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79)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79화(179/180)
< 179화 >
“와아.”
“이건 상상도 못 했다.”
“와아아.”
교황 후보가 준비해 놓은 것은 거대한 크기의 드래곤이었다.
그것도 그냥 드래곤이 아니라.
“시드!”
아는 드래곤.
“진짜 그때 그 시드가 맞다.”
“그 후손인 건 아니고?”
“시드가 확실하다. 특유의 기운이 느껴진다.”
같은 드래곤인 라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고대 퀘스트 때 만났던 드래곤 시드.
그때는 인형만큼 작은 새끼 드래곤이었는데.
지금은 라마의 본모습 두 배 정도는 되어 보이는 크기가 되어있었다.
원래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죽지 않았으니 제 명을 살고 용생을 즐기다 갔을 거라 생각했는데…
“대체 어떻게 몇만 년이 지나고도 살아있는 거지?”
“몇만 년까지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닙니다.”
시드와의 재회를 뒤에서 지켜보던 교황 후보가 슬쩍 끼어들었다.
몇만 년의 시간이 아니어도 만 몇천 년이었겠지.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만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았으면 고룡 중의 고룡일 텐데.
그런 것 치고는 너무 건강하고 젊어 보인다.
설마 시드가 마신의 씨앗인가 뭔가 하는 거여서 수명이 늘어난 건가?
시드는 한참 동안 우리 쪽을 내려다보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나를 알아본 것인지 내 머리에 뺨을 비비적댔다.
시드와 함께 보낸 시간은 짧았고 떨어져 있던 세월은 길었는데 어떻게 나를 알아보고 반겨주는 거지?
감동이다.
나도 이렇게까지 감동하는데, 만약 이 자리에 덩치가 있었다면 시드를 끌어안고 펑펑 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시드는 애교를 부리는 건지 계속해서 머리를 들이댔다.
귀엽기는 한데. 다른 사람이 보면 드래곤에게 머리를 먹히고 있는 것으로 보일 테니까 그만둬.
“시드, 잘 있었어?”
[……]“우리를 알아보는 거야?”
[……]시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강아지처럼 꼬리로 땅을 탁탁 두드리고 있을 뿐.
시드가 땅을 두드릴 때마다 지진이 일어나는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땅 때문에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휘청거리는 교황 후보에게 질문했다.
“왜 시드가 말을 하지 않는 거죠?”
시드보다 만 살이나 어린 라마도 이렇게 말을 잘하는데.
“시드 님은 진짜 드래곤과는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데요?”
“말하자면 흑마법으로 빚어낸 인형과 같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수명도 다른 드래곤에 비해 길고, 말도 못 한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갓 태어났을 때는 삐약삐약 하고 울던데요?”
“지금도 목소리는 낼 수 있으시답니다. 그저 다른 종족의 언어로 말을 할 수 없을 뿐입니다.”
[카아아.]말은 못 해도 알아듣기는 하는 건지. 교황 후보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시드가 크게 울었다.
얼마나 크게 울었냐면. 신전이 흔들릴 정도로.
“그런데 시드가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죠? 자유를 억압하고 가둬놓고 있는 건가요?”
“오해십니다. 자칫 마신이 시드 님을 발견하게 되면 다시 한번 시드 님을 이용해 라 엘타로 내려오려고 할 수도 있으므로 저희가 보호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는 시드 님께서도 동의하신 부분입니다.”
[카아오.]사실 저렇게까지 말 안 해도 억지로 시드를 가둬놓았을 거라 생각은 안 한다.
그래도 만년이나 산 드래곤인데 이렇게 곱게 잡혀줄 리가 없지.
딱히 묶여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 공간도 시드를 위해 개조한 것 같은데. 지하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넓고 나무도 많다.
하늘만 안 보인다뿐이지. 산이나 숲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
“여기 있으면 마신이 시드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나요?”
“그렇습니다. 이곳은 신께서 보호하고 계시니까요.”
여태껏 주신이 하는 행동을 보아선, 신은 라 엘타에서 벌어지는 일들 대부분을 알고 있는 거 같다.
그렇다는 건 마신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니까 타이밍 좋게 동쪽 마왕이 죽자마자 냅다 마계로 튀어나올 수 있었던 거고.
