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36)
평범한 회사원입니다-36화(36/180)
< 36화 >
베라포드의 유일한 여관 1층에는 술과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친한 플레이어들은 라 엘타 출입 날짜를 비슷하게 잡고 여관에서 만나 떠들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그냥 장난삼아 입찰했는데 낙찰됐다, 이거야. 근데 그 사기꾼 놈이 뻔뻔하게 약속장소에 나오더라니까?”
“그거 벌써 세 번째 말하고 있는 건 아냐? 나중에 환불해주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면서.”
“그랬지. 근데 이거 봐라, 짜잔.”
식당 한구석에서 맥주를 마시던 무리 중 하나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일행에게 내밀었다.
보라색 액체가 들어있는, 작은 포션 병.
“뭐야. 설마 이게 그거야? 5개에 2만 원짜리 사기 포션.”
“버리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니까? 이걸 보라고. 누가 이걸 보고 포션이라고 믿고 받아가냐? 상태창도 안 떠!”
“상태창.”
“상태창. 진짜 안 뜨네.”
“크하하, 미친놈. 눈 뜨고 코 베였네. 아하하하.”
“사기꾼 면상한 번 보려고 속아준 거라고!”
남자는 테이블을 탕탕 두드리다가 그 위에 탁, 병을 내려놓았다.
“자, 오늘의 벌칙은 이것이 되겠습니다~ 오늘 게임 지는 사람 이거 독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기!”
“오오, 지면 죽는 게임?”
“다섯이서 시작해서 나갈 때는 네 명만 나가는 게임?”
“혹시 진짜 독인 것을 대비해서 해독제까지 준비해놨지.”
“설마 독이겠냐? 포션보다 독이 더 비싸. 포도 주스라는 것에 한 표.”
“나는 두 표.”
그들은 한참을 웃고 떠들다가, 상대방 어깨의 탈골을 걱정해주는 노래와 함께 술자리 게임을 시작했다.
떠드는 소리가 상당히 시끄러웠지만, 여관에 딸린 모든 식당이 그러하듯 시끄럽지 않은 손님은 없었고.
아무도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아악-!”
“벌칙 당첨자 낙찰이요!”
“포션 들어갑니다!”
게임 끝에 벌칙을 받게 된 남자는 머리를 쥐며 괴로워했고, 다른 일행들은 낄낄 웃으며 즐거워했다.
“포션은 오른손. 해독제는 왼손에 들고, 배가 아프다 싶으면 바로 해독제를 마시는 거야. 기억해. 포션은 오른손, 해독제는 왼손.”
“이 포션 비싸게 주고 구한 거야. 5개에 2만 원! 무려 하나에 4천 원이라고, 4천 원!”
“아하하, 보라색 포션 들어갑니다!”
“독 들어갑니다~”
남자는 포션인지 독인지를 그대로 던져버리고 그 틈을 타 도망가고 싶었지만, 식당에 사람이 많아 두 걸음도 못 가서 붙잡힐 것이 분명했다.
남자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포션 병을 손에 꾹 쥐었다.
괜찮아. 진짜 독이라면 바로 해독제를 마시면 돼.
해독제로도 치료가 안 되는 독일 리는 없어. 그런 독은 포션 100개 값보다 비싸니까.
포도 주스라면 맛있게 마셔주지.
남자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병을 입에 갖다 댔다.
그래도 이걸 마시는 순간 친구들이 환호하고 좋아할 걸 상상하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자, 간다!
“밖에 이성현 떴다!!”
그때, 여관 문이 쾅- 열리고 플레이어 하나가 뛰어 들어와 대뜸 외쳤다.
그 한마디에 여관 1층에 모여있던 모든 플레이어의 시선이 모였다.
“뭐?”
“정말이야?”
플레이어들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성현 옆에 영웅 길마도 같이 있었어!”
그리고 바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 개소리네.”
“영웅 길드 길마랑 부길마가 같이 라 엘타 들어오는데 말이 되나.”
영웅 길드의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두 사람이 함께 라 엘타에 나타났다는 소식에 모두 말도 안 된다며 혀를 찼다.
이 세상의 어떤 길드도 마스터와 부마스터를 같은 시기에 라 엘타에 집어넣어 길드를 빈집 상태로 만드는 곳은 없었으니까.
하물며 그 두 사람은 플레이어들의 정점에 올랐다는 이성현과 상위 랭킹 1% 내 어딘가의 태현오였다.
