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65)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65화(165/180)
< 165화 >
마신의 씨앗은 신탁이 내려진 날짜로부터 5년 후에 깨어날 예정이었지만.
깨어나자마자 죽게 될 예정은 아니었다.
마신은, 씨앗이 깨어난 후에도 세상을 돌아다니며 마기를 모으고, 드래곤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몇천 년을 천천히 기다리려고 했다.
하지만 주신은 씨앗이 품은 마기의 양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신탁을 통해 5년이 지나 씨앗이 눈을 뜰 시점에 맞춰 먼저 그것을 처치해라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성녀가 세상이 분리되는 게 오늘일 수도 있고, 내일일 수도 있고. 1년 내로는 되겠지. 난 몰라, 아무것도 몰라. 라는 식으로 대응했던 이유도 그것 때문.
성녀가 사람들을 보내 씨앗을 처치하는 날짜가 곧 신탁에 기록된 날짜나 다름없는 거니까.
“그런 이유로, 시드를 죽이게 되었습니다.”
성녀와 한 대화를 설명해줬더니 모두 얼어붙었다.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라마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런가. 어서 죽이고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자. 이곳엔 TV도 컴퓨터 게임도 없어서 지루하고 불편하다.’
같은 말을 할 줄 알았는데 화를 내네?
“너는 인간도 아니다!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어찌 그럴 수 있나!”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라마.
너도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드래곤이잖아.
“절대 안 된다! 드래곤은 개체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가?”
“나는 드래곤이 서로에게 별로 관심 없고 안하무인에 자기 자신에게만 관대한 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나도 인간은 하찮고 허약하지만, 무리를 지어 살아갈 줄 알고 상냥한 면도 있는 종족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너를 봐라.”
“내가 허약하지 않다고 칭찬해주는 거지? 고마워.”
“방금 그 말이 칭찬으로 들리나?”
라마의 결사반대에 이어 덩치도 안 된다며 시드 끌어안았다.
“그럴 거면 이름은 지어주지 말았어야지!”
“덩치 씨가 먼저 이름 지어주자고 제안했잖아요.”
“여튼 반대. 하여간 반대!”
“귀여움에 항복하지 말아요.”
“불만 있으면 귀여워지시든가.”
큰일이다, 성녀.
이미 마신의 씨앗은 모두를 물들여놨어.
마기로 물들인 게 아니라 귀여움으로 물들였으니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할까.
덩치야 저런 반응일 줄 알았다만 라마까지…
[뺙뺙.]자신을 위해 덩치와 라마가 열심히 변호하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시드가 날개를 펄럭이며 뺙뺙 댄다.
“딱 이런 반응을 보일 줄 알았지.”
정확하게는 덩치의 반응만 예상했고 라마는 예상외였지만.
“그런 줄 알면서도 시드를 죽이겠다고 한 겁니까?”
“그러면 퀘스트 안 깨려고? 지구로 평생 못 돌아가도 괜찮은 거예요? 여기서 살 거냐고.”
“…일단 다른 방법을 조금 더 찾아보고 정 안 되면 그때 가서 결정을 내리더라도…”
“네. 실은 그렇게 말할 줄 알고 거절하고 왔어요.”
“……네?”
“성녀한테, 시드를 죽이는 걸 거절하고 왔다고요.”
“뭐요?”
“사람의 언어로 말을 하는데 통역 마법까지 달고 왜 이해를 못 하시나. 성녀가 시드 죽이자고 한 거, 일주일 동안 다른 방법을 찾아볼 테니 기다리라고 말하고 왔다고요.”
“합의 보고 온 거예요?”
“아뇨. 그냥 말하고 왔는데요.”
성녀는 안 된다며 발악을 했지만, 그냥 시드를 들고 냅다 튀었다.
지금 가면 다시 지명수배 중일지도 몰라.
“아니, 그러면 왜 애를 죽이네 마네 하면서 간을 잽니까!”
“기껏 생각해서 협상까지 잘하고 왔는데 찬양을 해야지, 왜 화를 내요.”
“찬양은 무슨 찬양!”
덩치는 갈수록 화가 많아지는 거 같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드래곤보다는 원래 세상을 되찾고 돌아가는데 우선입니다. 일주일 동안 별다른 성과가 없으면 시드와는 이별할 거예요.”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나도 동의한다. 그래도 신경을 써준 것 같아 감사와 거의 비슷한 감정 같은 것이 아주 조금은 생겨난 기분이 든다.”
