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20)
평범한 회사원입니다-20화(20/180)
< 20화 >
“형, 일단 눌러.”
“···”
“빨리 좀 누르라고!”
“···”
일단 파티부터 맺고 생각하자고 제안했는데, 형은 십분 째 파티 창의 ‘예’를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쪽에서 냅다 눌러버릴까 했는데 진짜 형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볼 거 같아서 우선은 참았다.
“같이 소환되기는 했지만, 아직 시스템적으로 묶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베라포드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서 그쪽으로 이동하면…… 혼자라도 돌아갈 수 있을지 몰라.”
“뭐라는 거야.”
“파티로 묶여버리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참는 거 포기다.
형이 화를 내기 전에 내가 먼저 답답해 펑 터져버릴 거 같아서 형이 말을 하는 틈을 타 눌러버렸다.
파티를 맺겠습니까? 당연하죠!
[NPC 이성한과 파티를 맺었습니다.파티 인원 2/10
플레이어 이성현
NPC 이성한]
“···..”
“화 안 내네, 형.”
“이미 눌러버린 걸 어쩌겠어. 사실 너 혼자 베라포드까지 돌아가라고 하는 것도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니까. 차라리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라.”
형 눈에는 내가 사고 치고 다니는 다섯 살배기로 보이는 걸까.
그러고 보니 이제 나도 파티를 맺었으니. 퀘스트도 공유되나?
“퀘스트.”
“···”
“퀘스트 창.”
“···”
“퀘스트 소환. 퀘스트 창 소환. 퀘스트 열려. 퀘스트 님 열어주세요.”
“···”
그딴 거 보이지 않았다.
그럼 파티를 해서 달라진 게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혹시나 싶어 퀘스트 창이 아닌 파티창 소환도 시도해보았지만,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퀘스트.”
몇 번을 발악해도 떠오르지 않던 시스템 창이, 형의 한 마디에 팟- 하고 나타났다.
시스템에게 차별당하는 NPC 인생.
투덜거리며 형의 옆자리로 가 앉아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몬스터 토벌에 나선 일행을 도와 클라리사 평원의 남쪽 구역 몬스터의 수를 60% 이하로 줄이세요.
달성도: 0%
보상: 달성도에 따른 차등 보상
실패 조건: 레이나 마레트 & 클리브 어윈의 사망
“마레트는 아까 들어본 이름이네. 이 무리를 통솔하고 있는 사람들일까?”
“아마도.”
“그럼 아까 걔들 다 쓸어버렸으면 퀘스트도 끝이었겠네.”
“그렇지.”
순순히 잡혀준 게 잘한 걸까.
끝까지 앉아만 있다고 마레트와 클리브가 몬스터들 싹 쓸어서 퀘스트 깨 줄 것 같진 않다.
“형. 퀘스트 내에서 죽으면 실제로도 죽잖아.”
“그렇지.”
“그러면 죽진 않았는데 퀘스트 조건 실패하면? 예를 들어 여기 적힌 마레트, 클리브 두 사람이 죽는다거나.”
“퀘스트 실패로 간주되고 죽어.”
“진짜? 보통 게임에선 그런 경우 실패 페널티만 받거나 다시 저장 시점으로 돌아가서 퀘스트 할 수 있는 식 아니야?”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니까.”
그렇군.
“그러면 나는?”
“너는 뭐?”
“형이 퀘스트 실패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데?”
“모르지.”
“이거 참. 실험해 볼 수도 없고.”
“실험해보지 마라.”
퀘스트 실패가 곧 죽음이라니.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거잖아.
이러니까 다들 퀘스트 진행하는데 몸 사리고 높은 난이도에 도전하는 것을 꺼리는 거다.
이번 퀘스트의 경우에도 혼자 멋지게 잘 진행하고 있다가 저 뒤에서 지켜야 하는 NPC가 눈먼 화살에 맞아 죽기라도 하면 바로 게임 오버.
잠시라도 한눈팔면 그야말로 인생 끝이다.
이번 경우에는 형과 내가 함께 퀘스트를 진행하게 되었지만.
일반적으로는 혼자 진행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패 조건이 큰 변수가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저쪽 일행들이 얌전히 우릴 묶어 놓기만 해서 다행이지.
공격하기라도 했으면 플레이어는 본인 목숨을 챙기면서 상대방까지 걱정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잖아.
