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67)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67화(167/180)
< 167화 >
“혹시 쌍둥이세요?”
“남동생이 하나 있긴 하지만 쌍둥이는 아니에요.”
“이름이 레이첼이시죠?”
“헉, 이안 님께서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나요?”
“저한테 검술 쓰는 척하면서 마법 하는 것도 보여줬었잖아요.”
“아, 다른 분이랑 착각하셨던 거구나. 저는 검술은 배웠지만, 마법은 쓸 줄 모른답니다.”
“검 대신 쓰겠다고 나뭇가지 들고 다닌 적도 없고?”
“그건 이안 님 이야기 아닌가요?”
내 얘기 맞는데, 너도 그러고 다녔었다고.
“제가 이안 님도 아니고 어떻게 검 대신 나뭇가지를 들고 다니겠어요.”
아니, 너 들고 다녔다고.
그리고 휘두르는 척하면서 마법 쏘아댔잖아.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갑자기 다른 사람이라도 된 거야, 뭐야.
이중인격인가?
“이전에도 저 본 적 있죠?”
“그럼요. 연회홀에서 폐하와 대화하시는 걸 봤어요. 이안 님을 뵐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말로 뵙게 될 줄이야. 게다가 이렇게 함께 대화를! 아아, 영광이에요.”
역시 나랑 엔릭이 대화하는 걸 보고 내가 누군지 파악한 거였네.
그나저나 숨도 안 쉬고 말하는 건 퀘스트 때 본 새싹이랑 똑같다.
“그때 말고. 그전에도 나 본 적 있잖아요.”
“예? 음… 아! 그러고 보니 복도에서 마주쳤던 거 같은… 헉, 설마. 설마, 지금 그때 잠깐 스쳐 지나갔던 것을 기억해주신 건가요? 정말… 정말이지 이건…”
그런 거 아니야. 혼자 감동받지 마.
“그래, 복도에서 마주쳤었죠. 그다음에 또 도서관에서 만났잖아요.”
“아, 저는 그때 도서관에 가지 않았어요.”
“응?”
“원래는 도서관에 가려고 했는데, 부끄럽지만 갑자기 피곤해져서 쉬러 갔었지요. 도서관에서 뵌 분은 아마 다른 분이셨을 거예요.”
“고대어로 된 책을 본 적도 없고 나보고 집사라고 부른 적도 없다고?”
“지, 집사님일 거라 생각한 적은 있지만, 맹세코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은…!”
새싹이 당황하며 이런저런 변명을 내뱉었다.
지금 당황스러운 건 그쪽이 아니라 나라고.
당황스럽다.
퀘스트에 대한 기억만 쏙 없어진 건 아닐까 했는데. 그 전의 기억은 지워진 정도가 아니라 수정까지 됐다.
고대 퀘스트 후 달라진 라 엘타로 돌아왔을 때, 다른 NPC들의 기억이 다른 것으로 덮어씌워 졌던 것처럼.
플레이어가 아니어서 시스템의 영향을 받은 건가 싶었는데. 그렇다면 왜 라마랑 닥소는 멀쩡하지?
라마는 지금도 연회홀에서 아무렇지 않게 케이크를 집어 먹으며 귀족들을 겁주고 있고.
닥소도 황성에 들어오다니 황송하다며. 웃기지도 않은 개드립을 치며 잘만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이거 무슨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지?
부작용이라던가…
내가 일부러 데리고 다녔던 건 아니지만, 괜히 나 때문에 저렇게 됐다고 하면 신경 쓰이잖아.
이건 한번 제대로 알아봐야겠다.
“…을 뿐이지, 정말 이안 님을 보고 비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
남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아직도 말하고 있냐?
“…했어요. 그래서 이안 님을 이렇게 뵙게 된 것은 저희 가문의 영광……”
행복해 보이는데. 그냥 알아보지 말고 놔둘까?
“…리고 혹시 괜찮으시다면 사인 한 번만… 이안 님의 고향에선 존경하는 사람을 만나면 ‘사인’이란 것을 받는 문화가 있으니 이안 님을 만나게 되면 꼭 받아보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사인은 해줬다.
***
새싹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볼 거긴 하지만. 당장은 본인에게 해가 되는 것이 없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본인이 즐거워 보이니 상관없겠지.
다음 날이 되자마자 엔릭에게 선물을 챙겨주고 황성을 나왔다.
