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61)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61화(161/180)
< 161화 >
“고대 문헌의 일부는 드래곤이 소유하고 있다는 말이 있네…”
황제는 자기가 말해놓고 엄청나게 눈치를 봤다.
설마 거짓말하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웬 드래곤? 드래곤이 이런 거에 관심 있다는 말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데?”
“고대 문헌이란 자고로, 엄청난 가치를 가진 것일세.”
“물론 가치야 있겠지.”
하지만 반짝이고 화려하고 멋지고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가치 있는 것을 밝히는 드래곤한테는 그저 종이 쪼가리일 뿐이다.
마법서도 아니고. 갖고 있어봤자 지식을 쌓는 데도 도움 되지 않는 책들을 굳이 드래곤이 모을 리가.
물론 저건 내가 생각하는 드래곤의 이미지일 뿐이고 실제는 다를 수 있으니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라마. 너 이런 거 좋아해?”
“관심 없다.”
라마는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서서 책들을 다 찢어버리고 싶단 표정이었다.
“드래곤이 고대 문헌을 모은다는 정보는 확실해?”
다시 황제에게 물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 말이 있는 건 맞네. 하지만 드래곤이 어디 있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지금 네 눈앞에 있는 저 빨간 머리가 바로 드래곤이야.
“…인간에게 협력해줄지는 장담할 수도 없네.”
인간한테는 협력하지 않아도 같은 드래곤에게는 협력 해주겠지.
만약 그 드래곤이 라마를 돕지 않는다면.
이쪽에서 그 드래곤을 ‘인간에게 협조하고 싶어 하는 드래곤’으로 만들어주면 되니까 괜찮다.
그거야말로 내 전문분야지!
상당히 불확실한 정보지만 지금은 뭐든 시도해봐야 할 때다.
“그럼 드래곤을 찾아보자.”
“어떻게 찾을 건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 드래곤인 너가 찾아야지.”
“아무리 나라고 다른 이들이 어디 있는지는…”
“못 찾는다고?”
“…찾을 수 있다.”
고작 드래곤을 찾는 간단한 임무를 맡겼을 뿐인데도 라마는 불평불만이 심했다.
“미안하다, 내가 내 손으로 드래곤 종을 멸하게 생겼구나.”
라마가 혼자 중얼거렸다.
“드래곤은 다 찾고 그러고 있는 거냐?”
“드래곤을 무슨 무밭에서 무 찾듯이 찾으려는 건가. 우선은 내 레어로 가야 한다.”
“레어로 가면 연락처라도 있나 보지?”
“그렇다.”
누가 봐도 비꼬듯이 한 질문이었는데. 진짜 있는 거냐.
“다른 드래곤의 연락처가 있다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닌가?”
“드래곤 밭이 우리를 기다리는데 당연히 좋아해야지!”
“잘 들어라, 인간. 우리는 성현 인간의 드래곤 펫을 늘리기 위해 다른 드래곤들을 찾으려는 게 아니다.”
“같은 처지에 놓인 드래곤이 많으면 너한테도 좋지 않아?”
“절대, 좋지, 않다! 그러니까 상상도 하지 마라!”
“뭐. 네가 우리 집 유일한 펫 드래곤 포지션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야. 그 정도 편의는 봐줄 수 있어.”
라마는 아니라며 괴성을 질렀다.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저렇게 날뛰고 그래.
저러다가 인간 모습인 채로 브레스도 쏘겠네.
한참 동안 난리를 치던 라마가 겨우 진정하고 말을 이었다.
“정확하게는 연락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연락 수단이 있는 거다.”
“그래, 알겠으니까 빨리 가보자.”
“하지만 내가 연락한다고 해서 저쪽에서 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 알았다니까?”
“그리고 특정 드래곤을 찾는 게 아니라, 근처의 다른 드래곤을 찾아내는 것에 가까우니 마음의 준비를 해라.”
“아, 랜덤이야? 그런데 그게 왜?”
“그들이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드래곤이 나한테 우호적이지 않을까 봐 걱정돼?”
“그렇다. 동족의 안위가 걱정된다. 제발 다른 드래곤을 보면 주먹부터 날리지 않게 마음의 준비를 해달라.”
라마는 동족의 안위를 걱정할 줄 아는 드래곤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테니까 더 늦기 전에 가자.”
“알겠다.”
라마는 황성 밖 정원으로 나가 폴리모프를 해제하고 우리 모두를 태워 날아올랐다.
“드, 드래곤이다!”
“황성을 습격한 건 드래곤이었다!”
“만세! 우리는 흉악한 드래곤을 마주하고도 살아남았다!”
황성에서 기사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웃고 기뻐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나는 인간인데.
나까지 드래곤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리고 대화하면서 라마가 드래곤이라는 걸 아주 조금도 숨기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웬 뒷북?
