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54)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54화(154/180)
< 154화 >
“그럼 이제 어떡하지?”
배가 부르니까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오늘은 그냥 집에 가서 잘까?”
“그게 무슨 무책임한 소리입니까?”
“아니, 왜. 어차피 바꾸는 건 과거잖아요. 오늘 돌아가서 바꾸나 내일 가서 바꾸나 거기서 거기지, 뭐.”
“전혀 다르다고 보는데요.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과거 퀘스트를 받을 방법이 영영 없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이디어라도 제시해보든가.”
덩치와 실랑이를 벌이는 척하며 누워있었다.
대화가 끝날 때까지만 이러고 있자.
누우니까 마기가 더 잘 느껴지는 게, 불쾌하면서도 소화도 잘되고 좋네.
나는 마기에 노출될수록 빨리 강해진다고 했나?
이참에 힘도 더 강해지고 잘됐네.
“제가 한번 다녀와 볼까요?”
진짜로 자리를 잡고 드러눕기 직전. 새싹이 다시 한번 의견을 제시했다.
“제가 아직 귀족이라면 이런 작은 곳의 영주를 만나는 게 어렵지 않을 거예요.”
“귀족이 아니라고 하면?”
“멀리서 온 귀족인 척 우겨보고, 그래도 안 되면 포기하면 되죠.”
그거 엄청 좋은 방법인데?
“제게 맡겨주세요!”
새싹이 당당하게 외치고 영주 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두 시간 후에 돌아왔다.
“다행이에요. 저희 가문은 아직 귀족인가 봐요.”
“그런가요? 잘됐네요.”
“저를 알아보고 들여보내 줬어요. 황제 폐하… 아니, 마그웨이 자작가에 대해 알아 왔답니다.”
방금 내가 잘못 들었나.
“어디…… 자작, 자작가요?”
“예. 자작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니.
이런 썰렁하고 재미도 없는 농담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은데.
자작이라니 이게 무슨 자작나무 타는 소리야.
“자작이요?”
“네.”
“진짜 자작이요?”
“네. 황제 폐하도 아니고 공작도 아니고 자작이요.”
어쩌면 황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다.
내가 배신자라고 낙인찍혔을 정도면 여러 가지로 바뀐 게 많을 테니까.
그래도 솔직히. 황제는 아니더라도 원래는 공작이었잖아.
갑자기 왜, 어떻게, 대체 어쩌다가 공작이 자작이 되어 있는 건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주소도 알아 왔나요?”
“물론이어요.”
“수고했습니다. 당장 가보죠.”
내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선 못 참겠다.
바로 이동하기 위해 조리 도구 등을 아공간 주머니에 넣고 있는데, 새싹이 손에 무언가를 쥐여줬다.
이게 뭐야. 그냥 나뭇가지잖아.
……나뭇가지?
뭐야. 이걸 왜 나를 줘?
게다가 이 나무, 과거 퀘스트 중에 주운 나뭇가지 같다.
아무리 보고 다시 보고 또 봐도 그때 그 나뭇가지가 맞는데? 여기까지 어떻게 전송된 거지?
“이건 왜 저를 줍니까?”
대답 없이 방실방실 웃기만 하는 새싹.
아. 설마 그건가?
아까 경비병들한테 배신자 이안이라며 쫓긴 것도 다 목격했기도 하고.
‘영웅 이안이 왜 배신자가 되었나’를 주제로 한 대화를 생각해보면.
내가 바로 그 이안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고 봐야겠네.
놀란 기색도 전혀 없고. 너무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서 내 정체가 발각됐다는 걸 미처 몰랐네.
숨긴 적도 없지만.
“내가 이안이라는 걸 이제야 믿어주는 거군요.”
“아뇨. 그건 아닌데요.”
아니라고?
“경비병들에게는 거짓으로 이안 님이라 속이고 영주님을 만날 시도를 했다는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그 경비병들도 나를 이안이라고 알아봤잖아요.”
“이안 님은 초상화 하나 제대로 남아 있는 게 없는걸요. 알아보는 사람들은, 사실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보고 분위기상 알아보는 척만 하는 거예요.”
저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그동안 날 알아본 라 엘타인은 없었던 거 같기도 하고.
