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47)
평범한 회사원입니다-47화(47/180)
< 47화 >
자기소개 서브 퀘스트. 이게 있었지.
잊고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나라고 모든 플레이어가 내게 자기소개를 하고 다니는 걸 막을 수도 없고.
기간 제한도 없는 퀘스트라 이런 때는 조금 곤란하다.
굳이 숨길 이유도 없지만, 머리 위에 이름 달고 다니는 수준이라 신경 쓰이잖아.
“죄송하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당연하지만 내가 다른 플레이어의 시스템 창을 볼 수 있다는 걸 윤승연은 모른다.
그런데도 굳이 확인하려고 이름을 물어오다니.
분명 놀란 것 같은데 목소리나 행동이 차분한 것도 그렇고. 내가 생각했던 초월 길드 길드 마스터의 이미지와는 꽤 차이가 났다.
엄청 불같은 성격인 줄 알았는데.
이안이라고 설명할 생각은 없었는데 소개하기도 전에 확인사살부터 당해버려서 가명을 대는 게 무의미해졌다.
“이안이라고 합니다.”
역시 그렇구나 라는 표정.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이 전에 파티를 맺고 형의 퀘스트를 도운 적이 있는데. 그때는 두 번 다 파티를 맺고 퀘스트를 시작했기 때문에 퀘스트 공유가 됐었다.
이동할 때도 함께 이동됐고, 완료 후에 돌아올 때도 함께 돌아올 수 있었지.
그런데 이미 퀘스트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파티가 되나?
원래 궁금한 건 바로바로 해결하는 거라고 했지.
나는 바로 윤승연을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날렸다.
“당신이 하고 계신다는 그 임무. 1층까지 나가는 거라고 하셨죠? 거기까지 동행하겠습니다. 혹시 그사이에 또 몬스터가 나타났을지도 모르니까요.”
“괜찮습니다, 저 혼자서…”
[NPC 이안과 파티를 맺으시겠습니까?예 / 아니오]
이제는 몇 번 봤다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시스템 창.
그런데 이전에 본 것과는 조금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저거, 분명 형이랑 파티 맺을 때는 NPC 이성한과 파티 맺지 않겠냐고 뜨지 않았나.
왜 이번에는 이성한이 아니라 이안이지.
설마 상대방이 내 이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냐에 따라 달라지는 건가.
형은 나를 이성한이라고 알고 있어서 이성한이라고 떴지만, 윤승연은 내 이름을 이안이라고 생각하니까 시스템 창에도 이안이라고 뜨는 식으로.
그렇다면 만약 나를 찰리나, 잭 같은 엉뚱한 이름으로 소개한 후에 파티를 맺게 되면?
시스템 창에는 소개한 이름으로 뜨는 건가?
다음번에 모르는 플레이어에게 가명을 말해준 후에 파티 신청을 해서 이름이 어떻게 뜨는지 확인해봐야겠다.
물론 그 플레이어가 자기소개 서브 퀘스트를 갖고 있다가 갑자기 퀘스트 완료가 되어버리면 어쩔 수 없겠지만.
“…어?”
윤승연은 계속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역시 플레이어로 사는 동안 처음으로 보게 된 파티 창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파티를 맺는 게 가능했다고? 그것도 NPC와.
정보는 곧 힘.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윤승연은 망설임 없이 ‘예’를 눌렀다.
[NPC 이안과 파티를 맺었습니다.파티 인원 2/10
플레이어 윤승연
NPC 이안]
“1층까지 데려다주신다고 하셨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윤승연은 괜찮다며 거절하려던 건 없었던 척 싹 말을 바꾸고 퀘스트 창을 열어 퀘스트를 확인했다.
물론 이쪽이 볼 수 있을 거란 상상을 하지 못하니까 맘껏 자유롭게 행동하는 거겠지만.
이걸 어쩐다. 이쪽은 뭐 하나 빠짐없이 다 보고 있는데.
[퀘스트: 지하 던전 탈출]당신은 지하 던전의 맨 아래층에 갇혀있습니다.
지하 던전의 몬스터를 뚫고 지상까지 이동하세요.
보상: 처치한 몬스터 수에 따른 차등 보상
실패 조건: 레이나 마레트 & 클리브 어윈의 사망
실패 조건이 익숙한걸?