엔릭은 며칠 더 머물다 가라고 말렸지만, 지금 지구는 난리일 텐데 여기서 놀고만 있는 것도 좀 그래.
태현오 놈이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왔으니 가서 이것저것 알아 오라며 언제 형을 또 라 엘타에 밀어 넣을지 모르니 가서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라엘타닷컴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들러야 할 곳도 있고.
“갑시다.”
“이제 지구로 가는 겁니까? 만세!”
“뭐야. 언제는 자기도 같이 가고 싶다고 징징대서 데려온 거잖아요. 이젠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고 만세를 불러?”
“제가 가고 싶다고 한 건 황제 생일잔치였지 먼 옛날의 과거 어딘가가 아니었는데요.”
덩치가 정색하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황제한테 탄신일 축하연회도 아니고 생일잔치가 뭐냐.
“저희가 황성을 떠나는 건 맞아요. 하지만.”
“하지만? 거기 하지만이 왜 들어가!”
“그 전에 먼저 저택으로 갈 거지롱.”
“아니, 왜? 왜요! WHY?”
“혹시 모르니까 집안 식구들은 모두 무사한지 확인해야죠.”
“이제 와서?”
아, 좀 찔린다.
“이제라도 하자는 거지.”
저택 식구들을 인제 와서 챙겨주는 건 조금, 상당히, 많이 미안하긴 하다.
내가 배신자 취급당하면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었을 사람들인데. 엔릭이 사망했다는 사실에 너무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만…
순서가 많이 늦어지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한 사람 빠짐없이 무사한 걸 확인하고 돌아갈 거다.
“저는 지구로 가서 제 가족이 무사한지부터 확인하고 싶은데요.”
“지구는 아무 문제 없었던 거로 기억합니다만.”
“그거는 모르는 거잖아요.”
“좋아요. 정 그렇다면 먼저 돌아가세요.”
“잉? 진짜로?”
“네. 근데 라마는 나랑 같이 갈 거니까 알아서 재주껏 지구로 돌아가 보시든가.”
“아, 진짜!”
라마나 내가 없으면 마법진 가동도 못 시키는데 덩치 혼자 뭘 어쩌겠어.
“그 마법진 원래 흑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거였잖아요. 어떻게 못 합니까?”
“저 혼자서는 좀…”
덩치가 닥소를 닦달하는 동안 나를 태운 마차가 출발했다.
그 마차 안에 라마와 덩치, 닥소까지 모두 타고 있었으니 사실상 모두 함께 떠난 것과 마찬가지.
“이제 못 내려요. 정 내리고 싶으면 창문으로 뛰어내리세요.”
“저 손바닥만 한 창문을… 하. 됐습니다. 말을 말아야지.”
덩치가 삐쳤다.
하지만 사실상 1년 365일 24시간 늘 내게 삐쳐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저렇게 가기 싫다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집사와 만나고 싶지 않아서겠지.
지난번에 보니까 집사가 덩치를 참 잘 굴리던데.
덩치가 괴로워하거나 말거나.
마차는 빠르게 달려 저택 앞에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집사!”
그리고 집사는 무사했다.
메리도. 다른 사람들도.
저택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겸사겸사 지하로도 내려가 봤는데, 포션을 다 빼놨음에도 여전히 창고로 쓰이고 있는 지하 수련장도 그대로였다.
그래서 내 수련장은 언제 비워줄 건데.
“모두 무사하구나. 다행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곳에 걱정하실만한 일은 조금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아냐. 집사가 몰라서 그렇지…
걱정할 만한 엄청 큰일이 발생했었어.
“무사한 걸 봤으니 됐어. 가볼게.”
“벌써 가십니까?”
“어. 덩치가 집에 가고 싶다고 울고 있어서.”
덩치는 ‘내가 언제 그랬냐’며 한소리 하고 싶었던 거 같지만.
그 전에 집사의 눈길을 피해 라마의 뒤로 숨었다.
그 덩치로 숨는다고 가려지겠습니까?
“가시기 전에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뭔데?”
집사가 들고 온 것은 초대장이었다.
“웬 초대장?”
내가 저택에 붙어있을 때가 없다 보니 초대장이나 그 비슷한 것은 모두 내 허락 없이도 거절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었다.
물론 집에 있을 때도 초대장이 오면 전부 거절할 거지만.
