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43)
평범한 회사원입니다-43화(43/180)
< 43화 >
아돌의 포션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었던 지하 수련장.
지금은 서브 퀘스트에 사용될 포션을 다른 장소로 옮겨서 반 이상이 비워진 상태다.
라마는 그곳에서 정말 많이 맞았다.
같은 인간으로서 그래도 인간을 패는 건 아직 찝찝하다며. 없는 양심을 있는척하는 악마 놈 때문에 드래곤의 모습인 채로 맞았다.
맞는 것도 억울한데 맞다가 골골대면 바로 옆에 있는 포션으로 치료받고 다시 맞았다.
그냥 맞아도 자존심에 쩍쩍 금이 갈 판인데 수련장 구석에 웬 덩치 큰 인간 하나가 쪼그리고 앉아 지켜보고 있어서 더 서러웠다.
대체 왜 개인이 멀쩡한 남의 영지 지하에 이렇게까지 큰 공간을 소유하고 있단 말인가.
왜 드래곤이 이리 맞고 저리 맞느라 데굴데굴 굴러도 될 정도의 공간을 수련장으로 쓰고 있냐고!
라마는 그저 억울했다.
“끄윽… 끅.”
“좀 빨리빨리 합시다, 드래곤 양반.”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라마는 끙끙대며 텔레포트 마법진을 그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법진을 그린 건 나고, 라마는 그 위에 텔레포트 마법을 덧씌우고 있는 것뿐이지만.
정확한 지표를 알지 못하면 텔레포트는 불가능하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지만 드래곤은 드래곤.
한번 방문한 것만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는 건 큰 행운이었다.
라마에게.
만약 또 라마가 그곳까지 날아가서 클리브를 만나고,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되돌아와 말을 전하고, 또 날아가 상황을 파악하는 등의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면.
라마는 아직도 맞고 있었을지 모른다.
“다 됐다. 여기에 마나만 불어넣으면 이동할 수 있다.”
“좋아. 거기 이석호 씨.”
“예, 옙..!”
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던 덩치는 호명되자마자 누구보다도 빠르게 달려와 앞에 섰다.
“갑시다.”
혹시라도 손이 많이 가는 도움이 필요한 거라면 이 둘에게 떠넘기고 오면 되겠지.
덩치까지 마법진 위로 올라서자 라마는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어 활성화했다.
이동된 장소는 헤르타 성 내부 한복판.
이왕이면 문제가 덜 생길만한 곳으로 이동하는 건 안 되는 거였냐, 라마.
갑자기 없던 사람들이 나타나자 성에 있던 이들은 비명을 지르고 난리가 났지만.
이미 한번 드래곤이 다녀가 쑥대밭이 되었는지 생각보다 반응이 덤덤했다. 상황이 금방 정리되기도 했고.
그 사이에 누군가가 클리브를 불러왔는지 저 멀리에서 해맑은 미소와 함께 달려오고 있었다.
“이안 님 역시 다시 오셨군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저희 인간들을 위할 줄 아는 드래곤이신 줄 알고 있었습니다. 조력자를 데리러 가신…? 어? 이쪽의 이분은 그때 뵀던… 어?”
‘드래곤 쪽이 이안 님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쪽은 그때 엠블럼을 주고 간 이안 님과 똑같은 얼굴…
이쪽도 드래곤 이안 님이 만들어낸 가짜 이안 님?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클리브는 얼굴에 생각하는 전부가 드러나는 편이었다.
말을 하고 있을 때도 시끄럽지만 말문이 막혔을 때도 시끄러운 사람은 또 처음 봤네.
그가 더 깊은 혼란에 빠지기 전에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이안입니다.”
“역시 이안 님이셨군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방금까지 라마를 나로 착각하고 있었던 거 모두 다 아는데 바로 말을 돌리기는.
“대단하신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정말… 드래곤을 부리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아, 정말 대단…”
“문제가 생겼다는 건 뭡니까.”
말이 더 길어지기 전에 잘라버렸다.
가만히 놔두면 몇십 분이고 혼자 떠들 사람이라.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건지 듣고, 해결해줄 수 있는 거면 해결해주는 대신 뜯어먹고.
인건비도 안 나올 정도의 일이면 무기 쪽은 버리고 우선 서브 퀘스트 보상은 아돌의 포션으로 버텨야지.
