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30)
평범한 회사원입니다-30화(30/180)
< 30화 >
[12일 낮 12시 10분경, 영웅 길드의 관리하에 있는 한 던전이, 출입 중 입구가 닫히면서 영웅 길드 길드원 네 명과 견학 중이던 연구소 직원 두 명이 갇히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이는 세계 최초의 이레귤러 던전으로, 차후 던전의 등급이 바뀌거나 입구가 봉쇄되는 등. 플레이어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들이……]
영웅 길드 공용 대기실.
이석호는 평소에 신경 한번 쓴 적 없는 TV가 꼴도 보기 싫었다.
여기를 틀어도 이 뉴스, 저기로 채널을 돌려도 이 뉴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가 얼마나 많은데 언제까지 던전 얘기나 하고 있을 거야!
인명 피해도 없잖아!
“이석호. 어떻게 던전을 단 넷이서 피해 하나 없이 빠져나왔어? 그것도 짐짝을 둘씩이나 데리고.”
“몰라. 꺼져.”
“축하해주는 건데? 뉴스에선 강민규 헌터님 이야기만 하던데, 너도 놀고 있지 않았을 거 아냐.”
안 앉아있고 땅 파고 있었다, 그러니까 꺼져!
이석호는 소리 없는 절규를 외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길마님이랑 부길마님이 직접 찾아가서 인사까지 했다며. 출세했다, 이석호?”
“아, 몰라! 모른다고!”
이석호는 답답해서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같이 들어간 일반인 하나가 팔을 휘두르니 몬스터들이 날아가고 눈을 깜빡이니 반으로 찢어지더라.
있는 그대로 말을 했다가 허풍쟁이,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히기 딱 좋았다.
그리고 이석호는 허풍쟁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그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으니까 제발 아무도 말 걸지 말고 닥쳐줬으면 좋겠는데.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기억은 끔찍하기만 했다.
몬스터 시체가 그렇게 끔찍한 것도 처음이고.
몬스터가 불쌍한 것도 처음이고.
“그런데 갑옷은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거기 몬스터가 그렇게 강했어? 엄청 비싸고 좋은 거였잖아.”
“……갑옷… 그… 새끼가…”
갑옷 이야기가 나오자 겨우 반응했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서 더 이상을 말을 잇지 못했다.
눈만 감으면 그 자식이 갑옷을 손으로 찢는 장면이 떠오른다.
‘잘 찢기네? 싸구려 쓰시나 봐요.’
메아리치듯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그거… 비싼… 씨… 몇억… 개… 흐윽… 새끼…
이석호는 말도 못 하고 속으로만 꺽꺽 울었다.
쏟아져 오는 질문들을 피해 아예 귀를 손가락으로 막아버렸다.
더는 이 일을 떠오르게 하지 말라고! 제발!
안타깝게도. 그럴수록 기억은 더욱 선명해졌다.
***
“얘… 아니, 이 사람. 이… 분은 안 데려갑니까?”
기절한 최준호를 버려두고 걸음을 옮기는데 덩치가 물어온다.
두 발 멀쩡히 달려 있는데 그걸 왜 번거롭게 들고 가냐.
몬스터들 처리해 놓으면 일어났을 때 알아서 정신줄 잡고 쫓아오겠지.
그냥 무시하고 가는데 뒤에서 덩치가 주섬주섬 최준호를 챙겨 들었다.
더럽게 침이나 뱉어대는 놈이지만 의외로 일반인을 우선으로 생각할 줄 아는 플레이어다.
영웅에서 교육을 잘 시키는 걸까.
“다행히 미로형 던전은 아닙니다. 몬스터만 정리하면 공략 완료가 될 것 같습니다.”
덩치는 내가 상전이라도 되는 양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다.
꼬리를 잘 흔드는 개 같기도 하고.
반면에 다른 플레이어들은 우물쭈물 말도 제대로 못 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보통 이 정도 규모의 던전에는 몬스터가 얼마나 있을까요?”
“던전이 많이 변해서 그건 저도 잘…”
어차피 일직선으로 되어 있으니까 가다 보면 끝이 보이겠지.
좀 더 빠른 공략을 위해 속도를 높였다.
여기서 느리적대다가 집에 늦게 들어가면 매우 화가 날 게 분명하다.
야근 수당도 안 주는 야근이 되어버리잖아!
“김 대리 이자식-!”
회사 밖에서 보지 말자, 날려버릴 테니까.
김 대리라고 생각하며 몬스터의 다리를 잡고 날려버렸다.