정확한 레벨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레벨이 상당히 높아 퀘스트를 깨는 데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그동안 동시에 길드를 비운다?
지나가던 개도 안 믿을 헛소리가 분명하다.
그런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밖을 기웃거리는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만약 저 말이 사실이어서 두 사람이 함께 있다면, 그 둘 앞에 앞구르기를 하면서 등장한 후 칼을 먹는 쇼를 보여서라도 눈에 띄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들도 곧 이어지는 말에 희망을 접었다.
“그 둘 분위기 살벌하더라! 싸우던데? 베라포드 광장 한가운데에서 스킬 쓰고 난리 났다고!”
양치기 소년 컨셉도 1절로 끝내야지
두 사람이 라 엘타에 같이 있었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왜 사람들이 다 보는 곳에서 싸우고 있겠는가.
거짓말을 해도 믿을만한 선에서 멈췄어야지.
양치기 플레이어는 그 말을 끝으로 여관에서 뛰쳐나가 퀘스트 보드 쪽으로 달려갔다.
퀘스트 보드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같은 거짓말을 늘어놓을 셈인가 보다.
속는 사람은 없겠지만.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영웅 길드 터지는 거야?”
“초월만 좋겠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양치기 플레이어를 비웃던 일행은 다시 제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맞은편에는 벌칙게임에서 진 동료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숨을 삼키고 있었다.
오른손에 꼭 쥔 포션 병은 텅 비어있었다.
“뭐야, 벌써 마셨어?”
“표정이 왜 그래. 진짜 독이야?”
“야, 괜찮아? 해독제 마셔! 빨리!”
일행 중 하나가 여전히 왼손에 쥐여 있는 해독제를 빼앗아 마시게 하려 했지만, 동료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창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거… 진짜 포션인데?”
***
형과 떨거지를 데리고 베라포드의 저택에 돌아왔다.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저택에 들어가려 하니 형이 내 팔을 잡아 말렸다.
“지금 여기가 네 집이라는 거야?”
“어, 그런데?”
“내가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저택은 라 엘타에서 유명한 이의 저택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내 팔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지금 네가 ‘그’ 이안이라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주장하는 게 아니고, 내가 그냥 그 사람이 맞아.”
맞다, 아니다 질질 끌면서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만으로 증명이 됐으니까.
“오셨습니까, 이안 님.”
“어머, 오늘은 창문으로 들어오지 않으시고 문으로 들어오셨네요? 저는 그동안 이안 님께서 문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신 줄 알았지 뭐에요.”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집사와 메리가 반겨주었다.
포탈 이용을 하려고 매번 방으로 들어갔었던 것을, 창문으로 출입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굳이 내가 내 집에서 창문으로 다닐 이유가 뭐가 있다고.
포탈이나 다른 차원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주는 건 복잡하니까 대충 텔레포트 게이트 같은 걸 방에 설치해놨다고 둘러대야겠다.
지금 말고 나중에.
지금은 일행이 있으니까.
“뒤에 계신 분들은 누구십니까?”
한 번도 누군가를 저택에 초대한 적이 없어서인지 집사는 깜짝 놀랐다.
“손님이야. 오늘은 여기서 쉬어 갈 거니까 손님방을 준비해줘.”
“얼마 전에 개를 데려오신 것도 그렇고, 이번에는 손님까지 모시다니.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칭찬이야, 욕이야?
집사와 메리는 손님을 저택에 들이는 걸 상당히 반가워했다.
두 사람은 손님맞이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과시하듯 형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믿어줄 거야?”
형은 영혼이 가출한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아니… 너, 대체…”
“예전에도 그랬잖아. 베라포드가 내가 있던 곳이라고.”
코마 상태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런 대화를 분명히 했었다. 그 후로도 나는 한 번도 숨긴 적 없었다고.
형이 믿어주지 않았을 뿐.
물론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겐 좀 더 확실하게 증명할 방법이 있지.
“서브 퀘스트는 받았어? 이안 만나서 자기소개하라는 거.”
대답은 없었지만, 형은 정신 나간 표정으로 퀘스트 창을 소환해주었다.
여기 있네,
[서브 퀘스트: 이안 경을 찾아서]형은 수락도, 거절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한동안 지켜보다가 이안이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 같으면 수락하려던 생각이었던 걸까.
형을 대신해서 퀘스트 수락을 눌렀다.
“이제 나한테 자기소개 해봐.”
“……”
“형.”
“…저는 이성현입니다.”
