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78)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78화(178/180)
< 178화 >
“갑자기 마신이 왜 나타나는 거야?”
“마신이 마계에 간섭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마기가 뿌려진 거 같당!”
“마신이 땅에 내려오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마기가 필요한 데 대단하당!”
동쪽 마왕이 마기 스프링클러로 모아둔 마기를 뿌려대면서 조건을 충족시켰다는 건가.
그러고 보니 고대 퀘스트 때도 시드가 죽을 때 퍼지는 마기를 통해 내려오려고 했었지.
그렇게 라 엘타로 내려오고 싶어 하더니 성공했구나, 마신.
“자. 가라, 이성한.”
“어디를 가?”
“마신과 싸우러 가는 거 아니었나?”
“왜 남의 등을 떠미냐? 가고 싶으면 네가 가.”
“평소에 마신을 소환해서 싸우겠다고 한 건 너였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라.”
“마신을 소환해서 싸우겠다고 한 건 북쪽 마왕이고.”
“하지만 너도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나.”
“그건 그냥 하는 말이지. 상식적으로 저거는 신이고 나는 인간인데 나보고 뭘 어쩌라고. 나 말고 가서 주신이나 데려와서 싸우라고 해.”
“그건 신이고 나는 드래곤인데 뭘 어떻게 데려오라는 건가.”
옆에서 미친 듯이 난리를 치던 털실뭉치들이 나와 라마를 보고 얌전해졌다.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당.”
“나도 덩달아 긴장이 풀린당. 마신이 강림해도 괜찮을 거 같은 기분이 든당.”
아니, 그건 괜찮아하면 안 되지.
“그러면 이제 진짜 어떻게 해야 하지?”
“성수라도 뿌려봐라.”
“네가 성수 덕을 한번 보더니 상황판단 능력을 잃었구나. 그거야 마왕이니까 통한 거고. 무려 신한테 성녀도 아니고 교황도 아니고 교황 후보의 축복을 담은 성수가 통하겠냐.”
“역시 그런가.”
“주신의 힘을 담은 성수가 아니면 효과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가서 주신을 불러와라.”
“나는 신 같은 거 불러오는 능력이 없는데?”
“잊고 있나 본데, 마신 소환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너다.”
“아냐. 마왕이야.”
털실뭉치들은 아예 차를 끓여와서 소소한 다과회를 시작했다.
“일단 마신의 상태라도 확인해보자.”
“나는 저 근처로 가고 싶지 않다.”
“너보고 마신이랑 싸우라고 안 할 테니까 가까이만 가보자고.”
싫다는 라마를 끌고 던전 밖으로 나갔다.
“출발!”
“갔다가 위험할 거 같으면 바로 내려올 거다.”
“알았어.”
“조금이라도 위협을 느끼면 바로 도망치겠다고 했다.”
“알았다고.”
“너무 빨리 날아서 너가 떨어진다고 해도 주우러 가지 않을 테니 알아서 꽉 잡아라.”
“알았다니까?”
겁쟁이 드래곤이 나를 태우고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왜 벌써 온 거냥!”
“무서워서 도망친 거냥?”
“계속 올라가도 찢어진 부분이 닿지 않길래 그냥 내려왔어.”
나와 라마가 견딜 수 있는 한계까지 올라갔다 왔는데, 그 이상은 산소 부족으로 마신이 강림하기도 전에 죽을 거 같아서 포기했다.
생각해보니까 하늘이라는 게, 천장처럼 만져지는 게 아니잖아.
저기까지 가려면 대기권을 뚫고 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사실상 하늘이 아니라 우주가 찢어지는 중이라고 봐야 할 거 같은데.
진짜 우주를 찢은 건 아닐 테고. 마신은 어떻게 저런 방식으로 등장하는 거지?
그냥 마음 편하게 연출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정신건강에 좋을 거 같다.
“우선은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자.”
“알겠다.”
“좋당!”
“신난당!”
그렇게 긴장감 없이 두 시간이 흘렀다.
“마신은 아직인가?”