설마 우리가 콩트라도 하는 줄 알았나?
황성을 뒤로하고 한참을 날아 라마의 레어가 있는 산에 도착했다.
아직 수호신 스틸러로 이름을 떨치고 있을 때라, 마을 사람들과 괜한 언쟁이 생기지 않게 조용히 숨어들었다.
어차피 라마의 레어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속에 있으니 숨어 들어가는 거야 어렵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나는 괜찮은데 라마가 별로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네가 알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일단 진정해봐.”
[진정이란 말이 나오나, 인간! 내 레어가 싹 달라졌단 말이다!]“그걸 왜 나한테 화를 내?”
[세상을 바꿔놓은 게 너 아닌가!]그러다 내 목이라도 조르겠다?
투덜대거나 화내는 척하는 라마는 봤어도, 진심으로 날뛰는 라마는 처음 본다.
그래도 그렇지.
“마기에 물들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자고 일어났더니 내 레어가 없어졌네’, 하는 것보단 낫잖아.”
[캬아아악!]라마는 화가 났지만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는지 괴성만 한번 지르고 입을 다물었다.
레어는 온갖 희귀한 것들로 가득했다.
보석들이 쌓여 있는 거야 드래곤의 레어니 그렇다 치고. 별 이상한 골동품 같은 것도 엄청 많네.
“여기 고대어로 된 책들이 있는데?”
심지어 황성에 있는 것보다 많은 양이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여기서 찾으면 되겠네.
퀘스트 북을 찾으려면 얼마나 많은 드래곤의 레어를 털어야 할지 기대가 컸는데.
이렇게 단번에 찾게 될 줄이야.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네.
겸사겸사 다른 드래곤 구경도 하고 레어에서 쓸만한 것들도 집어오려 했던 나의 계획이…
확실한 건 이 근방의 다른 드래곤들은 운이 아주 좋았다.
라마가 폴리모프를 해제하고 달려와 고대 문헌을 뒤적여 확인했다.
“나는 이런 걸 모은 기억이 없다.”
“네 레어가 아닌가 보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지금은 다른 드래곤이 자리 잡은 거 아냐? 과거가 달라지면서 라마라는 존재가 없어졌다거나. 서열 싸움에서 밀려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게 됐다거나. 레드 드래곤의 위치가 낮아졌다거나.”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면 이곳에 다른 드래곤이 보이지 않는 건 이상하다!”
“어디 마실 나갔나 보지.”
“드래곤을 경로당 할아버지처럼 취급하지 마라!”
경로당 할아버지란 말은 또 어디서 배워왔냐.
“그럼 유희 나갔나 보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반드시. 과거로 돌아가 원래대로 되돌려놓겠다.”
라마가 의지 넘치는 드래곤이 됐다.
지금, 이 레어만 보면 이곳이 다른 드래곤의 소유가 되었거나. 라마가 엄청나게 고대 문헌을 사랑하는 드래곤이 되어있는 상황이라는 건데.
둘 다 싫었나 보다.
라마는 눈에 빛을 내며 책을 뒤적였다.
반드시 퀘스트 북을 찾아내겠다는 열정이 돋보였다.
“이거 아닌가?”
“어디 봐봐. 음, 아니네.”
“이거일지도 모른다.”
“아닌데?”
“이것인 게 확실하다!”
“아닌 게 확실하네!”
한참 책들을 들었다 놨다 반복하던 중.
손을 뻗어 유독 눈에 띄는 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
보통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손 가는 대로 잡는 게 당첨이란 말이지.
그렇게 제일 무방비인 상태에서 예고도 없이 모든 게 시작되는 거야.
운이라고 해야 할지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보통 이런 경우,
……어?
“책이 빛이 난다!”
“장난해?”
진짜냐.
그리고 망상은 현실이 되었다.
그냥 눈에 띄는 대로 잡아본 책이 퀘스트 북이었는지.
라마의 레어에 옹기종기 앉아 고대어로 된 책을 들춰보던 일행들은 단번에 다른 곳으로 이동됐다.
조금 어이가 없기는 한데.
뭐 어때.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됐지.
기다려라, 과거. 당장 마계 뜯어내 던져놓고 원래대로 돌려놓아 주마!
.
.
.
눈을 한번 감았다 뜨니 다른 세상이었다.
이제는 익숙한 이 전개.
별로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기대하고 있었던 거니까 놀라면 안 되지.
대신 놀랄 일이 따로 있었다.
“성공이다, 인간! 어서 퀘스트를 확인해 봐라.”
“큰일이야.”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어, 있어.”
“보통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으면 ‘어.’라는 대답 하나로 끝내는 게 아니라, 어떤 문제인지 설명까지 해주는 게 일반 상식이다.”
