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54)
평범한 회사원입니다-54화(54/180)
< 54화 >
분명 라마를 처음 만났던 그곳이 확실했다.
라마는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라도 드는 건지, 가봤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레어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지구에 있는 모든 던전이 라 엘타와 이어져 있는 걸까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던전을 탐험하다가 라 엘타에 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군요.”
형도 언급한 적 없는 걸 봐서 영웅 길드에서도 모르는 정보라는 건데.
던전이란 게 한두 명이 손잡고 산책하듯 들어갔다 나오는 곳도 아니고.
몇십, 몇백이 단체로 움직여 탐험하는 곳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정보가 퍼지는 걸 숨길 수는 없었을 거다.
“이 던전이 특별한 것일 수도. 아니면 우연한 계기로 통로가 열린 것일 수도 있죠.”
만약 모든 던전이 라 엘타와 이어져 있다면, 특정 조건을 달성해 통로를 열 수 있거나 일부 던전에만 통로가 숨겨져 있다는 가설이 좀 더 정확한 것 같다.
중국이 오염된 이유는 이쪽과 이어진 통로를 통해 오염물질이 흘러 들어가서 그런 건가?
전에 봤던 이레귤러 던전도 라 엘타와 이어진 통로에 틈이 생겨서 오염이 시작됐던 걸지도.
그때 그 던전을 좀 더 살펴봤어야 했는데.
던전 부산물을 가져다 던져주는 것보다는 7층 사람들을 통째로 던전에 모셔다 놓고 연구 좀 해보라고 시키고 싶다.
궁금하고 답답해서 미치겠네.
“애초에 여기가 라 엘타는 맞는 겁니까? 저는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베라포드의 반대편에 있는 곳이라 봐도 모를 겁니다. 그래도 라마는 잘 알겠죠. 여기서 태어났는데.”
“라마 님이요?”
덩치는 측은하다는 시선으로 라마를 바라봤다.
잘 먹고 잘사는 고민 없는 드래곤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풀 한 포기 없이 황량하고, 처절함이 느껴질 정도로 파괴된 곳에서 살아왔던 거냐.
대충 그런 생각인 거 같다.
“참고로 이 주변을 파괴한 것도 라마입니다. 브레스로 깔끔하게 날려버렸죠.”
덩치의 눈빛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안쓰럽다는 시선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아무리 제 고향이라도 잔인하게 짓밟는 극악무도한 드래곤을 보는 시선으로.
“…저 인간이 내게 시킨 거다. 내 손으로 직접 마을을 파괴하게 했다.”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 끔찍한 명령을…!”
오해다.
앞뒤 설명 없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이유도 없는데 라마에게 네 손으로 직접 고향을 부수고 가족을 죽이라고 명령한 거 같잖아.
그리고 마을을 파괴하는데 언제 손을 썼어. 입만 썼지.
“이 일대는 정화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어있어서 멀리까지 퍼지기 전에 소멸시켜 없애버렸을 뿐인데요.”
“그래도 그걸 고향 사람, 아니 고향 드래곤에게 직접 파괴하라고 하는 건 좀…”
라마 본인이 제일 신나서 날아다녔습니다만?
물론 비유가 아니라 진짜 날아 다닌 거지만.
덩치와 대화하다 보니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원래 이 마을에 살던 아이들이 있었지.
이곳이 진짜 라 엘타가 맞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만나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내가 알던 그 장소와 똑같은 모습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곳일 수도 있으니까.
평행세계라든가. 아니면 그냥 겉모습만 같은 다른 세상. 어쩌면 필드 던전의 일부이거나 함정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이곳이 내가 아는 그 라 엘타가 아니라면 이곳 주민 중에는 나를 아는 사람은 없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사실 가장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집사를 만나보는 게 제일이겠지만 베라포드는 너무 멀고.
아는 라 엘타 주민 중에서는 그 아이들이 제일 가까운 곳에 있으니 어쩔 수 없지.
“라마, 그때 이 마을에 살던 아이들 기억나지?”
“빼빼 마르고 더러운 주제에 멋대로 내 위에 올라탄 인간 아이들 말인가. 물론 기억한다.”
기억은 하고 있지만 매우 안 좋은 쪽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이 있는 마을로 가자. 빨리 폴리모프 해제해봐.”
“또 나를 타고 갈 셈이냐! 차라리 마법진을 그려주면 활성화를 시켜주겠다!”
“노동력 낭비야. 그렇다고 덩치를 타고 갈 수는 없으니까 너를 타고 가야지.”