부웅 날아가던 몬스터는 우글우글 몰려있던 다른 몬스터들을 볼링핀처럼 와르르 넘어뜨리며 함께 즉사했다.
“설명회는 너나 가라, 김대리!”
설명회 대신 지옥으로 보내준다는 생각으로 몬스터를 발로 찼다.
펑 터져버린 몬스터 파편이 여기저기 튀고 다른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도망갔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
쌓이면 그때그때 풀어주는 게 최고다.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은 잘 자고 운동하는 거라고 하지만.
퇴근하고 집 가서 자고 일어나면 출근인데 잠을 자고 싶겠냐.
사실 스트레스를 그렇게까지 받은 건 아니다.
옛날 옛적에 야간 편의점 알바 할 때 회사원들이 술 취해서 고래고래 상사 욕하는 거 보면서 한 번쯤은 따라 해보고 싶었을 뿐.
상사 욕이 나올 만큼 일 많이 해도 괜찮으니까 회사원이 되고 싶어 했었는데.
과거의 나야, 왜 그런 이상한 꿈을 키웠냐.
신나게 몬스터를 정리하는 중에 플레이어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중 한 명이 유독 심하게 떨고 있었다.
다들 창백한 표정이긴 했지만, 저 사람은 창백하다 못해 핏기가 사라졌는데.
“허억!”
시선을 느낀 플레이어가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떨었다.
“김 씨라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냥 미친 건가.
무시하고 공략이나 진행하기로 했다.
몬스터는 거의 다 정리된 거 같은데, 문제는 땅.
던전은 공략하면 보통 사라진다고는 하는데 이 던전은 일반 던전이 아니다.
시스템적인 오류를 보인 던전.
어쩌면 공략 후에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이 던전이 오염되어 있다는 게 심각한 문젠데.
자칫 잘못했다간 던전 밖까지 오염이 전염되어 지구가 물들어갈지도 모른다.
라 엘타에서는 오염 지역에 성수를 뿌려서 정화하거나 퍼지는 것을 막을 수라도 있는데.
여긴 성수가 없잖아?
라 엘타에서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염된 부분을 도려내면 안 될까?
던전이 통으로 오염된 것은 아니었다.
벽 조금과 바닥 일부.
바닥은 돌이 아닌 흙으로 되어 있으니까 땅을 파면될 거 같은데.
오염된 흙을 어떻게 처분할지가 문제이긴 하지만 손 놓고 있는 것보단 낫다.
“여기 땅 좀 팝시다.”
“네?”
“땅. 파자고요.”
물론 나는 감독이다.
김 씨 플레이어와 덩치는 땅을 파게 시키고.
다른 두 명은 스킬을 써서 동굴 벽을 쪼개게 했다.
흠집 하나 안 나던 막힌 입구와는 달리, 평범한 동굴 벽으로 보이길래 시켜봤는데 다행히 잘 쪼개졌다.
기절한 최준호도 노동시키기 위해 흔들어 깨웠다.
“어… 허억..! 살려, 살려주…”
깨어나서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게거품을 물고 다시 기절했지만.
“일어나, 일어나라고! 사람 얼굴을 보고 기절하다니 무슨 무례냐.”
이번엔 감정을 담아 뺨을 후려쳐 깨워줬다.
그걸 바라보던 덩치가 흠칫거리며 놀라던데.
설마 내가 최준호를 패서 터뜨려버릴 거라 생각한 건가.
나도 힘 조절이라는 걸 할 줄 알거든.
물론 얼굴이 팅팅 부었고 한동안 오른쪽으로는 죽도 먹기 힘들겠지만, 이 정도로 끝난 걸 감사히 여겨야 할 거다.
“자, 자. 땅 파고 벽 뜯어낸 건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됩니다. 전부 여기에 넣으세요.”
‘여기’라는 것은 덩치의 갑옷을 말한다.
갑옷을 반으로 가른 후 움푹진 부분에 오염물질을 옮겨 담았다.
물론 덩치는 갑옷은 안 된다며 울고불고 난리였지만 손으로 갑옷을 잡아 뜯자 입을 다물었다.
굳이 덩치의 갑옷을 선택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냥 덩치가 큰 만큼 갑옷도 커서 더 많이 담을 수 있을 거 같아서다.
절대 아까 짜증 내고 침 뱉어서 그런 게 아니다.
“어? 이게 뭐지?”
“뭔데요?”
한참 땅을 파던 중에 덩치가 뭔가를 발견했다.
한 손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수정.
이게 뭔데 땅에 묻혀 있는 거지?
이런 경우, 정황상 이것은.