“그때 봤던 풍경이랑 좀 다른 거 같은데?”
원하는 대로 설명까지 해줬지만, 라마는 무슨 의미인지 이해 못 했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가.”
“그게 말이지,”
“예정에 없던 엉뚱한 시간대로 오게 되었다는 말은 하지 마라.”
라마는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을 뿐이었구나.
그런 라마를 향해 환하게 미소지으며 대답해줬다.
“정답이야.”
우린 망했어.
***
망했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우선 상황부터 정리해보자.
“혹시 책 들고 오신 분?”
아무도 없었다.
“라마. 혹시 내가 만진 책 제목 봤어?”
“못 봤다. 그러게 내가 확인하기 전에 먼저 만지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도 대충 스쳐 지나가면서 제목 봤을 수도 있잖아. 기억해 봐.”
“단기간에 너무 많은 책을 훑어봐서 어느 책인지 알지 못한다.”
답답하다.
라마 탓을 할 수도 없고.
아, 답답하다.
안 되겠다. 역시 라마 탓을 좀 해야겠다.
라마 이 자식.
“너가 한 실수를 내 탓인 거처럼 쳐다보지 마라.”
라마는 고대어를 번역하고 또 하다, 이제는 내 눈빛까지 번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퀘스트 창.”
[퀘스트]뭐야, 저게 끝이야?
퀘스트 창은 비어있었다.
퀘스트가 존재하긴 하는 거 같은데. 이번엔 퀘스트 제목도 안 보여주고 그냥 ‘퀘스트’라고만 쓰여있는 빈 창이 떠올랐다.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이것도 책을 안 읽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시스템, 너 혹시 망가지고 있니?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총체적 난국이라는 건 확실했다.
빈 퀘스트 창이 일정한 조건을 달성하면 업데이트되는 예도 있다고 들은 적 있으니 일단은 기다려보자.
마지막으로, 나와 라마 외에도 모두가 함께 과거 퀘스트까지 무사히 왔는지 확인했다.
라마. 덩치. 닥소. 새싹.
좋아. 다 왔군.
……응?
새싹?
새싸아악?
“와아,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될 줄이야!”
진짜 새싹이다. 얜 또 왜 여기 있어?
“새싸… 아니, 레이첼 씨. 대체 왜 여기에 계시는 겁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처음부터 계속 같이 있었는데요?”
정말로?
기억을 더듬어보자.
잘 생각해보니까 진짜 처음부터 같이 있었던 거 같다.
걸어 다닐 때도 덩치 옆에 있었고.
황제를 제압할 때엔 닥소와 함께 밖에서 대기 중이었고.
라마를 타고 이동할 때도 덩치와 닥소 사이에 앉아있었고.
라마 레어에서도 계속 누가 옆에서 고대 문헌을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그게 새싹이었구나.
와. 지금 생각하니 계속 옆에 있었던 거 맞네.
존재감 무슨 일이야.
은신 마스터라도 되냐. 무섭네, 진짜.
파티창도 확인해보니 새싹이 엄청 자연스럽게 끼어 들어있었다.
이래저래 정신없던 사이에 얼떨결에 데려왔나 본데.
그러면 누가 말렸어야지!
왜 아무도 ‘저기, 이쪽의 새싹 분도 함께 가시는 건가요?’ 하고 묻지 않은 건데?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새싹은 새싹이고 퀘스트는 퀘스트다.
이미 여기까지 온 걸 혼자 알아서 미래로 돌아가세요,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당분간 함께하기로 했다.
“이 사람 좀 지켜주세요.”
“제가요?”
덩치가 되물었다.
아니, 너 말고.
덩치가 뭔가 오해를 하나 본데.
정확하게는 새싹을 덩치에게 맡긴 게 아니라 덩치를 새싹에게 맡긴 거였다.
또 어디 가서 납치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엉뚱한 곳으로 끌려가지 말고.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보호나 받고 있으라는 나의 깊은 뜻을 왜 몰라주는 거냐.
“알겠어요. 제가 잘 보살필게요, 집사님!”
유일하게 내 말을 이해한 새싹이 밝게 외쳤다.
새싹의 손에 들린 나뭇가지를 본 덩치는 어이를 상실했다.
지금 중요한 건 덩치의 어이 유무가 아니라 상황 파악이었다.
왜 풍경이 다를까.
혼자 재앙이 올 거라고 외치고 다녔던 사제를 처음 만났던 그 마을인 거 같은데.
대체 왜…
“저기 그 사제분이시네요.”
그래, 그 사제. 그러니까 그 사제를 처음 만났을 때…
…어?
“아니, 두 분…! 살아계셨습니까?”
어디서 많이 본 사제가 팔을 흔들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설마 이거 우연이야?
< 161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