멍치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라마 님, 제발…”
라마는 혀를 차며 폴리모프를 해제했다.
덩치, 저 사람은 설마 진짜로 자기를 타고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무리 상황이 그래도 그런 느리고, 불편하고, 효율성 제로인 일을 내가 할 리가 있나.
“와아, 드래곤 라이더가 된 기분입니다! 용을 타고 나는 건 생각보다 편안하군요.”
[흔들어서 떨어뜨리기 전에 닥쳐라, 인간!]비행 내내 라마는 김천호를 못마땅해했다.
덩치는 안 어울리게 멀미를 하는지 계속 라마의 비늘을 꼭 붙들고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고.
“웩…”
[등에 토하면 죽여버린다! 빈대떡이 될 때까지 꼬리로 후려칠 거다!]“라마 양반, 그만 떠들고 운전에 집중 좀 합시다.”
[캬아악-!]“몬스터다, 몬스터가 공격한다!”
“도망쳐!”
“아니야, 잘 봐봐! 수호 드래곤 님이셔!”
“수호 드래곤 님이시다!”
“수호 드래곤 님!”
라마가 가까워지자 마을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전에 한번 본 적 있다고, 그때만큼 시끄럽지는 않았지만.
“근데 너 언제 수호드래곤이 된 거냐.”
[흥.]싫어하는 척 하기에는 눈이 너무 웃고 있는데.
수호 드래곤이라는 호칭이 그렇게 좋은 건가.
“영웅 형아다!”
“모르는 아저씨들이랑 같이 왔어. 멍멍이도 있어!”
“잘생긴 오빠는 어디에 두고 왔어요?”
라마가 날아오는 것을 발견하고 아이들이 제일 먼저 달려와 우리를 반겼다. 잘들 지내고 있었던 거 같네.
그동안 잘 먹고 잘 잤는지 얼굴도 많이 좋아졌다.
“안녕하세요.”
가장 나이가 많은 청년이 대표로 나와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야. 잘 지내고 있는 거 같네.”
“덕분입니다. 마을 사람들도 신경 써서 챙겨주시고, 얼마 전부터는 작은 목장을 세워서 말과 양을 돌보면서 살고 있어요.”
“목장? 마을 사람들이 그런 거까지 지원해준 거야?”
양은 몰라도 말이라면 꽤 큰 자본금이 필요했을 텐데.
“그때 같이 왔던 분 중에 제일 키 크신 분 있잖아요.”
태현오 말하는 건가.
“그분이 성수를 주고 가셔서 풍족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그놈이 뭘 주고 갔다고?
“그 자식이 성수를 줬다고?”
“예. 두 병이요. 이곳의 촌장님이 근처 도시의 영주님과 인연이 있어서 문제없이 처분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목장 일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때 내가 줬던 성수가 두 병이지 않았나?
태현오가 오염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성수를 안 썼다고?
두 개 준 거 모두?
어차피 성수 값은 준 개수만큼 전부 다 뜯어냈으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성수를 쓰지 않은 것 치곤 사람이 멀쩡했었는데.
여분의 성수가 있어서 받아놓고 쓰지 않았던 건가.
그게 아니라면 오염에 면역력이 생기는 특성이라도 있나?
“저희 목장 한번 구경하시겠어요? 이쪽으로 오시면…”
“아니, 바로 돌아갈 거야. 잘 지내고 있는걸 확인했으니 됐어.”
“저희가 잘 지내는지 확인하시려고 여기까지…”
감동에 겨운 눈빛은 사양이다.
가지 말라며 옷을 잡아당기는 아이들을 두고 라마와 일행이 기다리는 마을 입구로 돌아왔다.
“이곳은 라 엘타가 맞는 거 같습니다.”
“정말입니까?”
“나중에 포탈을 타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들어와서, 이 아이들이 저랑 오늘 만난 걸 기억하는지 확인만 하면 확신할 수 있겠죠.”
“그러면 이제 그 던전을 통해서 일반인들도 라 엘타에 올 수 있는 걸까요? 플레이어들도 좀 더 자유롭게 출입하고, 라 엘타에서 얻은 아이템이나 무구를 지구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라 엘타 무역이 앞으로 굉장히…”
못 본 사이에 말 수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 흥분하니까 또 속사포 랩 시작이네.
다행히 끊임없는 단어의 나열에 귀가 얼얼해지기 전에 덩치가 남 좋은 일을 왜 하냐며 그의 등을 내리쳤다.
“일반인이 중요한 게 아니고, 라 엘타의 물건을 지구로 옮길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지!”
그거참 떼돈 벌 수 있는 좋은 방법이군.