“아직 멀었다. 아까와 비교했을 때 하늘이 손톱만큼도 더 열리지 않았다.”
“손톱만큼도?”
“아. 드래곤일 때의 기준이었다. 인간 모습일 때의 손톱만큼은 열린 거 같다.”
“내려올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저놈의 하늘은 10분에 1cm씩 열리고 있는 수준이다.
마신이 얼마나 거대한지는 모르겠는데, 12cm는 아니겠지.
“이 속도면 하늘이 전부 열리고 마신이 소환되는 데 몇 주 정도 걸리지 않을까?”
“그건 모르겠는데, 집에 가서 밥 먹고 올 시간은 될 거 같다.”
“어쩌면 그사이에 주신이 마신 끌고 돌아가 줄지도 몰라. 그냥 집에 가도 될 거 같은데.”
라마와 내가 당장이라도 돌아갈 것처럼 일어나자 털실뭉치들이 다리를 붙잡았다.
“안 된당!”
“가지 말아랑. 없는 사이에 마신이 소환되면 어떡하냥!”
“나 잠깐 집에 좀 다녀올게. 그 사이에 마신이 소환되면 너희 둘이 어떻게 좀 해봐.”
“뭘 어떻게 하냥!”
“차라리 우리도 데려 가랑!”
달라붙는 털실뭉치들을 떼어내고 아직도 눈을 뜨지 않은 형부터 챙겼다.
괜히 마신이 올 때까지 형을 내버려 뒀다가 ‘마신이랑도 상성이 잘 맞네요!’라면서 마신까지 형 몸에 들어가 버리면 큰일이잖아.
“안 된다아아앙!”
“가지 마라아아앙!”
털실뭉치들의 곡소리를 들으며 라 엘타로 돌아왔다.
사실 집으로 가겠다는 건 그냥 해본 말이고.
마신이 땅으로 내려오기 전에 막을 방법은 없을지 교황 후보에게 물어보려고 했지.
수도에 있는 신전으로 가서 교황 후보와 만나게 해달라고 하면 만나게 해주려나?
이안 이라는 걸 밝히기만 하면 실랑이할 필요도 없이 만나게 해줄 거 같은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실랑이는커녕, 내가 이안이니 교황 후보를 만나게 해달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교황 후보는 내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신전 앞에 서 있었으니까.
“주신이 제가 온다고 이야기라도 해주던가요?”
“그렇습니다.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 사건이 시작된 순간부터, 저를 포함한 몇은 이미 그 불길함을 눈치챘으니까요.”
주변에 다른 이들이 있어서인지 교황 후보는 말을 아꼈다.
“안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교황 후보를 따라 신전 안의 작은 방으로 향했다.
나와 라마까지 셋만 남게 되자 교황 후보가 편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마신이 땅에 내려오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정말 편하게, 본론부터 치고 들어가는 교황 후보.
“주신은 왜 직접 마신을 막지 않는 건데요? 과거에는 잘만 했으면서.”
“마신이 소환되는 곳이 마계인 탓에, 주신께서 개입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동쪽 마왕이랑 싸울 때 마계가 아니라 라 엘타에서 싸울 걸 그랬네.
그랬으면 주신이 직접 와서 해결하고 갔을 텐데.
“하지만 마신을 막을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뭔가요.”
“하나는 이안 님께서 땅에 내려온 마왕과 싸워 이기시는 방법.”
아니, 다들 나한테 왜 그래?
“다른 하나는 마신이 나오기 전에 문을 닫아버리는 방법입니다.”
“그거 마음에 드네요. 문은 어떻게 닫을 수 있는데요?”
“두 가지 방법 중 한 가지는, 마계에 퍼져있는 마기를 정화하는 것입니다.”
“그 넓은 마계를 다 정화할 수 있을 거 같진 않은데요.”
“이 방법은 문이 열리는 속도를 늦출 뿐.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지금도 느려터졌는데 더 느려진다고?
한 몇백 년쯤 후에 열리는 거 아니야?
“두 가지 방법 중 두 번째는 어떤 건가요?”
