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19)
평범한 회사원입니다-19화(19/180)
< 19화 >
몇십 분간 형과 마주 앉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상세한 건 설명하기 길고 귀찮으니까 일단 패스.
시스템 창이 보이는 정도까지만 우선 설명했다.
“나는 퀘스트는 못 받아도 남의 퀘스트에 간섭할 수 있는 거 같아. 다른 사람 퀘스트 보드가 보이더라고. 형 퀘스트 창도 보이고.”
“이 창도 보여?”
물론 아주 잘 보인다.
[NPC 이성한과 파티를 맺으시겠습니까?예 / 아니오]
이안이라는 이름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이성한이라고 뜨는구나.
왜 퀘스트에는 이안으로 나오고 파티 창은 이성한이지?
시스템이란 게 이렇게 일관성이 없을 줄이야.
“잘 보여. NPC 이성한과 파티를 맺으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왜 시스템 창이 보이지 않는가 했더니 플레이어가 아니라 NPC 취급이다.
나를 라 엘타 주민으로 인식하는 건가?
그러면 더더욱 이성한이 아니라 NPC 이안으로 표기되어야 하는 거 아냐?
“원래 NPC들이 시스템 창을 볼 수 있어?”
“전혀. 그들은 퀘스트 보드조차 볼 수 없다고 밝혀진 지 오래다.”
“그럼 나는 왜 보여? 그리고 왜 NPC야?”
형에게 물어봐야 아는 게 있나 싶긴 하다만.
적어도 시스템에 한해서는 형이 나보다 많이 알겠지.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모르는 사실들을 많이 주워들었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그런 능력을 가진 특수 플레이어 인 거 같은데.”
“특수 플레이어? 상태창이 없는데도 플레이어일 수 있어?”
“고유 능력이라는 게 있어.”
“고유 능력?”
“모든 플레이어가 고유 능력이 있는 건 아닌데, 가끔 그런 플레이어들이 있다. 대신 그런 경우, 능력 개방을 위한 달성 조건이 있거나 페널티를 갖고 있는데. 네 경우 그 페널티가 본인의 상태창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닐까 싶어.”
아니, 난 그런 게 아니고 진짜 라 엘타 주민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은데.
고유 능력이고 나발이고 아닌 것 같다만 딱히 의견을 어필 하진 않았다.
설명하기도 번거로운데 형이 알아서 결론까지 내려 준다면 감사하지.
“형도 고유 능력이 있어?”
“응, 있어.”
있구나.
“네 능력은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가치가 있다.”
“파티 맺는 거? 아니면 남의 시스템 창 보는 거?”
“그거 말고 자유롭게 라 엘타에 드나들 수 있는 거.”
형은 팔짱까지 끼고 엄청나게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능력을 잘 활용하면 전 세계적으로 플레이어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다.”
“그럼 세계적인 면에서 좋은 거 아니야?”
“하지만 너 개인적인 면에서 아주 좋지 않지.”
납치나 살해 협박 같은 거에 노출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근데 그건 이미 세계 1위 동생인 시점에서 마찬가지 아니야?
“여태껏 길드의 도움으로 최대한 정보 유출을 막아왔는데···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까지 드러난다면 이 이상의 통제는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 하지 말고···”
“형.”
“?”
“나 쎄.”
그것도 엄청.
“스킬 있어?”
“아니.”
“마법 같은 건?”
“몰라.”
형의 눈초리가 가늘어진다.
당연하게도, 믿지 않는 눈치다.
“그래도 검은 좀 쓸 줄 알아.”
“그래, 그래.”
저 그래그래는 ‘난 널 믿어’라는 의미의 그래그래가 아니라 ‘그래, 네가 많이 아팠었지. 형이 몇 년이 지나서 잠시 잊고 있었다.’라는 의미의 그래그래가 분명하다.
“아, 형. 나 장난도 안 치고 거짓말도 안 한다니까? 이거 봐봐.”
퀘스트 이동이 된 후에도 아직 허리춤에 묶여있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포션 병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생명력 포션이라고 하지 않았어?”
“어. 생명력 포션 맞는데?”
“그런데 왜 보라색이야.”
“응?”
“?”
“보라색이면 안 되는 거야?”
보라색인 게 어때서.
초록색이면 맛없어 보이니까 먹기 싫을 수도 있는데, 보라색이니까 포도 주스라고 생각하고 마시면 되잖아.