그런데 바로 그 마신의 시야에서 벗어나 숨어 있던 드래곤을 전투에 내세운다니, 상당히 현명한 계획이다.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크니까.
여태 시드를 숨겨온 것은 마왕이 시드를 이용해 강림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던 건데.
시드 없이도 알아서 잘 내려오고 있는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다고 느낀 거겠지.
“라마 님이 아닌 시드 님을 타고 가면 이안 님의 생존 확률이 높아질 것입니다.”
“시드가 생존할 확률은?”
“……”
낮나 보네.
“뭐. 어떻게든 살려서 데려오면 되겠지.”
내 말에 라마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갈 생각인가? 안 간다고 하지 않았나!”
“뭘 모르는구나, 라마.”
라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원래 새 차를 뽑으면 바로 달려봐야지.”
“드래곤을 차 취급하는 것을 그만둬라! 그리고 나는 헌 차… 아니, 헌 드래곤이 아니다!”
아무도 뭐라고 안 했는데 혼자 왜 저래?
“시범 운행해 봐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시드는 여기서 어떻게 나가죠?”
우리가 내려올 때 사용했던 계단은 시드에게는 너무 작고.
시드가 빠져나갈 틈은 없어 보이는데.
설마 신전을 부수고 나가야 하는 건 아니겠지.
“그것은 방법이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방법이요?”
그 방법이라는 것은 교황 후보 쪽이 아니라 시드에게 있었다.
교황 후보의 말이 끝나자마자 시드는 점점 작아지더니 어린 아이만 한 크기의 작은 용이 되었다.
[캬오.]와. 덩치가 봤다면 귀엽다고 무릎 꿇고 눈물을 흘렸을 정도인데?
“시드 님은 보통의 드래곤처럼 다른 종족으로 모습을 바꾸실 수는 없지만, 이렇게 작은 모습으로 변하는 법을 알고 계십니다.”
갓 태어났을 때보다는 조금 크지만, 상당히 비슷한 모습이다.
“아마도 이안 님을 다시 만났을 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까 봐. 그때의 모습을 간직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런 감동적인 말 하지 마.
대놓고 ‘이 용을 타고 가서 세상을 구하고, 용은 희생시키고 와라.’라고 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니잖아.
작아진 시드를 안고 수도 북쪽의 인적없는 숲으로 들어갔다.
숲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시드를 타고 날아올랐다.
[캬아아아-!]“와아아!”
시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탈것보다 더 빠른 라마보다도 빨랐다.
정말 오랜만에 날개를 쭉 뻗고 날아오른 시드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아다녔다.
얼마나 열심히 날았냐면, 수도 사람들이 시드를 보고 놀라서 대피할 정도로 날아다녔다.
뭐, 저건 교황 후보가 알아서 해결하겠지.
짧은 비행 끝에 라마와 교황 후보가 기다리고 있는 숲으로 돌아왔다.
“어땠나?”
“굉장히 빠르고, 날갯짓 한번 할 때마다 힘이 넘쳐난다는 게 느껴져. 아, 그래도 날 때의 안정감이나 탑승감은 네 쪽이 최고니까 너무 서운해하지 마.”
“나는 서운해한 적 없다.”
라마가 투덜대는 사이 교황 후보가 말을 걸어왔다.
“시드 님께는 마신의 흔적이 깃들어있습니다. 마신의 공격에 받는 충격이 덜할 것입니다. 위험한 상황에서는 그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위험할 땐 시드를 방패막이로 쓰라는 말을 참 고상하게도 하네.
“언제는 마신이 공격하지 못할 거라면서요.”
“그것은 이안 님이 인간일 때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인간인데요.”
“만에 하나. 이안 님께서 그곳에서 신격을 얻으실 경우, 마신도 이안 님을 공격할 수 있게 됩니다. 혹시 모르니 주의해주세요.”
난 별로 신 같은 거 되고 싶지 않은데.
그건 그렇다 치고.
“자, 그럼 이제 해야 할 이야기가 남았네요?”
“어떤 이야기 말씀입니까?”
“모르는 척하기는.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할 거 아닌가요?”
