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26)
평범한 회사원입니다-26화(26/180)
< 26화 >
첫 팁 글에 관한 반응은 처참했다.
내가 글을 쓰는 재능이 머리카락 한 가닥 만큼도 없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래도 지난 몇 달간 회사에서 자료정리도 하고 보고서도 쓰면서 많이 좋아진 거라고, 저게.
결국 이지혜에게 SOS를 쳐서 도움을 청해야 했지만.
“이게 무슨 의미예요? 시스템의 의도 파악이 중요하다는 부분이요.”
“제가 형이랑 같이 퀘스트…를 하지 않고, 형한테 퀘스트 경험담을 들었는데요.”
라 엘타에 출입할 수 있는 일반인이지만 다른 플레이어와 퀘스트를 할 수 있습니다.
라는 설명은 백번 말해도 믿어주지 않겠지.
이지혜는 플레이어도 아니니까 라 엘타에 들어가 증거를 보여주는 방법도 불가능했다.
“시스템 창에는 NPC 둘을 도와서 몬스터 토벌을 하라고 되어 있었는데. 몬스터 토벌뿐 아니라 NPC를 돕는 행위도 업적으로 인정이 되더라고요. 아니, 된다고 하더라고요.”
“정말요? 그런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아마 높은 난이도일수록 그런 경향이 클 겁니다.”
이지혜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소에 협력하는 플레이어분들은 대부분 난이도 4 이하를 진행하시니까, 말씀을 안 해주신 게 아니라 모르셨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이건 좋은 팁 같아요. 낮은 난이도라도 레벨이 높아질수록 히든 피스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이지혜는 내가 쓴 팁 글을 읽으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질문하고, 설명을 들으며 글을 수정했다.
자기 일도 아닌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주다니. 가끔 생각하지만, 이 사람은 정말로 이 일이 좋아서 하는 거 같다.
“형분이 상당히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신가 봐요. 이런 것들도 다 아시고. 사실은 유명하신 분 아니에요?”
“상당히 유명하죠.”
아마 전 세계에서 제일?
“하하. 성한 씨랑 친하게 지내야겠네요.”
“지혜 씨도 다른 사람들처럼 유명한 플레이어들에 관심이 있어서 여기 들어오신 거예요?”
연구소나 연합에서 일하는 일반인 직원 중에는 단순하게 플레이어 얼굴 한번 보려고 취직한 사람들도 있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이 연예기획사에 취직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거기서 나아가 플레이어와 친분을 쌓거나 그 이상의 관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고.
현실은 그냥.
그냥 회사원이지만.
“그런 건 아니고, 저는 동생 쪽이 각성했었거든요.”
“그래요? 동생 쪽은 난이도 몇으로 달리시나요?”
“초기 각성자였는데, 사망했어요. 아마 난이도 9나 10을 시도했었던 거 같아요.”
아. 숙연해졌다.
남의 집 강아지가 아프다는 말에도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는데.
괜히 물어봤다.
“연구소는 플레이어들을 돕고 안전하게 강해질 수 있도록 안내를 하는 역할이잖아요? 제 동생 같이 멋모르고 희생되는 이가 없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팁 글 작성도 도와주고 있는 거구나.
이것도 결국은 갈 곳 없고 멋모르는 플레이어들 도와주는 거니까.
“지금은 각성하면 적정 난이도도 찾아주고. 플레이어에게 안전한 세상이 된 것 같아 다행이에요.”
“네. 그렇네요.”
“너무 어두운 이야기였나요? 하하, 죄송해요. 다 됐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하고 있던 사이에 이지혜가 수정을 끝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커피 살게요.”
확실히 깔끔하게 바뀐 것 같기는 한데…
내가 쓴 것보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낫다는 건지 봐도 모르겠다.
내용은 똑같은데.
이지혜의 조언대로 기존의 글을 수정하지 않고, 삭제 후에 새로 올렸다.
나중에 대리 놈이나 부장님이 덧글을 보게 할 수 없지.
지금이야 도움받아서 올렸다만 앞으로는 어떻게 하지. 매번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고.
담당자를 바꿀 방법이 없을까.
“오늘 플레이어 연합 설명회 있는 날인 거 아시죠?”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내 일을 남에게 떠넘길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지혜가 물어왔다.
그놈의 설명회.
말만 설명회지 놀고먹자 분위기라며.
올 수 있으면 반드시 오라고 김 대리가 몇 번이고 당부했다.
필수는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는 하지만 말만 저렇지. 안 가면 찍힐 게 분명하다.