고맙다는 말을 참 어렵게도 하네.
“그렇다면 정확하게는 시드가 세상을 분리하는 건 아닌 겁니까?”
“네. 정확하게는 신이 하는 거죠. 시드는 그냥 기폭제 정도?”
즉. 시드가 죽을 때 마기가 터져 나오는 만큼의 마기를 먼저 퍼뜨리면 시드의 희생 없이 분리작업 진행이 가능하다는 말인데…
“세상을 전부 물들일 정도의 마기를 어떻게 퍼뜨린단 말인가.”
“나도 몰라. 라마 네가 대신 죽어볼래?”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나는 마신의 씨앗도 아니고. 마기도 없다. 다른 블랙 드래곤을 찾아봐라!”
언제는 드래곤은 개체 하나하나가 소중 어쩌고 하지 않았어?
다른 블랙 드래곤은 어떻게 하든 상관없는 거야?
“자기도 살고 싶고, 다른 드래곤도 살리고 싶고. 이기적인 거 아니냐?”
“멀쩡한 드래곤을 죽이는 건 이기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나?”
[뺙.]시드가 작은 날개로 뽈뽈 날아다니다 내 팔에 들러붙었다.
“빨리 생각해봐. 내가 마기를 퍼뜨리겠다고 성녀를 설득해서 겨우 데려온 거란 말야.”
“거짓말하지 마라. 통보하고 도망쳐 나온 거 이미 이곳 모두가 알고 있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지만 특별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연구소 연구원들 몇 명만 데려다 놨어도 1분에 아이디어 10개씩은 쏟아져나올 텐데.
물론 제대로 활용해 먹을만한 건 없을 테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겠지.
아, 진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되나.
어쩌면 좋나.
뭐를 해야 하나.
“아!”
“뭔가 생각난 게 있는 건가?”
“아무 생각도 안 난다. 밥이나 먹자.”
밥을 먹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밥을 먹어도 되는 겁니까?”
“그럼 일주일 동안 해결 안 되면 일주일 동안 굶으시게요?”
“아뇨. 먹어야죠.”
덩치는 밥을 먹으면서 고기를 한 점씩 집어 시드에게 물려줬다.
드래곤이지만 아직 새끼인데 저런 걸 먹어도 되나?
같은 드래곤인 라마가 아무 말 없는 걸 보니 상관없는 거 같지만.
근데 진짜 잘 먹네.
시드가 고기 한 점 먹고 덩치에게 애교 부리는 걸 보니 까망이가 보고 싶어진다.
“저거 봐라, 인간.”
“어. 잘 보여. 고기 잘 먹네.”
“그걸 보라는 게 아니다!”
“그럼 뭘 보라고. 덩치를 보라고?”
“시드를 봐라. 먹을 때 마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걸 내가 어떻게 보냐.
“확실해? 먹으니까 마기가 나와?”
“그렇다.”
“야, 먹여. 더 먹여보라고.”
이렇게 마기 대방출의 꿈을 이루는가!
[빼액!]시드는 정말, 딱 새끼 드래곤이 먹을 정도의 양만 먹고는 도망쳐버렸다.
즉, 얼마 못 먹었다는 이야기다.
억지로 더 먹이려고 하니까 깨물었다.
물론 아프지는 않았다.
“마기는 많이 나왔어?”
“먹은 만큼은 나왔다.”
전혀 효과 없었다는 뜻이군.
이제 밥도 먹었으니 다시 생각해보자.
죽었을 때 마기가 퍼진다는 건, 몸 안에 마기를 축적하고 있단 의미잖아.
그러면 그걸 직접 방출하는 법을 배우면 되는 거 아냐?
“라마. 시드한테 마기 방출하는 것 좀 가르쳐봐.”
“나는 그런 거 할 줄 모른다. 나는 마기를 품지 않은 레드 드래곤이다.”
“마력 방출하는 거라도 보여줘 봐. 그게 그거잖아.”
“둘 다 ‘마’가 들어간다고 해서 같은 게 아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라마는 시드 앞에 앉아 마력 방출하는 시범을 보였다.
“시드야, 이거 봐봐. 뭐가 팍 떠오르지 않니?”
[뺘아-!]저거 봐라. 새끼 드래곤이 박수를 친다.
와아, 귀엽다!
하지만 귀여운 거 외에는 아무짝의 쓸모도 없잖아!
“드래곤은 위대하다며!”