그런데 이게 왜 난이도 10이야?
“형. 난이도 10은 몬스터 사냥 퀘스트 거의 없고, 스토리 있는 퀘스트 위주 아니었어? 난 그렇게 들었는데. 뭔가 의미 있는 경우가 많다고.”
“이런 퀘스트도 있어. 보통의 사냥 퀘스트가 일정 숫자의 몬스터를 잡는 거라면. 상위 난이도의 사냥 퀘스트는 몬스터 수가 대폭 늘거나, 강해져 있는 상황이겠지.”
“난이도 9라면 몬스터를 50% 정도만 토벌하라든가 하는 식으로?”
“난이도 9였다면 아예 다른 퀘스트였을 거 같다만… 만약 같은 종류의 퀘스트라면. NPC의 생존과 관계없이 토벌만 진행하거나, 아예 몬스터 사냥 없이 저 두 사람이 살아서 평원을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정도일 거다.”
생각보다 더 난이도에 따른 차이가 크다. 그만큼 보상의 차이도 크겠지?
괜히 플레이어들 간의 격차가 어마어마한 게 아니구나.
“여기 적힌 두 명의 NPC는 라 엘타의 미래에 있어서 중요 인물일 가능성이 커.”
“중요한 사람들이니까 살리라는 거야?”
“라 엘타 퀘스트는 결론적으로 라 엘타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있는 거니까. 높은 난이도일수록 성공이나 실패 여부에 따라 라 엘타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도.”
“그럼 이 둘이 죽으면 큰일이라는 뜻이네?
이 두 사람이 상당히 중요한 인물들이란 말이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라 엘타에 살던 수십 년 동안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다. 물론 수십 년 전에는 저 사람들이 태어나기 전이었겠지만.
“혹은 이 둘의 생존이 라 엘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쪽일 수도 있지.”
“별로 그렇게까지 영향력 있어 보이지는 않던데. 그냥 시스템 창이 편애하는 애들 아닐까?”
지금의 형 표정을 해석하자면 ‘입 밖으로 내뱉는다고 다 말이 아니다.’ 인 것 같다.
아니, 왜. 그럴 수도 있잖아.
라 엘타의 신 같은데 이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는 거라면. 충분히 좋아하는 애들 살리려고 다른 차원 사람들 불구덩이에 넣듯 퀘스트에 던져 넣을 수도 있는 거 아냐?
“이 둘의 생존이 라 엘타에 있어서 중요한 건 확실해. 그러니까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이 NPC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놓으면 차후의 퀘스트에 좋게 작용될 수 있어.”
“무슨 퀘스트 속의 퀘스트 같은 느낌이네.”
“그렇지. 이 둘을 살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의 생존에도 도움을 주는 식으로 퀘스트를 진행한다면 추가 보상을 받게 될 가능성도 크다.”
퀘스트, 시스템이라는 거.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디테일하게 되어있었다.
형이 이렇게까지 아는 것은 플레이어여서가 아니라 상위 난이도의 고레벨 플레이어이기 때문이겠지.
형은 설명을 시작한 김에 모든 것을 꼼꼼하게 알려 주자는 생각인 건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원래 이렇게까지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필요하다고 느끼면 설명을 멈추지 않는 우리 형.
“이 둘의 생존 여부가 라 엘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지만. 몬스터 토벌에 성공하지 못하면 상황이 아주 나빠지게 된다는 건 확실해.”
“왜? 몬스터들이 미쳐 날뛰나?”
나 혼자 몬스터 토벌하고 다녔던 시절도 있었지만.
실패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네.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몬스터들과는 달리, 라 엘타에는 오염된 몬스터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
“어.”
“오염된 땅에서는 동식물이 살지 못하지. 대신 그 땅 위에선 몬스터의 수가 급증하고 오염된 대지에 오래 노출될수록 강해져.”
내가 베라포드 있었을 때, 몬스터 토벌을 다니기 시작했던 것도 갑자기 이상행동을 보이는 몬스터가 늘어나서였다.
번식도 엄청난 속도로 하고. 덩치도 커지고.
무리가 커지면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쳐들어오기도 하고.
오염된 땅에서 동식물이 살 수 없다는 것은, 몬스터들도 먹을 것을 잃는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인간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움직이고, 몬스터들이 움직이면서 땅이 오염되는 범위도 커지고.