부장님도 가만히 있는데 김 대리가 자꾸 3층이랑 4층의 라이벌 구도를 만들고 앉아있어서.
또 나중에 4층에서는 몇 명이 왔는데 3층에서는 고작 누구누구 밖에 안 왔네, 하면서 신경을 팍팍 긁어댈 게 분명하다.
솔직히 퇴근 시간 후에 가면 야근인데 야근 수당 줄 것도 아니면서.
플레이어들 많이 오니까 인맥 쌓아서 연구소에 보탬이 되라는 압박 아닌 압박을 하는데.
마음 같아서는 형 불러놓고 당당하게 외치고 싶다.
나는 이미 설명회에 오는 모든 플레이어 합친 것보다 더 좋은 인맥이 있는데요?
그 후에 들러붙을 껌딱지들이 귀찮아서 안 할거지만.
“지혜 씨는 가세요?”
“가야죠. 안 가면 앞으로 최소 5년은 들볶일걸요?”
“5년이나 더 여기서 일하시려고요?”
내 질문에 그녀는 하하 소리 내 웃었다.
난 농담한 게 아니라 진짜 진지하게 물어본 건데.
여기 퇴사하고 싶은 거 나뿐이야?
“성한 씨 형도 오늘 설명회에 오세요?”
“안 올걸요. 말만 설명회지 플레이어 대 친목의 현장이잖아요. 그런데 가는 사람 아니에요.”
애초에 형뿐 아니라 영웅 길드에서 오는 플레이어는 없을 거 같다.
초대장을 보내도 안 오겠지. 이런 실속 없는 친목의 장.
어차피 연합 측에서도 여태 잘했으니 앞으로도 잘 해보자란 의미에서 대접하려고 설명회니 뭐니 이름 붙여서 하는 거지.
막상 오는 사람들은 어중이떠중이 길드들의 어중이떠중이 플레이어들이 전부일걸.
“장소는 아시죠? 올림피아 호텔. 그래도 거기 뷔페가 굉장히 맛있다고 하니까 저녁 먹는다 생각하고 가요.”
“안 가면 또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가서 밥만 먹고 몰래 빠져나오려고요.”
“마지막에 경품 추첨 있다는데 가시려고요?”
나는 곧 형한테서 새 자전거를 뜯어낼 사람이다.
경품 추첨 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지.
“플레이어분들이 많이 참석하시니까 경품에 신경을 많이 썼다나 봐요. 신형 차도 있다고 들었는데.”
하지만 가는 김에 마지막까지 구경하고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역시 행사는 끝까지 보고 나오는 게 예의지.
대충 일을 하다 보니 순식간에 하루가 지나가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
퇴근은 못 하지만.
가서 자리만 지키고 앉아서 놀고먹으래도 회사 이름 달고 가면 그건 야근이다.
가기 싫어.
3층 직원들은 차를 가지고 온 직원들의 차에 나눠 타서 설명회 장소로 이동했다.
예상은 했지만 앉아서 먹고 마시기는 개뿔.
연구소 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연합 사람들에게 붙들려서 손님 아닌 직원처럼 도와야 했다.
한 시간을 서서 플레이어들을 가짜 미소로 맞이하고 자리를 안내하고.
이 정도면 일 한 거나 다름없는데 수당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냐?
다른 사람들은 평소에는 보기 힘든 플레이어들 보는 맛에 기운 내고 있는 거 같은데.
나는 집에 가면 세계 1위 있다고. 그냥 집에 보내줘.
진짜 국내 상위 플레이어 및 길드들은 이런 곳에 안 온다니까?
어차피 여기 오는 플레이어들은 다 자기들 잘난 맛에 살아서 어떻게든 대접받아보겠다고 오는 애들이라고.
막상 플레이어 판에 뛰어들면 아무것도 아닌 애들인데 일반인들 앞에 와서 으스대는 사람들.
회사에서 상사 욕받이로 살다가 편의점 와서 진상부리는 손님이랑 뭐가 다르냐.
물론 모든 플레이어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지금 내가 너무 집에 가고 싶어서 세상이 다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 것뿐.
‘띠링. 띠링.’
밝은 미소와 함께 어서오세요를 서른한 번 째 반복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 알람도 아니고 톡 알람.
평소에 나한테 연락할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게임 홍보 알람인가.
“성한 씨, 지금 폰 켜둔 거야?”
확인하려던 차에 옆에 서 있던 김 대리가 작은 소리로 한소리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랄 땐 언제고 일까지 시키고 있으면서 내 폰 내가 못 켜놓냐.
