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35)
평범한 회사원입니다-35화(35/180)
< 35화 >
[내 날개가… 날개가 깨끗해졌다!]상당한 양의 성수를 부어서 얼룩져가던 드래곤의 날개를 정화해줬다.
드래곤은 어지간히 신이 났는지 캬아오오 괴성을 지르며 날개를 펄럭였다.
“이렇게 쉽게 깰 수 있는 퀘스트가 아닐 텐데.”
“그러게. 원래대로라면 클리어가 가능한 부탁을 받을 때까지 드래곤을 설득해야 하는 퀘스트 아닐까? 네 동생처럼 클리어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걸.”
설득 중의 설득은 역시 물리적 설득.
이놈이 하는 부탁 중에서 가장 쉬운 단계가 날개의 오염 정화인 거 같은데.
까다로운 드래곤을 어느 세월에 말로 설득하고 성녀나 대량의 성수를 찾아 헤매고 다니냐.
아마 성녀에 사제 백 명까지 추가로 데려왔어도 그사이에 오염이 악화돼서 정화는 불가능했을 거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마저도 클리어 확률이 0에 가깝다니.
퀘스트 세부사항을 설계하는 게 신이라면, 상당히 고약한 취향임이 분명하다.
“그럼 이제 내놔.”
[뭐를 말이냐?]“선물? 보상. 선물. 보수. 뭐라고 불러도 좋아. 도움을 줬으니 그에 따른 보상을 줘야지.”
[먼저 도와주겠다고 손을 뻗은 게 누군데 보상을 찾는가!]손을 뻗어?
이 드래곤이 진짜 손을 뻗는 게 뭔지 보고 싶은가보다.
당장이라도 드래곤을 향해 손바닥을 내리칠 것처럼 한 손을 쭉 뒤로 뻗었다.
[…라는 건 농담입니다. 물론 보상을 드려야지요.]이제야 좀 말귀를 알아먹네.
드래곤은 허물어진 레어를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남아있는 것도 없고, 줄 것도 없고.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낑낑대며 몸에 있는 비늘 하나를 쏙 뽑아냈다.
[귀한 것이다. 감사하도록 해라.]“……”
성인 남성의 머리통 두 개를 합쳐놓은 것만 한 크기의 드래곤 비늘.
귀한 건 개뿔. 이런 걸 어디에 쓰라고?
팔아먹어도 소용없을 잡템 중의 잡템이다.
비늘을 받자마자 생각나는 사용법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그대로 드래곤을 향해 비늘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립감도 좋고 평평하고 매끄러운 단면이 파리 잡듯 드래곤 후려치기 딱 좋았다.
[캬아악- 무슨 짓이냐!]“아주 좋은 선물이야!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딱 좋은걸? 십 년 정도는 쓸 수 있겠어!”
[아아악, 잘못했다! 다른 걸 주겠다, 그만해라!]“줄 것도 없으면서!”
도망가려는 드래곤의 꼬리까지 붙잡고 몇 대 더 비늘 맛을 보여줬다.
드래곤 놈의 입에서 깨갱 소리가 나올 때까지 두드려주곤 득도를 한 표정으로 서 있는 형에게 물었다.
“형, 혹시 펫 시스템 같은 거 있어?”
“있긴 하지만 몬스터를 테이밍한 후에 사용 가능한 시스템이다. 아직까지 테이밍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가 나타나지 않아서 실제로 사용된 케이스는 없고.”
“그러면 펫으로 등록된 몬스터는 지구에서도 소환이 가능할까?”
형은 마치 체념한 사람처럼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지구에 드래곤을 소환하는 건 반대다.”
“나는 반대 안 하는데. 펫 시스템 지원해줄까?”
“형. 태현오한테 몬스터 소환 권한이 있는 게 나을까, 형한테 있는 게 나을까?”
반대하던 형은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이미 펫 시스템 창을 소환하고 있었다.
“아주 좋아. 나는 예전부터 펫이 갖고 싶었지.”
“까망이 있잖아.”
“그건 애완동물이고.”
“애완동물이 영어로 펫이야. PET.”
태현오의 말은 그냥 무시했다.
“테이밍 스킬 없이 펫 등록은 어떻게 하는 거지?”
“상호 간의 동의가 있으면 가능한 거 같아.”
“거기, 용. 이 사람의 펫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봐.”
[미친 건가? 위대한 용이 인간의 페…]너덜너덜해진 비늘을 집어 들었다.