1번. 이 땅의 근원 같은 존재. 이게 오염됐기 때문에 땅이 같이 오염되고 있다.
2번. 땅을 오염시키는 물체. 이 수정으로 인해서 오염이 시작된 거다. 이 경우 오염은 자연 발생이 아니라 유도된 거라고 봐야겠지.
3번. 히든 피스. 축하합니다, 당신은 기연을 발견했습니다!
뭔진 모르겠지만 이런 건 일단 챙기고 봐야지.
사실 알고 보니 정답은 4번, 어릴 적 그들이 묻어놨던 타임캡슐. 이십 년 후에 다시 만나 함께 꺼내 보자!
같은 전개만 아니면 된다.
오염된 흙과 동굴 벽 파편이 가득 담긴 갑옷을 덩치와 김 씨 플레이어에게 하나씩 들게 하고.
최준호와 다른 두 플레이어는 몬스터 사체를 던전의 끝까지 옮기게 했다.
그리고 나는 가장 중요한!
수정을 들었다.
오늘의 수확물, 7층에 던져주면 좋아하겠지.
이것을 토대로 오염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알아봐달라고 해야겠다.
성수 없이 정화하는 법을 알아낼 수 있으면 아주 좋고. 오염이 시작되는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다면 더더욱 좋다.
“자, 그럼 남은 몬스터들을 잡으러 가 볼까요?”
“예? 몬스터 다 잡은 거 아니었어요?”
“중간에 갈림길 몇 번 있었잖아요. 그 안쪽에 숨은 놈들이 있어요.”
공략 끝내면 던전이 사라질지도 몰라서 땅 다 팔 때까지 남겨둔 놈들이다.
어차피 막다른 길이라 더 도망칠 수도 없을 테니 빨리 끝내고 집에나 가자.
“몬스터가… 숨기도 하는구나.”
“나는 달려드는 몬스터들 밖에 못 봤는데.”
“근데 내가 몬스터였어도 숨었을 거 같아.”
몬스터를 찾으러 가는 내가 상당히 멀어졌다고 생각했는지 플레이어들이 속닥였다.
다 들립니다만.
숨어 있는 몬스터를 샅샅이 찾아내 죽이자 예상대로 던전의 끝에 출구 포탈이 생성됐다.
우선 몬스터 사체를 포탈에 밀어 넣고 한 명씩 포탈로 이동했다.
내가 먼저 이동했다가 괜히 멀쩡한 포탈 망가뜨릴지도 몰라서 마지막으로 나갔다.
모든 공략대가 들어가기도 전에 던전 입구가 사라져버린 것은 큰 논란이 될 만한 일.
분명 밖에는 사람들도 우글우글하고 기자들도 카메라와 함께 기다리고 있을 거다.
‘이레귤러 던전 공략 실패! 전원 사망.’
‘던전이 변화한 이유는? 영웅 길드 생존자, 입을 열다.’
대충 이런 제목의 기사 두 개를 미리 써 놓고 던전이 변화를 보이는 즉시 뉴스를 올릴 준비 중이겠지.
어쩌면 생방송 뉴스가 송출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최대한 분위기 있어 보이는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자, 사진을 찍는다면 지금이야!
그리고 놀랍도록 아무도 없었다.
“성한아.”
형이랑 태현오 빼고.
그 많던 사람들은 벌써 돌아갔는지 없고, 던전에 함께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던 공격대 인원과 서포트 플레이어 중 몇 명만이 남아있었다.
“여기서 뭐 해? 기자들은?”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돌려보냈다. 기자들은 통제 중이고.”
기자가 막는다고 막아지는 거였어?
이름 때문에 종종 무시하기는 하지만 영웅 길드가 1위 길드는 맞긴 하구나.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다행이다.”
그걸로 대화는 끝이었다.
형도 크게 걱정하는 눈치는 아니었고.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나와본 거겠지.
“부길드장님이랑 친한가.”
“부길마님, 저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거 처음 들어봤어.”
“나도…”
“웃을 줄도 아는 분이셨구나.”
구석에서 지켜보던 서포트 플레이어들이 속닥이기 시작했다.
“아까 길마님이랑 부길마님이랑 대화하는 거 들었는데, 저기 저 사람이 부길마님 동생이래.”
“뭐? 친동생?”
“진짜? 우리 아까 실수 안 했지?”
“어떡해. 나 안내해줄 때 짜증 냈는데.”
서포트 플레이어들의 대화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묵묵히 그 대화를 듣고 있던 김 씨 플레이어가 중얼거렸다.
“형, 동생이 나란히 괴물이었구나. 유전인가 봐.”
덩치가 동의하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3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