그리고 플레이어들한테 들리지 말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 해봤자 쟤네는 일반인보다 청력 좋으니까 다 들릴걸?
“빨리 무음으로 못 바꿔?”
톡 알람 몇 번 울린 거 가지고 난리 치는 김 대리 얼굴에 침 뱉기 전에 핸드폰을 무음으로 돌려놓았다.
좋아. 역시 퇴사를 하자.
설명회가 시작될 즈음에야 안내가 끝나 자리로 가 앉을 수 있었다.
연구소 직원용 테이블은 어두운 구석 자리.
그래도 4층 사람들보다는 많이 왔으니 내일 또 김 대리 잔소리 들을 걱정은 없겠네.
이제 모든 것에 신경 끄고 밥을 먹기로 했다.
음식은 맛있네.
무슨 피아니스트도 초대해서 공연도 하고.
몸값 비싼 플레이어들 오라 가라 했으니 신경 썼다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신경 쓰는 김에 남의 회사 직원을 안내원처럼 부려먹지 말고 추가 인력을 고용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연구소 직원들은 뭐냐. 쟤들도 손님이야? 우리랑 같은 취급 받네.”
“냅둬. 수발들어줄 애들도 필요하잖아.”
“그럴 거면 서 있어야지 왜 우리처럼 테이블에 앉아있냐고.”
거 참 시끄럽네.
애초에 연합에서도 연구소 직원을 부른 이유가 플레이어들 우쭈쭈 해주라고 부른 거 아는데.
돼지 멱따는 소리 계속 들었다가는 밥 잘 먹다 체하겠다.
“쟤가 걔래.”
“걔 뭐?”
“포탈 이용 가능한 논 플레이어.”
“그거 연구소 직원이었어?”
“반푼이 주제에 지가 플레이어인 줄 아나 봐. 여기까지 와서 밥 처먹고 있고.”
아예 대놓고 이쪽을 쳐다보면서 수군거린다.
손가락질도 하지 그래?
반 플레이어라고 온 거 아니고 연구소 직원으로 온 거거든.
형이 분명 정보 차단한댔는데 왜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 거야.
영웅 길드 능력이 고작 이정도야?
여기서 테이블을 싹 엎고 쟤네를 구석에 던져버리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냥 조용히 밥 먹고 집에 가는 게 좋을까.
전자도 상당히 끌리기는 하는데 그렇게 하면 설명회가 제대로 진행이 될 리가 없겠지.
일단 밥이 맛있으니까 이거 다 먹고.
추첨까지 끝나고 생각해보자.
얼굴 기억해놨다, 니네.
한 시간의 식사 시간이 끝나고.
연합 대표의 짧은 연설과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그 후에는 초대된 길드의 각 대표들이 자신의 길드에 대해 자랑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주 난리가 났네.
대놓고 재롱잔치 판을 깔아줬구만.
연합이 플레이어들과의 교류에 신경 쓴다는 건 익히 들어 알았다만 이렇게 비행기 태워주면서 애쓰는진 몰랐다.
길드에는 관심도 없고.
머리를 비우고 다른 생각 하며 앉아있는데 단상에 서서 열심히 떠들던 플레이어가 깜짝 놀란 얼굴로 뒤쪽의 출입문을 쳐다봤다.
“어?”
들고 있던 마이크를 타고 ‘어?’라는 얼빠진 외침이 회장 내부를 웅웅 울렸고.
앉아있던 플레이어들은 그가 본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야, 저기.”
“헉! 세상에…!”
“뭔데 그래? 어..? 어!”
뒤를 돌아보는 플레이어마다 한 명씩 차례차례 깜짝 놀라고 있다.
뭔데. 뭘 보고 놀라는 건데.
나도 같이 놀라보자.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내 머리 위에 손이 얹어졌다.
무언가가 내 머리로 다가오길래 반사적으로 베어버릴 뻔했는데 잘 참았다, 이성한.
“성한아. 오랜만이다?”
뭐지, 이 익숙한데 어쩐지 기분 나쁜 목소리는?
머리 위에 손이 얹힌 상태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태현오?”
“현오 형이라고 해야지.”
이 인간이 왜 여기 있어.
“영웅 길드 길마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설마 설명회에 온 거야?”
“영웅은 대외 활동을 전혀 안 하잖아. TV에도 안 나온다고!”
“지금 연합 설명회에 영웅 길드 대표로 길마가 직접 온 거야?”
듣기 싫어도 사람들 목소리가 너무 커서 잘 들린다.
영웅 길드.
우리 형이 있는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이 사람이었어?
< 2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