클리브는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 헤르타 영지에는 철광석 광산이 있습니다. 그것이 대장 기술이 발전할 수 있던 큰 이유 중 하나.”
광산? 광산이라 하면 본래 뜯어먹을 것이 많은 곳이다.
마법진까지 그려가며 와보길 잘했군.
“진작 이안 님을 찾아가려 했지만 빈손으로 찾아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이안 님께서 저희와 거래를 트기 희망하시는 거라면 보여드리는 것이 있어야 흡족하게 받아주실 수 있을 거라 여겼죠.”
서론이 길다.
“광산은 다행히 오염되었던 클라리사 평원과는 반대편이어서 오염으로부터 무사합니다. 다만 외부와 교류가 끊기면서 광석을 캐는 것보단 식량을 생산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광산은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너지기라도 한 겁니까?”
무너졌으면 큰일인데.
이쪽은 이미 한 차례 뽑아먹은 적이 있어서 광산이나 무기가 아니면 별로 뜯어낼 것도 없다.
“아뇨, 무너지진 않았습니다. 그냥 다시 가보니까 몬스터가 진을 치고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더라고요.”
다행히 아직 빈 깡통은 아니구나.
엄청 대단한 사건이라도 벌어진 줄 알았는데 무능함을 인증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토벌대를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클라리사 평원 때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그때는 조금씩 이동하면서 한 번에 소수의 몬스터만 상대하면 됐지만, 광산 안은 뻥 뚫려 있어서 들어가는 순간 모든 몬스터를 상대해야 하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난이도는 오염된 평원 쪽이 높을 거다.
오염된 몬스터는 그렇지 않은 것보다 몇 배에서 몇십 배까지의 무력 차가 나는데.
그리고 아무리 광산 안에 몬스터가 많아봤자 그 넓은 평원에 있는 수와 비교가 되겠냐.
그냥 마음가짐이 달라진 거겠지.
그때는 그거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정말 목숨 걸고 달려든 거고.
지금은 숨통 좀 트이고 살만하니까 목숨까지 걸면서 불구덩이 속으로 뛰쳐들어가고 싶지 않은 거고.
“이안 님, 제발 도와주세요!”
“좋습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대신 광산을 주세요!”
“예!”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아주 우렁차고 확고한 답변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엔, 말도 안 됩니다! 지분의 20%를 드리겠습니다! 정도로 협상을 시도한 후에 대충 6:4나 7:3쯤에서 합의 봐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숫자가 큰 쪽이 내꺼다.
“광산에서 캔 철광석으로 무기와 방어구를 만들어서 제공해주세요. 물론 최소한의 인건비는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이 자식은 호구인가.
“대신 저도 이안 님을 따라가도 될…”
“그런데 그러고 보니까.”
호구가 아니라 숟가락 얹기 장인이었다.
클리브가 문장을 전부 완성하기 전에 잽싸게 대화 주제를 바꿔버렸다.
“마레트…였나요? 친구분 쪽은 뭐가 문제인 겁니까. 그쪽은 연금술이니까 광산과 상관없이 먼저 베라포드로 출발할 수 있었을 텐데요.”
“아. 그건 제가 준비되면 같이 가자고 먼저 못 가게 붙잡고 있었을 뿐입니다.”
사실 제일 나쁜 건 이 자식이 아닐까.
바로 그날 서류를 작성하고 광산은 공식적으로 내 것이 되었다.
광산이 정리되는 대로 헤르타 자작가에서 채광 팀을 보내 철광석을 캐고 무기부터 생산하기로 했다.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으니 운반도 껌이다.
나중에는 라마 없이도 마법진을 활성화할 방법을 찾아봐야겠지만.
이쪽에서는 안 죽고 겨우 살아있는 영지민들이 우선 생존이라도 할 수 있게 식량부터 지원해주고, 차차 무기와 방어구에 대한 보수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자세한 건 집사가 알아서 하겠지.
원래 일은 내가 벌이고 뒤처리는 남 시키려고 집사를 고용하는 거 아닌가.
광산 문제에 대한 해결은 라마와 덩치에게 떠넘겼다.
덩치는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입을 열고 항의를 해도 선택지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지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그럼 나는 먼저 돌아가 있을 테니까 잘 해결하고 와.”
