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53)
평범한 회사원입니다-53화(53/180)
< 53화 >
연구원들은 내가 곁에 있다는 것을 그새 잊은 건지, 신난다며 연구를 시작했다.
중국을 하루 만에 다녀왔는데 나도 좀 쉬자.
아예 커피까지 타와 나 홀로 편하게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내가 놀 때 남들이 힘들게 일하는 걸 구경해야 진짜 재미있는 건데.
이 사람들은 너무 즐겁게 일해서 구경하는 맛이 안 나네.
가만히 앉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역시 연구소로 돌아와야 할까.
절대 우리 엄마가 장보고 쇼핑할 때도 나를 끌고 다니기 시작해서 그런 게 아니다.
몇 년간 평화로웠던 지구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내가 분명 연구소에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솔직히 조금 너무했다.
요즘은 마트에서 장 본 거 배달시키면 몇 시간 내로 집까지 날아오고, 그게 싫으면 택시를 타고 집에 와도 얼마 안 드는데 굳이 나한테 짐을 다 들게 해서 걸어오고.
나 없을 때는 식료품부터 까망이 밥까지 전부 온라인 배송시키는 거 다 아는데. 사실 이 정도면 집 밖으로 나가라고 등 떠미는 거지.
차라리 연구소에 소파랑 TV 갖다 놓고 누워있는 게 더 편하겠다.
“성한 씨, 이쪽으로 좀 와보세요.”
연구원들이 중국에서 가져온 흙을 뒤적이고, 이상한 액체에도 넣어보고, 현미경으로 살펴보는 걸 구경하고 있었는데 연구원 한 명이 부르길래 따라갔다.
“여기 어때요?”
나를 데려간 곳은 7층 복도 끝의 사무공간.
7층은 연구실만 사용되고 있어서 규모에 비해 놀리는 공간이 많은 편이었다.
이쪽 사무실도 원래는 창고로 사용되고 있지 않았나?
“정리가 깔끔하게 잘 되어있네요. 지난번에 봤을 땐 잡동사니만 쌓여있던데.”
“그렇죠? 이쪽 사무실을 성한 씨께 드리기로 했습니다.”
“예?”
내가 연구실로 돌아올까 말까 고민하는 걸 어떻게 알고 이런 걸 준비해놓은 거지.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사실 성한 씨는 3층이 아니라 저희 7층과 함께 하고 싶으셨죠. 하지만 3층을 벗어날 수 없을 거 같자 결국 사직서를 제출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미련을 버릴 수 없어 몇 번이고 이곳으로 되돌아오신 거지 않습니까.”
내 마음을 잘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삽질하고 있던 거였다.
“이제는 더 이상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이미 윗선에 잘 말해뒀습니다. 이제 성한 씨는 3층이 아니라 7층으로 출근하시면 됩니다.”
“저는 연구원이 아닌데요.”
“물론 앞으로도 연구원은 아니시겠죠! 아예 새로운 부서를 만들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7층 연구실과 동고동락을 하게 될, 실험재료담당 부서입니다!”
어디 가서 명함도 내밀고 싶지 않게 만드는 부서 이름이다.
“아, 대외적으로는 연구소 소속 플레이어 길드로 등록이 되어있습니다. 부서명은 제가 지었지만요.”
“길드에 들어갈 거면 다른 길드도 많은데 제가 굳이 왜 연구소로 들어오겠어요.”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연구소에 애착이 깊다는 걸 저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네이밍 센스만큼 착각도 심하시네.
“이 부서로 들어오시면 이성한 플레이어님이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걸 지정하실 수 있습니다.”
호칭이 이성한 플레이어님으로 바뀌었다.
“소속 플레이어들도 직접 모집해 뽑으실 수 있고요. 원하시는 던전이 있으시다면 반드시 낙찰해오겠습니다. 그래도 저희 연구소가 영웅 길드 다음으로는 연합에 영향력이 있는 편입니다.”
길드 마스터와 다를 바 없지만, 책임감이 줄어든다는 건가.
“직접 길드를 꾸리신다면 제일 골치 아픈 게 온갖 서류 처리 아니겠습니까. 말만 들어도 머리 아픈 공문서들! 전부 연구소에서 해결해드립니다.”
확실히 3층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긴 했다.
“다만 일반 길드와는 다른 점이 한가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길드지만 저희는 회사. 이 부서에 소속되시면 길드 마스터가 아닌 다른 직책으로 들어오게 되지요.”
“뭔가요?”
“부장입니다.”
“들어오겠습니다.”
바로 승낙해버렸다.
부장보다는 길드 마스터가 더 높은 위치인 것처럼 보이지만.
길드 마스터는 플레이어라면 아무나 가서 도장 찍고 1인 길드라도 만들어서 오를 수 있는 자리지만 부장은 그게 아니거든.