하여튼 내 성향을 알고 있으면서 이걸 보관하고 있었다는 건 상당히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일 텐데…
황성에서 온 건 아닐 테고.
“신전에서 보낸 초대장입니다.”
“신전에서?”
살다 살다 신전에서 외부인을 초대한다는 말을 들어보네.
“갑자기 신전에 왜 초대장을 보내. 파티라도 연대?”
“그런 것은 아니고, 이안 님 개인을 신전으로 모시고 싶다는 연락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냥 서신이지 초대장은 뭔 초대장.”
이런 걸 보내본 적이 없으니 서신을 초대장이라며 보내고 앉아있는 거다.
아니면 신전에 방문하는 것 자체가 기념비적인 큰 행사이니 영광스러움을 알라는 의미에서 초대장이랍시고 던져놓은 건 아니겠지.
“혹시 몰라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확인하셨으면 거절하겠습니다.”
“아니, 거절하지 말아봐.”
“그러면 초대에 응하겠습니다.”
“응하지도 말아봐.”
“어쩌라는 건가.”
막상 대화 중인 집사는 가만히 있는데 라마가 어이없다며 끼어들었다.
“만나고 싶으면 만나주겠다고 해.”
“알겠습니다.”
“대신 그쪽에서 오라고 해.”
어디서 오라 가라야.
***
신전이 답신을 받고 화가 나서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후 베라포드가 있는 쪽을 향해 침을 뱉을 거라 생각했다.
워낙 자존심 꽉꽉 찬 사람들로 가득 찬 게 신전인지라.
그런데 이게 뭐람?
답신을 보내고 바로 다음 날, 긍정을 담은 답변을 받았다.
그것도 오늘 당장 찾아오겠다고.
신전에 무슨 일이 있나?
세상이 멸망한다는 신탁이라도 내려왔나?
나한테 부탁할 거라도 있는 거야? 급하게 할 말이 있는 건가?
황성에서 급한 일이 있으니 만나자고 해도 한 달 뒤에 보자고 할 애들이.
뭐가 그리 급해서 베라포드 촌구석까지 한걸음에 달려오고 그러냐.
당장 온다니까 지구로 돌아가는 건 잠시 미뤄두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덩치가 드러누워 항의했지만, 집사한테 끌려간 뒤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신전에서 사람을 보내기로 한 시간.
창문 밖을 보고 있으니 마차 한 대가 저택 쪽으로 다가왔다.
“왔다.”
“저것이 신전에서 보낸 마차인가? 생각보다 평범하다.”
“나 만나겠다고 직접 행차까지 하신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었나 보지.”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 않나.”
“저거 백 퍼센트 신전에서 보낸 사람이야. 확신해.”
“어떻게 그렇게까지 확신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라 엘타에서 나를 아는 사람치고는 여기까지 찾아오는 사람은 없거든.”
그런 한심하단 눈으로 쳐다보지 마.
드래곤이 뭘 알아!
그러는 너도 다른 드래곤이 찾아오는 일 따윈 없을 거면서!
“그럼 난 손님 만나러 나가본다.”
“나도 같이 가겠다.”
라마라는 떨거지를 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미 집사가 신전에서 온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신전에서 왔다며 저택으로 들어선 것은 두 사람.
딱 보니 앞쪽에 서 있는 사람이 메인이네.
그런데 말이야.
저쪽에서 처음 본다며 먼저 인사를 해 온 건 좋은데.
아무리 봐도 나는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닌 거 같은데?
“아, 예. 안녕하세요.”
신전에서 온 손님은. 과거 퀘스트를 할 때 만난 성녀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그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러니까, 형 퀘스트 도와주면서 봤던 성수의 ‘성’자도 모르던 수상한 비밀단체의 일원.
마신의 힘이 강해지면서 주신이 밀려난 세상에서 비밀단체랍시고 마기를 정화하려고 애쓰던 그 사람이다.
원래는 신전 사람이었구나.
기껏 성수까지 줬는데 그 기억은 홀라당 날려 먹었겠지.
그래서 그때 성수는 가져가서 잘 써먹었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없어진 기억에 관해 물어봐봤자 제대로 된 대답을 듣는 대신 미친놈 취급만 당할 테지만.
대신에 다른 질문을 하기로 했다.
현관에 서서 할 질문은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너무너무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거든.
“혹시 지금은 성녀세요?”
그래서 돌직구를 던졌다.
< 16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