[…엣으로 만족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발닦개로 써도 좋다, 인간.]드래곤은 애교라도 부리듯 형을 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나마 내 펫이 아니라 만만해 보이는 형의 펫이 된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건가.
“고작 폭력에 굴해 드래곤이 인간의 펫이 된다니, 참 수치심도 모르는 용이네.”
하긴 드래곤이 살면서 맞아본들 얼마나 맞아봤겠냐.
자신이 휘두르는 폭력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자신을 향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아 작은 고통도 두세 배로 느껴졌겠지.
물론 그것보다는 시스템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그냥 말장난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동의한 것만으로 시스템에 묶인다는 것을 알았으면 목을 비틀어버린다고 협박해도 수락하지 않았겠지.
드래곤이 동의하자 노예 계약… 아니, 펫 동의서 작성은 빠르게 진행됐다.
“이름을 지정할 수 있네. 뭐라고 등록할까?”
[내 이름은 라리오스 마커…]“라마.”
시스템 창은 드래곤의 말은 인식하지 못했지만 내 말에 바로 반응을 하고 펫 이름을 라마로 등록해버렸다.
시스템에도 무시당하는 용생…
[내 이름은 라리오스 마커스다!]“그건 너무 길잖아. 라리오스 마커스, 줄여서 라마.”
[캬오오오-!]라마가 울분을 토해봐야 들어주는 이는 없었다.
“퀘스트 상세 내용도 수정됐는데?”
[퀘스트: 라리오스 마커스의 오염된 날개 정화] 완료!레드 드래곤 라리오스 마커스는 오염되는 중입니다.
오염된 드래곤이 세상에 풀려나기 전에 오염을 정화하세요.
보상: 라리오스 마커스의 비늘 (1), 펫 (레드 드래곤)
[종료]분명 보상은 라리오스 마커스의 선물이었는데 꽤 상세하게 변경됐다.
이번에도 종료 버튼이 생겼고.
“그럼 종료할까?”
“하지만… 이곳을 이대로 내버려 두면 오염이 더 심하게 퍼질 거야. 그렇게 되면 앞으로 모든 플레이어의 퀘스트 난이도가 상당히 어려워질 거다.”
납득이 가는 설명이긴 한데.
이 숲은 물론이고 마을 앞쪽의 공터도 정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성수가 아무리 넘쳐나도 그 정도는 아니고, 이번에 라마를 정화해주면서 상당한 양을 쓰기도 했고.
어차피 정화에 성공한다 해도 이미 이곳엔 생명체가 다 죽어버려서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
“그럼 날려버리자.”
“날려버리자고?”
“아예 오염된 것들을 싹 없애버리는 거야. 숲이랑 마을, 저쪽의 공터까지 싹 다. 정화할 수 없다면 오염된 것 자체를 없애버리자는 거지.”
“어떻게?”
형은 설마 하는 반응이었고 태현오는 굉장히 흥미로워했다.
오염된 구역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리는 아주 쉬운 방법이 우리에겐 있었다.
“바로 여기 브레스 제조기가 있잖아.”
브랜드 명, 라마.
오염 구역을 깨끗하게 날려드립니다.
발상의 전환이란 이런 거지!
오염되었다고 다 날려버리면 라 엘타라는 행성은 이미 남아있지 않겠지만.
이렇게까지 오염이 심한 곳은 아예 싹 터뜨려서 오염이라도 퍼지지 않게 하는 게 최선이다.
“라마, 이곳을 전부 브레스로 터뜨려버릴 거다.”
[나는 라마가 아니다! 브레스 제조기도 아니다! 한 번만 더 나를 그 이름으로 부르면 너에게 브레스를 날려버리겠다!]라마가 발악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애초에 우리 쪽을 향해 브레스는커녕 앞발을 휘두르지도 못했다.
펫 시스템이 만능은 아니었지만 펫이 주인을 공격할 수 없는 건 당연하고. 주인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고 명령을 이행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있었으니까.
라마는 시스템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흑마법 같은 것에 걸려들었다며 분노했다.
오히려 그런 기능이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처지 아닌가?
시스템에 굴복해서 말 잘 듣는 용이 되지 않았다면 그다음은 설득(물리) 차례였을 텐데.
라마가 진정된 후 우선 마을 아이들부터 이동시켰다.
아이들은 마을로 날아오는 라마를 보고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질러댔지만. 허공에서 한 바퀴 핑그르르 도는 라마의 공중제비 쇼를 보여주자 박수 치며 좋아했다.