던전 탈출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실패 조건.
역시 이 던전을 빠져나가는 것이 저 두 사람과 연관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윤승연은 두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 퀘스트 창을 열었던 건지, 잠시 실패 조건을 바라보다가 내 뒤의 덩치와 석호를 가리켰다.
“혹시 뒤의 두 분이 레이나 마레트와 클리브 어윈이라는 분들은 아니시겠죠?”
“아닙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쪽은 라마. 저쪽은 덩치라고 합니다.”
덩치는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데려다준다는 것도 웃겼다.
위층은 몬스터가 싹 정리된 상태고, 위험요소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오히려 1층의 광부들이 처음 보는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나는 걸 보고 기겁을 하며 도망칠 거다.
그리고 반년쯤 후에 광산에서 나타난 피투성이 귀신 같은 괴담이 퍼져나가겠지.
광부라는 게 생각보다 극한직업이구나.
하지만 퀘스트나 몬스터 사냥을 함께 하자고 제안하지 않으면 파티는 성사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형과 파티를 맺을 때는 퀘스트를 완료하면 원래 위치로 이동할 때 같이 이동이 됐었는데.
이렇게 중간에 파티를 맺는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또 어떤 차이점이 있는 걸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다친 건 전부 치료가 됐지만, 피로까지 풀리지는 않았을 텐데. 윤승연은 군말 없이 내 속도에 맞춰 따라왔다.
오히려 라마와 덩치가 저 뒤에서 온갖 여유를 부리며 걸어오고 있었지.
지하 1층의 끝, 1층으로 올라가는 통로 앞에 도착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윤승연이 지하 3층에서 상처를 입고 쓰러져있었던 건 아주 운이 좋은 일이었다.
혹시라도 지하 3층을 정리하고 지하 2층으로 올라오던 차에 라마를 만났다면. 라마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윤승연을 몬스터 정리하듯 치워버렸을 테니까.
“이 밖으로 나가면 1층입니다. 위에 다른 사람들이 있지만, 적이 아니라 채광 중인 광부들이니 공격하지 말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윤승연은 통로를 통해 나가려다 멈추고는, 돌아서서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층인 지하 5층에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아주 강한 몬스터라도 있었던 겁니까?”
“강한 몬스터가 있는 건 맞지만, 그런 게 아니라 큰 구슬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구슬이요?”
“몬스터가 너무 많아 겨우 도망쳐 나와서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뭔가가 있었던 건 확실합니다.”
구슬 말고 다이아몬드 광산이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큰 구슬이라고 하니까 뭔지 알 거 같기도 하고.
괜히 또 쓸데없는 걸 줍게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러면 다음에 다시 만나요.”
“다음에. 뵐 수 있는 겁니까?”
“예?”
순간 당황해서 되물어버리고 말았다.
보통 이런 건 예의상 하는 말 아닌가?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 라는 인사에 그 자리에서 약속 잡을 사람이네.
윤승연은 정말 사람을 뚫어버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진지한 눈으로, 고개를 틀 생각도 안 하고.
그러더니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서서 1층으로 올라갔다.
“꼭 다시 만나길 바라고 있겠습니다.”
마지막 한 마디를 흘리듯 남겨놓고는.
“오우, 좋겠네요~ 윤승연이가 다음에 보자고 하네요. 그것도 꼭.”
덩치가 뒤에서 사람의 어깨를 콕콕 찌르며 장난을 쳤다.
누가 내 어깨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거나 잡아 뜯으려고 하는 때는 있어도 이렇게 낯간지럽게 두드려대는 건 정말 오랜만이라.
어쩐지 소름이 끼쳐서 본능적으로. 나도 모르게 주먹을 휘둘러버렸다.
“아아악!”
덩치는 그대로 광산 벽에 처박혀서 괴성을 질렀다.
큰일이다.
“내 광산! 방금 엄청나게 흔들렸는데 무너지는 거 아니겠지?”
“지금 그게 중요한 건가. 저 인간 죽어가고 있다.”
라마가 혀를 차면서 바로 덩치를 꺼내고 치료마법을 펼쳤다.
아니, 정말 실수라고. 아무리 나라고 그런 장난에 사람을 벽에 박아버리지는 않아.