사람 살면서 한 번쯤은 부장 정도 해봐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나는 퇴사 한 번으로 부장 자리를 얻었다.
역시 퇴사도 하고 볼 일이야.
그날, 라엘타닷컴의 공지 게시판에 채용공고 하나가 올라왔다.
라엘타닷컴에 올라왔다는 것 자체가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한 공고라는 건데.
어떤 플레이어가 좋다고 연구소에 취직하고 싶어 할까.
플레이어들은 속으로 비웃으며 더 큰 비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글을 클릭해보았다.
그리고 곧 말을 잃었다.
[연구소 소속 플레이어 채용공고]경력: 무관
나이/성별: 무관
연구소에서 미래를 함께할 인재를 찾습니다.
인원: 00명
응시자격: 난이도 5, 레벨 40 이상의 플레이어
업무 내용:
-이레귤러 던전 탐험
-연구실을 위한 연구 재료 수집
던전 탐험은 담당자와 함께 안전하게 진행됩니다.
담당자: 이성한
연구소 소속 플레이어만을 위한 복지
1. 생일/결혼기념일 축하
2. 매월 연차 외 유급 보건휴가
3. 탄력 근무 시행
4. 라 엘타 퀘스트 지원
복지의 생일, 결혼기념일 축하 같은 건 줘도 쓸모없는 혜택이었고.
플레이어들의 시선을 끈 건 하나였다.
담당자, 이성한.
이성현의 동생과 관련된 기사가 계속해서 터지면서, 직접 언급은 안 해도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바로 그 이름.
세계 1위 플레이어의 동생 이성한.
그런데 그 세계 1위보다도 강한 거 같다는 이성한.
몬스터를 테이밍 할 수 있다는데 범위가 드래곤 까지인 것으로 추정되는 이성한.
S급 이레귤러 던전의 오염된 몬스터 같은 건 맨손으로 날려버린다는 이성한.
그 사람이 담당자라고?
동명이인 아니고 진짜 이성한?
심지어 같이 던전에 들어갈 수 있다고?
그것도 대형 길드가 아니면 구경도 못 한다는 이레귤러 던전을?
플레이어들은 홀린 듯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몇 시간쯤 흐르자 이 정보는 해외에도 퍼져 한국까지 갈 테니 인터뷰라도 보게 해달라는 문의도 빗발쳤다.
언론에서는 최초의 연구소 소속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들을 모집하고 있다며 보도했다.
그리고 같은 시간.
나는 채용 공고만 딸랑 올려놓고 라 엘타의 광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왜애 이제야 오신 겁니까아. 죽는 줄 알았습니다아!”
“우리를 까맣게 잊은 줄 알았다고요!”
미안해서 어쩌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 맞는데.
두 사람은 목숨만 겨우 붙어있는 광산 채광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라마가 있었을 때야 손쉽게 몬스터를 정리하고 여유 있게 광석을 캤을 텐데. 한 사람이 몬스터를 맡을 동안 다른 사람이 열심히 곡괭이를 휘두르는 것을 쉬는 시간 없이 번갈아 가면서 반복하고 있었다고.
중간에 한 번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는데, 돌아오니까 몬스터가 딱 두 사람이 감당하기에 죽지 않을 정도로 불어나 있어서 그 후로는 광산을 떠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냥 나오지 그랬습니까.”
말 한마디 잘못 뱉었다가 두 사람의 원망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나왔다면 몸은 편했겠지만 마음이 불편했겠지.
라마나 내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데 몬스터가 1층을 침범할 정도로 불어나서 광부들을 공격하기라도 하면 더 큰 문제가 됐을 테고.
“두 분 다 라 엘타 퀘스트나 어서 깨고 오세요. 지구로 귀환할 겁니다.”
“저는 이제 길드로 돌아가도 되나요?”
덩치가 조심히 손을 들고 물어왔다.
제발 영웅 길드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간절한 눈빛.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 오기 전에 태현오에게 정식으로 통보하고 왔다.
덩치를 연구소로 데려가겠다고.
영웅에서 인재를 빼가다니 제법인데, 같은 소리를 듣긴 했는데. 덩치가 언제부터 인재였는지는 모르겠고 우리 형도 인정한 노가다꾼인건 확실했다.
“아뇨. 두 분은 원래 계시던 길드가 아닌 다른 길드로 가게 됩니다.”
“예? 원래 길드는 어쩌고요?”
“아니, 제가 영웅을 두고 어디를 갑니까!”
“제가 있는 연구소로 갑니다.”
덩치는 펄쩍 뛰며 난리였지만 선택권은 없었다.
“이미 길드 측의 허가는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이전 길드에서 나오실 필요는 없고요, 저와 딱 일 년만 함께 일한 후에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아. 원래 길드에서 괜찮다고 했다면 저도 좋습니다.”