물론 라마는 고작 인간의 구경거리가 되었다며 서러워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들을 라마에 태우고 오염되지 않은 근방의 다른 마을로 이동했다.
그 마을의 사람들이 아이들을 받아주지 않거나, 받아준 후 노예로 부려먹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드래곤을 타고 온 시점에서 아이들을 평범하게 보고 있지 않았다.
평범은커녕 거의 받들어 모실 수준인데?
마을 촌장을 찾아가 사정설명을 하고 아이들을 위탁할 동안, 라마는 오염 구역으로 돌아가 신나게 브레스를 터뜨렸다.
“오염 구역 제대로 정리됐는지 확인만 하고 퀘스트 종료하자.”
생각보다 퀘스트가 빨리 끝나서 베라포드에서 조금 쉬다가 귀환해도 될 거 같다.
아이들에게 짧게 인사를 하고 마을을 떠나려는데, 일전에 영웅이 있네, 없네 다퉜던 아이가 와다다 달려와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우리에겐 형이 동쪽의 영웅보다도 더 영웅이에요!”
“너희한테만이 아니라 내가 진짜 그 영웅 맞다니까.”
“형의 그 이상한 농담도 기억할게요!”
이 자식이.
“잘 가요.”
“나중에 또 만나요.”
“안녕!”
손을 흔들며 고맙다, 잘 가라 인사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라마가 있는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오염 구역을 향해 느긋하게 걸어가다 보니 저 멀리서 라마가 날아왔다.
[인간. 이런 게 있었다.]라마는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오염된 땅을 먼지 하나 없이 날려버렸는데 이게 있었다. 브레스 두 방을 맞고도 멀쩡했다.]“이건…”
보라색 수정.
색이 조금 다르긴 한데 지구의 오염 던전에서 땅을 파다 발견했던 것과 같은 종류다.
혹시 있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었는데 진짜 있었네.
드래곤 브레스에도 멀쩡하단 말이야?
놀라울 정도로 튼튼한 수정이군.
이 수정이 주변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는 건 이미 확인했다.
7층 연구소에 흙 등을 가져다줄 때 혹시 위험한 것일까 봐 수정은 따로 보관하며 그 후로 틈틈이 살펴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오히려 깨지는 쪽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일단은 깨뜨리는 시늉도 안 했다.
“형, 인벤토리 소환 한 번만.”
“인벤토리.”
형은 이제 왜냐고 묻지도 않았다.
“이것 좀 맡아줘.”
인벤토리 창이 열리자 그 안에 쏙 수정을 넣어버렸다.
시스템이 아공간 주머니보다는 안전하겠지.
주머니에 넣어놨다가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는 것보다는, 외부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인벤토리에 수정을 보관해서 사건을 미리 방지하는데 덜 귀찮은 삶을 위한 지름길이다.
“그럼 이제 퀘스트 종료. 나중에 보자, 라마.”
[다신 오지 마라, 인간! 두 번 다시 보지 말자! 만나서 더러웠고 가는 길마다 개똥밭이길 바란다!]퀘스트 종료 버튼을 누르자 사라져가는 우리를 보고,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나 멀리 떠난다는 것을 짐작했는지 악담을 퍼붓는 라마.
네가 아직 ‘펫 소환’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사실 나도 안 해봐서 모르거든.
‘펫 소환’을 사용하게 될 날이 정말 기대된다.
희미해져 가는 라마를 향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
“이 정도면 퀘스트 클리어 최단기록인데?”
태현오는 퀘스트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길드로 돌아가면 다른 사람들이 상당히 놀랄 거 같은데. 바로 귀환하지 말고 놀러나 갈까?”
“놀러 갈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돌아가서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늘 길드 일 때문에 바빠서 베라포드 구경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걸. 성한아, 너네 형 좀 꼬셔봐.”
내가 일을 안 하고 노는 건 괜찮지만 태현오가 노는 꼴은 못 본다.
태현오에게 ‘한심한 놈’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눈빛을 보내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물론 베라포드에 있는 내 집으로.
“어디가?”
“우리 집.”
“집에 가는데 왜 그쪽으로 가. 귀환해야지.”
“내가 말 안 했나? 나 베라포드에 집이 있어.”
“뭐?”
형은 질문이 백만스물한 개 정도 있는 사람처럼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
이제 질문하는 대신 직접 보기로 한 건지. 그저 짧게 한숨을 쉬고 나를 따라왔다.
물론 뒤에 태현오라는 덤을 달고.
< 35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