“이안 니이임! 저도 부디 데려가 주세요.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주세요! 하인처럼 부려먹어도 괜찮으니까 제가…”
“2주 내로 약속한 수량 먼저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만.”
클리브가 나를 붙잡고 떼를 쓰길래 무시해버리고 베라포드로 건너갔다.
지난번에 분명 자기가 없으면 영지가 무너질 거라며 슬퍼하지 않았나. 이제 와서 어딜 가겠다는 거야.
클리브가 징징대든 말든, 헤르타 방문은 성공적이었다.
이제 나도 광산 소유자. 갑자기 할 수 있는 수십 가지 일들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
라엘타닷컴을 통해 서브 퀘스트 지급 프로젝트의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플레이어들이 제공할 정보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포함해 신청접수를 하면. 그중 연구소에서 필요하거나 원하는 정보를 추리는 작업이 진행됐다.
물론 내가 한 건 아니고.
임시 팀을 만들어서 다른 직원들이 신청서를 살펴보는 동안 나는 준비할 게 많다고 거짓말하고 베라포드에서 놀았다.
신청자가 너무 많아 라엘타닷컴의 트래픽이 터지고 담당 직원들의 멘탈도 터졌다고.
선별된 플레이어들은 연구소를 방문해 정보를 제공한다.
해당 정보의 사실 여부가 확인되면 정보에 등급이 매겨지고 그에 따른 퀘스트 보상이 달라지는 식.
자신의 정보 등급이 마음에 안 든다고 횡포를 부리는 플레이어도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영웅 길드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주의해달라고 공식적으로 언급을 했고, 그 플레이어는 소속되어있던 길드에서 퇴출당했다고.
그 플레이어는 영웅 길드에 찍혔다고 소문이 퍼져, 반겨주는 곳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이 평범한 무직 잉여가 되었단다.
덕분에 그 후로 연구소 직원들을 대하는 플레이어들의 언행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들었지만.
내가 신경을 써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이제 플레이어들하고 인터뷰하고 서류 정리나 하고 있을 급이 아니거든.
이 프로젝트에서 내가 신경 써야 할 일은 딱 하나, 퀘스트 지급뿐이었다.
베라포드의 퀘스트 보드 근처에 방을 따로 얻고, 플레이어가 한 명씩 입장해 서브 퀘스트를 지급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사실 나는 그냥 앉아서 퀘스트만 주고, 플레이어들을 퀘스트 등급별로 분류하고 문제가 생기지 않게 관리하는 건 영웅 길드에서 붙여준 다른 플레이어 두 명이 담당했다.
“여기 있는 까망이를 깨끗하게 씻겨주시면 검 한 자루를 드리겠습니다.”
“저희 저택에 일손이 부족하다는데 가서 설거지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답례로 생명력 포션을 드리겠습니다.”
“이 개의 털 좀 빗겨주세요.”
“베라포드 광장에 쓰레기가 많던데 깔끔하게 정리해주세요. 청소를 하다 보면 체력이 좋아지지 않을까요?”
“다른 도시에서만 구할 수 있는 과일이 먹고 싶습니다. 가져다주시면 대신 좋은 무기를 드리겠습니다.”
“까망이와 삼십 분만 놀아주세요.”
“심심한데 브레이크 댄스 좀 쳐주시겠어요? 10점 만점에 5점 이상이면 통과입니다.”
엄청난 호사였다.
정말 솔직히 말해서 너무 귀찮을 것이 예상되어 프로젝트고 뭐고 자리를 박차고 사라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10분에 한 번씩 들었었는데.
막상 퀘스트 지급이 시작하니까 왕이 부럽지 않았다.
바쁜 건 내가 아니라 플레이어들이고.
플레이어들이 퀘스트를 받아 퀘스트 보드까지 가서 수락을 하고. 퀘스트 달성 후 다시 돌아와 완료하는 것까지 걸리는 시간이 있어서 하루에 만나볼 수 있는 플레이어의 수도 생각보다 적었다.
이 업무에 있어서 유일한 단점이라면 다양한 퀘스트 내용을 계속해서 떠올려야 해서 창의력에 한계가 온다는 것.
그 외에는 내 세상이었다.
까망이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이 상황을 마음껏 즐겼다.
그렇게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즐거운 서브 퀘스트 지급이 한참일 때.
플레이어 사이에서 ‘이안’에 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 4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