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74)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74화(174/180)
< 174화 >
“‘우리 형’이란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마왕의 힘은 그렇게 갑자기 사라지거낭, 소멸하거낭, 흡수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당!”
다급한 주황이의 목소리에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케헹!”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분홍이가 황급하게 주황이 뒤로 달려가 숨었다.
형은 분명, 마왕은 소멸했고 그 힘은 흡수됐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한 건 형이 아니라 마왕이었던 건가?
그때도, 그 후로도 형에게서 어떠한 위화감도 느낄 수 없었는데.
적어도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내가 알던 형의 모습 그대로였다.
게다가 라마가 펫으로 묶인 것도 풀어지지 않았고, 태현오의 계약도 유지되고 있었지.
형의 몸을 차지한 마왕 놈이 형의 성격과 능력을 그대로 복제했거나, 태현오와 라마까지 합세해서 나를 속이고 있는 게 아닌 이상.
형은 아직 이성현 본인이다.
다만 마왕이 형의 몸속 어딘가에 숨어있을 뿐.
마왕의 힘이 소멸했다고 말한 것은 형이 아니라 마왕이었겠지. 형의 의식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자신의 의사만 형의 입을 통해 전달한 것뿐.
주신이 새싹을 통해 말을 전했던 것처럼.
설마.
주신이. 내게 알려주려고 한 건 이거였나.
그래서 동쪽 마왕을 만나라고 한 거였어. 그래서 만나면 알게 될 거라고 했던 거였고.
어쩌면 새싹의 의식에 들어가 꾸준히 의사 표현을 한 것도, 고대 퀘스트를 도우려 한 게 아니라 형의 상태를 간접적으로 전하려고 했던 걸지도 모른다.
“젠장. 왜 미처 알아채지 못한 거야.”
“자책하지 말아랑. 그건 인간이 알아챌 수 있는 종류의 힘이 아니당.”
“……”
“끼어들어 미안하당. 닥치겠당.”
털실뭉치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구석에 박혀있었다. 분홍이는 아직도 케헹거리면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남의 집에 쳐들어와서 괴롭히는 거 같아서 미안한데.
내가 지금 그런 거 까지 일일이 챙겨줄 정신이 아니거든.
당장 형을 만나러 가야겠다.
“기다려랑!”
“케헹, 어디 가는 거냥!”
“말은 끝까지 듣고 가야징!”
“기다려봐랑!”
털실뭉치들이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아직도 물에 젖어 반질반질한 마법진을 타고 나와, 바로 지구로 돌아갔다.
지금 시간이라면 형은 영웅 길드에 있을 시간.
평소라면 지나가는 길에 들른다고 문자라도 한 통 보냈을 텐데, 그럴 여유 따윈 없었다.
보안 유지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영웅 길드 길드원들은 외부인인 내가 들어가는데도 막지 않았다.
그저 눈길 한번 주고 끝.
“신원확인조차 안 하다니. 이러니까 마왕 같은 게 길드 내에 숨어들고 그러는 거라고!”
“그거랑은 조금 다른 상황인 거 같다.”
라마의 합리적인 이의제기를 귓등으로 들어주고 바로 형의 개인 사무실까지 뛰어 올라갔다.
“형!”
“성한?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형, 마와……”
아.
“마와?”
……어떻게 할지 미처 생각 안 하고 왔다.
“무슨 일인데?”
숙주에게서 마왕을 빼내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털실뭉치들한테 물어봤어야 했는데.
아, 가지 말라고 말릴 때 들을걸.
마계에 머물렀더니 뇌가 마족들처럼 되어버렸나.
돌겠네.
형은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태다.
동쪽 마왕 놈의 의지인지 뭔지가 의식 깊숙한 곳에 깃들어 있다고 한들. 마왕한테 거기 있냐고 물으면 순순히 ‘응, 내가 이 몸을 차지하고 있어.’하고 반겨주겠냐?
오히려 들켰다는 것을 알게 되면 형을 인질로 삼을 수도 있다.
다른 숙주를 찾아가겠다고 도망치면서 형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고.
마왕 놈을 형의 몸에서 안전하게 빼낼 방법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섣불리 행동할 수 없다.
자극하는 것도 안 돼.
괜히 이 자식을 자극했다가 아예 형의 몸을 차지하고 공격을 해 온다면 내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가 없다.
형의 껍데기만 뒤집어쓴 마왕이면 형 몸에서 나오고 싶어질 때까지 전신 마사지를 해 줄 텐데.