“우리… 길드가… 나를, 버렸어…”
덩치는 이미 게거품 물고 드러눕기 일보 직전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러니까 저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김천호 씨, 맞지요?”
“네, 맞습니다.”
그래, 김천호. 그런 이름이었지. 이 사람은 연구소로 가는 게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덩치는 영웅을 두고 연구소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보다 더 충격을 받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저는 이름으로 안 부르고 저 사람은 이름으로 부르는 겁니까?”
“제가 그랬나요? 이름이 영 안 외워져서.”
“이석호, 김천호! 둘 다 호가 들어가는데 왜 나만!”
“자, 다섯 시간 드리겠습니다. 퀘스트 끝내고 베라포드 광장에서 모입시다.”
덩치는 그동안 광산에서 큰 충격을 받은 건지.
아니면 그사이에 내가 만만해진 건지, 답지 않은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고생한 게 있으니까 딱 오늘까지만 봐주지.
“메인퀘를 깨는데 다섯 시간은 너무합니다!”
“역시 두 분을 너무 얕봤나요? 죄송합니다. 세 시간으로 하죠.”
“세 시간이라니 말도 안 돼! 조금 쉬게 해주세요!”
“중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 실컷 쉬게 해줄 테니까 빨리 다녀오세요.”
안 가려고 버티는 덩치를 퀘스트 보드까지 끌고 가 퀘스트에 던져넣었다.
그리고 지구로 돌아오자마자 라엘타닷컴의 채용 공고에 슬쩍 두 사람의 이름을 팀원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영웅 소속 플레이어로 알려진 덩치, 이석호가 연구소에 들어간 것을 보고, 다른 플레이어들은 연구소를 영웅의 자회사 같은 개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연구소에서 구르다 보면 영웅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같이 퍼지면서 지원 인원이 더욱 늘어났다.
남들이 연구소에 들어오고 싶어 안달이 나 있을 때, 그 누구보다도 연구소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덩치는 중국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브레스에 휩쓸린 다른 던전 중 오염이 의심되는 곳이 두 군데 더 발견됐다. 영웅은 그쪽을 좀 더 조사할 거야.”
“오염된 던전이 또 발견되면 말해줘. 이 던전은 우리 다섯이 살펴보고 올게.”
나, 라마, 덩치, 김천호, 그리고 까망이.
까망이는 덤이다.
“부길마님, 저 정말로 영웅에서 쫓겨나는 겁니까, 예?”
“그런 거 아닙니다.”
“길마님께 말씀 좀 드려보세요.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누가 보면 연행되어 가는 줄 알겠네.
“지금부터 던전에 들어갑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오염된 던전이고요. 이거 하나씩 받으세요.”
덩치와 김천호에게 삽을 하나씩 들려줬다.
“이게 뭡니까?”
“삽입니다.”
“그건 보면 알지만 던전에 들어가는데 왜 삽이 필요한 거죠? 혹시…!”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전투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여기 드래곤이 있는데 뭘 걱정하십니까. 하지만 땅 팔 일은 있으니 삽을 꼭 챙겨주세요.”
“부길마님…”
덩치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형을 바라봤지만 외면당하고 말았다.
던전은 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몬스터도 없고.
처음에는 삽을 쥐고 경계하던 김천호도 10분 넘게 걸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긴장을 풀었다.
덩치는 처음부터 라마와 내가 있는데 뭐가 위험하겠냐며 까망이와 발맞춰서 걷고 있었고.
“정말 긴 통로네.”
“그래도 갈림길이 없어서 길 헤맬 걱정은 없겠네요.”
“이 긴 통로를 우리가 다 파야 할 수도 있어.”
“……”
“진짜 무서운 건 몬스터가 아니라 저 사람이야. 나는 이미 늦었지만, 당신이라도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쳐.”
뒤쪽에서 덩치와 김천호가 귓속말하는 게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게 귀에 꽂혔다.
통로가 끝을 보이지만 않았어도 덩치 본인이 언급한 대로 이 긴 통로를 싹 한번 파보라고 시켜봤을 텐데.
하필 이 타이밍에 출구가 나오냐.
던전은 다른 공간으로 이어져 있었다. 던전이라기 보다는 터널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제일 먼저 앞장서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
어쩐지 아는 곳 같은데.
마치 라마의 브레스에 맞은 것 같이 뜯겨나간 공간.
긴 통로를 돌고 돌아 입구로 되돌아 나온 게 아닐까 착각까지 할 정도로 브레스의 흔적과 똑같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아는 곳 같지.
“여기 내가 살던 곳이다.”
“뭐?”
“기억 안 나나, 인간. 내 레어가 있었던 곳이란 말이다!”
라마의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날개가 오염된 라마를 처음 만났던 그 장소.
던전은 라 엘타와 이어져 있었다.
< 5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