나를 바로 알아본 사람들은 원래 알던 사이인 귀족들뿐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설마 했는데 진짜 초상화 하나 남아 있는 게 없구나.
하긴. 초상화 한 장만 그리자고 찾아올 때마다 도망쳤는데. 그런 게 있는 쪽이 더 신기하겠다.
“그럼 내가 배신자 이안 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왜 해석해준 건데요.”
“그건 집사님이 이안 님이라고 생각해서 한 말이 아니라. 이안 님이 배신자라고 불리는 것 그 자체에 초점을 맞췄을 뿐인데요?”
그런 거였냐.
“하지만 집사님이 이안 님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생기고 있어요! 조금만 더 힘을 내주세요!”
뭔 힘을 내.
힘 안 내도 내가 이안이고 이성한이라고.
대체 뭐를 이기기 위해 힘을 내야 하는 거냐.
“집사님이 이안 님이라면, 정말 좋을 거예요.”
아, 예.
대체 어떤 반응을 해줘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보통 이런 경우엔,
존경하던 이안을 알아보지 못하고 막말하던 새싹.
자신이 집사라 홀대하던 사람이 사실 존경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경악하게 되는데…!
라는 전개여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전에 홀대한 적도 없으니 성립되지 않는 거 같기도 하면서도.
새싹이 반응이 너무 침착해서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울 지경이라고.
진짜 이안 님이 맞냐며 온갖 호들갑을 떨고 사람 귀찮게 하는 거보다는 나은데.
내 예상과는 달리 사람을 앞에 두고도 너무 덤덤하니까 오히려 소름 끼친다.
저러다 또 어떤 돌발행동을 보일지 몰라서 무섭단 말이야.
“이럴 때가 아니죠. 어서 가요. 이안 님이시라면 황제 폐하와 만났을 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시겠죠?”
……음?
내 손에 나뭇가지를 쥐여준 것까진 좋은데.
손 놔줄 때도 되지 않았냐?
왜 아직까지 잡고 있어.
그리고 왜 그런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고 있는 건데, 부담스럽게.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제가 이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아닌데요? 의심만 하고 있다니까요.”
그런데 왜 입이 귀에 걸려있냐고.
“아무리 봐도 확신하고 있는 거 같은데.”
“자, 어서 출발합시다~”
새싹이 기운차게 앞장서서 나섰다.
다시 봐도 내가 이안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왜 저런 행동을 하냐고.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냐고!
“자의식과잉이네요.”
덩치가 뒤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저건 왜 또 시비야.
***
더 이상 놀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세상이 아주 그냥 싹 다 엎어진 것도 그렇고.
영웅이었던 사람이 배신자가 된 것도 그렇고.
공작에서 황제까지 됐던 사람이 자작으로 떨어졌다는 것도 그렇고.
이미 놀랄 일은 차고도 넘쳐서 더는 놀라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따로 다스리는 영지도 없이 저택에서 산다는 마그웨이 자작을 찾아갔다.
도시나 마을에서 떨어져서 외딴곳에 사는 건 그렇다 쳐.
뭐 간혹 그런 나홀로 라이프를 즐기는 귀족도 있으니까.
하지만 저건 누가 봐도 저택이 아니야!
이 정도면 어이가 없다 못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마그웨이가 산다는 저택은… 귀족이 살 만한 곳은 전혀 아니었으니까.
“레이첼 씨. 정말 이곳이 맞나요?”
“예. 한 치의 오차도 없어요!”
제발 한 치의 오차라도 좋으니 있어 달라고 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저택이 왜 저 꼴이냐고.
지금은 없어진 내 베라포드 저택보다 작은 거 같은데?
게다가 유령의 집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너덜너덜하잖아.
귀족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런 곳에 사람이 살 수 있기는 해?
“이게 뭐냐고!”
“저택?”
“저거의 어디를 보면 저택이라는 말이 나오죠?”
“그러면… 폐허?”
남의 일이라고 막말하는 덩치의 옆구리에 사랑의 주먹을 꽂아주고 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십니까.”
다 쓰러져가는 저택의 문을 열고 나온 것은 아들 쪽 마그웨이였다.
며칠 전에 보긴 했는데 체감상 몇만 년 만에 만난 기분이다.
원래 알던 모습보다 볼살도 쏙 빠지고 수척해 보이는 마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마그…”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웨이…”
나를 기억 못 하는 건가?