물론 진짜 모든 동물과 식물이 죽는 건 아니다. 그 수가 크게 줄어들고 독에 오염되어 먹을 수는 없겠지만.
오염된 지역 중에는 숲도 있으니 동식물도 어느 정도는 살아갈 수는 있다. 그저 감염되고 약해져 있을 뿐.
그렇게 서서히 몬스터밖에는 없는 벌판이 되어가는 거다.
솔직히 내가 몬스터 안 막았으면 지금쯤 라 엘타 전역이 오염된 땅으로 물들어 있을 거다.
그나마 살아남은 인간들도 오늘내일 죽네 사네 하며 살고 있겠지.
이 세상은 좀 더 나한테 감사할 필요가 있어.
예를 들어 감사의 표시로 시스템 창을 준다거나?
“토벌 퀘가 난이도 10에 나오는 경우는 적지만, 이 경우는 이 땅이 심하게 오염되어 있어 난이도가 높아진 경우 일 거야.”
이걸 저지하지 못하면 오염의 범위가 크게 넓어지거나 몬스터들이 평원 밖으로 나가는 등,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으로 형은 설명을 마쳤다.
딱 대화가 마무리되었을 즈음, 마차가 멈췄다.
창살 너머로 쳐다보니, 병사들도 멈춰 서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야영하려나 보다.
그러고 보니 벌써 어두워지네.
“자, 밥이다.”
멀뚱히 밖을 쳐다보고 있으니 병사 하나가 다가와 뭔가를 내밀었다.
아주 적은 양의 육포와 마른 식량.
이걸로 배를 채우라는 건가? 이게 창살 안에 갇혀 있다고 사람을 무시해?
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밖의 다른 병사, 기사들도 다 같은 것을 먹고 있었으니까.
“음식이 이게 뭐야. 너네 가난해?”
“뭣? 기껏 챙겨주는데, 이 자식!”
병사가 얼굴이 빨개져서는 창살을 덜컹덜컹 흔들었지만 위협도 되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흥분하면서 화낼 일이야?
아니,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진 게 아니라 그냥 쪽팔린 건가.
병사는 한동안 씩씩대다 던지듯 식량을 주고 가버렸다.
“여긴 오염된 땅. 아까도 설명했지만, 대지가 오염된 정도가 심할수록 이 주변에서 음식을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져.”
그렇지. 동물도 식물도 전부 독 덩어리로 되어있을 테니까.
“이곳에 있는 건 몬스터가 전부. 먹으면 독. 꽤 규모가 큰 무리고, 오랜 시간 이동해야 할 테니 짐은 식량보다 물이 우선. 식량은 최소한으로.”
그중에서도 오래 보존할 수 있는 것만 가져온 거라는 건가.
이 말라비틀어진 음식들이.
“불을 피우거나 요리를 할 수도 없겠지. 불빛이나 냄새로 몬스터를 유인하는 꼴이 될 수도 있으니.”
그렇군. 무지하게 불편하게 사네.
혼자 몬스터 토벌을 다닐 때도 이런 불편함을 겪어본 적이 없었던지라. 보통 사람들이 얼마나 번거롭게 사는지 잊고 있었다.
일단은 주어진 거라도 챙겨 먹었지만, 영···
배도 안 부르고 입안도 찝찝한데?
형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이런 음식 찌꺼기 같은 걸 잘도 먹고, 잘도 누워 잤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야.
사실은 퀘스트 들어올 때마다 갇히고 잡히고 끌려다녔던 거 아냐?
***
형이 체력 비축을 하겠다며 잠을 청하고 몇 시간 후.
잘 자고 있던 형이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어났다.
참 예민하기도 하셔라.
잠시 뒤적이다 깨어나 몸을 일으킨 형과 눈이 마주쳤다.
원래대로라면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해서 시선 따위 마주칠 일이 없어야 하는데.
형과 시선이 딱 마주쳐버렸다.
어떻게?
불을 피우고 있으니까!
형 옆에서 고기 굽고 있었는데 딱 걸렸네.
“너…”
부스럭거리다 형을 깨운 게 조금 미안해지기도 해서 고기를 들고 있던 손을 내밀었다.
“먹을래?”
형은 어이가 없다 못해 소멸해버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 2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