“문 너머에 있는 마신을 공격해, 문을 여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신을 주먹으로 쳐서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소리 하고 있네.
“마계에 퍼져있는 마왕의 잔재가 사라질 때까지만 마신을 붙들어 놓을 수 있다면, 문은 자연스레 닫히고 마신은 신계로 돌아갈 것입니다.”
“아니, 그게 마신이 나온 후에 싸우는 것과 대체 어떤 차이가 있다는 겁니까?”
“마신이 완전히 문을 열고 마계로 내려오기 전까지는 지상의 생명체에게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아하. 마신은 나를 건들지 못하는데 나는 일방적으로 두드려줄 수 있다는 뜻이구나. 이거 좋은데?
“다만 이 방법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요?”
“문이 열리기 전에 마신을 공격하려면, 문 안쪽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뭐. 그거야 그렇겠지.
“하지만 마신을 공격하여 마신이 문을 여는 것을 포기할 경우. 열린 문은 열린 채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 즉시 닫히게 됩니다.”
“열리는 건 저렇게 느린데 닫히는 건 즉시 닫힌다고요?”
“그렇습니다. 문을 여는 것은 큰 힘을 필요로 하지만, 닫는 것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 아니지. 나 말고, 마신을 공격하러 들어간 사람이 나올 틈도 안 주고 닫힌다는 말입니까?”
“예. 이안 님께서 빠져나올 시간은 없을 것입니다. 마신을 신계로 돌려보냄과 동시에 그 안에 갇히게 되겠지요.”
“나 안 할래.”
“예?”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교황 후보에게 짧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안 님, 마신이 마계에 강림하면 라 엘타도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구나. 그러면 라 엘타에 있는 친한 사람들을 지구로 빼돌리고, 차원 이동 마법진도 다 없애버려야겠네.”
“마, 마신이 지구까지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해볼 문제고. 내가 가서 마신을 물리치고 세상이 행복해지면 뭐해요? 내가 없는 지구가 평화로운 게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
“예에?”
교황 후보가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를 표정으로 표현하는 사람의 얼굴이다.
“내가 지구가 안전하길 원했던 이유는 내가 살 곳이기 때문이었지, 내 고향이고 내가 사랑하는 행성이어서가 아닌데요.”
“그, 그곳에 갇힌다고 해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신계로 들어가 신이 될 기회를 얻으실 수도 있습니다!”
“살아남는다면, 말이죠. 물론 그 ‘살아남을 확률’은 무지막지하게 낮을 거고.”
“…그건 그렇습니다.”
“그리고 무슨 오해가 있나 본데. 전 딱히 신이 되고 싶지 않은데요.”
인간으로 사는 게 얼마나 편하고 좋은데 굳이?
교황 후보는 고민하는 듯했지만,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것인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문이 닫히고 신계에 갇히게 된 후에, 주신께서 이안 님을 라 엘타로 돌려보내 주신다 약속하신다면 가시겠습니까?”
“내가 얻는 것도 없는데, 왜? 안 해. 그리고 거기까지 올라가려면 라마도 가야 하는데 왜 나만 돌려보내 준다고 약속하는 겁니까?”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던 라마가 펄쩍 뛰었다.
“나는 왜 끼워 넣는 건가! 싫다, 나는 빼고 혼자 가라.”
“나보고 지금 하늘까지 걸어 올라가라는 거야? 내가 가면 너도 가는 거야.”
“대체 내게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러는 건가!”
원한은 없는데. 날개 달린 게 라마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이 닫힌 후에 돌아오는 건 둘째치고 마신을 공격해서 훼방 놓는 데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내 말에 교황 후보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설득하는 건 포기한 건가?
“성공확률을 극적으로 높여줄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포기한 게 아니었구나.
그 짧은 사이에 참 많은 것도 준비해놨네.
대단하다.
“저희가 준비해놓은 것을 보시고 다시 한번 생각해주시겠습니까?”
기껏 준비해놨다는데 한번 봐줄 수는 있지.
“좋아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교황 후보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 17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