“나를 모르나?”
“죄송합니다. 저는 처음 뵙는 듯한데… 실례가 아니라면 누구신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실례야. 실례라고!
바로 며칠 전까지 우리 집에 눌러앉아 있던 놈이 왜 나를 기억 못 하는데?
마그의 잘못은 아니지만, 배신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쪽 세계에선 엔릭과 내가 친구가 아닌 건가?
그래서 마그를 본 적도 없는 거고?
아니, 어쩌면 친구였을 수도 있겠지.
내가 몬스터 퇴치 겸 마기 정화라는 이름의 테러를 하고 다니는 사이에 배신자로 낙인찍혀 아들 마그웨이는 만나본 적 없는 걸 수도 있어.
“처음 뵙겠습니다. 이성한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사아실, 나 때문에 가문이 몰락했다는 가능성이 아아아주 조금이라도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당당하게 나는 이안이고, 너는 나를 존경해야 해. 라고 말할 만큼 뻔뻔한 사람은 아니거든.
이럴 때는 눈치 보고 모른 척 하는 게 상책이다.
“곧 엔릭의 생일이라 찾아왔는데요.”
아, 무의식적에 엔릭이라고 해버렸네.
남의 아버지 이름 막 부른다고 화내는 건 아니겠지?
“아버지 손님이셨군요. 들어오세요.”
내가 알던 것보다 무기력한 모습의 마그웨이가 우리를 안내했다.
엔릭의 묘로.
“이게 뭐야!”
아까부터 이게 뭐냐는 말만 수십 번 반복한 거 같은데.
저 말 밖에는 말이 안 나와.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엔릭이… 죽었다고?”
마그웨이가 뭐라고 대답한 거 같기는 한데.
귀가 꽉 막힌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마그웨이가 따라오며 말을 걸었지만 무시하고 나와버렸다.
한참을 걸어서 저택에서 멀어지고. 베라포드에서도 멀어지고.
대체 여기가 어디에 붙어있는 무슨 땅인지도 모르는 곳까지 걸어와서야 멈춰 섰다.
“정신이 좀 듭니까?”
“집사님, 괜찮아요?”
딱 봐도 내가 충격받은 게 보였던 걸까.
덩치랑 새싹이 걱정해주는 게 느껴진다.
새싹은 그렇다 치고.
덩치, 넌 징그러우니까 하지 마.
“안 되겠다.”
“뭐가요?”
“과거로 돌아가자.”
“예?”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모든 걸 바꿔놔야겠어.”
덩치가 인상을 썼다.
말리지 마. 말려도 갈 거야.
“엔릭의 생일 전까지 이 세계를 원래대로 돌려놓겠어. 그게 내 생일 선물이다!”
덩치가 내 등을 두드렸다.
그러니까 말리지 말래도?
“당연한 걸 뭘 그리 대단한 거처럼 말합니까?”
아. 말리는 게 아니었구나.
“그럼 세상을 이딴 식으로 바꿔놓고 아무것도 안 하려고 했습니까?”
그렇게 물어보면 할 말은 없네.
“쓰레기 투척한 당사자면서 그런 거로 선물을 퉁치려고 하다니. 인성 봐.”
“다른 선물도 줄 거라고요.”
“설마 멋있는 척한다고 그렇게 당당하게 선언한 거 아니죠?”
“아니라고. 아, 비켜.”
나는 덩치가 저런 말을 한다고 해서 감정이 상하진 않는다.
다만 덩치가 너무 달라붙는 거 같아서 가볍게 톡 쳐줬다.
“으악!”
덩치가 데굴데굴 굴러가 구석에 처박혔다.
“집사님. 어떻게 다시 과거로 갈 수 있는지는 알고 계시나요?”
이 구역 단단한 멘탈을 담당하고 있는 새싹이 물었다.
“당연히 모르죠.”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일단 그 전에, 데려와야 할 용이 하나 있습니다.”
“네? 용이요? 과거에서 만난 그 검은 용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거는 내 주머니에 있고. 다른 용이 있어요.”
라마라고 하는 용이 있지.
“그분은 과거와 집사님을 기억하실까요?”
“그건 모르겠지만… 저를 기억하고 있는 편이 좋겠죠.”
라마한테.
< 15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