세상 살면서 누가 나한테 저런 장난을 치는 게 몇십 년 만에 처음이라서 당황했을 뿐이라고.
그리고 사람이 손을 휘둘렀을 뿐인데 날아가는 건 너무 심하지 않아?
저렇게 약해서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지 정말 모르겠다.
나중에 클리브에게 괜찮은 갑옷 하나라도 얻어서 챙겨주든가 해야지.
“죽는 줄 알았어…”
“그 정도로 쉽게 죽지 않는다, 인간.”
“아니, 인간은 그 정도로 쉽게 죽는데요. 드래곤이라 잘 모르시나 본데 인간은 사실 깜짝 놀라도 죽을 수 있다고요.”
“깜짝 놀라는 정도로 죽지는 마라.”
라마는 그사이에 정이라도 든 건지, 동병상련을 느끼는 건지 예상외로 덩치를 잘 챙겨주고 있었다.
지하 5층으로 이동하기 전, 30분 정도 휴식을 취하며 지하 1층에서 대기했다.
곧 윤승연이 퀘스트 완료를 하고 원래 있던 장소로 이동되겠지?
물론 나는 상태창이 뜨지 않으니 확인할 방법은 없다.
윤승연이 퀘스트 완료를 누른다고 해서 ‘당신의 파티원이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같은 시스템 창은 안 뜰 테니까.
그럼 퀘스트 완료를 누른 건지, 아직 밖을 헤매고 있는 건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정답은 하나. 직접 따라가서 확인하는 것.
하지만 윤승연이 나를 NPC로 알고 있는 이상 내 앞에서 퀘스트 완료를 누를 거 같지 않아서 그냥 보냈다.
다시 만나자고 해놓고 갑자기 슝 사라지는 모습을 보이진 않을 테니까.
원래는 보내놓고 몰래 뒤따르려고 했는데 갑작스럽게 덩치가 벽과 하나가 되는 사고가 생길 뻔해서 타이밍을 놓쳤다.
이쯤 지났으면 진작 퀘스트 완료하고 갔겠지.
내게 아무 변화도 없는 걸 보니 중간에 파티에 합류할 경우 퀘스트 참여 인원이 아니라 그냥 파티원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이건 나중에 다시 한번 제대로 확인해보는 것으로 하고.
그 후로 빠르게 광산 정리에 들어갔다.
겸사겸사 내 광산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확인도 해보고.
규모가 큰 건 알고 있었지만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아쉽게도 지하 3층과 4층은 철광석도 없고 몬스터 시체만 가득한 공간일 뿐이지만.
여기도 언젠가 써먹을 일이 있겠지.
지하 4층의 몬스터도 수가 어마어마했지만, 마지막 층인 지하 5층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출근길의 지하철 1호선처럼 꽉곽 찬 몬스터들.
심지어 이 상태에서도 어디선가 몬스터가 계속 나타나고 있는 거 같은데.
지난 몇 년간 몬스터가 계속 증식하며 지하 5층에서 위층으로 계속 이동해, 최근 들어서는 1층까지도 가득 찬 상태가 된 거 같다.
그걸 뒤늦게 발견한 클리브가 내게 도움을 청한 거고.
덕분에 나는 광산을 얻었고.
이게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건가.
아마 클리브 혼자 해결하려고 했으면 평생 한 층 정리하는 게 고작이었을 거다.
정리하면 몬스터가 올라오고. 또 정리하면 몬스터가 올라오고. 끝이 없었을 테니까.
윤승연이라는 플레이어에게도 이곳은 버거웠겠지.
스킬을 쓰려고 해도 몬스터들이 이렇게 가까워서야 자기까지 말려들 판이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에게 해당하는 사항은 아니었다.
어차피 몬스터들은 라마가 들어서는 순간 정지 버튼 누른 것처럼 멈춰 섰고 그냥 칼 몇 번 휘둘러도 우수수 쓰러졌으니까.
“저 끝에 뭐가 있는데요? 아까 초월 길마가 말한 구슬 같아요.”
덩치가 가리키는 곳은 지하 5층은 맨 끝이었다.
단상처럼 솟아오른 바위의 위에 구슬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큰 무언가가 놓여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굉장히 눈에 익은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먹만한 크기의 보라색 수정이.
< 4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