포탈로 이동할 땐 시스템적으로 물건의 이송이 막혀있는 거지만 이건 걸어서 이동하는 거니 가능할지도 모른다.
연구소에서도 직접 라 엘타까지 파견 나와 조사하고. 연구원들도 더 다양한 샘플을 갖고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겠지.
라 엘타가 지구인의 유명관광지가 되어 우글우글 사람으로 미어터지고 몬스터보다 관광객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게 문제지만.
그런 의미에서 라 엘타와 지구를 이어주는 던전 통로는 독점해야겠네!
절대 나 혼자만의 이득을 위한 게 아니다, 이건.
“라 엘타의 물건을 지구로 옮길 수 있는지 확인부터 해보죠. 일단 아무거나 옮겨서 가능하다는 게 확정되면 다시 와서 다른 것들도 가져가면 되니까요.”
지구와 연결된 던전 통로 주위에는 가져갈 만한 게 모래 먼지밖에 없다.
마을 아이에게 부탁해 필요 없는 것을 아무거나 하나 달라고 했더니.
양을 받았다.
“메에에-“
“귀엽게 생겼네요.”
[내 위에서 양이 돌아다니게 놔두지 마라! 기분 나쁘다! 저 양을 꽉 붙잡고 있어라!]불만 가득 라마는 던전으로 돌아가는 내내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던전에 도착하자마자 몸을 털어 양을 떨어뜨렸다.
김천호가 빠르게 낚아채서 양은 무사했지만.
“메에-“
자, 그러면 라 엘타에서 태어나, 라 엘타에서 살아 숨 쉬는 양이 지구로 갈 수 있을지 확인해볼까!
당당하게 던전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통로가 닫혀있었다.
“아니 이게 왜 이래! 여기 입구가 닫혀있어요!”
“저도 다 보이니까 그렇게 큰 소리로 광고 안 해도 됩니다.”
동굴처럼 솟아난 형태의 던전은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입구만 닫혀있었다.
처음부터 입구 같은 건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사라졌다고 하는 쪽이 좀 더 정확한가.
원래 딱 한 번만 이동 가능한 일회용 포탈이었던 걸까?
아니면 시간제한이 있었던 거?
통로를 열게 하는 발동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일 수도.
“문 열어, 문 열라고!”
덩치가 쾅쾅 던전을 두드렸지만, 흙먼지만 날릴 뿐이었다.
“중국에 있던 던전도 분명 일반 던전이었는데 브레스를 맞은 후에 지하의 숨겨진 통로가 드러난 거였습니다. 어쩌면 통로 생성 조건이 브레스일지도 모르죠.”
“거 참 까다로운 조건이네요. 애초에 드래곤이 아니면 시도조차 할 수 없고, 던전 주변을 다 파괴해야 사용할 수 있다는 건데. 거의 사용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달아놓은 조건 아닌가요? 이런 남 골려 먹기에 최적화된 던전을 만든 존재는 분명 변ㅌ…”
“열어, 이거 열라고!”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는 조건이지요. 밑져야 본전이지. 라마!”
“아니, 잠깐 좀 더 생각이란 것을 하고…!”
생각을 하기 전에 덩치, 김천호, 까망이, 그리고 양까지 챙겨 잽싸게 던전에서 멀어졌고.
라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브레스를 내뿜었다.
그리고 던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없어! 던전도, 통로도 싹 다 없어졌다고!”
덩치가 오열하며 가져온 삽으로 바닥을 파봤지만 나오는 건 흙뿐이었다.
이대로 라 엘타에 갇히게 되면 어떡하지.
아니지. 통로로 들어왔다고 해서 꼭 통로로 나가라는 법이 있나. 원래 라 엘타에서 지구로 돌아갈 때는 포탈을 타고 나가는 거잖아.
귀환 포탈을 소환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포탈이 생성됐다.
“귀환 포탈을 만들어 보세요. 이걸로 나가면 되죠.”
“저는 포탈이 불러지지 않는데요.”
김천호는 금방 포기했지만, 덩치는 그 후로도 미련이 남았는지 몇 분 동안 포탈을 불러보겠다고 온갖 발버둥을 쳤다.
“끄아악, 안 나타난다고! 포탈도, 통로도 없어!”
“어… 일단 나랑 라마는 통로와 관계없이 돌아갈 수 있으니까 지구 좀 다녀올게요. 그동안 까망이랑 양 좀 맡아줄래요?”
“으아아아악!”
그렇게 덩치와 김천호는 차원 미아가 되어버렸다.
< 5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