교황 후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저 표정을 해석하자면, ‘지난번에 그렇게 털어놓고 아직도 털어갈 게 남았냐?’라고 할 수 있지.
“바라는 게… 있으십니까?”
“첫 번째는 문이 닫힌 후에 주신이 나를 살려서 돌려 보내줄 것을 약속하는 것.”
“약속하겠습니다.”
“그쪽이랑 약속하는 거 말고. 주신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약속을 받아내고 싶은데요.”
계약서에 지장 찍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원하는 게 더 있는데.”
“또… 말입니까?”
“예. 요구사항 2번부터 33번까지 여기에 적어왔어요. 이거 보고, 10분 내로 결정해서 알려주세요.”
“……”
교황 후보는 말을 잃었다.
***
“지독한 놈이다.”
라마는 멀어져가는 이성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성한은 기어이 신전을 밑바닥까지 탈탈 털어냈다.
말 그대로, 차라리 마신이 강림하는 게 신전 측에는 이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털어갔다.
“살아만 돌아오면 신전이 본인 것이 되는 정도가 아닌가. 나도 다시 태어나면 이성한으로 태어나고 싶다.”
단 한 번도 드래곤이 아닌 다른 종족이 되길 바란 적이 없었는데.
한 번쯤은 저 자식처럼 ‘태어난 김에 살았는데 살다 보니 이성한’ 같은 삶을 살고 싶어질 정도였다.
심지어 이성한은 요구했던 대로 주신과 짧은 대화를 통해 약속까지 받아냈다.
신력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이성한을, 주신과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대화할 수 있게 하려고 많은 이들이 신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교황 후보까지 지쳐 쓰러지는 바람에, 이성한이 마신과 주먹질을 하러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라마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이겨.”
이성한은 떠나기 전에 그렇게 말했다.
마신보다 무서운 놈.
어떻게 신과 1:1로 싸우러 가면서 자신이 이길 거라 확신하고 있는 건지.
이성한을 태운 드래곤 시드는 엄청난 속도로 마계의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곧 하늘의 틈에 도착할 거고, 이성한은 바로 주먹부터 휘두르겠지.
그러다가 하늘의 문이 닫히면 그대로 게임 종료.
이성한과 시드는 이제 개미만큼이나 작아져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제 곧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라마는 긴장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팝콘을 들고 올 걸 그랬다.”
그리고 그 순간,
‘쿵’
‘쿠웅’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으악!”
하늘에서 날카로운 마기 칼날이 비처럼 쏟아져 내려 왔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속도로.
라마는 빠르게 털실뭉치들의 던전으로 숨어들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공격을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었다.
“으아아아악!”
“괜찮냥!”
“가만히 있어랑, 치료하겠당!”
라마는 마기 칼날이 닿았던 팔을 움켜쥐고 괴로워했다.
팔이 썩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성한이 비늘로 때린 데 또 때렸을 때보다 아팠다.
‘마신이 공격하지 못한다고 한 건, 거짓이었나.’
주신이 이성한을 속인 건가?
그게 아니라면 주신도 몰랐던 건가.
아니면 마신도, 주신도 아닌 다른 무언가가 개입한 걸지도 모른다.
라마는 끙끙대면서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구멍 난 던전 천장 쪽으로 다가갔다.
“안 된당. 가지 마랑.”
“아직 위험하당. 한 번 더 맞았다가 죽을 수도 있당.”
털실뭉치들은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드래곤을 겨우 진정시키고 치료했다.
“튼튼한 드래곤이어서 다행이당.”
“인간이나 일반 마족이었으면 닿는 순간 죽었을 거당.”
인간이라면 닿는 순간 죽었을 거라고?
그러면 이성한은?
가까운 거리에서 이 공격을 직격으로 맞았을 이성한과 시드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앗, 안 된당! 말려랑!”
“가면 안 된당, 위험하당!”
라마는 털실뭉치들을 제치고 천장의 구멍 밖으로 뛰쳐나갔다.
마기 칼날 공격은 멎어있었다.
라마는 바로 폴리모프를 해제하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하늘의 문은 닫혀있었고, 마신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라마는 이성한을 찾을 수 없었다.
< 179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