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Just an Ordinary Office Worker RAW novel - Chapter (60)
평범한 회사원입니다-60화(60/180)
< 60화 >
연구소 7층에 자리 잡고 있는 플레이어 사무실.
원래는 실험재료담당 부서라는 웃기지도 않은 이름이 있었지만, 항의 끝에 연구소 길드로 합의를 봤다.
플레이어 연합에 정식 길드등록이 되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무실에 무려 라 엘타로 이동할 수 있는 마법진이 있다는 건 몇 명을 제외하곤 아무도 몰랐다.
사무실에 화분이나 가족사진을 갖다 놓는 것도 아니고 무려 마법진을 갖다 놨는데. 아무 생각 없이 옮겨놓고 보니 허락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게 나중에 생각났다.
근데 또 허락을 받자니 무슨 등록을 해야 하는데 이런 사례가 없어서 케이스 등록부터 해야 하고. 관련 규칙을 만들어야 하고 무슨 절차를 밟아야 하고, 어쩌고저쩌고.
그렇게 사람 뺑뺑이를 돌리다 마지막에는, 이런 중요한 것은 국가의 소유로 하겠습니다, 땅땅! 멋대로 자기들끼리 결정 내리고 가져갈 확률이 높아서 그냥 말을 안 하기로 했다.
가져간다고 순순히 줄 건 아니지만 그 과정이 번거롭잖아.
나중에 들켜서 한 소리 들으면 몰랐다고 우겨야지.
우선 내 첫 번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연구실을 찾아갔다.
“여러분. 던전 구경하고 싶지 않으세요?”
“서, 설마…! 던전에 가게 해주시는 겁니까?”
“가고 싶습니다!”
“가게 해주세요!”
“몬스터 없이 깨끗하고 안전한 던전에서 연구하고 싶지 않습니까?”
“연구하고 싶습니다!”
“오염 물질 그만 보고 진짜 오염 구역 보고 싶지 않나요!”
“보고 싶습니다!”
좋아. 예상대로 한 놈도 빠짐없이 미쳐있는 사람들이다.
가고 싶다고 미친 듯이 한마음 한목소리로 외쳐대는 지원자 중에서 세 명을 어떻게 추려볼까.
“장기 출장이 예상되기 때문에 가족이 없으신 분께서 가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결혼하신 분, 손 내려주세요.”
딱 한 명만이 손을 내렸다.
아, 이거 조금 슬픈데.
“그럼 애인 있으신 분도 손을 내려주세요.”
그리고 아무도 손을 내리지 않았다.
이건 조금 많이 슬픈데?
“오늘 당장 출발한다고 하면 안 된다 하시는 분은 손 내려주세요.”
“갈아입을 속옷까지 여기 다 있습니다! 1분 내로 출발해도 됩니다.”
누군가의 대답에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이 사람들은 왜 살림살이까지 연구실에 갖다 놓고 자발적 야근을 하는 걸까.
그 외에도 몇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지원자 수가 추려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연구소는 대체 어디서 이렇게 복제 수준으로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을 모아온 거지?
이런 경우에 공평하게 인원을 선별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지.
대표적인 것으로는 가위바위보, 사다리 타기, 제비뽑기 정도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덜 시끄러울 거 같은 제비뽑기를 통해 세 명의 연구원을 뽑았다.
“안 돼!”
“저 한 번만 다시 뽑겠습니다, 한번만요!”
“제비 아직 확인 안 했는데 바꾸실 분?”
“와, 당첨이다! 당첨됐다!!”
“진짜요? 저랑 바꾸실래요?”
진작 이렇게 할걸.
조금 어수선하긴 했지만, 인원선별은 이대로 끝!
순식간에 출장 허가까지 승인받고 출발할 준비까지 완료됐다.
“아, 여권은 집에 있는데. 가져와야 할까요?”
“여권은 필요 없습니다.”
“국내 던전이군요!”
아뇨, 다른 차원 던전인데요.
대답 없이 그저 세 명의 연구원을 데리고 내 사무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후 7층 연구원들 사이에서 ‘출장 간다더니 플레이어 사무실에 들어간 후 나오지 않는 연구원들에 관한 이야기’가 괴담처럼 퍼졌다고 한다.
그다음에 한 일은 연구소 플레이어 사무실 소속 플레이어를 뽑는 것.
인재를 뽑는다며 온갖 이력서만 받아놓고. 솔직하게 말해서 깨끗하게 잊고 있었다.
그런 게 있었지.
이지혜가 플레이어 채용 다 끝났으면 카드키 발급해줄 테니 이력서 좀 보내 달라고 연락 안 했으면 끝까지 몰랐을 텐데.