“보통 생명력 포션은 빨간색이잖아.”
“뭔 소리야. 색은 포션 만드는 연금술사가 조합하는 거지. 포션에 빨간색 보라색이 어딨어.”
“?”
“···?”
“···”
“설마 마력 포션은 파란색이야?”
“어.”
와, 설마. 라 엘타 시스템, 이 자식.
지구 게임 좀 하다 오셨나 봐요?
대체 언제부터 라 엘타의 포션들 색이 고정되어 있었다고 퀘스트 보상 포션을 다 빨간색, 파란색으로 통일시켜.
원래 포션은 제조 시 색을 넣는 재료를 추가하면서 연금술사가 원하는 대로 색을 정할 수 있다.
아돌놈을 처음 만났을 때 들고 있던 검에 보라색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그 색이 내가 좋아하는 색이라고 생각했는지 보내오는 포션의 색이 죄다 보라색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생명력 포션은 짙은 보라색이고 마력 포션은 연한 보라색이라서 구분할 수 있다는 정도일까.
“아, 됐어. 내 포션은 보라색이야. 상태창 확인해 봐.”
“상태창.”
형은 삼 초 동안 허공을 바라보다 포션 병을 돌려줬다.
“어때? 좋은 포션이야? 사실 나도 정확한 효과는 모르거든.”
“상태창이 안 뜨는데?”
“어? 왜?”
“원래 퀘스트를 통해서 받은 아이템이 아니면 안 떠.”
나는 아이템 정보창이 안 보이는 이유가, 아이템이 플레이어랑 직접적으로 연관된 게 아니어서 안 보이는 줄 알았지.
퀘스트 창이나 스탯창, 메시지 창같이 플레이어가 주체인 시스템 창은 보이고.
아이템 정보창같이 아이템이 주체인 경우는 안 보이고.
근데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아이템 창이 안 뜨는 거였단 말이야?
“형, 아이템 창 아무거나 하나 소환해봐.”
“상태창.”
[에메랄드 링]아이템 분류: 반지
착용 제한: 레벨 70
착용 효과: 공격력 +20
형답지 않게 웬 반지를 끼고 있나 했더니 아이템이었구나.
공격력 +20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아이템 창도 내 눈에는 다 보인다.
아. 그래서 그때 거래자 표정이 영 찝찝하단 표정이었구나.
판매글에는 설명도 없어.
빨간색이어야 하는 포션은 보라색이야.
상태창은 불러도 나타나지 않아.
그 자리에서 포션 뚜껑을 열고 내 머리에 부어버리면서 사기꾼이라고 외쳤어도 그 사람은 무죄다.
다리 한 짝을 부러뜨리는 정도로 용서해줄 의향이 있다.
이미 거래는 끝났고 환불도 됐고, 형이 말한 대로 포션은 쓰레기통 행이었을 테니까 아무래도 좋지만.
“그럼 상태창은 됐고. 한번 마셔봐.”
“이걸?”
세계 1위의 포커페이스가 무너진다.
그만큼 보라색 포션은 마시기 싫은가보다.
“이성한. 어디서 속아서 이런 걸 받아온 거 같은데. 보라색은 보통 독이야. 사이비 NPC한테 속아서 강매당한 건 아니지?”
“형은 내가 앤 줄 알아? 아돌이란 연금술사가 준 거라고!”
포션 마개까지 따서 눈앞에 들이대고 나서야 형은 포션의 맛을 봤다.
사약 내리는 분위기가 되어버렸지만, 이거 엄연히 포션이라고.
100% 유기농, 건강 제일 생명력 포션이라고!
사실 무슨 재료가 들어간 건지 알 방법은 없다만.
“···!”
반응이 왔다.
형이 놀란 듯 포션 병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다 물었다.
“이거. 진짜 어디서 났어.”
“좋아? 좋은 거야? 비싸게 팔아도 되겠어? 얼마나 좋은데?”
“레벨 80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도. 내 퀘스트는 난이도 9니까 다른 플레이어들은 더욱 구하기 어려울 만한 포션이다.”
현금이 쌓이는 소리가 들린다!
만세!
“그래서 어떻게 구한 거냐니까? 라 엘타에 출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그게 형, 아돌이라는 애가···”
“조용히 못 해? 마레트 님, 이 녀석들이 수상한 대화를 합니다!”
밖을 지키던 병사가 쇠살창을 검집으로 두드리며 외쳤다.
