앞이 바뀌기 시작했다.
오. 이렇게 해도 퀘스트 완료로 쳐주는 건가?
“헉, 이게 무슨 일입니까!”
몬스터가 나타난 순간부터 다리에 힘이 풀려 널브러져 있던 사제가, 괜히 동굴까지 기어왔다가 희미해지는 나와 새싹을 목격했다.
기겁하는 사제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재앙은 내가 막아줬다. 잘 살아라, 사제.
“어엇, 저기!”
사제가 부르며 달려왔지만.
그러면 뭐해.
이미 우리는 원래 시간대의 라 엘타로 돌아왔는데.
“시간에 맞춰 돌아왔다! 와하, 아하… 하?”
돌아… 온 건가?
“집사님? 여긴 어디죠?”
나도 몰라.
분명 라 엘타는 라 엘타 인 거 같은데…
우리가 도착한 곳은 또 다른 장소.
완전히 다른 모습의 라 엘타였다.
< 152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