인제 와서 보려니까 뭔 놈의 이력서가 사이트 에러 걸릴 정도로 쌓여있냐.
하지만 이런 잡다한 업무까지 직접 하는 단계는 졸업한 지 오래.
쌓여있는 이력서를 훑어보는 대신 조용히 덩치를 불렀다.
“여기서 괜찮은 플레이어 세 명만 추려주세요.”
“네? 여기서 언제 추려요! 그리고 괜찮다는 기준이 뭔데요.”
“결혼 안 했고, 애인 없고, 몇 주에서 몇 달 동안 연락도 안 되는 곳에 있어도 실종신고가 들어가거나 문제 생기지 않을만한 사람이요.”
“설마 그 사람들을 죽…이진 않을 거고. 라 엘타로 보내시려고요?”
“네.”
“채용할 때는 이레귤러 던전 공략한다고 채용하지 않았나요?”
“세상에서 제일 이레귤러한 던전에서 나온 마법진을 공략.”
“부장이라는 자리가 부장님 개그 하라고 있는 게 아니란 건 알고 있죠?”
덩치는 뭐 저런 같잖은 말장난을 하냐는 표정이었다.
얘가 갈수록 라마를 닮아가네. 다음에 한 번 날 잡아서 셋이 함께 즐거운 던전 공략이나 하러 가야겠다.
“채용 공고에 나와 있는 일만 시키는 회사가 어디 있답니까. 대충 추린 후에 아무나 세 명 뽑아요.”
그리고 플레이어 세 명이 날림으로 선택됐다.
“마법진에 관한 걸 이 플레이어들이 다른 곳에 발설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선택한 저도 연대책임으로 끌려가나요?”
“원한다면 연대책임으로 묶어줄 수는 있는데. 발설할 수 없을 겁니다.”
마법진, 특히 저 정도의 마법진이라면 나만큼 이해도가 높거나 마나를 드래곤만큼 뽑아낼 수 있지 않으면 어차피 사용도 못 한다.
다른 플레이어에게 소문을 퍼뜨리려고 해도 베라포드나 그 근처까지는 가야 할 텐데.
어디서 드래곤이라도 구해서 타고 날아가거나 텔레포트 하지 않는 이상 가는 데만 최소 한 달 이상이다.
“그렇게 오래 걸려요?”
“거기서 가까운 마을까지 걸어가는데 이 주. 그 마을에서 말을 구해 텔레포트 이용이 가능한 대도시까지 가는데 또 이 주.”
심지어 마지막 텔레포트 이동 지점에서 베라포드까지 오는 시간은 제외한 거다.
“한 달이 걸리더라도 감행하는 겁을 상실한 놈이 있으면요?”
“한 달이나 되면 그사이에 저나 누군가가 진작 눈치채고 잡으러 갈 거 같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매일 문제 생긴 건 없나 확인도 할 겸 방문할 거니까 괜찮을걸요.”
“아. 직접 가서 보고 오시는구나.”
“아니, 저 말고, 그쪽이요.”
“뭐? 혹시 제가 동의 한 적 있나요? 없는 거 같은데!”
덩치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은 착착 진행되어 플레이어들과의 최종면접을 갖게 되었다.
최종 면접인 이유는, 나도 몰랐는데 그사이에 덩치가 한번 플레이어들을 쭉 불러놓고 한 차례 면접을 봤다고.
생각보다 신경 써서 뽑은 건지 셋 다 성실하고 선해 보이는 인상.
어쩐지 덩치가 세 명 다 골랐다며 달려왔을 때 엄청 칭찬받고 싶다는 얼굴을 하고 있더라니.
“상태창, 스킬창, 인벤토리 열어주세요.”
“예? 그건 왜…?”
플레이어들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들이었다.
상태창 열고 플레이어가 맞는지 확인하려는 것도 아닐 테고.
그렇다고 시스템 창이 보이는 것도 아닐 테고.
“시스템 창이 없으시다고 들었는데, 혹시 인벤토리에서 물건 꺼내서 플레이어 인증하려고 하시는 거라면. 지구에서도 인벤토리가 열리긴 하지만 아이템은 못 꺼냅니다.”
“아, 그건 아니고. 제가 다른 사람의 시스템 창을 볼 수 있어서요.”
“예?”
“제가 다른 사람의 시스템 창을 볼 수 있어서요.”
“예?”
“제가 다른…”
“아니, 아니! 거짓말이시죠? 어떻게 다른 사람의 시스템 창을 봐요?”
속고만 사셨나.
플레이어들의 스킬창에 나열된 설명을 앞부분만 조금씩 읽어줬다.