깡깡, 하고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끄럽긴 지가 더 시끄러우면서.
사실 나와 형은 계속 감옥처럼 개조된 마차에 갇혀 이동되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둘 다 마차를 찢어버리고 탈출할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를 변수를 만들지 않기 위해 얌전히 갇혀 있는 것뿐이다.
일단은 퀘스트 중이니까.
발단은 약 한 시간 전.
퀘스트에 진입해 이동된 직후였다.
퀘스트를 시작하면 직접 특정 장소로 이동을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퀘스트 장소로 이동되는지 몰랐지.
플레이어 이놈들은 왜 유용하고 필요한 정보들은 쏙 빼놓고 언제나 쓸모없고 잘못된 정보들만 보고하는 걸까?
연합도, 연구소도 플레이어들을 위해 운영되는 거나 다름없는데.
이놈의 플레이어들이 진짜 새싹 플레이어들에게 도움 될만한 정보는 주지 않고. 일반인들은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니 플레이어가 말하는 그대로 기록하고.
결국 새싹 플레이어들은 길드에 들어가 직접적인 지원과 가이드를 받지 않으면 도태되거나. 사망하거나. 아니면 제대로 된 플레이어로 활동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거다.
연합, 연구소, 길드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서면 된다고?
말만 쉽지.
이미 체계가 그렇게 잡혀버린 세상에 마음 잡고 홀로 모든 것을 해보려고 하는 플레이어 자체가 몇 없다 이거다.
그러니까 이 망할 놈의 플레이어들아, 제대로 된 정보 좀 줘 봐라!
퀘스트 시작하면 다른 지역으로 뚝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거나.
퀘스트를 통해 얻은 게 아니라면 아이템 정보가 뜨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라던가.
자꾸 그러니까 나처럼 플레이어도 아니고 아주 일반인도 아닌 애매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거라고!
물론 나 같은 사람은 전 세상에 나밖에 없을 것 같지만.
속으로 온갖 플레이어 욕을 하던 그 짧은 순간.
몇 초 안 되던 그 순간에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우르르 둘러 쌓였다.
그것도 검으로 겨누어진 채로.
그냥 다 쓸어버릴까 생각했지만, 퀘스트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참았다.
내가 아무리 라 엘타 전문가라고 해도 퀘스트는 생초짜니까.
괜히 실수했다가 퀘스트고 나발이고 다 망쳐버리고 내 책임이 되어버리는 일은 사양이다.
형도 검을 빼 들려다 내 쪽을 보고 멈추는 것이 보였다.
혹시라도 내가 위험에 처하게 될까 봐 그런 거 같은데. 여기서 사실 나는 아주 매우 베리머치 강하다는 걸 어필하고 있을 상황도 아닌 거 같고.
그냥 얌전히 있었다.
우리가 반항하지 않자 우리를 포위한 무리는 우르르 몰려와 몸수색을 했고, 형의 검까지 가져갔다.
내 허리춤의 아공간 주머니도 슬쩍 열어보았지만, 동전 몇 개뿐인 것을 보고 압수하지 않았다.
미안한데 그거 마법 주머니거든.
주인으로 등록된 사람이 아닌 이가 열어보면 설정한 대로만 보이거든.
사실은 그 안에 무기고 뭐고 다 들어있지. 아하하, 속았지!
“인간형 몬스터나 마족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 해도 우리를 노리는 적일 가능성이 크다!”
댁들 적은 허공에서 뚝 떨어진답니까.
고작 사람 둘 있는데 왜 저렇게 경계하냐. 저쪽은 숫자도 몇십이면서.
물론 여기 있는 둘이 저기 있는 모두를 합친 것보다 강하겠지만.
“수상한 이들이다, 가둬 두어라!”
목소리 큰 여자의 말에 모두가 우르르 몰려와 형과 나를 감옥처럼 개조된 마차에 가둬 놓았다.
그 상태로 한 시간 동안 이송되었고.
그동안 상태도 점검할 겸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서로 털어놓을 것도 어느 정도 털어놓았으니 퀘스트를 진행해볼까!
“자, 그럼 이제 어떡하지, 형?”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멋대로 퀘스트 클릭해서 이 꼴 나게 만든 건 너다, 라는 시선에도 나는 당당하게 [스킬: 아무것도 몰라요]를 시전했다.
퀘스트가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줄은 몰랐지!
< 19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