“아무리 위대해도 막 눈을 뜨자마자 마기 조절하는 법을 배우라고 요구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이 방법도 포기.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다음 단계가 있는 건가?”
“결론적으로, 마기만 잘 퍼지면 되는 거 아냐?”
“맞다.”
“그러면 그냥 마기 탐지기로 마기가 가장 짙은 곳을 찾아서 터뜨리면 안 되나?”
“……”
“……”
그리고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왜, 뭐. 왜 갑자기 입을 다무는데?”
“그 마기 탐지기로 찾는 거는 저 시킬 거잖아요.”
“찾는다고 치고, 어떻게 터뜨릴 생각인가.”
“저는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필요한 만큼 마기가 뭉쳐있을까요?”
“고대의 마기! 반드시 수정에 담아서 가지고 돌아가고 싶습니다! 빨리 마기가 가장 짙다는 그곳을 찾으러 갑시다!”
[뺙!]한 명씩 말하면 안 되는 걸까?
당연히 마기 탐지는 덩치 시킬 거다.
터뜨리는 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원래 시드도 여기 잠들어 있으면서 마기를 몸에 축적한 거라는데 그 마기가 어디서 온 거겠어. 어차피 이 땅 어딘가에 고여있는 거겠지.
닥소의 의견은 기각됐다. 물론 고대의 마기는 수정에 담아갈 거다. 근데 우리 연구원들 줄 거야. 그걸 흑마법사 손에 넘길 리가 있나.
그리고 시드는 귀여웠다.
“자, 그럼 가볼까?”
“자, 그럼 가볼까, 가 아니다!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지 않은가.”
“일단 가서 뭐라도 시도해보자고. 앉아있는 것보단 낫잖아.”
“대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지금 팍, 하고 떠오르는 장소가 있는데.”
바로, 시드를 처음 발견한 산.
무려 마신이 직접 선택하고 씨앗을 심어뒀던 곳인데 마기정도야 충분하겠지.
마기에 한해서는 믿을만한 놈이 고른 곳이라고 하니 신뢰가 팍팍 간다.
“확실히 마기가 잘 느껴진다!”
자신은 레드 드래곤이라 마기에 대해 모른다고 1일 1주장을 하는 라마가 확인까지 해줬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셈인가.”
[뺘악?]사실 아무 생각 없는데.
그냥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르길래 무작정 와보긴 했는데.
진짜 마기가 물처럼 흐르고 있을 줄은 몰랐지.
나보고 뭘 어쩌라고, 나는 마기를 느끼지도 못하는데.
“그럼… 일단 한번 쳐볼까?”
“그게 무슨 근거 없는 소리인가.”
“물이 고여있을 때 주먹으로 치면 주변에 다 튀잖아. 마기도 한 대 쳐주면 잘 퍼지지 않을까?”
“지금 마기를 물 취급하는 건가?”
“설마. 마기보다 물이 더 소중하지. 마기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물이 없으면 인간은 죽어.”
“너 같이 말의 맥락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에겐 물이 주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가 뒈지란 말을 곱게 표현하는 라마를 뒤로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그럼 간다!”
“모두의 동의를 받은 후에 행동하면 안 되는 건가!”
“안 돼!”
‘쾅!’
산이 울릴 정도로 세게 내리쳤다.
‘과과과가아아아아앙…!’
산이 무너질 땐 저런 소리가 나는구나!
“으아아아악!”
저건 덩치가 굴러갈 때 나는 소리다.
“어때, 라마. 마기가 좀 퍼지는 거 같아?”
“전혀 아니다! …어? 조금 퍼지는 거 같기도…… 역시 전혀 아니다!”
어느 쪽인 거야?
“전혀 효과가 없다. 괜한 산만 부순 거다! 이러다가 산이 무너져 모두 생매장되겠다, 일단 타라!”
라마가 황급하게 외치며 폴리모프를 해제하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시스템 창이 먼저 떠올랐다.
어, 뭐야?
“야, 잠깐! 퀘스트 완료라는데?”
“뭐?”
“퀘스트 완료라고.”
그리고 대화할 시간도 주지 않고 빛이 번쩍였다.
뭐야?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는 거야?
아니, 세상이 제대로 쪼개지는지는 봐야 할 거 아냐.
이대로 돌아가 버렸는데 엔릭이 죽고 없는 그 상태 그대로면 어떡하냐고.
좀 기다려봐라, 시스템!
당연하지만 시스템은 나의 외침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의 속삭임이 환청처럼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이제 나머지는 제게 맡기세요.]< 165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