세 사람의 턱이 호두까기 인형처럼 되어버렸다.
“주 업무가 채용 공고에 적힌 것과 조금 달라질 거 같은데요.”
“어브어… 시스템창… 허…”
듣고 있는 건가?
“던전 공략 같은 건 나중으로 미루고. 우리 연구소의 연구원분들 출장에 동행해 호위하게 되겠습니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눈만 깜빡이던 플레이어들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어렸다.
던전 주변이나 돌면서 연구하는 일반인들을 지키는 업무나 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
플레이어 중 한 명이 겨우 표정을 감추고 물었다.
“출장은 어디로 갑니까?”
“라 엘타요.”
“예?”
“라 엘타로 갑니다.”
“네에?”
“출장. 라 엘타. 연구원 보호. 지금 당장 롸잇 나우.”
언어 능력을 잃어가는 플레이어들에게 말로 백번 설명하는 대신 한번 보여주기 위해 바로 라 엘타로 데리고 갔다.
“아니? 뭐? 어?”
연구원들은 라 엘타 쪽 마법진 근처에 자리를 잡고 벌써 오염의 흔적을 연구하고 있었다.
라마가 너무 싹 날려버려서 뭐 하나 제대로 찾기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진짜 오염이 심한 곳에 허약한 연구원들을 데려다 놓을 수도 없고. 이게 최선책이다.
우선 라 엘타에 익숙해질 겸 여기서 돌아다니며 흔적 남은 거라도 없는지 조사하다 보면 뭐라도 나타나겠지.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이 꺼내진다! 지, 진짜 라 엘타야.”
“진짜 라 엘타입니다. 그럼 저는 일주일 후에 다시 와볼 테니까 그동안 잘 부탁드리고요. 밥은 매일 아침에 이쪽의 덩치 씨가 와서 챙겨주실 겁니다.”
“그때 인터뷰했던 덩치이-가 아니라, 이석호다.”
플레이어들이 라 엘타로 넘어오기 전까지 연구원들을 지키고 있던 덩치가 간단한 인수인계를 해줬다.
“잠은 저쪽에 임시 거처가 있다. 화장실에 침대까지 갖춰져 있어서 겉은 그지 같은데 생각보다 편하니까 걱정 말고. 또 저쪽에는…”
이러는 와중에도 연구원들은 놀랍도록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저러다 땅 파고 들어가겠다.
라 엘타에 온 게 그렇게 좋은가. 한여름에 워터파크 처음 놀러 간 애처럼 뛰어다니네.
플레이어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당황하고 있을 때, 이제 와서 무르는 일 없게 잽싸게 빠져나왔다.
밀린 업무까지 싹 다 깨끗하게 처리한 덕에 정말 기분 좋게 자고 다음 날 사무실에 혼자 앉아 시간을 축냈다.
이제 연구원들이 연구 성과 좀 내고.
그걸 기반으로 지구도 좀 더 안정화되고.
나는 나대로 그사이에 이득 좀 취하면.
평화로운 지구와 라 엘타를 왔다 갔다 하며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겠지.
마음속으로 하하하 기분 좋게 웃으며 의자에 반쯤 눕듯이 기댔다.
이제야 회사생활 좀 할 맛이 나네.
“큰일 났습니다!”
부하직원 1호 이덩치가 갑자기 일거리 들고 뛰어 들어오는 것만 빼면.
“지금 뉴스 보셨어요?”
“뉴스요? 무슨 뉴스요.”
“갑자기 어제부터 전 세계에 몬스터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는데요. 그것도 어제 오후 5시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오후 5시라면 내가 곧 퇴근해야 한다고 서둘러서 지구로 돌아온 시간인데.
“그리고 던전도 갑자기 엄청나게 많이 생겼다는데. 아직 안 들어가 봐서 정확한 수치는 파악이 안 되지만, 난이도도 전반적으로 상승했답니다.”
플레이어들이 우선 던전은 무시하고 몬스터부터 처리 중이라 다행히 아직까진 피해가 적다고 한다.
문제는 그 몬스터들이 어디서 오는지 봤더니, 클리어하지 않은 기존의 던전이 터지고 그 안에 있던 몬스터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는 거란다.
던전이 터지는 주기를 확인해야 알겠지만,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새로 생성된 던전이 앞으로 한 달 내로 터질 경우 피해가 재앙 수준일 거라고.
근데, 설마.
“혹시 이거 나 때문?”
에이, 설마. 이거까지 나 때문에 그랬다고 하는 건 너무 자의식 과잉이다.
아니겠지.
“설마 아닐 거야.”
“맞는 거 같은데요.”
나도 사실 맞는 거 같다.
< 60화 > 끝