지금은 때려봤자 고통을 느끼는 건 마왕 쪽이 아니라 형이잖아.
젠장.
방법이 없네.
우선 여기선 모른 척을 하고 태현오를 만나서 의논을…
“성현 인간. 네가 동쪽 마왕의 숙주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라마아아아아!
“뭐 하는 거야!”
“뭐 하는 거냐니, 무슨 뜻인가. 이것을 묻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온 거 아닌가? 왜 그렇게 화가 난 목소리인지 모르겠다.”
“이 등신 드래곤아!”
“도와줘도 욕을 하다니, 너는 너무한 인간이다!”
역시 마계에 있으면 뇌가 마족들처럼 되는 게 분명해!
김라마, 이 자식. 어쩌자고 일을 이 꼴로 만들어?
사실은 마왕들이 심어둔 스파이인 거 아냐?
“마왕?”
라마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있는데 형이 되물었다.
그래. 라마를 흔들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일단은 농담이었다고 발뺌을 하고…
“형?”
형과 눈이 마주쳤다.
형은 우리 둘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에, 한순간에 미소가 번졌다.
‘쿵…’
형에게 뭐라고 말을 걸기도 전에,
‘콰아아아아아앙!’
형을 중심으로 마기가 터지고, 폭풍처럼 퍼져나갔다.
“형!!”
“성현 인간!”
‘콰과과과광!!!’
세상을 찢어버릴 듯 강렬하게 쏟아져나오는 마기.
그 여파에 무너져내리는 건물.
귓가를 스치는 영웅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의 비명소리.
그리고.
‘……쿵!’
짙은 어둠이 시야를 덮었다.
.
.
이럴 때 할 생각은 아닌 거 같은데.
여기가 우리 집이 아니라 영웅 길드라서 다행이다.
***
[제목: 영웅 길드 박살난거 봤냐?]-익명으로 작성된 게시글입니다.
우리집이 영웅 길드 근처라서 터지는 순간 목격했는데 휘말릴뻔했다
겁나 막 회오리바람 겁나쎄고 시밤무슨 마불영화 찍는줄알았잖아
덧글:
-지금 뉴스 틀기만하면 그 얘기밖에 없는데 모르겠냐 병신아
└(작성자) 그래서 아냐고 안 물어보고 봤냐고 물어봤잖아 등신아
-좋은데사네?
└(작성자) 영세권이라고 집값만 드럽게 비쌌는데 이꼴 무엇
└영세권이 뭐임?
└(작성자) 영웅 길드 근처에 있는 집
-감상평좀
└(작성자) 갑자기 토네이도처럼 바람 불고 차 날아가고 나무 뜯기고 영웅 길드는 폐허됨
└뉴스에서 사망자없다는데 ㄹㅇ?
└(작성자) 모름 그꼴나고 사망자 없는게 더 신기하긴 한데 플레이어들이라 튼튼한가보지
-안디졋냐?
└(작성자) 디졌으면 이 글 쓰고있겠냐?
-영웅 길드를 특정지어 노린 테러사건이라는 말이 많던데ㅠㅠ 개무서움
└영웅 길드 소속도 아닌데 니가 왜무섭냐ㅋ
└영웅 길드도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정도의 세력이 있다는거잖아ㅠㅠ 안무서움? 나만무서움?
└그러니까 왜 니가 무서워하냐고
└언제든 영웅길드말고 나를 공격할 수도있잔하ㅠㅠ
└너가 영웅도 아니고 초월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니고 뭣도 아닌데 누가 왜 널 공격하겠냐고 왜 무서워하냐고;;;
└ㅠㅠ
-방금 뉴스에 나왔는데 태현오 부재중이었다는데?
└빈집털이 당한 영웅길드?
└태현오 없었던 거면 그정도 피해 ㅇㅈ
└ㅇㅈ이지랄 태현오보다 이성현이 있었냐없었냐가 더 중요한거아님?
└그러게. 이성현이 있는데도 이정도 피해가 발생한거면 심각한데
-사망자 0명 부상자 7명 실종자 1명. 방금 속보 뜸
└워 사진 보면 처참하던데 피해 엄청 적네?
└ㅇㅇㅇ 부상자도 엄청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고함
└근데 실종자는 누구?
└이성현
└??
└?
└???????
***
라마가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형이 즉각 반응했다.
아니지.
형 안에 숨어있던 동쪽 마왕 새끼가 즉각 반응했다.