[서브 퀘스트: 이안 경을 찾아서. 완료]말없이 퀘스트 창만 째려보고 있는 형을 대신해서 완료를 눌렀다.
내가 예상한 반응이랑 조금 다른데?
솔직히 조금 김빠지는 모습이다. 좀 더 격하게 놀래줘도 괜찮을 텐데.
태현오도 의외라는 반응이지만 크게 놀란 것 같지도 않고.
“서브 퀘스트, 깨실래요?”
선심 쓰듯 제안했지만 태현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쉽네. 내가 이미 퀘스트 거절을 해버려서.”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
형은 생각을 정리하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맛이 간 얼굴인데? 밖에 플레이어들도 많을 텐데 저대로 내보내도 될까.”
“내가 따라가면 되지.”
혼잣말한 건데 태현오 놈이 냉큼 대답하고 그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은 두 시간 후에 돌아왔고, 그 후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도는 묘한 소문을 들었다.
갑자기 베라포드에 나타난 이성현과 태현오가 칼부림을 하며 싸웠다는 헛소리였다.
두 사람의 싸움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지고, 구경하던 플레이어들이 다쳤다고.
태현오는 이 싸움으로 인해 전치 6개월의 부상을 입었고, 이성현은 왼쪽 뺨에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대로 영웅 길드는 두 쪽으로 나누어져 태현오 라인과 이성현 라인으로 갈라질 것이며. 이성현은 지구로 돌아가는 즉시 초월 길드를 집어삼키고 영웅과 대립을 할 계획이라고.
이렇게까지 신선한 헛소리는 살다 살다 처음 들어봤다.
애초에 이 루머는 성립이 될 수가 없다.
두 사람이 싸워서 건물이 무너졌다는데 베라포드는 언제나처럼 평화롭고 멀쩡했다.
무너진 건물 파편은커녕 거리에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고.
또 두 사람이 나갔다 돌아왔을 땐 둘 다 확실히 멀쩡했다.
형 혼자 세상에서 제일 심각한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어서 그렇지.
태현오가 전치 6개월의 부상을 입었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좋아했겠지만.
전치 6개월은 무슨. 정기검진도 안 받아도 될 만큼 멀쩡하고 쌩쌩해 보였다.
형도 화상은커녕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한 얼굴이었고.
그냥. 누군가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형의 표정이 평소보다 좋지 않으니까 두 사람이 다퉜다는 말이 나온 거 같다.
그게 소문에 소문을 타고 저런 헛소리로 발전한 거고.
발 없는 말이 이렇게 무섭다.
인기 플레이어도 못 할 일이네.
***
하루를 더 베라포드에서 머문 후 지구로 귀환했다.
원래는 하루 이틀 정도 더 베라포드에서 놀다 가려고 했는데. 멀쩡하던 태현오가 애새끼처럼 머리가 아프다며 골골대서 돌아와 버렸다.
진짜 형한테 어디 끌려가서 얻어맞고 온 거 아냐?
사실은 우리 형이 스트레스 쌓일 때마다 샌드백으로 이용하고 있다거나.
진짜라면 나중에 빌려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훌륭하게 어그로를 잘 끄는 샌드백이다.
라 엘타 퀘스트를 깬 건 형 혼자뿐이었으니 태현오가 귀환하지 못하면 버리고 갈 생각이 가득했지만.
아쉽게도 놈 또한 막히는 거 없이 포탈을 소환해 귀환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 여러 명이 파티를 맺으면 한 사람의 퀘스트만 클리어해도 귀환조건이 충족되는구나.
궁금증은 풀렸다.
그리고 돌아온 끔찍한 출근일.
며칠 쉬었다고 몸이 회사 가기 싫다며 발악을 한다.
결국, 카페인 충전을 위해 커피 한 잔을 사 가느라 평소보다 몇 분 늦게 들어갔다.
딱 9시 정각에 맞춰서.
그래서인지 3층은 이미 한 명도 빠짐없이 출근해있었고.
뭘 하는지 구석에 우르르 모여서 무언가를 보며 떠들어대다가.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모두가 하던 행동을 멈추고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버린 사람처럼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나를 보고만 있었다.
뭔데. 뭐 하는 건데.
좀비도 아니고 왜 저러는데.
“저 지각 아닌데요?”
어색함에 한 번 말해봤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무슨 일인데. 말 좀 해 보라고!
답답함에 큰소리로 외치려던 때.
이지혜가 다가와 머뭇거리며 말을 걸었다.
< 3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