그동안 마기를 어떻게 꽁꽁 감추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감추고 있던 마기를 한 번에 폭발시켜버렸다.
미친놈.
마기가 무슨 허리케인처럼 미친듯한 속도로 휘몰아치며 건물을 파괴했다.
그 유명한 영웅 길드 소속 플레이어라도 최소 몇 사람은 갈려 나갈 정도의 위력.
불행인지 다행인지.
라마는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속도만큼이나 생각 없이 행동하는 속도도 빨랐다.
마왕이 마기를 터뜨린 순간 망설임 없이 바로 보호 마법을 펼쳤으니까, 스파이라고 의심한 건 철회해주지.
무려 드래곤씩이나 되는 라마의 보호 마법 덕에 피해는 적었지만,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한계는 있었다.
마기가 멀리 퍼져나가 땅을 오염시키거나, 칼날같이 날카로운 마기 폭풍에 사망자가 생기는 것은 막았지만.
건물이 무너지는 것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무너지는 건물에 다친 사람도 몇 명 있었던 거 같고.
고작 그 정도에 다치는 플레이어가 대체 어떻게 영웅 길드에 들어왔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덕분에 민간인 피해는 없었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성현 인간이 없어졌다.”
“나도 알아.”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펫 시스템으로도 형이 어디 있는지 감이 안 잡히는 거야?”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형, 아니 그 빌어먹을 동쪽 마왕 놈이 사라졌다는 거.
사라질 거면 혼자 갈 것이지 왜 남의 형 몸까지 가져가고 지랄이야!
‘띠리리링, 띠리리링’
평소 같았으면 태현오에게서 오는 전화는 세 번 정도 걸렀을 텐데.
이 자식이 전화를 거는 이유를 알 거 같아서 바로 받았다.
“여보세요.”
[성한아. 성현이와 연결되어 있던 계약이 끊어졌어.]“그 계약이라는 거, 사실 별거 아닌 거 아냐? 툭하면 끊어지네?”
[농담할 때는 아닌 거 같은데? 뉴스 봤어. 무슨 일이야?]“그러는 너는 무슨 일인데 길드장이라는 놈이 맨날 길드에 박혀있지를 않냐. 어디야?”
[연구소.]연구소 직원은 난데 왜 너가 거기 가 있냐.
“지난번에 형의 몸을 차지했던 마왕, 없어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설마 지금 영웅 길드를 부순 게 성현이야?]“형 몸을 차지한 마왕이지. 형의 의식 구석 어딘가에 숨어있었는데, 라마에게 정체를 들키면서 형의 몸을 다시 장악해버렸나 봐. 지난번처럼.”
[바로 그쪽으로 갈게.]“오지마. 우리도 움직일 거야.”
[뭘 하려고?]“마왕 놈을 찾아서 라 엘타로 끌고 가야지.”
동쪽 마왕을 다시 만나면 분명 전투가 벌어지거나. 주먹으로 대화를 하거나. 피의 축제를 시작하겠지.
어느 쪽이든 예쁘게 끝날 일이 없다는 건 확실하다.
괜히 지구에서 그랬다간 건물 한두 개 파괴되는 거로는 안 끝날 거라고.
마왕 놈을 묵사발을 내서 꺼내오든.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힘을 빼준 다음에 털실뭉치한테 데려가서 방법을 찾아보든.
우선은 라 엘타로 데려가야 한다.
지구는 파괴되면 안 되지만 라 엘타는 괜찮다는 게 아니라.
라 엘타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넓고 조용한 버려진 땅이 많으니 그런 곳으로 유인할 생각이다.
사실 신경 쓸 거 없이 싸우기엔 마계가 최고기는 한데.
마기가 짙은 곳일수록 강해지는 마왕 놈과. 마기를 흡수해서 힘을 얻는 형의 콜라보레이션이 얼마나 환상적으로 내 뒷골을 땡기게 할지 감이 안 잡혀서 말이지.
[성현이는 사라진 거 아닌가? 어떻게 찾으려고.]“왜 못 찾아. 형이 지구에서 어떻게 숨어.”
이성현인데? 못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텐데?
1km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물구나무서서 봐도 눈에 띌 얼굴인데?
형이라면 몰라도 마왕 그 자식은 대한민국에서 추적당하고 싶지 않다면 얼굴을 가리고 다른 이의 시선과 CCTV가 닿지 않는 곳에서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를 텐데?
장담하건대, 조만간 형을 봤다는 제보가 미친 듯이 쏟아져나올 거다.
< 17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